Current Issue

Journal of Korea Planning Association - Vol. 59 , No. 1

[ Article ]
Journal of Korea Planning Association - Vol. 58, No. 7, pp. 177-192
Abbreviation: J. of Korea Plan. Assoc.
ISSN: 1226-7147 (Print) 2383-9171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Dec 2023
Final publication date 07 Nov 2023
Received 13 Apr 2023 Revised 25 Sep 2023 Reviewed 10 Oct 2023 Accepted 10 Oct 2023
DOI: https://doi.org/10.17208/jkpa.2023.12.58.7.177

1980~1990년대 한국의 주택체제 변화 연구 : 주택분양보증제도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김승정** ; 김태오***

Changes of Housing Regime in South Korea in the 1980s and 1990s : Focusing on the Development of the Guarantee System for Housing Completion
Kim, Seung Jung** ; Kim, Tae Oh***
**Ph.D. Student, Department of Environmental Plann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peter6823@naver.com)
***Deputy Director, Korea Housing & Urban Guarantee Corporation (stct3090@naver.com)
Correspondence to : ***Deputy Director, Korea Housing & Urban Guarantee Corporation (Corresponding Author: stct3090@naver.com)


Abstract

By analyzing the historical background to a guarantee system for housing completion in South Korea, this study examines the changes to Korea’s housing regime in the 1980s and 1990s. The main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the guarantee system had not yet been introduced when the housing pre-sale system, as a prerequisite for the guarantee of housing completion and a key mechanism to enable the developmental housing regime to supply apartments in large volumes, was initiated in 1978. This is because of the primary role that large housing construction companies with government privileges played in this initial guarantee system, indicating that the risk of insolvency was low and the developmental state neglected social policy rather than economic policy. Second, since the mid-1980s, small and medium-sized companies have organized interest groups and conducted activities in furtherance of their interests. They provided the main impetus for the introduction of the guarantee system in which a mutual-aid association has played a primary role. In particular, the political democratization in 1987 was a critical juncture in expanding social policies by weakening growth-oriented authoritarianism. By weakening market regulation, it was also a factor in the private sector–led guarantee system. Third, the mutual-aid association–led guarantee system was financially risky due to its mutual helpfulness, so the 1997 currency crisis eventually led the association to dissolve, and its guarantee system has been delegated to the public sector. The currency crisis spread neoliberalism in earnest but also necessitated a social safety net and transformed the guarantee system into a public initiative. This trajectory reveals that Korea’s developmental housing regime has shifted to post-developmentalism—a hybridity of neoliberalism and developmentalism.


Keywords: Guarantee System for Housing Completion, Housing Policy, Housing Regime Theory, the Developmental State, the Post-Developmental Housing Regime
키워드: 주택분양보증제도, 주택정책, 주택체제론, 발전국가, 포스트 발전주의 주택체제

Ⅰ. 서 론

급속한 도시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주택을 빠르게 보급할 수 있었던 배경과 관련하여 중산층 중심의 아파트 공급(천현숙, 2003), 거주자의 원활한 고층주거 적응(김태오·최막중, 2016), 정부의 아파트지구 지정(황보람·최막중, 2018; 배선혜, 2020), 단지화 전략을 통한 양호하나 폐쇄적인 정주환경 조성(박인석, 2013), 아파트 건립 여건을 조성한 도시계획적 배경(김승정·김태오, 2021) 등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이와 같은 논의와 관련하여 주택선분양제도, 분양가상한제, 지정업체 제도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주택 대량공급의 주요 정책수단들도 주목할 사례라 할 수 있다. 권위주의적 국가의 강력한 시장개입을 통해 경제성장을 꾀한 소위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적 특성이 주택정책에 반영된 정책 사례이기 때문(최막중 외, 2014)이고, 실제로 대량공급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이들 제도는 긴밀하게 상호 연동되어 있는데 이중 선분양제도는 그 본질적 특성상 주택수요자의 위험을 담보로 한다. 준공되지 않은 주택의 구입비용을 주택수요자인 수분양자가 먼저 지불해야 하기 때문으로, 만약 시공 도중 주택건설사가 부도 등의 이유로 주택을 준공하지 못한다면, 수분양자는 그 손해를 고스란히 부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분양제도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서는 그 위험을 상쇄 또는 경감시켜 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주택분양보증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주택분양보증제도를 통하여 건설사가 주택준공을 못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분양보증기관이 책임지고 준공하거나 수분양자가 이미 지불한 계약·중도금을 보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택분양보증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제도화된 것은 선분양제도가 법제화된 1978년이 아니다. 약 15년이나 경과한 199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도가 시행된 것이다. 따라서 1980년대 내내 주택분양보증제도라는 안전장치 없이 선분양제도가 시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 의문이 남는다. 또한, 상당 기간 주택분양보증제도 없이 선분양제도가 운용되었음에도 1993년이란 시점에 제도를 시행하게 된 배경에도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기존 연구들은 극히 드물다. 주택분양보증제도와 관련한 기존 연구들은 개발도상국으로의 제도전수 방안(권혁신·방두완, 2016; 이상영·손진수, 2015), 보증사고 발생요인(곽경섭·백성준, 2014), 주택도시보증공사(HUG, Korea Housing & Urban Guarantee Corporation)의 보증 독점 타당성(조이운, 2021), 제도의 사회적 후생(하승현, 2022) 등에 관심을 경주했을 뿐, 제도의 시행배경과 관련한 연구는 지금껏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태오 외(2023)는 주택분양보증제도의 시행 배경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정리한 바 있으나, 기술에 그쳤을 뿐 그 시행과 관련한 해석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이에 본 연구는 선분양제도가 법제화된 1978년부터 주택분양보증제도가 시행된 1993년까지, 그리고 이후 보증기관의 성격이 민간에서 공공으로 전환된 1999년까지를 시간적 범위로 하여 제도의 시행배경과 그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한 이론적 배경으로는 ‘주택체제(housing regime)’ 이론을 활용하고자 한다. 주택체제론은 한 사회의 주택 공급, 소비 및 배분과 관계된 지배적인 정치·사회·경제적 체제를 설명하려는 이론으로서(Kemeny, 2006),1) 주택분양보증제도의 변화과정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고찰하기에 적절한 관점이다. 본 연구는 그간 도시계획사 연구에서 면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주택분양보증제도의 전개 과정 고찰을 통해 한국 주택체제의 변동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주택체제론에 대한 이론적 기여를 도모하고자 한다.

이후 제Ⅱ장에서는 한국의 주택체제론에 대한 기존 논의를 개관함으로써 주택체제론을 주택분양보증제도에 적용하기 위한 이론적 자원을 탐색한다. 제Ⅲ장에서는 선분양제도와 지정업체 제도로 대표되는 1970년대 발전주의적 주택체제의 성립과정을 고찰하고, 이 시기에 주택분양보증제도가 함께 도입되지 않았던 배경도 함께 검토한다. 제Ⅳ장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중소 주택건설업체(등록업체)들이 이익 활동을 전개하고 1993년 주택분양보증제도의 시행을 주도하게 된 배경을 분석하여 이것이 발전주의 주택체제 약화 과정과 관련되어 있음을 고찰한다. 제Ⅴ장에서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중소 주택건설업체 주도의 분양보증제도가 붕괴되어 오늘날과 같은 공공주도의 제도로 전환된 과정을 고찰하고, 마지막으로 이상의 분석결과와 함의를 제Ⅵ장에서 다룸으로 본 연구를 끝맺음한다.


