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publication date Feb 2015
산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경향과 논점 분석
Abstract
Globally, types of the inscription of World Heritage have diverged from monuments, group of buildings, and sites, but spread to concepts of living heritage, cultural landscape, and industrial heritage. Moreover, as new concepts like series heritage and trans-national heritage emerged, the inscription of world heritage turned into an essential issues of national competitiveness. In this kind of the stream of times, this paper has 3stages which have focus on industrial heritage. First, it draws ambiguous arguments of the inscription of World Heritage found in ‘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 -Kyushu∙Yamaguchi and Related Areas‘, which Japan aims for the inscription in 2015. These are as follows; What constitutes industrial heritage? Is a certain period of time the only criterion for the inscription? How should we define a buffer zone? Can some parts of complex type industrial heritage be intended for the inscription? Can we inscribe the industrial facilities which are still working today as a World Heritage site? The second stage investigates and evaluates the criteria and grounds of the inscription of 59 industrial heritage sites which have been inscribed as World Heritage after 1978. Based on these 2 stages, the third stage reasons out abjective principles that industrial heritage should have as World Heritage. This study may not be the results which reflected the views of international experts of industrial heritage or passed the discussion stage, however it is judged to be the expansion of the province and th grounds of both quantity and quality level of activation of industrial heritage as World Heritage.
Keywords:
Industrial Heritage, World Heritage, Industrial Tourism, Regeneration, Reuse키워드:
산업유산, 세계유산, 산업관광, 재생, 재활용Ⅰ. 서 론
1. 연구 배경 및 목적
국가의 상징성과 정체성에 근거하여 국토와 도시를 관리하려는 경향은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해당 국가가 보유한 개성과 특성을 발굴하고 이를 부각시키는 일은 단순히 자연성과 역사성의 보전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의 문화 권위의 강화와 국가 및 지역경제 활성화의 근거가 되는 각종 관광산업과 연계되면서 국제적인 관심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한 경향 중 하나가 세계유산의 등재이며, 세 가지 유형(문화, 자연, 복합) 중 문화 영역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이는 ‘문화형 세계유산’(이하 세계유산)이 오브제 중심의 건축물과 시설단위에서 벗어나 예술, 문학, 생활양식, 더부살이, 가치관, 전통, 신념 등과 관련된 독특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특징을 포함하는 국가(지역)의 문화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가가 세계유산을 갖는 일은 단순히 국가적 차별성을 확보하고 고유성을 지키려는 의도와 함께, 국력의 상징, 문화 정치학적 접근과 국제문화 패권주의 등과 관련 양상 또한 점차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유산 등재 폭의 확대 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념물, 건축물, 유적 등에 한정되던 기존 개념에서 벗어난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 산업유산(industrial heritage),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 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유산, 즉 ‘-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가지는 유산들도 세계 인류의 공감 속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곤 한다. 이외에도 연속유산(series heritage), 초국가유산(trans-national heritage) 등 새로운 개념의 유산들이 등장하면서 세계유산 등재가 국가 경쟁의 사안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 배경 속에서, 본 연구는 세계유산 등재 대상 중 하나인 산업유산1))에 초점을 둔다. 산업유산은 1978년 폴란드의 비엘리치카 소금광산(Wieliczka and Bochnia Royal Salt Mines)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총 59건이 등재되었다. 대부분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전근대기와 근대기에 형성된 산업 결과물들이다. 전반적으로 유럽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나, 산업적으로 취약지역인 아시아권에서도 일본이 2개소(이와미 은광과 경관/2007, 토미오카 제사장 일원의 양잠시설군/2014), 중국이 3개소(칭청산과 두장옌 수리시설/2000, 홍허 하니 계단식 논 경관/2013, 대운하/2014)를 등재시켰다. 특히 일본은 큐슈-야마구치 지역을 포함한 전국 8개 지역 28개소의 산업유산들을 단일 체제로 묶은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큐슈-야마구치관련지역’(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 Kyushu-Yamaguchi and Related Areas/이하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을 2015년 목표로 등재 추진 중에 있다. 사실 이 유산에는 하시마탄광 등 우리 선조들의 희생과 노역으로 점철된 강제동원 사이트가 11개소나 포함되어 있고, 13개소는 ㈜미쓰비시중공업(주), 신일본제철(주) 등 전범기업들의 소유지다. 이외에도 이 유산은 여러 측면에서 세계유산으로서 자격 미달의 조건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2)
결과적으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 내포된 모호한 부분들은 산업유산이 세계유산으로 최초 등재되었던 지난 1978년 이후 약 40년 동안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세계유산으로서 산업유산이 가져야 할 원칙과 조건’에 대한 다양한 논점들을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 속에서, 본 연구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산업유산들의 등재 경향 도출을 1차 목적으로 한다. 이의 결과에 근거하여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 내포된 논점들에 대한 분석을 시행하고, 세계유산으로서 산업유산이 가져야 할 조건들에 대한 내용 정립을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2. 연구 방법
본 연구는 크게 2단계로 접근한다. 첫째는 문헌연구 단계로 (문화형)세계유산으로 등재된 779개(2014년 11월 현재) 유산들 중 59개소의 산업유산을 추출하고 이의 등재기준과 근거, 등재과정에서의 이슈 등을 조사한다.
