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l publication date 17 Aug 2018
발전국가의 산업단지와 산업도시 형성 요인과 효과 : 마산 수출자유지역과 창원 기계공업기지를 중심으로
Abstract
Paying an attention to the spatial dimension of the developmental state characterized by strong government initiatives to mobilize private resources for industrialization and economic development, this study empirically examines how the government policies to promote light and heavy and chemical industries were realized in the form of industrial complex and industrial new town respectively, based on the case of Masan Export Free District and Changwon Machinery Industrial Base. It verifies the argument of Sonn and Choi (2017) that industrial complex and industrial new town reflect the short-term cyclical and long-term structure of labor force reproduction of each industry. In the case of light industry which took advantage of abundant female low-wage unskilled labor force, only industrial complex is developed while taking a free rider position by using the housing stock in the existing city for the employees who could be easily substituted after marriage. On the contrary, heavy and chemical industry had no choice but to train young male to skilled labor and provide housing by developing industrial new town where he can live with a family while working in industrial complex for a long time throughout all stages of life cycle including marriage, child raising and education.
Keywords:
Developmental State, Industrial Complex, Industrial New Town, Heavy and Chemical Industry, Masan‧Changwon키워드:
발전국가, 산업단지, 산업도시, 중화학공업, 마산‧창원Ⅰ. 서 론
오늘날 한국의 국토공간은 1960년대부터 이루어진 산업화와 경제개발에 의해 그 골격이 짜여졌다. 특히 1973년부터 추진된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집중 개발된 동남권 임해산업단지들은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경부축 중심의 국토공간구조를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제1차(1962∼66), 제2차(1967∼71)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국토계획이 통합 추진되었고, 경제개발계획의 핵심은 국토개발 사업에 있었다(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1989:18). 국토계획이 별개의 국가계획으로 독립되어 수립된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72∼1981)에서도 계획의 목표와 정책으로 제시된 대규모 공업기지 등의 산업 배치와 교통통신, 수자원, 동력(에너지) 등의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1)은 여전히 경제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계획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개발은 국가의 전략적인 시장개입으로 특징지어지는 ‘발전국가’의 성과로 설명되어 왔다(Amsden, 1989). 그런데 이러한 성과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제개발계획이 국토계획과 같은 공간계획에 의해 뒷받침되어 실현되었던 결과라는 점에 주목하면, 발전국가의 특성은 공간적 차원에서도 여실히 드러날 수 있다(손정원, 2006; Sonn and Choi, 2017). 특히 도시계획 차원에서 발전국가의 특성이 구현된 대표적인 기제는 산업단지와 산업신도시로. Sonn and Choi(2017)에 의하면 비숙련 노동에 기초한 경공업에서 숙련 노동을 필요로 하는 중화학공업으로 산업정책의 중심이 이동함에 따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도시개발의 범위도 산업단지 조성에서 산업도시 건설로 확장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이는 아직까지 이론적 수준의 논의로,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검증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에 본 연구는 마산 수출자유지역(현 자유무역지역)과 창원 기계공업기지(현 국가산업단지)를 비교 사례로 하여 발전국가의 경공업 및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실제 산업단지와 산업도시의 형성에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를 실증 분석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산업단지와 산업도시의 형성 요인을 추적하는 것이 단지 과거의 산업화와 경제개발 과정에서 형성된 국토공간의 역사를 정리하는 회고적(retrospective)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지난날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동남권의 임해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산업도시들이 오늘날에는 주력산업들의 경쟁력 약화로 인해 도시 전체의 활력이 저하될 만큼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과거 한국경제의 성장을 견인했던 산업도시들이 그 효과를 장기적으로 지속시킬 수 없는 한계를 노정한 결과로, 산업단지와 산업도시 형성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은 오늘날 산업도시들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의 구조를 이해하고 개선방향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prospective) 의미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나아가 이는 오늘날 산업화와 경제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을 비롯하여 새로이 산업단지나 산업신도시를 개발하는 경우에도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데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실증연구의 사례 대상으로 마산 수출자유지역과 창원 기계공업기지를 선정한 이유는 두 산업단지가 긴 시차를 두지 않고 시행되었고 지리적으로 근접하여 위치하고 있어 비교분석에 있어 시‧공간적 차이로 인해 게재될 수 있는 다른 요인들의 영향을 통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 차원에서의 인구구조 분석은 2010년 통합 이전의 마산시와 창원시의 행정구역을 각각 기준으로 한다. 마산과 창원의 산업단지, 산업도시 정책에 대해서는 Markusen and Park(1993)이 군수산업의 측면에서 창원의 산업단지와 신도시, 그리고 이상철(2008)이 마산의 산업단지 개발을 주도한 국가의 역할을 각각 고찰한 바 있으며, 박배균·최영진(2014), 최영진(2014)은 마산과 창원의 산업단지 조성에 있어 국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 구조를 분석하였다. 이 외에도 마산 산업단지 내‧외의 노동시장 구조(허은, 2014), 마산시의 도시공간구조 변천(박형규·서유석, 2009) 등에 관한 선행연구가 있었으나, 본 연구에서와 같이 발전국가의 관점에서 마산과 창원의 산업단지 및 산업도시의 특성을 직접적으로 비교한 연구는 없었다.