Ⅱ. 한국의 주택체제에 관한 이론적 고찰

주택체제론 연구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는 주택체제의 속성에 따라 여러 국가들을 몇 가지 범주로 유형화하는 것이다. 이는 에스핑-앤더슨(Esping-Anderson, 1990)이 자본주의 국가들의 복지체제를 세 가지 유형(자유주의, 조합주의, 사회민주주의)으로 구분하면서 시작된 이른바 ‘복지국가 유형론’의 영향으로 판단된다(Barlow and Duncan, 1994; Kemeny, 1995; Balchin, 1996). 에스핑-앤더슨은 서구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독자적인 복지체제가 부재한 예외적인 사례로 간주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늦게 활성화되었는데, 동아시아 복지체제와 관련하여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적용된 개념은 ‘생산주의 복지체제’와 ‘발전주의 복지체제’이다. 생산주의(productivism) 복지체제에서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 친화적 속성으로 인해 사회정책이 경제정책에 종속되어 전개되었다고 본다(Holliday, 2000; Gough, 2004). 국가의 강한 개입하에 경제성장이 우선시 됨에 따라 공적 복지의 확대는 미흡하였고, 가족과 같은 비공식 행위자가 복지생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것이다. 한편, 발전주의(developmentalism) 복지체제는 생산주의 복지체제와 많은 견해를 공유하고 있지만, 복지체제의 정치·사회·경제적 맥락을 종합적이고 정교하게 살펴보기 위해서는 발전국가론을 수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다(Kwon, 2005). 생산주의 복지체제에서도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발전주의적 속성을 고려하기는 하지만, 생산주의에서 기본적으로 규정된 두 가지 특성(성장친화적 국가, 경제정책으로의 사회정책 종속) 자체는 서유럽·남미의 일부 국가에서도 관찰되는 등 비단 동아시아만의 고유성이라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론적 한계를 노정한다(윤홍식, 2020).

복지국가 유형론의 영향을 받은 주택체제론 연구들에서도 동아시아 국가들의 주택체제는 서구의 특성과는 상이한 ‘제4의 체제’로 간주되었다(Doling, 1999).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 본격화된 동아시아 주택체제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발전국가적 속성이 그들의 주택체제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Ronald and Chiu, 2010; Ronald and Kyung, 2013; Ronald and Doling, 2014; 이석희·김수현, 2014; 김수현, 2021).

발전국가는 국가가 시장에 대한 전략적 개입을 통해 시장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압축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발전양식을 이른다(김일영, 2000; 이연호, 2009).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국가는 합리적 계획을 추구하는(plan rationality, 계획합리성) 관료제에 근거하여 시장·시민사회 등 여타 주체로부터 제약을 받지 않아 고도로 자율적인 주체로 간주된다(Johnson, 1982; 1987). 발전국가론은 초기에는 일본의 산업화 및 경제성장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되었으나(Johnson, 1982), 이후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 전반에 그 논의가 적용되었고, 최근에는 개방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으로까지 확장되었다(Johnson, 1987; Amsden, 1989; Wade, 1990; Knight, 2014). 한국의 경우, 1960~80년대에 군사정부 집권하에 국가가 시장에 대해 강한 우위를 갖고 개입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다. 국내에서 발전국가론은 금융이나 수출산업 등에 관한 경제정책들을 주요 사례로 다루어 왔으나, 복지체제론이나 주택체제론은 발전국가론이 점차 복지나 주택 부문에 이르기까지 그 설명 범위가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동아시아 주택체제 연구들과 한국의 주택정책을 발전국가적 속성과 결부시켜 설명하는 연구(Yoon, 1994; 최막중 외, 2014; 최시현, 2020)들을 바탕으로, 발전국가 시기 한국 주택체제의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는 경제성장을 위한 공업 정책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주택산업에 대한 재원투입에 소극적이었다. 대신, 소수의 민간 자본에게 선택적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이들이 주택을 공급하도록 유인하였고, 주택분양가격은 시장가격 미만으로 통제하는 등 주택시장의 투자·생산·분배에 있어서 국가가 주도적으로 개입하였다. 둘째, 국가가 저소득층을 위해 공적 복지에 투입하는 자원 비중이 크지 않았던 만큼, 주택 공급전략 또한 저소득층의 열악한 주택부족문제를 해소하기보다는 신흥 중산층 대상의 분양주택(아파트)을 대량공급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따라서 가계가 보유한 주택자산이 복지 기능을 실질적으로 대신하였고, 이를 자산기반복지(asset-based welfare)라 평가하기도 한다(김도균, 2018). 이상의 특징에 따라 본 연구에서도 복지국가 유형론에서의 용례와 같이 발전국가 시기 한국의 주택체제를 ‘발전주의 주택체제’라 명명하고자 한다. 발전주의 주택체제의 속성이 주택 대량공급의 기제로 작동했던 방식과 이것이 어떻게 주택분양보증제도의 필요성을 야기했는지에 대해서는 제Ⅲ장에서 후술하고자 한다.

동아시아 주택체제론 연구들이 지적하는 또 다른 사항은 이들의 주택체제가 변화를 맞이하는 분기점으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주목한다는 점이다(Chiu, 2008; Ronald and Chiu, 2010; Ronald and Kyung, 2013; Ronald and Doling, 2014).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이 경제위기는 그 해 말 한국에 연쇄적 충격을 주었고,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직면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제한적 역할에 기반하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Jones, 2019). 주택체제론 연구에서는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라 각국의 주택금융화가 진전되고 국가의 개입 수준이 약화되는 등 여러 국가의 주택체제들이 비슷한 특성으로 수렴한다는 견해와 여전히 국가별 맥락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견해가 상존한다(신진욱·이은지, 2012). 동아시아 주택체제의 경우에는 신자유주의 기조 일변도로 수렴하기보다는 국가별 변화의 방향성이 상이한데, 이중 한국은 민간 주택금융 확대 등 자율화가 진전되는 가운데에도 여전히 주택시장 규제정책들이 작동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확대되는 등 국가개입적 속성이 지속된다고 평가된다(Ronald and Chiu, 2010; Ronald and Kyung, 2013; Ronald and Doling, 2014; 이석희·김수현, 2014). 이들 연구에서 한국의 국가 개입적 속성이 지속되는 원인으로 지목하는 주요 계기 중 하나는 1987년 정치적 민주화이다. 이로 인해 권위주의 체제가 붕괴되었고, 경제성장 성과의 불균등한 분배 시정 및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정책 확대에 대한 정치·사회적 요구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개입 수준을 기준으로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 주택체제를 하나의 성격으로 섣부르게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은 주택체제뿐만 아니라 발전국가 이후의 국가체제, 즉 ‘포스트 발전국가’ 논쟁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포스트 발전국가 논쟁에서는 권위주의 국가가 해체되고 신자유주의 시장질서가 확산된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에 대해서 여전히 발전국가라고 평가하는 견해, 신자유주의 국가로 전환되었다는 견해, 두 체제의 요소가 융합적으로 혼재되어 있다는 견해가 모두 개진되고 있다(지주형, 2016). 그만큼 권위주의 정부가 붕괴하고 신자유주의적 시장질서가 확대되는 가운데에도, 여전히 기능하는 발전주의 시대 정책들이 있으며 케인스주의적 정책들이 새로 도입되는 등 국가개입이 작지 않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2) 후술하겠지만, 본 연구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주택체제가 핵심적인 발전주의적 요소는 해체되었으나 국가 개입적 규제정책과 신자유주의적 시장질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 발전주의 주택체제’라 지칭하고자 한다.