이에 사용되는 분석 준거는 유네스코 공식자료(홈페이지, 세계유산총회 보고서 등)에서 정의하고 있는 세계유산이 가져야 할 OUV(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대한 6가지 기준과 완전성(integrity) 및 진정성(authenticity)관련 기준을 사용한다. 산업유산의 분류 업종은 기 연구3))에서 정의한 9가지 업종(농임업, 수산업, 광업, 철강금속업, 조선업, 전기에너지업, 제조업, 물류운송업, 산업서비스업)을 기준으로 한다. 두 번째 단계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 포함된 28개소 사이트에 대한 현장 조사와 등재 신청서의 내용 확인을 통해, 28개소 유산들이 가진 세계유산으로서의 자격 미달 조건들과 관련된 논점들을 분석한다. 분석 항목은 총 8가지이며 기본조건 3가지와 특수조건 5가지로 구성된다. 이 단계에서는 최근 5년 동안 연구자의 국제회의 참석4) 및 세계유산 등재 심사 등 관련경험과 국제사회(특히 TICCICH(국제산업유산협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산업유산관련 연구 내용들을 준거로 삼는다.
Ⅱ. 산업유산의 등재 상황과 경향
1. 세계유산으로서의 산업유산
산업혁명이후 생활양식과 도시의 경관은 크게 변화되었다. 이의 결과물들은 인류의 창의적 천재성을 대변하며, 다양한 성과 속에서 거대한 건설과 개발을 가져왔다.
그러나 급격한 기술 진보와 재개발과 재투자 등이 성행되기 시작하면서 유적으로 불릴 수 있는 기능을 잃은 산업시설들 대부분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실, 즉 이를 방치하거나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광산, 공장, 용광로 및 생산시설들을 세계유산 목록에 올려 근본적인 보존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폐산업시설들은 과거 산업시대의 수호자이며, 그 속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고통과 공로를 증언하는 물증이다. 이러한 시설들은 시대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공해와 진보 모두를 낳은 파괴와 창조의 이중 성격을 가진다. 또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과 물질을 초월하는 힘을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폐산업시설은 버리거나 해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남기거나 재활용할 수 있는 대상, 즉 산업유산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황기원, 2011)
20세기 말 산업화가 고도화되기 시작하면서, 등장한 산업고고학이란 학문을 통해 산업혁명기를 전후하여 등장한 산물들, 즉 다양한 유형의 산업유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이 중 최대, 초고, 최초 등의 이름으로 세계 산업사에 탁월한 기여를 했거나 후손들에 물려주어야 하는 산업사적 가치를 가진 물증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시작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산업유산은 등재 유형(기념물, 건물군, 유적) 모두에 걸쳐 나타난다. 또한 1995년에 필리핀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이 세계 최초 문화경관으로 등재된 후 유럽을 중심으로 한 농업분야의 결과물들이 문화경관의 형식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산업유산이 지역의 산업경관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산업유산은 오브제적 성격에서 벗어나 지역과 마을, 단지 등 집합 및 연속유산의 성격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있다.