이후 제Ⅱ장에서는 본 연구의 이론적 토대를 구성하는 발전국가의 산업단지와 산업도시의 특성을 정리한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제Ⅲ장에서 산업단지 사례로서 마산 수출자유지역, 제Ⅳ장에서 산업도시 사례로서 창원 기계공업기지의 형성과 발전 특성을 실증적으로 비교분석한다. 실증연구는 각종 보고서와 간행물, 통계자료, 법규, 행정문서, 신문기사 등 광범위한 문헌분석에 기초한다. 마지막으로 제Ⅴ장에서는 이론과 실증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결론을 맺는다.
Ⅱ. 발전국가의 산업단지와 산업도시
발전국가 또는 개발국가(developmental state)는 Jonhson(1982)이 일본의 산업화 과정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개념화한 이래, Amsden(1989)이 한국의 경제개발 특성을 이론화하기 위해 적용하면서 동아시아 신흥산업국의 산업화와 경제개발 모델로 자리 잡았다. 또한 최근에는 개혁‧개방이후 중국의 경제개발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으로도 활용되고 있다(예를 들어 Knight, 2014). 이는 시장경제체제도 계획경제체제도 아니면서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발전의 제도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기본 원칙으로 하면서도 국가가 스스로 설정한 부국강병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장에 대한 전략적 개입을 행하는 국가’(김일영, 2000)를 일컫는다. Amsden(1989:7)에 의하면 발전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은 신고전경제이론과는 반대로 자원 배분을 전략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가격 왜곡(getting the price wrong)’으로 특징지어지는데, 한국의 경우 중화학공업에 대기업을 참여시키기 위한 자본시장 금리의 정책적 조절, 보조금 지급을 통한 수출상품가격 왜곡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발전국가는 경제정책, 특히 산업정책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었지만, Yoon(1994), Kim and Choi(2014), 최막중 외(2014)는 이를 주택정책에도 적용하여 고밀의 아파트 단지로 특징되는 한국의 주택시장 특성을 설명한 바 있다. 즉,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정부는 한편으로 공공에 의한 택지개발을 통해 택지가격을 조성원가로 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택의 분양가격을 통제함으로써 공급물량 극대화를 통한 이윤 추구를 유도하였으며, 이에 따라 대지규모와 건축밀도가 증가하고 그에 상응하는 자본력과 기술력을 지닌 대기업이 주택산업에서 우위를 점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최막중 외, 2014). 이와 유사하게 산업용지에 대해서도 공공개발을 통해 공급가격을 통제하는 ‘토지가격 왜곡(getting the land price wrong)’이 가능하며,2) 이를 통해 산업체를 특정 입지에 집적시키는 산업입지정책에서도 발전국가의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Sonn and Choi, 2017).
산업입지정책이 공간적으로 구현된 산업정책인 것과 같이, 손정원(2006)과 Sonn and Choi(2017)에 의하면 발전국가에 있어 경제개발계획은 본질적으로 공간계획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사회적으로 생산된 공간으로서 Lefebvre(1991)의 생산수단으로서의 공간의 개념을 수용한 것으로, 그 기제는 크게 세 가지 공간적 차원에서 구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기제는 단지 또는 지구(district) 차원에서 산업단지를 공공이 직접 개발, 공급하여 관련 산업체를 공간적으로 집적시킴으로써 집적의 경제(agglomeration economies), 특히 국지화경제(localization economies)의 편익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 기제는 도시 차원에서 산업단지의 노동력 재생산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산업신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세 번째 기제는 국토 차원에서 산업단지와 산업도시들을 전력과 수자원을 공급하기 위한 발전소, 댐을 비롯하여 고속도로, 철도, 항만 등의 사회간접자본과 연계하여 국토공간 전체를 효율적인 생산공간으로 조직화하는 것으로, 60년대, 70년대의 국토종합개발계획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중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본 연구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기제는 단지 차원의 산업단지와 도시 차원의 산업도시이다. 그 이유는 도시개발의 범위를 설정함에 있어 산업단지 개발로 충분한 경우와 산업신도시 건설로까지 확장되어야 하는 경우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 때문으로, 그 도시계획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도시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직주관계로, 노동력을 투입하는 ‘일터’로서 노동공간과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쉼터’로서 주거공간은 도시공간을 구성하는 기본요소가 된다. 이 때 주거공간은 보다 넓은 의미에서 ‘놀터’인 여가공간을 포함하여 생활공간의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다. 노동공간은 노동활동에 종사하는 개인의 특정 활동만에 전문화되어 있음에 비해, 생활공간은 그 개인은 물론이고 함께 거주하는 가족이 있을 경우 가족 전체의 일상적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도시기반시설을 제공한다. 