이상의 이론적 고찰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택체제론은 주택에 관한 제도·정책 및 문화에 대한 고찰을 통해 한 국가와 사회의 체제적 특성에 대한 이해까지 심화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를 갖는다. 주택정책에 관한 국내의 기존 연구들은 대체로 개별 정책의 효과에 대한 기능적 실증분석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강한 대신, 해당 정책이 자리매김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체제적 특성을 규명하려는 거시적 분석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김수현, 2021). 주택정책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고찰하는 문헌들 또한 정책들의 변화 과정을 단지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본 연구는 선분양제도의 원활한 작동을 지원하는 주택분양보증제도의 전개 과정을 중점적으로 분석하되, 이를 사례로 하여 발전주의 주택체제의 성립과 약화, 포스트 발전주의 주택체제로의 전환 등 주택체제의 변동 양상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선행연구와 차별점을 갖는다.

한편, 전술한 바와 같이 종래의 동아시아 주택체제론 연구들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동아시아에서 신자유주의적 속성이 확대되는 기점으로, 1987년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를 사회정책에 대한 국가개입이 확대된 계기로 각각 평가하였다. 그러나 주택분양보증제도의 경우, 오히려 민주화라는 배경에서 민간시장에 의해 최초로 운용되기 시작했으며 외환위기를 계기로 운용 주체가 민간에서 공공으로 전환되었다. 본 연구는 이처럼 사회적 기류에 대한 통념과는 상이하게 변화했던 주택분양보증제도의 시행 배경과 운용주체에 주목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발전국가 이론 연구는 발전국가의 주요 속성으로서 제시되는 국가의 자율성과 합리성에 천착하는 과정에서 여타 사회 주체들의 역할 및 이들과의 관계를 간과하는 등 국가중심적 접근에 경도되거나 더 나아가 국가절대화론에 빠질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조희연, 1997; 박길성·김경필, 2010). 그러나 발전국가론에서 국가와 시장 간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설명 축이며, 발전국가의 쇠퇴과정에서도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장상철, 2020). 이에 본 연구는 시장, 특히 중소 주택건설자본의 입장을 중심으로 주택분양보증제도의 변천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국가와 시장의 관계, 시장 내부의 관계가 발전주의 주택체제 변화 과정에서 중요한 양상임을 제시할 것이다.


Ⅲ. 발전주의 주택체제의 성립

박정희 정부는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을 추진하면서 비경쟁적인 자원·기회 할당을 통해 소수의 대자본, 이른바 ‘재벌’을 선택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하였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은행 국유화를 통해서 행사할 수 있게 된 정책금융 자금과 투자허가권을 주요 수단으로 하여 재벌들에게 특혜를 부여했는데, 특히 중화학공업이 본격화된 1970년대에 이르러 중화학공업에 대한 소수 대자본의 독과점적 참여3)와 정책금융의 산업별·기업별 선별성이 두드러졌다(SaKong, 1993; 강명헌, 1996). 이처럼 국가와 재벌이 ‘발전지배연합’을 형성하는 가운데, 국가가 그 우위에서 금융 통제하에 투자, 생산 및 배분을 조정하는 것이 발전국가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라 할 수 있다(지주형, 2011; 2016). 다만, 시장에 대해 강한 개입과 규제를 한다는 기준만으로 특정 국가를 발전국가로 규정하는 것은 발전국가의 개념적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시켜 분석적 유용성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Fine, 2013).

주택산업의 경우, 그 자체는 발전국가가 보호·육성하려는 중화학공업 등의 수출산업 범주에 속하지 않았으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주택문제는 더는 방관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서울 등 대도시로의 인구이동이 급증하자 주택공급에 대한 국가의 전략적 개입 필요성이 점차 증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이촌향도 현상에도 불구하고 주택부문에 대한 투자는 미흡했고, 그 결과 1975년 말을 기준으로 서울(46.5%), 부산(48.9%) 등 대도시의 주택부족률은 40%대에 달하는 수준이었다.4) 이에 정부는 주택산업에도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발전국가적 접근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신흥 중산층을 대상으로 아파트를 대량공급함으로써 주택의 양적 부족문제를 해소하고자 한 것이다(Yoon, 1994). 이를 위해 선분양제도·분양가상한제·주택청약제가 도입되었는데, 이들 제도는 소수의 대형 주택건설업체들이 국가에 의해 선별되어 집중적으로 지원받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이로부터 배제된 중소업체들은 주택시장에서 불리한 여건에 처하게 되었으며, 수분양자에게 사회안전망으로서 동반되어야 할 주택분양보증제도는 갖추어지지 않았다.

1. 주택선분양제도 도입과 지정업체 선별 지원

정부는 1978년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제정을 통해 선분양제도를 법제화하였다. 선분양제도는 <그림 1>과 같이 주택이 완공되기 전에 소비자에게 먼저 주택을 분양하고, 수분양자는 그 대금의 일정 비율을 건설기간 동안 계약금·중도금 등의 형태로 납부하여 주택건설업체가 건설자금에 우선 충당하도록 허용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공사가 완료되기 전에 주택을 분양하고 입주금을 선납하는 방식은 1960년대 초 대한주택공사, 서울시 등 공공이 공급하는 아파트 사업에 이미 적용되어 있었고, 이후 민간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이미 1978년 이전에 선분양은 관행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신운경, 2020).


Figure 1. 
The concept of housing pre-sale system and guarantee for housing completion

Source: Readjustment of Park (2022)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분양제도가 분양가상한제와 주택청약제도와 결합하여 작동했다는 것이다. 주택건설업체들은 선분양제도와 청약제도를 통해 수분양자들의 입주금과 청약기금을 건설자금으로 융통하여 주택을 신속하게 대량 건설할 수 있었다.5) 대신에 공급된 주택은 분양가상한제에 의해 그 가격이 통제되었으며, 소비자들은 실체하지 않는 상품(주택)을 확인하지 못한 채 비용을 조기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청약을 통해 목돈을 저축하여, 주택을 비교적 부담가능한 가격에 분양받을 수 있는 이점을 누렸다.6) 이처럼 주택건설업체들의 수익을 감소시키는 가격 왜곡에도 불구하고, 선분양제도를 통해 이들의 자금조달 부담을 경감시킴으로써 정부는 중산층 대상의 아파트를 대량공급한다는 주택정책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이때 정부는 산업정책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수의 대형 건설업체들을 선별하여 주택 대량공급이라는 정책목표를 구현하고자 하였는데, 이를 가능케 한 정책적 기제가 바로 ‘주택건설지정업체’ 제도였다. 1977년 『주택건설촉진법』 개정을 통해 1978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모든 주택건설사업체의 건설부 등록을 의무화했고(이하 ‘등록업체’), 이 중 자본금, 주택건설실적, 기술능력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서도 규정된 건설업(건축공사업, 토목건축공사업) 면허를 가진 사업체들을 주택건설지정업체(이하 ‘지정업체’)로 선별했다.7) 1978년 5월, 건설부는 46개 업체를 지정업체로 최초 선정했으며 이들에게 매년 일정량 이상의 주택공급을 의무화했다.8) 대신 지정업체는 등록업체에게 허용되지 않는 다양한 혜택을 제공받았다. 또한 지정업체들은 같은 해에 ‘한국주택사업협회’를 설립하여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사업을 수행하거나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할 수 있는 조직을 결성했지만, 그 밖의 등록업체들은 구심점이 될 만한 이익집단을 결성하지 못하였다. 지정업체에게는 혜택이지만, 등록업체에게는 제약으로 작용한 주요 사항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등록업체에게는 아파트를 시공할 수 있는 권한이 허용되지 않았다. 당시의 『건축법』에 의해 아파트 규모의 주택 시공은 건설업 면허를 가진 업체에게만 허용되었는데 건설업 면허취득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금, 기술능력, 시설장비를 갖춰야 했다. 중소 주택건설업체인 등록업체가 아파트를 시공할 수 없었던 이유이다, 결국 등록업체에게는 아파트 대비 기대수익이 적은 연립·다세대주택 등의 주택건설만 허용된 것이다. <표 1>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선분양제도 시행 이후 우리나라의 주택공급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75년 아파트의 총 재고량은 89,248호로 전체 주택 대비 1.9%에 불과했으나, 훗날 중소업체들이 이익단체를 결성한 1985년에는 821,606호, 전체 주택의 13.5%로 그 수가 9배 넘게 급증하였다. 등록업체들의 불만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등록업체가 아파트 건설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건설업 면허를 가진 업체로부터 면허를 불법적으로 차용해 직접 시공하거나 그들에게 아예 시공을 위탁해야만 했다(대한주택건설협회, 2007:100-102). 등록업체들에게 전자의 방식은 사법적으로 부담이 되었고, 후자의 방식은 설계 원안대로 시공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도 면허대여료나 하도급 비용이 추가되어 사업비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었으며, 입주 후 하자 발생 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여 입주민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여지도 컸다.9)