2. 등재 경향과 구성
2014년 12월 현재 세계(문화)유산은 779점(총 1007점)이며, 이 중 산업유산은 59점으로 파악된다. 산업혁명 이전 시기(고대, 전근대)에 형성된 유산은 총 24개소이며, 산업혁명 이후의 것은 35개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인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조성된 유산도 세웰 광산마을 등 20여 개소에 이른다. 이 중 D. F. 보우다 증기기관 양수장과 반넬레 공장은 100년이 채 안된 1920년대에 탄생된 유산이다. 비키니 환초 핵 실험지는 1948년부터 1956년까지 작동했던 현대기의 유산으로 특수 유형으로 분류된다. 59개소 산업유산에 대한 연도별, 업종별, 국가별 분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산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는 1978년 이후 간헐적으로 등재되다 1990년대 하반기(2001년까지)에 30여개소가 집중 등재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소강상태를 보였지만, 2006년 이후 매년 1~4개소씩 등재되고 있고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인다.
물류운송업이 16개소로 가장 높은 분포를 보이는데 교량, 철도, 운하, 항구시설 등 기념물적인 단일 운송시설들이 주를 이룬다. 17개소에 이르는 광업은 산업혁명기의 에너지생산을 책임지던 석탄광과 각종 구리, 은 등의 광산지대(경관 포함)가 포함된 것이다. 이외 제조업 공장 9개소, 계단논과 재배지 등 농업시설 7개소가 주된 시설 유형이다.
59개소 유산 중, 유럽 유산이 44개소이며 유럽 영향을 받았거나 유럽의 기술과 자본으로 이루어진 북남미와 인도가 각 6개소와 1개소로서 유럽 및 그 영향권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산업혁명의 전개과정 상, 아시아 지역의 등재는 고대 또는 전근대 산업유산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불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2000년 이후 등재된 유산들은 19세기와 20세기에 설립, 작동했던 것들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는 현대기에 조성된 산업유산도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앞으로 근대산업기술의 후발주자들인 중미·남미와 아시아권 국가 소재의 산업유산들도 등재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의 경우,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록된 45개소의 유산 중 산서성 및 사천성 일대 양조공장군(中国白酒老作坊) 등 총 8개소가 산업유산이며, 일본은 전근대에서 근대에 걸쳐 일본 최고의 금광으로 꼽히는 사도광산(佐渡鑛山)을 2016년 등재 후보로 공식 확정하기도 했다. 대만 또한 1930년대 완공한 와샨토우 댐과 지안난 관개수로(烏山頭水庫及嘉南大圳) 등 4개소의 산업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3. 등재의 근거
조사 결과, 각 산업유산의 등재 근거는 크게 ‘역사적(historic) 측면’, ‘산업적(industrial) 측면’, ‘외형적(physical) 측면’으로 구분된다. ‘역사적 측면’이란 각 유산이 해당 업종에서 산업사 차원에서 가지는 의미 정도이며, ‘산업적 측면’은 산업유산의 산업적 역할이 국가의 발전이나 변화에 미친 영향력의 정도로 정의되며, 산업유산의 외관이나 규모에서 인지되는 기념성은 ‘외형적 측면’에 해당된다. 이외에 공통 항목으로 범세계적 또는 국가 차원에서 해당 산업유산이 특별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총 10가지의 등재 근거로 세분할 수 있다. 첫째는 ‘범세계적 또는 국가적으로 산업시설(군)의 원형 보존이 확인되는 경우’이다. 주로 도시에서 이격되어 입지하는 뢰로스 광산도시, 람멜스브르크 고슬라 광산, 블래나번 산업경관 등 광업관련 시설들과 공공(국가와 지방정부) 소유의 제조업 시설들이 주로 해당된다. 둘째는 ‘시설 자체가 세계적인 역사물로 인정되는 경우’이다. 신석기 시대 등 고대의 광산(플린트 광산, 라스 메둘라스 금광 등)과 로마시대의 입체 수도교(세고비아, 풍튀가르 로마 수도교) 등이 이해 해당한다.
세 번째는 ‘산업사적으로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사건이나 관련 물증인 경우’이다. 세계 최초라는 인증서가 붙는 사례들과 특별 사건과 관련되는 사례들이 해당된다. 세계 최초의 주철교인 아이언브리지, 세계 최초 방적 설비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지는 뉴 래너크와 더웬트 방적공장, 최초 무선방송국인 바브르그 방송국 등이 포함된다. 넷째는 ‘전승된 기술 수준이 탁월한 경우’이다. 증기기관관련 시설(D.F. 증기기관 양수장, 아이언다리 등), 철도시설(인도 산악철도 등), 공장군(엥겔스베리 제철소, 푈클링겐 제철소 등)이 해당된다. 이외 칭청산과 두장옌 수리시설과 대운하와 같이 수리·토목기술이 탁월하거나 레드 베이 바스크 고래잡이 항구와 같이 전문기술의 전승 경우도 해당한다.