따라서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산업단지만을 개발하는 것은 노동공간만을 새로이 조성하고 생활공간은 기존의 도시공간을 활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산업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노동공간뿐 아니라 생활공간까지 일체형으로 모두 새로이 제공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정원(2006)과 Sonn and Choi(2017)에 의하면 산업단지 개발과 산업신도시 건설의 차이는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의 특성에 따른 노동력 재생산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될 수 있는데, 그 논리를 체계적으로 보완하면 다음과 같다. 경공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이고 비숙련 노동에 의존하며 중소기업이 주축을 이루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값싼 노동력뿐만 아니라 도시기반시설이 풍부하게 제공되는 대도시에 산업단지만을 조성하여 입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노동접근성의 측면에서 대도시는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홀로 이주한 젊은 여성으로 대표되는 비숙련 노동력이 언제든지 대체가능할 만큼 공급량이 풍부한 장점을 갖고 있다. 동시에 대도시는 생활기반시설이 풍부하여 주거 등 생활공간에 대한 수요를 기존의 도시공간을 활용하여 충족할 수 있으므로, 이를 별도로 제공하는데 따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농촌에서 홀로 이주한 젊은 여성 노동인력은 가족이 아닌 개인 단위에서 주거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므로 기존의 도시공간을 보다 용이하게 활용할 수 있고, 결혼으로 가족을 형성하더라도 다른 미숙련 노동인력으로 얼마든지 대체가능하기 때문에 별도의 항구적 생활기반시설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미숙련 노동 기반의 경공업의 경우 대도시가 제공하는 주거 등 생활기반시설에 편승내지 기생하여 산업단지만을 개발하는 전략을 택하게 된다.
이에 비해 중화학공업의 경우에는 대규모 자본과 시설 투자를 필요로 하는 중후장대형 장치산업일 뿐 아니라 숙련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해야 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도시 외곽지역에서 산업단지를 포함하는 신도시를 개발하여 입지하는 편이 유리하다. 중화학공업은 대규모 시설을 수용하기 위해 넓은 부지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무거운 원료와 제품을 반입‧반출하기 위한 교통‧물류시설, 공업용수 등의 특수한 입지조건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기성시가지에서 떨어진 외곽지역에 산업단지가 입지하게 된다. 또한 중화학공업은 복잡한 기계장치와 맞물려 일할 수 있는 숙련 노동을 필요로 하는데, 이들이 기성시가지에서 외곽지역으로 지속적으로 출‧퇴근하는 일은 쉽지 않다. 따라서 도시 외곽지역에 아예 산업단지와 함께 다양한 도시기반시설을 갖춘 생활공간을 산업신도시로 확장하여 건설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데, 이는 특히 숙련 노동력의 재생산 구조를 장기적인 시각에서 담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직업훈련 등을 통해 숙련된 노동력을 양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또한 이 때문에 쉽게 인력을 대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번 양성하여 고용한 인력은 가능한 오랫동안 활용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숙련 노동자가 결혼을 하여 가족을 형성하고 자녀를 양육, 교육하여 출가시키고 은퇴할 때까지 생애주기(life cycle) 전반에 걸친 생활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한 곳에 오랫동안 정착해서 안정된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계획도시로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기성시가지보다 양호한 생활환경을 조성해 주는 전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후에서는 이와 같이 경공업의 비숙련 노동력과 중화학공업의 숙련 노동력의 재생산 구조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산업단지와 산업도시 개발의 특성을 마산 수출자유지역과 마산시, 창원 기계공업기지와 창원시의 관계를 통해 실증적으로 비교하도록 한다.
Ⅲ. 마산 수출자유지역
1. 정부 주도의 산업단지 개발
마산지역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이래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조선, 철강, 기계 관련 군수공장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었던 곳이었다(변광영, 1969). 이를 배경으로 1966년 재일교포 기업가였던 손달원을 중심으로 마산지역에 동양중공업이라는 종합기계공장 등을 유치하기 위한 임해공업단지 조성을 정부에 건의하였고(박배균·최영진, 2014), 이에 마산시 자금과 중앙정부 지원금으로 1966년 11월 공업단지 부지확보를 위한 매립지 조성사업이 시행되어 1969년 11월 완료되었다.3) 이와 함께 1969년 4월 상공부가 일본 미쓰비시상사 및 센트럴컨설턴트에 의뢰하여 수립한 ‘마산지구 개발기본계획’이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는바, 이는 마산지구(현 마산, 진해, 창원지역)와 낙동강하구지역 전반에 걸쳐 공업입지에 대한 타당성을 조사한 결과 마산지구가 투자 대비 부가가치가 매우 높아 가장 우선적으로 개발해야 할 지역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었다.4) 동 계획에 의하면 마산지구는 6개의 지구로 구성되었는데, 최초 사업을 주도했던 손달원의 동양중공업이 자금 확보에 문제가 생겨 1968년 사업승인이 취소됨에 따라5) 그 중 제1지구에만 임해공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계획이 축소되면서 나머지 지역에는 후술하는 창원 기계공업기지가 들어서게 되었다(최영진, 2014). 이어 1969년 6월 제1지구에 대한 ‘마산임해공업단지 조성계획’6)이 수립되어 1970년 2월부터 제1, 2공구 41만 6330만평에 대한 1차 조성공사를 통해 건설된 수출산업공업단지가 1971년 4월 수출자유지역이라는 이름으로 가동을 시작하게 되었다(통상산업부 마산수출자유지역관리소, 1997:54).