Table 1. 
Apartment and total housing units nationwide (1975~1995)


둘째, 지정업체에게는 각종 주택개발사업 참여 혜택이 주어졌다. 대규모 아파트단지 건설 목적으로 지정한 아파트지구에서는 공공기관이나 토지소유자가 직접 사업을 시행하지 못하는 경우에 한하여 지정업체가 사업시행자가 될 수 있었다. 사업시행 단계에서도 지정업체는 사업대상지 토지 면적의 2/3 이상을 소유하면 잔여토지에 대한 수용신청을 건설부에 요청할 수 있었다. 또한, 정부는 지정업체에 토지를 매도할 때에만 토지소유주의 양도소득세 감면을 허용하여 지정업체의 원활한 토지매입을 지원하기도 했다.10) 그러나 등록업체들은 이러한 혜택으로부터 제외되었다. 마지막으로, 1984년 서울시가 「합동재개발사업 세부시행지침」 규정을 제정하며 지정업체로 시공사를 제한함으로써 합동재개발사업에 대한 등록업체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지정업체에 특혜를 부여하였다.11)

셋째, 등록업체들은 지정업체 대비 건설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경로 또한 제한적이었다. 등록업체들은 지정업체에 비해 규모가 영세하고 신용도가 낮아 제도권 금융으로의 접근성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등록업체들은 건설업 면허가 없었기에 산업 분류상 부동산업으로 간주되었고, 이로 인해 주택은행을 제외한 일반은행으로부터의 자금조달이 어려웠다.12) 등록업체들은 지정업체들과는 달리 기업운전자금의 융자가 불가했고, 주택건설자금 융자도 국민주택 이외 주택건설사업에서는 거의 받을 수 없었다(대한주택건설협회, 2007:194). 특히, 지정업체 제도와 함께 도입된 주택상환사채는 지정업체-등록업체 간 불균형한 지위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제도적 장치로 작용했다. 주택상환사채는 주택건설업체가 건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분양희망자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사채인데, 대한주택공사와 지정업체들만이 건설부 승인을 받아 발행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대한주택공사와 지정업체는 건설자금을 충당하고, 사채매입자들에게 완성된 주택으로 상환할 수 있었다.13)

이상과 같은 선별적 특혜에 따라서 지정업체들은 등록업체의 약 5%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1985년까지 전국 민간 주택건설량의 약 30%를 점할 정도로 비경쟁적 시장으로부터 오는 독과점 이윤을 획득했고, 이들 중 건설량 상위 5개 업체는 지정업체가 공급하는 건설량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였다(김명수, 2020).

2. 초기 주택선분양제도에서의 보증 장치

선분양제도가 최초 법제화되었을 때만 해도, 시공 도중 건설업체에 부실이 발생했을 때 수분양자가 겪을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장치, 즉 주택 완공의 주체를 지정하거나 수분양자가 선납한 비용을 보전해주는 보증 장치는 제도적으로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1978년 5월에 제정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서 민간 주택사업자는 전체 건축공정이 20%를 넘어야만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사업의 부실 위험을 방지하고자 했다. 이는 착공과 동시에 입주자 모집을 할 수 있는 오늘날의 선분양 제도와는 다른 점이다. 그러나 동년 9월에 규칙 개정을 통해서 지정업체에 대해서는 입주자가 납부한 계약금에 대해 금융기관이 지급보증을 하거나(물적담보) 둘 이상의 지정업체가 연대보증을 할 경우(인적담보), 착공 즉시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등록업체는 자금운용의 어려움 등 입주자 모집 시기 차이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14) 이후 경기변동에 따라 세부규정의 변화가 다소 있었는데, 이 중 1984년 11월에 개정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등록업체들도 지정업체와 동일하게 물적담보나 인적담보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여 착공과 동시에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선분양제도와 같은 개선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신용도가 높아 금융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정업체들이 물적담보를 선호했던 반면, 그렇지 못했던 등록업체들은 인적담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고려하면, 이는 여전히 등록업체에게 불리한 개정이었다. 연대보증은 사업이 부실화되었을 때 연쇄부도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대한주택건설협회, 2007:192-193). 또한 1984년 11월 개정 이후에도, 주택사업지에 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 이를 말소해야 수분양자 모집이 가능했는데, 이때에도 지정업체만은 연대보증과 같은 방법을 통해서 예외로 간주되는 등 차별적 조항은 여전히 잔존해 있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전제로 하면, 선분양제도 도입 시 주택분양보증제도가 함께 시행되지 않았던 까닭의 이해도 가능하다. 주택공급정책의 핵심이었던 아파트 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높은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시장이었는데, 그 시장의 참여자는 국가로부터 선별적 특혜를 받은 지정업체로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성장 국면에서 이들이 부실에 직면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을 것이고, 이에 따라 주택분양보증제도의 시행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는 공급자 측면의 입장일 뿐, 단순한 물적·인적담보 방식만으로는 수분양자의 재산권을 충분히 보호하기 어려웠다. 이에 1980년대 후반에 이르자 수분양자의 재산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 보증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15)


Ⅳ. 발전주의 주택체제의 약화

1987년 정치적 민주화를 전후하여, 종래에는 세력이 약했던 기업과 시민사회 및 노동세력의 발언이 강화되면서 주택산업 및 정책 또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임서환, 2002). “민주화 바람이 불자 … 대기업 그늘에 가려 찾지 못한 자신들의 권리를 찾자는 움직임”이 주택산업에서도 등록업체들을 중심으로 크게 확대된 것이다.16) 정부가 부동산 경기 과열에 따른 국민적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주택 대량공급계획을 추진한 것도 등록업체들의 위상이 더욱 향상되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 등록업체들은 이익단체를 결성하였고, 정부에 대한 반발, 협의, 청탁 등의 각종 수단을 통해서 주택시장 내 지정업체들과의 불균형한 환경을 시정하고 주택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를 완화·철폐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아파트 시장을 지정업체의 독과점적 시장으로 조성했던 발전주의적 주택체제의 핵심요소가 약화되기 시작했다. 1993년에 중소 주택업체 주도의 주택분양보증제도가 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발전국가가 약화되면서 종전과 같은 수준으로 시장에 개입할 수 없게 된 시대적 변화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1. 중소주택사업자협회의 결성과 권익 확보 활동