다섯째는 ‘해당 시대와 업종 중, 유일 사례로 인정될 경우’이다. 이 시설이 해체되거나 소멸된다면 그 시대, 그 기술을 후손들이 확인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등재되는 사례들이다. 네덜란드의 킨더데이크 엘샤우트 풍차망이나 철골 교각형 운송시설인 스페인의 비스카스 대교 등이 이에 해당된다. 여섯 번째는 ‘산업화 과정에서의 의미있는 가치가 두드러지는 경우’이다. 이 경우 시설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산업관련인의 역할이 크거나 시설과 사람과의 관계가 강할 때 나타나는 유형이다. 주로 공장 사택촌과 광산촌들이 해당되며, 이상도시적 산업단지인 류 래너크와 솔테어 등과 광산촌(시가지, 마을)이 포함된 광업시설들이 대부분 해당된다. 헬싱란드의 장식형 농장가옥은 주민들의 생활(실내)공간이 가진 미(美)로 등재된 매우 특이한 사례이다. 일곱 번째는 ‘산업시설과 그 주변부가 총체적으로 조화된 문화경관으로 판단되는 경우’이다. 주로 문화경관으로 등재되는 사례들이 해당되며 농업관련 농경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계단식 논들과 포도와 커피 재배지들, 그리고 수산업과 물류업과 관련된 항구들이 해당된다.
여덟 번째는 ‘국가 차원에서의 기념적 성격을 가지는 경우’이다. 광범위한 면적을 가진 광업지대나 국토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 선형으로 발달된 운하와 철도, 그리고 랜드마크 형상을 가진 기념물(졸버레인 탄광산업단지의 No.12 샤프트, 암스테르담 방어선의 철로와 수로 등)이 해당된다. 아홉 번째는 ‘시설 자체의 건축⋅토목 양식이 매우 특별한 경우’이다. 바로크 및 신고전주의 양식 건축물의 보고인 고나후아토 역사도시와 주변 광산지, 바우하우스 건축양식으로 조성된 일펠트 파구스공장군과 졸버레인의 탄광지원시설들, 모더니즘의 상징물인 반 젤레 공장 등이 이에 해당된다. 마지막은 ‘도시계획(설계) 분야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산업도시나 단지’다. 19세기 집단형 공업단지의 전형인 스위스의 라 쇼드퐁・르 로클 시계제조 계획도시, 17세기 운하산업도시의 표본이 된 암스테르담의 원형 운하지역, 노동자 모델도시로 알려진 노르-파 드 칼레광산 등이 해당된다.
Ⅲ. 산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관련 논점
1. 전제 :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 내포된 논점
산업유산은 현재 세계유산 조약 및 지침의 별도 갈래로 분류되지 못해 다소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유적의 세부 유형으로 분류되는 문화경관의 예를 통해 볼 때, 산업유산도 별도의 유형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는 산업유산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 유산이기 때문이다. 산업유산이 별도 유형으로 재정립되고 또한 관련된 불확실한 기준들이 정리된다면 산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는 양·질적으로 크게 확장될 것으로 예측된다.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은 앞서 정리한 10가지 등재 근거와 비교해 볼 때 세계유산의 일반 경향(산업유산 관련)에서 벗어난 10여 가지의 논점들5)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가장 큰 논점은 ‘등재 후보지들과 강제동원과의 관계성’이다. 그러나 일본이 역사적인 산업적 특성만이 평가 대상이라 주장할 경우, 강제동원과 관련된 우리의 시각이 자칫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에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서 도출된 논점들(세계유산으로서의 자격미달 조건)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 규명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그 논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의 등재 후보지 28개소 중 11개소가 강제동원 사이트라는 사실은 평가 대상이 아니며6), 후보 대상지와 전쟁(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전쟁)관련 부분 역시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주장이다.7) 둘째는 메이지 시대 최고의 산업시설군으로 주장함에도 일본 근대산업유산의 핵심산업인 방직 및 방적산업은 누락되어 있다는 것이며,8) 셋째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폐허 상태인 대상지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9).