마산지구의 임해공업단지 건설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197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수출자유지역설치법을 제정하였는데, 이는 2000년 1월 자유무역지역의 지정 등에 관한 법률, 2004년 3월 자유무역지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로 각각 명칭이 바뀌었지만 지금까지도 마산 산업단지의 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수출자유지역은 임해 특정지역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여 수출진흥, 고용증대, 기술향상을 기하기 위해 설치하는 것으로(제1조)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체와 외국인이 단독 또는 일정 비율로 공동 투자한 기업체에게 입주자격이 주어졌다(제9조). 수출자유지역의 조성과 항만, 도로 등 기반시설 건설은 건설부장관이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데(제4조), ‘마산임해공업단지 조성계획’에 의하면 단지 조성과 운영은 한국수출산업공단(현 한국산업단지공단)7)이 총괄하고 항만과 공업용수를 비롯한 기반시설은 건설부 등이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2. 산업 특성 및 노동력 구성
마산 수출자유지역은 당시로서는 한국의 유일한 생산요소 자원이었던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여 외자를 유치하는 산업단지의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1990년대 들어 국내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고 IMF 외환위기가 겹치면서 2000년대 들어 제조업 중심의 수출자유지역을 무역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물류업을 포함하여 자유무역지역으로 확대 개편하게 된 데에서도 알 수 있다.8) 따라서 수출자유지역의 입주업체는 본질적으로 미숙련 저임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집약적 중소기업이 주류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970년 2월 상공부의 ‘마산수출자유지역 조사보고서’에 입주를 장려할 업종으로 제시된 입주업종계획에는 전자제품(25%), 의류(봉제)(17.1%), 경편직물(12.4%)이 절반을 넘는(54.5%)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이상철, 2008). 실제 1970년 4개 업체가 입주를 결정한 이래 1974년 단지내 가동 중이었던 89개 업체의 업종구성은 전자 20개(22.5%), 기계기구 20개(22.5%) 등으로 요소부품생산이 대부분을 차지하였고,9) 업체당 평균 투자액은 약 81.3만 달러로 중소기업 수준의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이상철, 2008). 1974년 초 74개 입주업체를 기준으로는 60%에 가까운 44개가 종업원 200인 이하였고, 그 중 28개(38%)는 100인 이하의 소규모 기업이었다(미끼오, 1985: 112; 허은, 2014).
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운영실적은 표 1과 같다. 주목할 점은 고용자수가 1980년대에 최대 규모에 이르렀다가 1990년대 들어서부터 꾸준히 감소하였는데, 수출액 규모는 불변가격 기준으로 2000년에 들어서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대로 1990년대 들어 국내 노동자 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낮은 임금에 기초한 노동집약적 업종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가치 업종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실제 앞서 1974년의 업종구성에서는 전자(22.5%)와 기계기구(22.5%)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에 비해, 2016년에는 102개 입주업체 중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정밀기기 업종이 41개(40.2%)로 가장 큰 비율을 점유하고 있다.10) 이러한 산업 특성의 변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표 1에서 고용자 1인당 수출액을 산정하면, 이 지표는 1980년대에 비해 199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여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5년을 기준으로 고용자수가 가장 많았던 1985년에 비해 6.7배(=550,393/81,518) 커질 만큼 부가가치가 증대한 것으로 나타난다.
미숙련 저임금의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개발된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성격은 고용자의 특성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표 1은 고용인원을 남녀로 구분하여 보여주고 있는데,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4명중 3명(75%) 이상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저임금의 노동집약적 업종이 기술력 중심의 고부가가치 업종으로 대체되면서 그 비율은 꾸준히 감소하여 2010년에는 50%미만으로 하락하게 된다. 여성 종사자 비율은 1983년 최대 79.0%를 기록하였는데, 당시 언론보도에 의하면11) 지방의 공업단지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 중 여성의 비율이 높은 이유가 남성에 비해 노무비가 싸고 경공업의 낮은 임금에 대한 수용성이 크기 때문으로 설명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마산의 경우 여성 노동력이 대부분 사춘기 연령층이기 때문에 기숙사 등 후생시설의 확충과 고등학교에 준하는 야간 교육기구의 설치 등이 필요하다는 기사내용으로, 이는 공식 통계자료에서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여성 노동력이 미혼의 어린 연령대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거문제가 방치되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남녀 임금차이에 대해 1986년을 기준으로 남성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여성보다 2.32배 더 높았고, 그 중에서도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주요 업종이었던 전기‧전자업종의 경우에는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커서 남성 노동자는 여성보다 2.73배 더 많은 임금을 받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통상산업부 마산수출자유지역관리소, 1997: 390).