1980년대 중반, 등록업체들은 지정업체를 위주로 하는 불균형한 시장환경에 불만을 가지면서 이익단체 결성을 추진하게 된다.17) 이와 같은 움직임의 직접적 계기는 1984년 가을 대한부동산학회에서 주최한 주택정책 토론회로, 이 자리에서 중소주택업계의 불만이 표출되며 이익단체 결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고(대한주택건설협회, 2007:94-95), 그 결과 이듬해인 1985년 2월 ‘한국중소주택사업자협회’가 창립되었다. 당시 초대 협회장은 “주택수의 70% 이상을 등록업체가 짓고 있으면서도 세제·금융상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어 어려움이 많”은데 “기술과 자본이 영세하다는 이유만으로 … 모두 부실주택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는 점을 창립 배경으로 설명하였다.18) 중소주택사업자협회의 이익단체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중소주택사업자협회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불균형한 시장환경 시정을 통한 권익확보 활동을 전개했는데, 주요 활동상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파트 시공권을 획득하였다. 아파트가 주된 주거양식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아파트를 직접 시공할 수 없다는 것은 협회 창립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평가할 만큼 등록업체들에게는 가장 큰 불만이었다. 이에 협회는 1986년 초부터 “임원진과 전국 지회의 지회장단이 전방위로 나서 친분이 있는 인사들을 총동원”하고 정부·국회·정당 등 “요로(要路)”를 통해 건의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대한주택건설협회, 2007:100-110). 그러나 아파트 시공을 독점하고 있던 지정업체, 그리고 주택건설업체는 아니지만 건설업 면허를 가지고 있어서 등록업체들에게 면허를 빌려주거나 시공을 위탁받을 수 있었던 대형건설업계의 이익단체(주택사업협회, 대한건설협회)들은 등록업체의 요구에 대해 부실시공 우려를 근거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19) 그럼에도 1987년 12월 『주택건설촉진법』 개정이 이루어져 등록업체들도 건설업 면허가 있어야 시공할 수 있는 주택, 즉 아파트 시공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법률적 여건을 확보하였다. 하지만, 1988년 6월 개정된 『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은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등록업체에 대해 6층 이하 저층 아파트 시공권만을 부여했기 때문에, 등록업체는 이에 재차 반발했고,20) 그 결과, 이듬해인 1989년 4월 추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등록업체도 7층 이상 고층 아파트를 시공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둘째, 각종 개발사업에서도 등록업체가 지정업체와 비교적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이를 촉진한 결정적 계기는 1988년 5월, 노태우 정부의 ‘200만 호 주택건설계획’으로, 주택 대량공급이 정치적 의제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1980년대에는 원활한 택지 대량공급을 위하여 국가가 직접 택지예정지를 시장가격이 아닌 감정가격으로 매입한 뒤 택지로 조성하였고, 이후 공공이나 민간의 주택건설업체에게 매각하는 ‘택지공영개발’ 방식이 성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국가가 택지조성비용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1985년 서울시 상계·중계동 개발사업부터는 민간 주택업체들이 택지조성 과정부터 참여하는 ‘택지합동공영개발’(이하 ‘합동개발’) 방식이 확산되었다(임서환, 2002:191). 정부는 ‘200만 호 주택건설계획’에서도 한국토지개발공사와 지정업체가 합동개발에 참여하고, 등록업체는 주택 건설단계부터 참여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경우 등록업체들은 택지 조성단계부터 참여하는 지정업체들에 비해 우수한 입지의 택지를 분양받기 어려웠다. 이에 중소주택사업자협회는 1988년부터 합동개발 참여를 지속적으로 요구하였는데, 그 결과 1989년 일정 수준의 여건을 갖춘 등록업체들이 택지합동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였고, 협회 지회장들도 각 지역의 ‘주택건설추진대책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대한주택건설협회, 2007:145-146; 149-151). 한편, 지정업체만이 시공사로 참여할 수 있었던 주택 합동재개발 사업은 1994년이 되어서야 건설부가 「도시재개발업무지침」을 개정하면서 비로소 등록업체에게도 개방되었다.

이는 등록업체가 불균형한 주택시장에서의 지위를 시정하기 위한 권익활동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지만, ‘200만 호 주택건설’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존 지정업체의 역량만으로 추진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1988년 한 해 동안 민간이 공급한 아파트는 5만 2천여 호에 불과21)했기에 5년간의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지정업체의 힘만으로 주택 200만 호를 건설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중소 주택업체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주택사업공제조합의 설립과 분양보증 독점

등록업체들이 협회 결성을 통해 아파트 시공권을 획득하고 정부의 대규모 주택건설계획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들은 지정업체들과 달리 금융업계로부터의 안정적인 사업자금 조달과 주택분양 목적의 물적보증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중소주택사업자협회는 설립 초기부터 이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처음에는 주택금융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주택은행을 공공성이 높은 주택금고나 주택금융공사의 형태로 전환하여 등록업체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를 요구하였고, 1988년 1월 이를 노태우 대통령 당선인에게 직접 건의하기도 하였다(대한주택건설협회, 2007:195). 그러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협회는 주택 사업자금의 조달과 주택사업에서 요구되는 각종 보증을 제공하는 상조적 성격의 ‘주택사업공제조합’ 설립방안으로 선회하였다.22) 여론조성 및 청원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결과,23) 1992년 12월 주택사업공제조합의 설립을 허용하는 『주택건설촉진법』 개정안이 공포되었고, 이듬해인 1993년 공제조합이 설립되었다. 중소주택사업자협회의 건의대로 공제조합에는 주택건설업체에 대한 자금융자뿐만 아니라 각종 보증 업무가 위임되었다. 이로써 주택건설사업 과정에서 부실이 발생했을 때 사업의 이행과 수분양자 재산권 보호를 보장하기 위한 주택분양보증제도가 비로소 시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제조합이 중소주택사업자협회의 주도로 설립되기는 했지만, 협회와는 독립적인 조직이었기 때문에 다수의 지정업체들도 공제조합에 참여하였다. 1994년 기준, 117개 지정업체 중 106개, 6,600여 개 등록업체 중 1,100여 개 업체가 공제조합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24) 또한 공제조합 설립과 함께, 일정 요건 이상의 등록업체들도 지정업체들과 같이 주택상환사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되어 금융상의 제도적 불균형도 시정되었다. 등록업체들의 단체인 중소주택사업자협회와 지정업체들의 단체인 주택사업협회도 모두 법정단체로 지정되면서 각각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現 대한주택건설협회)와 ‘한국주택협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중소 주택건설업체들은 발전주의 주택체제 확립기에 형성된 불균형하고 차별적인 주택시장 진입 여건을 시정함으로써 아파트 건설시장에 진입하고자 했고, 이들의 활동이 주택분양보증제도의 시행과 크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주택분양보증제도는 기본적으로 수분양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제도였지만, 중소주택사업자협회는 “중소주택업체들의 공신력을 높이는 신용보증 장치”, 즉 등록업체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수단으로써 공제조합을 설립하고자 했다는 사실이다.25) 이는 국가가 시장보다 우위에 있고, 시장 내에서도 국가로부터 특혜를 받는 소수 대자본이 중소자본보다 우위에 있던 발전국가적 속성이 이 시기에 퇴조하였음을 의미한다.