넷째는 산업유산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인 사람, 즉 노동자들에 대한 설명이나 기록이 대부분 누락되어 있는 점이며10), 다섯째는 28개의 등재 후보지의 특성을 탄생기에 해당하는 메이지 시대에 국한하여 설명하고 있고 이후 시기는 평가 대상이 아님을 주장한다는 점이다11). 여섯째는 설정된 완충구역들이 산업유산으로서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며12), 일곱째는 한정된 공간(단일 산업시설) 내 분산 분포하는 요소들을 각각 등재 후보지로 신청하고 있다는 점이다.13) 마지막은 현재에도 운영・작동 중인 산업시설을 등재 후보지로 신청하고 있다는 점이다.14)
이 내용들은 일본 사례 뿐 아니라 앞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산업유산의 유형과 조건들이 점차 다양해짐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논점들이며, 현재 유네스코 등재 지침에 미정립되어 있는 것들이다. 논점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대별이 가능하다. 첫째는 ‘세계유산으로서 산업유산이 가져야 할 유산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이의 부재로 인해 산업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해 갖추어야 할 구성요소에 대한 누락, 산업유산으로서의 인정 시기에 대한 혼돈, 작동 중인 산업시설에 대한 유산으로의 인정 여부 등의 논쟁이 야기되고 있다. 둘째는 ‘산업유산이 갖추어야 할 외형적 기본 조건에 대한 기준’이다. 결과적으로 원형의 잔존(보존)과 변형(증축, 리모델링 등)의 수준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군집형과 단지화 시설에 대한 판단과 완충구역의 범역 등과 관련된 혼돈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논점들을 세계유산으로서 산업유산이 가져야 할 3가지의 기본조건과 5가지의 특수조건으로 세분하여 분석한다.
2. 기본 조건
세계유산에 있어 OUV란 ‘탁월성과 보편성과 관련된 질적 수준을 판단하는 총체적 관점의 기준’으로 정의된다.15) 유네스코에서는 ‘탁월성’(outstan -dingness)을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비교 대상이 없는 뛰어난 품질 조건으로 정의하며, 등재를 위해 해당 유산이 모든 면 또는 부분 국면에서 탁월하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보편성’(universality)은 전 세계(공간) 모든 사람(인간)들이 영원히(시간) 유산의 탁월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가치’(value)는 사람이 해당 유산에서 발견・인정한 것(worth)이며, 문화유산은 6가지 기준 중 한 가지 이상의 조건에 충족되어야 한다.
등재 산업유산 중 기준 ⅳ가 49개소, ⅱ가 35개소, ⅲ이 21개소, ⅰ이 16개소, ⅴ가 11개소, ⅵ이 8개소 등인 것으로 파악된다(중복 포함). 가장 많은 조건인 ‘기준 ⅳ’는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16)인데 산업유산이 가지는 하드웨어와 관련된 기본 속성과 근접한 기준이다. 다음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기준 ⅱ’는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한 사례17)이며, 이는 산업이 전개되던 해당 시도의 사회문화적 상황과 관련인들의 역할 등 산업유산을 둘러싼 비물리적 여건이 강조되는 기준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계유산을 평가하는 6가지의 OUV 기준은 어느 정도 산업유산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세계유산 평가에 있어 또 다른 측면인 OUV의 ‘탁월성’과 관련하여 등재 유산들은 세계 최초18), 세계 최대19), 세계 최고20) 등의 탁월한 특성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세계 수준은 아닐지라도 산업유산이 등재되기 위해서는 지역(유럽권, 동북아시아권 등) 차원에서라도 탁월한 특성을 가져야 한다. 이에 반해 ‘보편성’은 특정 소재지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속하는 보편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점, 즉 ‘인류 문명 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웅장하고 인류 역사상 특정의 문명을 발전시킨 유산이라 하더라도 사용 목적이 불건전했거나 인류 발전에 위배되었다면, 또 그 유산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가졌거나 또 피해를 받은 국가나 사람들이 있다면 등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강동진・남지현, 2014). 이는 세계유산의 등재 또는 그 과정이 자칫 국가 간 갈등 유발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록 자료가 풍부하고 관련자가 생존해 있는 근대기 이후의 산업유산은 이러한 부분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요청되며, 네가티브 이미지의 OUV를 가진 사이트가 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부분에 대한 해결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폴란드 정부가 1979년에 이미 등재된 ‘Auschwiz Concentration Camp’를 2008년에 ‘Auschwiz- Birkenau: German Nazi Concentration and Extermination Camp(1940~1945)’로 변경한 예가 있다. 이 사례에는 가해 주체가 나치 독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여 폴란드가 가해 책임이 있다는 오해 부분을 제거하였고, ‘Extermination’라는 단어와 가스실이 입지하였던 ‘Birkenau’를 제목에 넣게 함으로써 수용소가 박해 현장이었음을 명확히 했다는 의의를 가진다(문화재청, 2014). 이러한 가해자로서의 책임과 정확한 사실에 대한 규명은 전쟁, 노동착취, 환경오염 등 네가티브 요인과 연관될 수 있는 산업유산들에 대한 OUV 평가에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UNESCO의 유산 등재 지침서에서의 완전성은 ‘유산과 그 속성의 전체성 및 본연성을 가늠하는 척도’이며21),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표현에 필요한 요소 ‘일체’의 포함 정도, 당해 문화재의 중요성을 부여하는 특징 및 ‘과정’을 완벽하게 대표할 수 있는 규모, 개발 및/또는 방치에서 발생한 ‘부정적 영향이 끼치고 있는 피해’ 정도 등을 평가하게 된다.