따라서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여성 노동자들은 특별한 기술훈련이 필요하지 않았던 미숙련 노동력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데, 이는 마산 수출자유지역에서 노동자의 기술향상을 위한 직업교육이 특별히 실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마산 수출자유지역에서 실시한 교육은 직업보도훈련원에서 1주일간 진행된 취업전 소양교육 뿐으로,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이 교육을 수료한 노동자는 여자 41,019명, 남자 9,934명으로 총 50,953명이었다(상공부 마산수출자유지역관리소, 1987:111). 또한 주거문제에 대한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12) 앞서 표 1의 1975년 여성 노동자 17,026명은 상당 부분 농촌지역에서 이주한 미혼의 연령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숙사의 수용인원은 2,000명에 불과하여 대부분의 노동자는 기존의 마산 시가지에 흩어져 거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마산시내의 월세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는데,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기사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산)지역 내 고용인원은 (1973년) 18일 현재 14,500명, 마산시내의 실업률은 전무한 상태. 뿐만 아니라 인접 시군의 노동력까지 흡수, 심지어는 멀리 호남지방에서까지 취업인구를 끌어들이는 실정...(중략)...주택가의 월세방 값이 3배나 가까이 오른 것은 연초의 이야기. 최근에는 각 기업체의 여공흡수로 상류가정에서는 가정부를 구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이를 기초로 보다 종합적으로 1970∼95년 마산시 인구구조의 변화를 통시적으로 정리한 결과는 표 2에 제시되어 있다.13) 마산시 인구에는 1967년 수출자유지역 주변에 들어선 한일합섬의 여성 고용자수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 인구구조에서는 젊은 연령계층의 여성과 남성인구간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산 수출자유지역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19세 여성인구가 대거 유입된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5년 전 10∼14세 여성 코호트(cohort)가 100% 생존하여 자연증가했다고 가정해도 지난 5년간 순유입된 15∼19세 여성은 1970∼75년 22,171명, 1975∼80년 16,515명, 1980∼85년 15,561명, 1985∼90년 11,232명으로, 동 기간 총여성인구 증가의 32%(=22,171/69,576), 46%(=16,515 /35,526), 49%(=15,561/31,996), 60%(=11,232/18,734)를 각각 차지할 만큼 상당히 큰 규모였다. 이에 따라 인구피라미드에서도 15∼19세 여성 연령계층이 돌출적으로 가장 큰 규모를 갖는 편중적 인구구조 특징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15∼19세 여성의 순유입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이러한 인구구조 특징이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는 인구의 사회적 이동과는 별개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구의 자연증가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15∼19세 여성의 순유입에도 불구하고 20∼24세 이상의 여성에 있어서는 1975∼80년 기간부터 지속적으로 순유출이 발생하여 자연증가 효과를 상쇄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5년 전 15∼19세에 유입된 여성 코호트가 5년 후 20∼24세에 결혼과 함께 유출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바, 이는 신생아인 0∼4세의 인구증가가 동반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고용되었던 미혼여성 노동인력은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지역에서 살림을 차릴 수 있는 임시 거주자로서의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된다.
Ⅳ. 창원 기계공업기지
1. 정부 주도의 산업도시 개발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2~1976)은 기존의 경공업 중심의 산업화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여 공업의 고도화를 기하는 것을 중점목표로 삼았고,14) 이는 1973년 1월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천 달러 달성을 위한 시책으로 발표되었다. 이에 따라 1973년 5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가 설치되어 철강, 조선, 비철금속, 기계, 전자 및 화학공업을 6대 국가 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중화학공업단지 건설을 위해 동년 12월 산업기지개발촉진법 제정과 함께 한국수자원개발공사를 산업기지개발공사로 재편하였다. 산업기지개발촉진법은 중화학공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산업기지 개발을 법의 목적으로 천명하고(제1조) 산업기지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시행자를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산업기지개발공사로 한정하여(제7조) 공공개발을 명시하고, 토지수용(제10조), 조세감면(제17조), 도시계획을 비롯한 각종 인‧허가 의제처리(제21조) 등의 혜택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조성토지는 건설부장관이 정하는 적정가격,15) 항만, 공업용수시설, 도로 등 지원시설(제9조)은 건설원가로 각각 공급할 수 있도록 하였다(제16조).