Ⅴ. 포스트 발전주의 주택체제로의 전환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에 고용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적 기조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지주형, 2016). 주택체제에서도 1999년에 지정업체 제도가 폐지되면서 발전주의적 주택체제를 구성했던 핵심요소가 공식적으로 소멸하였다. 또한 분양가가 자율화되었으며 주택금융화가 크게 진전되는 등 신자유주의적 시장 질서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발전주의 시기에 형성된 선분양제도나 청약제도는 오늘날까지도 시행되고 있고, 분양가상한제는 부동산 경기에 따라 적용과 완화·폐지를 반복하는 등 국가의 주택시장 규제정책이 여전히 활용되고 있으며, 동시에 공적 주거복지는 크게 확대되었다. 따라서 외환위기 이후의 주택체제를 단지 신자유주의나 발전주의로 택일하여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에 본 연구는 ‘포스트 발전주의 주택체제’라는 유보적인 명칭을 사용하고자 한다. 외환위기에 따른 주택분양보증제도의 변화 또한 포스트 발전주의 주택체제의 일면을 보여준다. 분양보증을 독점하던 주택사업공제조합이 부실경영으로 인해 해체된 후, 공공이 이를 위임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공기업들을 민영화했던 신자유주의 기조에도 불구하고 주택분양보증제도에서 국가개입적 속성이 강화된 것이다. 이는 경제정책에 비해 사회정책이 경시되어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매우 미흡했던 발전국가적 맥락에서, 민주화 이후 사회정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대되었고 외환위기를 계기로 실직·빈곤문제가 심화되자 국민임대주택,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복지정책이 확대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맥락과 관계가 있다.

1. 공제조합 중심의 주택분양보증제도의 한계

공제조합이 독점 운용하는 초기 주택분양보증제도는 내재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첫째는 민간(공급자) 주도의 보증제도로서의 한계로, 수분양자를 부실로부터 보호한다는 제도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둘째는 중소 주택업체가 주도하는 상부적 성격의 보증제도로서의 한계로. 재정적인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초기 주택분양보증제도는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의 입장에서 설계되었기 때문에 부실이 발생하면 수분양자에게 위험이 전가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이 시기 주택분양보증제도는 엄밀하게는 ‘분양보증’과 ‘착공보증’으로 구분되었는데, 양자의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분양보증은 아파트의 착공 시점에서 완공에 이르기까지 보증하고 주택분양 대금의 80%에 대해서 보증수수료를 납부했다. 반면, 착공보증은 착공 시점부터 20% 미만 공정까지만 보증하되 주택분양 대금의 20%에 대해서만 보증수수료를 납부했기에 공정률이 20%를 상회한 상태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수분양자는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착공보증은 의무가입인 반면, 분양보증은 선택가입이었으므로 주택업체들은 수분양자 보호 기능은 약할지라도 보증수수료가 적게 드는 착공보증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약 70%)이었다.26) 이로 인해 수분양자 피해 사례가 지속 발생하였고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결국 1996년 착공보증은 폐지되었고 분양보증 의무화 제도가 완비되었다.

분양보증이 중소 주택업체가 주도하는 상부적 성격의 보증제도였다는 점 또한 큰 문제를 야기했다. 발전주의 주택체제를 거치며 형성된 아파트 중심의 주택산업은 중소 주택업체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아파트와 같은 거대한 공동주택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본조달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했는데, 이는 대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최막중 외, 2014). 따라서 경기침체기에 중소 주택업체의 부실사고 발생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주택경기가 장기적인 침체를 겪고 있던 1995년 하반기부터 약 1년간 400여 개에 달하는 주택건설업체들이 도산하기도 했다.27) 더욱이 주택사업공제조합은 조합원인 중소 주택업체가 운영위원회에 참여하여 분양 및 대출 보증 여부를 결정하는 의사결정구조였기 때문에, 엄격한 심사 없이 보증을 남발하였고 이는 공제조합 부실화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이의섭, 1998). 조합원의 신용도가 낮아도 보증 거절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보증한도 또한 공제조합 자본금의 35배로 규정되어 있었는데 정책금융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의 보증한도가 자본금의 15배였음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방만한 것이었고, 조합원들이 보증받을 수 있는 개별 한도도 출자지분의 최대 54배에 이르고 이 출자지분의 80%를 다시 저리로 융자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과도하다고 지적되었다.28) 여기에는 정부에게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었다. 비록 공제조합이 민간 차원에서 설립된 단체였지만, 주택건설촉진법에 근거를 둔 법적기관이었고, 건설교통부가 관리감독권을 행사해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가 관리감독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1995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자체 감사를 실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부가 공제조합의 방만한 경영을 사실상 방치해 왔음을 뜻한다.29)

1993~1999년간 공제조합의 분양·착공·대출보증 운용실적을 정리한 <표 2>에 따르면, 특히 대출보증에서 방만한 조합운용이 극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대한주택보증주식회사, 2000). 이 기간 대출보증 수수료 수입은 1,355억 원에 불과했으나, 공제조합이 부실기업 대신 변제한 보증납입금, 즉 대위변제금은 2조 7,688억 원에 달하여 손해율이 2,043%에 이르렀다. 분양보증의 경우, 1996년에 착공보증이 중단된 후 실적액이 본격적으로 증가하자 대위변제금 및 손해율도 증가하기 시작했고 1999년에는 손해율이 100%에 육박하였다.30) 이처럼 1994년 이후 아파트 미분양으로 인한 주택건설업체의 도산이 급증하자 주택사업공제조합의 자금·경영난은 크게 악화되었고, 이는 1999년 대한주택보증주식회사로의 전환에 주요 계기가 되었다.

Table 2. 
Revenue and loss by guarantee business of housing project mutual-aid association (Unit: KRW100million)


2. 공제조합 부실화와 이에 따른 공공성 강화

공제조합 부실이 가시화되자 주택분양보증을 비롯한 공제조합의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우선 정부 내에서 건설교통부는 정부가 자본금을 출자하여 공제조합을 공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정경제부 및 기획예산위원회에서는 외환위기로 인해 추진하게 된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어긋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31) 경영진단 후 정부는 일정 수준의 지원을 약속하며 공제조합의 자구적 노력을 요구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공제조합의 공기업 전환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기업 전환은 공제조합이 원하는 방안이기도 했기에 공제조합은 정부요구에 조직축소 방안을 제시하는 등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였다.32) 그러나 지정업체들은 이에 부정적 반응을 나타냈다. 이들은 공제조합 부실화가 가시화되자 “업체가 자율적으로 분양보증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분양보증기관에 일반은행을 포함”시키거나, “중소업체들을 빼고 자기들끼리 자금을 출자, 별도로 공제조합을 설립”하는 방안, 심지어 분양보증제도를 폐지하고 이전의 연대보증으로 환원하는 안까지 제시하는 등 공격적 의견을 표출했다.33) 지정업체들은 신자유주의적 시장질서를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주택분양보증제도를 주장한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1999년 「주택건설촉진법」 개정을 통해 대한주택보증주식회사(現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출범하면서 공공이 주택분양보증을 위임받게 되었다. 한편, 공제조합의 공기업 전환과 함께 지정업체와 등록업체 간의 법률적 구분도 사라지게 되었다. 지정업체 제도의 폐지는 종래의 발전국가적 주택체제의 전환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상황에서도 주택분양보증제도의 운용이 공공으로 위임되었던 까닭은 일차적으로는 등록업체 주도의 제도 운용이 공제조합의 한계 및 경기침체 국면으로 인해 시장 실패(market failure)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발전주의 시기의 국가가 주택 대량공급을 위한 선분양 시스템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수반되어야 할 사회안전망으로서 수분양자 보호대책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발전국가의 주택정책은 미성숙(immature)했다(Ronald and Kyung, 2013; 이석희·김수현, 2014). 그러나, 외환위기로 인해 부도위험을 겪는 건설사가 증가하고 공제조합이 부실에 처하면서, 조합에서 보증했던 167만 호의 입주 예정가구들이 생존의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결국 정부는 공신력 확보를 통해 공제조합의 보증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즉 공기업 전환 방안을 선택한 것이다.34) 이는 민주화 이후 사회정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대되었던 상황에서, 외환위기를 계기로 심화된 실직·빈곤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국민임대주택,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복지정책이 확대되었던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운용하는 주택분양보증제도는 개별 주택사업의 보증 가입 이전에 진행하는 고분양가 심사를 통해 부동산 상승기에 주택가격을 통제하는 기제로도 작동하는데, 정부의 시장가격 개입이라는 측면에서 발전주의적 유산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Ⅵ. 결론 및 시사점