크게 볼 때, 산업유산에 있어 완전성은 세계유산적 가치를 논할 수 있는 완전한 모습(파괴되지 않은)과 그 모습이 해당 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느냐로 축약된다. 또한 그 완전성이 일부 파괴되어 있다면 이로 인해 해당 산업유산의 완전성에 미치는 영향 정도 또한 유산 평가에 매우 중요한 인자가 된다.
59개 유산 중 근대기 유산 38개 모두는 일체성을 상실하거나 훼손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유네스코에서 등재 전‧후에 엄격하게 완전성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며, 등재 후 완전성에 위협을 주는 개발 행위가 발생할 경우에는 위험유산(peril heritage) 등록 제도를 적용하여 원형으로의 회복을 특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위험유산으로 등록된 산업유산으로는 리버풀 해양무역도시(2012년)와 포토시 광산도시(2014년)가 있다.
20세기 이후 조성된 산업시설들의 경우, 증축과 리모델링에 따른 시설 자체의 변형, 조업 중지 후 (부분)개발 또는 방치로 인한 훼손, 도시재개발 등 산업시설 주변부의 개발로 인한 비 맥락적인 경관 등의 여건에 처해있을 확률이 매우 크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가진 산업유산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하려 할 때 피해 정도에 대한 정확한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 못한 현 시점에서는 여러 논쟁들이 발생할 수 있다. 한편, 유산이 이미 폐허 상태이거나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유산일 경우에는 원 시설이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해도 등재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진정성은 ‘형태와 디자인, 소재와 재료, 용도와 기능, 전통/기법/관리체계, 위치와 환경, 언어와 기타 형태의 무형유산, 정신과 감정, 기타 내부 및 외부 요인 등’을 준거로 한다.22) 즉, 유산이 진정성을 가진다는 것은 유산을 구성하고 있는 물적인 재료나 구조에서부터 비물적 차원의 기술, 정신, 무형의 모든 것이 진짜여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진실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진실에 근거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등재 심사과정에서 현장실사 제도를 두고 있다. 즉,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유산과 관련하여 사실을 속이거나 감추지 않았다는 ‘양심’과 이를 인정한다는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산업유산은 일반 유산과 달리 거친 산업의 현장이고 내구성이나 효율성 등이 목적이 되는 변형이 빈번한 대상이다. 특히 기계와 설비 제작기술의 발달에 따라 시설 자체가 신형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까지의 변형과 대체를 인정할 것이냐에 대한 기준 마련이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즉, 산업유산의 등재 시 진정성 차원에서의 평가가 매우 체계적일 필요가 있으며, 해당 산업(업종)의 국제 전문가들이 현장 실사를 담당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세계유산으로서의 산업유산은 실제 산업현장이었거나 이를 작동시킨 필수시설만이 자격을 가지며, 용도와 기능에 있어서도 원래 상태에서의 변화가 없어야 한다.
유네스코 등재 지침에 진정성과 관련하여 ‘고고학적 유적이나 역사적 건조물이나 구역의 재건축은 오직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재건축은 완벽하고 상세한 기록 문건에 기초할 때만 허용 가능하며, 절대로 추측에 근거해선 안 된다.’라고 정의되어 있다(UNESCO, 2013). 이 조항은 타 유산들에 비해 (조업 과정 중)훼손되기 쉬운 여건의 산업유산들에 큰 의미를 제공한다. 특히 근대기에 조성된 산업유산들은 100여년의 비교적 짧은 역사 속에서 대부분 정확한 도면, 사진 등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에 근거한 충실한 복원 가능성을 시사 받을 수 있다.