창원 기계공업기지도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가 계획하여 산업기지개발공사가 개발하였으며, 이미 1969년 ‘마산지구 개발기본계획’을 통해 공업입지로 높게 평가되어 있었던 마산지구에 입지하여 마산 수출자유지역과는 직선거리로 약 2km 떨어져 있다(그림 1). 1973년 9월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창원기계공업기지 건설계획’16)에 따르면 산업단지는 398만평 규모로 1973년 11월 조성공사를 시작하여 1974년 8월 1차로 106만평을 완공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주목할 것은 단지내 지원시설로 50세대의 아파트와 폭 25m, 연장 25km의 주거도로 건설을 위한 사업비가 계상되어 있었고, 아파트는 대한주택공사에서 주택자금으로 건립하는 것으로 배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원기계공업기지건설계획’은 그 대상지가 총 1,200만평으로, 산업단지로 조성되는 공업지역 398만평 외에 주거지역 245만평 등17)을 산업단지를 지원하는 배후도시로 함께 건설하는 계획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림 1의 창원기계공업기지 건설계획 기본구상도를 보면, 계획대상지의 중앙부를 동남향으로 가로지르는 도로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공업용지, 북쪽에는 주택용지를 비롯한 지원용지를 배치했음을 알 수 있다.
지원용지에는 연구시설과 트레이닝센터가 계획되어 숙련노동력을 양성하기 위한 기술교육기관들이 건립되었다. 1976년 벨기에와 공동으로 한백기계훈련원이 개설되고, 1977년에는 창원기계공업고등학교의 개교와 함께 무학고등기술학교가 증설되고, 1980년에는 국내 최초의 기능장 육성 교육시설인 창원기능대학이 건립되었다(창원기계공업공단, 1990 :241-252). 주택용지에 대해서는 ‘노동력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단지내 주민시설을 확보하고 배후도시와의 교통소통을 원활히 한다’, ‘입주 외국인을 위한 주거 및 환경시설을 완비한다’ 등의 계획지침으로 미루어보아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의 주거환경 조성을 계획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74년 3월 대통령에게 보고된 ‘중화학공업기지 조성구역확정’에서는 인구계획이 구체화되어 1973년 초기계획보다 다소 늘어난 1,311.4만평(43.35km²)의 면적에 계획인구 약 20만 명의 산업도시 건설을 천명하였다.18) 이 계획은 1980년 창원시 설치에 따라 1983년 수립된 창원도시기본계획으로 이어진다.
인구 20만의 산업도시 건설계획은 마산 수출자유구역과는 달리 창원 기계공업기지가 마산의 기성시가지에 가깝지 않아 노동인력의 주거기능을 비롯한 배후 지원기능을 자체적으로 충족시켜야 할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중화학공업에 필요한 기술인력을 전 생애주기 단계에 걸쳐 지속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려는 정책의지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의지는 특히 중화학공업단지가 처음 들어선 울산에서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로 보이는데, 이와 관련하여 오원철(2006)은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화와 80년대의 미래상’에 관한 보고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공단을 설계할 때 주거지역의 도시계획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좋겠어. 울산공단을 건설할 때 공장지역만 덩그러니 결정해 놓으니, 후에 울산시가 도시계획을 다시 한다고 골치를 앓고 있지 않나?”
2. 산업 특성 및 노동력 구성
1973년 9월 ‘창원기계공업기지 건설계획’에서 제시한 공장유치 목표는 104개 업체였지만, 1974년 24개 기업의 입주가 결정된 이래 입주업체수는 꾸준히 증가하여 1978년 122개로 당초 목표를 달성하였다. 그리고 단지 가동 10년만인 1984년에는 177개 업체의 대규모 산업단지로 성장했다(창원기계공업공단, 1990:432-436). 그런데 이는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들의 입주를 강력히 압박한 결과로(창원기계공업공단, 1979:154), 산업단지 초기만 하더라도 자본회수기간이 긴 중화학공업에 선뜻 투자할 수 없어 입주를 꺼렸던 상황이었음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 수 있다.19) 이러한 정부의 대기업 유치노력으로 1978년 122개 업체 중 산업기계 41개(33.6%), 수송기계 28개(23.0%) 등 완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창원기계공업공단, 1990:436).