본 연구는 우리나라에 주택분양보증제도가 도입된 역사적 배경을 고찰함으로써 1970년대에 확립된 발전주의 주택체제의 특성이 1980~1990년대에 어떻게 변화하였고, 그 변화가 주택분양보증제도 시행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주요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택분양보증의 선행제도인 선분양제도는 1978년에 아파트를 대량공급할 수 있는 발전주의 주택체제의 핵심 기제로서 도입되었으며, 이는 대형 주택건설업체인 지정업체들을 중심으로 시행되었다. 아파트 시공권, 각종 주택개발사업 참여 자격, 건설자금 조달 기회 등 국가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은 지정업체들이 부실에 직면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기에 주택분양보증제도는 함께 도입되지 않았고, 대신 인적·물적 담보 수준의 보증 장치만이 적용되었다. 특혜를 받지 못한 중소 주택건설업체, 즉 등록업체들은 아파트 중심으로 재편되어가는 주택시장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금융비용 부담으로 인해 물적 담보 대신 선택한 인적 담보 방식은 이들의 연쇄부도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어 차별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주택분양보증의 중요한 목적인 수분양자 재산권 보호가 도외시되던 형편이었고, 이는 경제정책에 비해 사회정책이 경시되었던 발전국가적 특성을 시사한다.

둘째, 1980년대에 이르러 발전국가가 전환 국면을 맞이하자 주택체제의 발전주의적 성격 또한 약화되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그간 차별 받아온 등록업체들은 이익단체(중소주택사업자협회)를 결성하며 권익확보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고, 그 과정에서 등록업체 주도의 공제조합이 운용하는 주택분양보증제도가 시행되었다. 특히 1987년의 정치적 민주화로 인해 종전의 불균형하고 차별적인 주택시장 진입 여건의 시정을 요구하는 등록업체들의 발언권이 강화된 것과 정부가 부동산 과열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추진했던 200만 호 주택건설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주택건설업계의 전방위적인 참여를 유도해야만 했던 상황이 제도시행의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공제조합 주도의 주택분양보증제도는 공급자 중심이라는 점에서 수분양자 보호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등록업체 주도의 상부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부실경영의 위험이 매우 높았다. 이에 외환위기에 직면하자 결국 공제조합은 해체되어 그 기능을 공공에 위임하였고, 이후 오늘날까지도 주택분양보증제도는 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 이것은 민주화 이후 외환위기에 직면하면서 신자유주의 기조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사회안전망 정책을 확대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서 포스트 발전주의 주택체제의 특성을 보여준다. 한편, 오늘날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보증제도에서 시행되는 고분양가 심사는 부동산 상승기에 주택가격을 통제하는 기제로서 발전주의적 유산의 속성을 보여준다.

본 연구의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에 단순화된 연대기로 서술되었던 주택분양보증제도의 전개 과정을 보다 상세하게 규명하고 그 역사적 맥락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이를 사례로 우리나라 발전주의 주택체제의 변동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한국 주택체제론 및 발전국가 연구에 이론적 기여를 도모하였다. 특히 주택시장 내 중소주택건설자본의 입지 변화가 발전주의 주택체제의 약화 및 해체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고, 종래 주택체제론 연구의 통념과 달리, 정치적 민주화는 시장 자율화를 촉진한 요인으로, 외환위기는 국가개입을 통한 사회정책 확대 요인으로도 작용했음을 규명하였다.

둘째, 현재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Knowledge Sharing Program, KSP)을 시행하고 있는데, 본 연구는 이와 같은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의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도전수를 위해서는 과거 한국에서 성공한 제도를 현지에 맞게, 그리고 현재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변용할 수 있어야 한다(소진광, 2019). 즉, 제도의 보편적 특성은 그대로 전수하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선분양제도가 주택 대량공급의 기제로서 개발도상국에서 참고할 만한 실례이기는 하지만 분양가상한제라는 발전주의적 유산이 함께 작동한 것이었음을 고려해야 하며, 특히 발전국가 시대에 주택분양보증제도 없이도 선분양제가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성장 국면에서 아파트 시장의 참여자가 국가로부터 특혜를 받는 선별된 대자본으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개발도상국 지식공유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현행 공공 주도 주택분양보증제도에 대해서도 계획적 시사점을 제시한다. 오늘날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분양보증시장에는 민간시장 개방 압력 여론이 일고 있다. 독점 시장인 탓에 보증료가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있고 주택도시보증공사의 고분양가 심사가 시장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공제조합 방식을 다시 고려한다면, 1990년대의 실패 사례가 보여주듯 공제조합의 상호부조적인 속성이 경영부실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엄격하고 공정한 의사결정구조를 반드시 전제해야만 한다(김덕례, 2020). 반면 분양보증시장을 민간에 완전 개방하는 방식에서는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중견업체들이 보증시장에서 소외될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도 민간에 의해 주도되는 분양보증시장은 사익 추구적 성격이 강하여, 외환위기 당시의 경기침체 국면과 같이 대위변제가 대규모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수분양자 보호라는 주택분양보증제도의 본질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우려가 크다. 요컨대, 주택분양보증제도에서 공공의 주체적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며 주택분양보증시장의 민간 개방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본 연구의 한계는 사료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주택분양보증제도의 시행은 국가의 주택정책뿐만 아니라 주택건설업계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던 만큼 중소주택사업자협회, 주택사업협회, 주택사업공제조합 등 관련 단체의 내부 문헌이나 관계자들의 구술을 더 확보하였다면 더욱 깊이 있는 분석이 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공제조합 부실화에 대한 정부 해법이 공기업 전환으로 결정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명시적 공문서를 확보하지 못해, 언론 보도자료를 토대로 이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그러하다. 후속연구를 통해 고찰되어야 할 부분이다.