3. 특수 조건
산업이란 기술력, 노동력, 운영관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인자들이 시스템을 이루며 특정의 생산을 산출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산업시설의 남겨진 결과물인 산업유산 또한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 차원의 구성요소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즉, 단순한 물적 결과물(시설, 장치물, 구조물, 기계류 등)만이 유산의 범위가 아니라 해당 산업을 작동하게 했던 소프트웨어 차원(기술, 생산공정, 물류체제 등)과 휴먼웨어 차원(소유/운영 주체(연고기업), 기술자, 노동자, 관리자 등)의 요소들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또한 원료 생산과 반입과정, 지원 서비스(금융, 상업, 문화, 주거 등)와 관련된 모든 것이 집합되어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경관도 포함된다. 결론적으로 산업유산은 하드웨어 위주의 외형만으로는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등재 유산의 소프트웨어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기술’이다. 물 확보・활용을 위한 ‘수리기술’(리도운하, 대운하, 미디운하, 오베르하츠의 물관리 시스템, 두장엔 수리시설, 상트르 운하 등), 특수한 구조체를 건설하는 ‘토목기술’(로마시대의 수도교들, 산악철도들, 암스테르담 방어선 등), 산업혁명 이후의 발전된 ‘철골제작기술’(아이언다리, 바스카야대교 등), 해당 시대의 사회경제상이 반영된 ‘도시계획기술’(17세기의 암스테르담 운하, 리버풀 무역항, 19세기 집합공업단지의 전형인 스위스의 시계제조 계획도시 등) 등이 있다. 이외 광업의 채굴 및 제련기술, 농업 경작기술과 방사능 처리기술, 물류운송관련 기술 등도 이에 포함된다.
휴먼웨어는 대부분 노동자의 삶과 그들의 기록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코리딜레라스 계단식 논, 쿠바 커피재배지, 라보 포도원 테라스 등에는 ‘농부의 삶’이, 알마덴 아드리안 수은광산, 살랭레벵 소금광산,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등에서는 ‘광부의 삶’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특히, 노르-파 드 칼레 광산은 17세기~1960년대에 이르는 300년 동안의 노동자 모델도시로 그 가치를 인증 받았다. 산업혁명기의 사회・환경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이상도시(유토피아) 개념으로 조성된 ‘단지형 공장들’(뉴 래너크, 크레스피 다다, 솔테어 등)도 혁신적 노동 조건(사택촌), 진보 교육(공동체 교육시설), 전원도시(노동자 공원) 등을 중심으로 하는 19세기 초반에 발전했던 산업공동체의 모델로 평가된다. 또 다른 시각의 휴먼웨어 요소로는 산업 활동으로 인한 피해 지역민을 들 수 있다. 피해 지역민이 존재한다면, 비키니환초 핵실험지와 같이 그 규명과 대책 마련이 등재 전에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하드웨어 요소 중 산업 발전에 핵심체였던 ‘기계설비’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해당 산업의 작동원리를 보여줄 수 있기에 기계설비의 존재 유무는 유산 등재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된다. D.F. 보우다 양수장의 증기기관, 토미오카 제사장의 방적기계군, 람멜스베르크 광산의 제련시설 등의 기계설비들은 유산 등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론적으로 산업유산은 하드웨어 외에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와 관련된 균형 잡힌 시각에서 접근하여야 하며, 특히 해당 유산관련 ‘산업기술’, 노동자와 피해 지역민의 삶을 포함하는 ‘사람’, 해당 산업체의 작동체인 ‘기계설비’ 등의 구성요소들이 산업유산 구성의 핵심요소라 할 수 있다.