이후에도 입주업체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5년 2,388개까지 늘어나고, 고용인원은 9만 명을 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오늘날 창원 국가산업단지는 각 업종을 선도하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중소기업들이 연계하여 소재,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생산하는 협력체제를 이루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2,153개의 업체 중 종업원 300인 이상의 대기업은 48개에 불과하지만, 고용인원 91,897명 중 47,552명(51.7%), 생산액 536,063억원 중 418,129억원(78%), 수출액 23,968백만불 중 21,498백만불(90%)을 차지할 만큼(노상환, 2014) 산업단지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연계되어 있는 중화학공업의 특징은 노동자의 남녀비율로도 나타나는데, 1978년 창원 기계공업기지의 고용인원 30,874명 중 남성이 27,786명(90%)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여성의 비율은 10%에 불과하였다(창원기계공업공단, 1979:277). 이는 중화학공업에서 요구하는 기술력을 갖춘 숙련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정부가 전국 각지의 젊은 남성들을 모아 기술교육을 시켜 인력 양성에 힘을 쏟은 결과로, 이를 위해 산업기능요원으로의 편입을 통한 병역대체제도를 십분 활용하였다. 1979년 정부에서 수립한 창원기계공업기지 장기인력수급계획은 노동자의 기술수준을 견습직, 기능직, 기술직으로 차등화하여 1983년까지 견습직 13,300명, 기능직 97,900명, 기술직 19,200명을 확보하고 그 외 관리사무직 17,600명을 합쳐 총 148,000명의 인력을 공급한다는 목표치를 제시하고 있다(창원기계공업공단, 1979:275).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당시 대학교의 기계학과 정원을 대폭 늘리고 영남지방의 대학교, 특히 공대를 특성화대학으로 지정하는 한편, 실업계 고등학교의 기계과를 확충하였다. 또한 창원 기계공업기지에 입주한 기업들도 고급기술인력을 영입하고 외국에 많은 연수인력을 파견하는 등 자체인력 확보에 매진하였다(창원기계공업공단, 1979:275-277).
나아가 전국적 차원의 인력 재배치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수도권인구 재배치계획(1977∼1986)을 세워 수도권에는 인구집중억제책을, 그리고 지방에는 공업 유치 및 공업단지 종업원용 주거시설의 우선 건설 등과 같은 수도권인구 수용책을 실시하였다.20) 이와 관련하여 실제 창원 기계공업기지로 이주한 인력의 출신지 분포를 보면, 1978년말 기준 30,874명 가운데 경남 17,598명(57%) 외에도 부산 2,779명(9%), 경북 2,470명(8%), 호남 2,470명(8%), 서울 2,161명(7%), 경기·강원·제주 1,852명(6%), 충청 1,544명(5%)으로 전국 각지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주노동자의 연령도 29세 이하가 22,557명(73%), 39세 이하가 29,504명(96%)을 차지할 만큼 젊었다(창원기계공업공단, 1979:280).
이에 따라 창원시의 인구구조 변화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면 표 3과 같다. 1974년 창원 기계공업기지가 가동하기 시작한 이래 창원의 인구규모는 1975년 57,928명에서 2000년 515,619명으로 최고점에 다다를 때까지 불과 25년 만에 9배가 될 만큼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앞서 마산의 경우에서와 같이 연령계층별 생존율 100%를 가정하더라도, 이러한 인구증가를 견인한 것은 15∼34세 남성 등 젊은 인구의 순유입이었다. 특히 25∼29세 인구의 순유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90년대에 정점을 이루었는데, 이는 25∼29세에 상응하여 0∼4세 인구도 함께 증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주 남성과 결혼하여 가족을 형성한 여성의 동반 이주로까지 이어진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1980년부터 1990년까지는 인구의 사회적 이동의 효과가 지배적으로 나타나 인구피라미드에서 25∼29세와 0∼4세가 상대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연령계층을 차지하였다.
이후에는 인구의 자연증가 효과도 나타나면서 최대 연령계층이 1995년 30∼34세와 0∼4세, 2000년 35∼39세 남성(여성의 경우는 결혼연령차에 의해 30∼34세)와 5∼9세로 상향 이동되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2000년대에 들어 25∼29세 인구의 순유입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인구구조가 자연변화에 의해 지속적으로 고령화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최대 연령계층은 2005년 40∼44세와 10∼14세, 2010년 45∼49세 남성 및 40∼44세 여성과 15∼19세, 2015년 50∼54세 남성 및 45∼49세 여성과 20∼24세로 꾸준히 상향 이동되어, 과거 25∼29세에 유입되었던 코호트가 이제는 은퇴를 앞둘 나이까지 고령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창원의 경우 지난 1975∼2015년간 40년에 걸쳐 산업단지 성장 전반기에 대거 유입되었던 젊은 남성인구가 결혼과 가족형성, 자녀 육아, 교육의 생애주기 단계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노동활동을 영위해온 특징을 갖는다. 이는 한편으로 중화학공업에 필요한 숙련 노동력의 지속적인 재생산을 위해서는 가족의 주거 및 생활기반까지 제공할 수 있는 신도시 건설이 필요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배후도시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인력이 오랫동안 정착하여 일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으로 숙련 노동력의 동시적 고령화와 은퇴라는 문제점도 노정하고 있다. 특히 산업단지가 특정 분야의 기업들을 집적시켜 국지화경제에 따른 집적의 경제를 추구하기 위한 것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문제점은 산업구조 변화나 국제경쟁 심화,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으로 인해 해당 산업분야가 젊은 기술인력에 의해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사회적으로 심각한 도시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단조로운 산업구성의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다 보니 해당 산업의 경쟁력 저하가 도시 전체의 위기로 쉽게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Ⅴ. 결 론