Notes
주1. ‌‘주택체제’(housing regime)와 유사한 표현으로서 ‘주택시스템’(housing system)을 사용하는 연구들도 있음(Ronald and Kyoung, 2013). 그러나 주택체제는 권력구조 및 제도·문화를 총괄하는 넓은 개념이고 주택시스템은 이를 구성하는 특정한 시스템을 지칭하는 용어로 구분할 필요가 있음(Kemeny, 2006; 김수현, 2013).
주2.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 발전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속성이 혼종적으로 나타난다고 평가하는 연구들 중에서는 이를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라 규정하는 견해도 있음(최병두, 2007; 윤상우, 2009).
주3. ‌정부가 1970년대에 추진했던 중화학공업 중 정부가 직접 소유·관리했던 철강업을 제외한 나머지 산업(기계, 조선, 전자, 석유화학, 비철금속)에서는 소수 대자본에게 참가허가권이 독과점적으로 부여되었음(강명헌, 1996).
주4. 매일경제, 1976.11.17., ‘주택보급률 줄어 대도시가 더해’.
주5. ‌주택청약제도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국민주택기금(現 주택도시기금)에 활용하는 방식은 1980년대 초반에 뒤늦게 적용되었음.
주6. ‌여기서 ‘부담가능한 가격’이라 함은 입주 시점의 주택가격 대비 저렴한 가격이라는 사실과 주택구입 비용을 계약금, 중도금, 입주금으로 시점을 달리하여 지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제한적 의미임.
주7. ‌법령(『주택건설촉진법』)상 용어는 ‘지정업자’ 및 ‘등록업자’이지만 언론기사 등 시사적 표현으로는 사업체를 의미하는 관점에서 ‘지정업체’와 ‘등록업체’라는 표현이 통용되는 바 본 연구에서는 후자의 용례로 통일함. 또한, 모든 지정업체는 기본적으로 등록업체에 포함되나 시사적으로 ‘등록업체’란 지정업체를 제외한 중소 주택건설업체를 이르는 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도 이를 따름.
주8. 매일경제, 1978.5.12., ‘주택상환부사채 발행 46개 건설업체 지정’.
주9. 매일경제, 1987.1.21., ‘중소주택업체도 시공권 허용’.
주10. 매일경제, 1978.5.12., ‘주택상환부사채 발행 46개 건설업체 지정’.
주11. ‌경향신문, 1984.1.31., ‘「재개발아파트」 세금등혜택 불량주택 합동재개발 어떻게되나’.
주12. 매일경제, 1987.8.6., ‘주택건설업계 「돈줄」 비상’.
주13. ‌주택상환사채는 사채매입자가 주택을 상환(분양)받는 과정에서 추가 납입금액을 둘러싼 분쟁이 잦아지면서, 대한주택공사만이 사채를 발행했을 뿐 지정업체들의 발행 실적은 없었으므로 1980년에 중지됨(조선일보, 1980.6.14., ‘분양가격 시비잦아 주택상환 사채 중지’). 그러나 1기 신도시 건설계획으로 인해 민간에서도 주택 대량공급의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1989년 주택상환사채의 발행은 다시 허용되었음(매일경제, 1989.9.20., ‘주택상환사채 발행허용’).
주14. 매일경제, 1980.7.29., ‘공정관계없이 조기분양촉구’.
주15. 매일경제, 1988.3.15., ‘입주금보증제 신설 시급’.
주16. 매일경제, 1988.6.24., ‘시공권 부여받았지만 제한많아 큰 도움안돼’.
주17. ‌등록업체의 이익단체 결성 움직임은 1979년에도 추진된 바 있으나 사무실 운영비용 마련 등의 문제로 무산된 바 있음(매일경제, 1985.2.11., ‘「대형」업계에 맞서는 「중소」주택업계’).
주18. ‌매일경제, 1985.2.4., ‘인터뷰: 허석위원장 〈중소주택사업자협회(가칭) 창립준비위〉’.
주19. ‌매일경제, 1987.9.21., ‘중소주택업체 시공권부여 대형건설사 반대’; 매일경제, 1988.11.28., ‘7층이상 고층아파트 중소업계 “짓게하라” 대형업계 “무슨소리”’; 지정업체보다도 면허 대여로 큰 수익을 보던 대한건설협회 산하 건설업체들의 반대가 가장 강력했으며, 중소주택사업자협회는 이들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중점적으로 전개했음(대한주택건설협회, 2007:103-105).
주20. 매일경제, 1988.11.28., ‘7층이상 고층아파트 중소업계 “짓게하라” 대형업계 “무슨소리”’.
주21. 경향신문, 1989.2.25. ‘올 민간아파트 7만여가구 공급’.
‌주22. 주택사업공제조합 설립이 중소주택사업자협회의 주도로 추진된 반면, 지정업체들은 이에 미온적이었는데 그 까닭은 이들이 건설업 면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건설공제조합이나 제도금융권으로부터 대출 및 보증의 필요성을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임(국민일보, 1992.9.19., ‘주택공제조합 서둘러라’).
주23. ‌정당 접촉을 통한 두 차례(1988, 1991년)의 의원 입법이 무산되자 중소주택사업자협회는 정부 입법을 도모하였고, 최종적으로 건설부에 의한 정부 입법으로 공제조합 설립이 결정되었음(대한주택건설협회, 2007:195-197). 협회는 아파트 시공권을 확보하려던 1980년대 후반에는 여소야대 국면에 있던 야당(평화민주당)의 지지를 받았고, 공제조합을 설립하려던 1990년대 초에는 3당 합당 이후 거대화된 여당(민주자유당)의 지지를 받았는데, 두 사례 모두 정치권에 대한 협회의 이권 로비 의혹을 받았음(매일경제, 1988.11.23., ‘중소업자에게 7층이상 시공권 선정기준 실적서 우량사업자로’; 매일경제, 1990.11.3., ‘주택업단체 일원화공방 현상태 인정서 매듭’; 동아일보, 1989.9.2., ‘수뢰세 괴문서 나돌아 김동주 의원 해명발표’; 한겨레, 1991.11.24., ‘특정업체 이익법안 노골적 추진’).
‌주24. 경향신문, 1994.1.11., ‘재개발사업 쉬워진다 국·공유지 즉시매입’; 매일경제, 1994.4.23., ‘주택사업공제조합 창립 한돌’.
주25. 매일경제, 1990.2.27., ‘부동산가산책 <4> 중소주택사업자협회’.
주26. 매일경제, 1995.1.14., ‘시공사 분양보증 가입 의무화해야’.
주27. 매일경제, 1996.8.22., ‘융자 3천억 회수 이율 상향조정’.
주28. 한겨레, 1998.10.16., ‘주택공제조합 사실상 ‘파산’’.
주29. ‌조선일보, 1998.10.20., ‘부도 위기 주택공제조합 지원’.
주30. ‌주택사업공제조합의 수입인 수수료는 보증수수료와 공제수수료의 합으로 산정하였음. 공제수수료란 1997년 도입된 '연대보증공제제도'에 의한 수수료로, 당시 공제조합은 보증발급의 요건으로 연대보증을 요구했으나, 이에 따른 주택건설사업체의 연쇄부도 위험이 증대되자 공제수수료 납부로 연대보증을 갈음하도록 하였음(한겨레, 1997.10.13., ‘주택건설업체 연대보증 내달부터 공제제도도입’).
주31. 동아일보, 1998.10.12a., ‘이달말 구체대책 마련’.
주32. ‌조선일보, 1998.10.20., ‘부도 위기 주택공제조합 지원’.
주33. ‌지정업체들은 중소주택사업자협회가 결성되거나 법인화 논의가 이루어지던 시기에도 부정적 반응을 표출하며 “업계의 목소리가 낮아질 우려”를 표명한 바 있음(매일경제, 1985.2.11., ‘「대형」업계에 맞서는 「중소」주택업계’; 매일경제, 1988.11.28., ‘7층이상 고층아파트 중소업계 “짓게하라” 대형업계 “무슨소리”’; 매일경제, 1991.10.26., ‘중소주택사업자협주택관련법 개정 건의’; 동아일보, 1998.10.12b., ‘주택사업공제조합 자금 고갈 입주예정자들 불안하다’; 동아일보, 1998.10.14., ‘자금고갈 주택사업공제조합 <하> 해결책 없나 업계-조합-정부 정상화방안 제각각’).
주34. 조선일보, 1998.10.29., ‘주택공제조합 연내 해체’.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2년도 한국공간환경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작성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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