본 연구는 정부의 주도 하에 민간의 자원을 동원하여 산업화와 경제개발을 이루어낸 발전국가의 특성이 국토공간에 투영되어 나타난 결과로서 경공업 및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도시계획 차원에서 산업단지와 산업도시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마산 수출자유지역과 창원 기계공업기지를 비교 사례로 하여 실증분석하였다. 그 결과 손정원(2006)과 Sonn and Choi(2017)가 주장한 바와 같이 도시개발의 범위가 산업단지에 국한되는지 아니면 산업도시까지 확장되는지의 여부는 노동력 재생산 구조의 차이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저임금 비숙련 노동력을 활용하여 노동집약적 중소기업 위주로 시작한 경공업의 경우 산업단지 외에 종업원의 주거 및 생활기반시설을 별도로 제공하지 않은 것은 이를 감당할 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인력이 이탈하더라도 쉽게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노동공급이 풍부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이른바 ‘여공’으로 상징되는 노동자의 주거문제는 기성시가지에 편승하여 해결하였고, 이로 인한 열악한 주거 및 생활환경 하에서 결혼 후에는 공장을 그만둠으로써 노동력의 재생산이 단기적 순환 구조로 이루어지는 특징을 지닌다. 이에 비해 대기업의 참여와 함께 고부가가치 기술력을 갖춘 숙련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중화학공업의 경우 일정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양성한 기술인력을 가능한 오랫동안 활용할 수 있도록 종업원뿐 아니라 가족의 주거 및 생활기반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산업신도시를 건설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이른바 ‘남성 기능공’으로 대표되는 노동자가 젊은 시절부터 결혼과 자녀 양육 및 교육에 이르는 생애주기단계 전반에 걸쳐 한 곳에 정착해서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의 장기적인 재생산 구조가 특징적으로 형성되었다.
이러한 분석결과는 전통적인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볼 때 직주의 공간구조를 결정하는 고용공간(‘일터’)과 주거공간(‘쉼터’) 또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여가공간(‘놀터’)을 포함하는 생활공간의 배분이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일깨워 준다. 직주불균형의 한 극단으로 산업단지의 경우는 고용공간만을 공급하고 주거공간은 기존 도시에 편승하여 해결하려고 함으로써 기존 도시의 용량을 초과한 과밀과 주거비 상승 등의 문제로 인해 노동력의 지속가능한 재생산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산업도시는 고용공간과 주거공간을 함께 확보함으로써 노동력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도모할 수 있는데, 이는 곧 산업도시가 직주균형의 자족적 신도시로 규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직주불균형의 또 다른 한 극단은 산업단지 등 고용기반 없이 주택공급만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침상형(bed town) 신도시로, 이는 직주 원격화에 따른 통근거리 증가와 교통비용의 추가적 발생으로 매일 매일의 일상적인 노동력 재생산 과정을 지난(至難)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사점은 고용공간의 산업구성이 경공업 또는 중화학공업 위주이냐의 여부를 떠나 오늘날 보다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직주균형의 원칙을 제시하는 것으로, 국내 또는 개발도상국에서 새로운 산업단지를 개발할 때 직주균형의 원칙에 의거하여 노동력의 안정적인 재생산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근년에 올수록 대덕테크노벨리, 천안아산복합산업단지 등과 같이 산업과 주거, 상업기능 등이 혼합된 형태로 복합산업단지가 개발되고 있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실증분석 결과에 의하면 산업도시 또는 자족적 신도시가 갖는 직주균형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용공간은 장기적으로 산업구성의 포트폴리오(portfolio)를 다양화하여 도시화경제(urbanization economies)에 따른 집적의 경제를 동시에 추구할 필요가 있다. 산업단지와 같이 고용공간이 한정된 산업분야로 너무 특화되어 있으면 국지화경제에 따른 집적의 경제를 누릴 수는 있어도 산업구조 변화나 국제경쟁 심화와 같은 외부적 충격에 취약해질 수 있고 노동시장의 경직화와 같은 내부적 한계에 쉽게 노출될 수 있어 특정 산업이 당면한 현안이 도시 전체의 문제로 쉽게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21) 이와 관련하여 Menzel and Fornahl(2010)은 맨체스터의 섬유산업이나 디트로이트의 자동차산업과 같이 지역경제가 특정 산업에 고착화되는 경우 지역을 ‘융통성 없는 특화(rigid specialization)’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한 바 있다.
본 연구의 한계는 무엇보다 자료 취득의 어려움에 기인한다. 문헌자료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과거에 마산 수출자유지역과 창원 기계공업기지에서 일했던 분들에 대한 인터뷰를 시도하였으나, 그 수가 많지 않아 본 연구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이에 추후 보다 풍부한 1차 자료에 기초한 질적 연구가 뒤따를 필요가 있다.
Acknowledgments
본 연구는 김영재의 석사학위논문을 기초로 하여 발전된 것으로,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지원을 받았음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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