등재된 유산들 중 명칭에 구체적인 ‘시간’에 대한 한정을 한 사례가 3개소가 있다. 첫째는 벨기에 스피엔네스 ‘신석기 시대’ 플린트 광산으로 신석기 시대의 광산들이 갖는 특수성을 보여주는 고대 광산의 표본으로 평가된다. 두번째는 파푸아뉴기니의 쿠크 ‘초기’ 농경지인대 수 천 년 전의 고대 농경기술의 명확한 흔적 때문에 유산으로 인정되었다. 세 번째는 싱켈운하 내 암스테르담 ‘17세기’ 원형 운하지역이며 17세기 이후 완벽하게 보존된 운하와 수리기술을 통해 400여 년 전 운하시스템의 생생한 증거라는 점이 등재의 이유였다. 이외에 명칭에서는 나타나지는 않지만, 해당 시대의 산업 특징을 강조하는 10여점의 유산이 있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등재의 근거가 한 시대에 국한되거나 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탄생에서 소멸(또는 현재 작동)에 이르는 전 과정이 정확하게 설명되고 있다는 점과 강조하는 특정 시대의 물증 또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다. 바우하우스(졸베라린 탄광산업단지, 알펠트의 파구스 공장단지), 모더니즘(반 렐레 공장), 바로크 및 신고전주의(고나후아토 역사도시와 주변 광산지대) 등은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이 완벽하게 남아있는 산업건축물로 평가된 곳들이다.
산업유산의 평가는 탄생에서 중지(소멸)까지 전 과정에 걸쳐 진행되어야 한다. 특정 시대를 국한하여 단절된 시간만을 해당 산업유산으로 판단하는 것은 본질 훼손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로 국한 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반드시 조성 당시의 상황(배치 구조, 건축 외장, 기계 설비, 산업시스템 등)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
1976년 유네스코 나이로비총회에서는 “모든 역사유적지와 그 주변은 건축물 공간적 조직, 환경뿐만 아니라 인간의 활동을 포함하며 유적지의 균형과 특징이 구성요소들의 융합에 의존하는 하나의 ‘응집된 전체’로서 고려되어야 한다. ‘응집된 전체’란 이미 구성된 각 부분의 융합의 정도나 건축물, 공간적 구조 및 주변에 대한 인간 활동을 포함하여 이들의 균형과 구체적 상황을 말한다.”라고 권고하고 있다. 핵심 개념인 ‘응집된 전체’는 유산을 중심으로 이를 둘러싸고 있는 완충구역(버프존)을 포함한 전체를 의미하며, 이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유산의 기능 퇴화와 자연적 형상 변경 등의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 틀’로 정의할 수 있다. 즉, 유산의 진정한 보호는 너무 협소하거나 지나치게 광대하지 않은 범위에서의 공간 틀을 보호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즉, 완충구역은 단순한 유산의 물적 장치가 아니라 ‘기능적으로 경관적으로 활동적으로 유산의 진정성을 보호하고 유지시키는 공간단위의 보호 장치’로 인식하여야 한다.
산업유산의 경우, 산업공정이 중시되는 특성 상 완충구역 범위에 있어 쟁점이 발생한다. 재료공급-이동/저장-생산-이동/분배-유통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산업시스템과 이를 지탱했던 자본과 노동 체계가 완충구역에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산에 대한 직접적인 보존 작업은 유산의 물리적 퇴화만을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이다. 산업유산은 화석화된 유산이 아니라, 창조적인 발상에 따라 살아있는 유산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에 산업유산의 완충구역은 공간 개념을 뛰어 넘어 논의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산업유산이 입지한 대부분의 곳(농업, 광업 등 제외)은 도시화 지역이 많고, 철도, 운하 등세장한 형태로 발달한 시설들은 그 범역이 광범위할 경우가 많다. 특히 도시개발지역에 속한 암스텔담 운하지역이나 리버풀항 등과 이미 개발된 도시를 관통하는 운하와 철도 등에 대한 완충구역 결정은 재산권 분쟁에 휩쓸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산업유산의 완충구역은 단순한 물적환경의 보호막 개념을 넘는 산업공정 시스템을 포함하는 완충 개념으로 확대되어야 하고, 개발지역 내 입지하는 유산에 대한 완충구역 기준은 특별 규정화하여야 한다.
산업유산은 업종에 따라, 독립된 단일 공간만을 유산으로 규정하는 것은 다소 모호할 수 있다. 지하 갱도가 광범위하게 펼쳐진 광산이나 산업 물증들의 총체적인 가치를 논하는 문화경관에 해당하는 유산들이 그런 곳이다. 예로 노드-파스 칼라이스 광산지대, 세월 광산마을, 람멜스베르크 광산지대, 블래나번 산업경관, 콘웰 서부 데본 광산 마을. 이와미 은광, 할슈타트-다흐슈타인 문화경관 등이 이에 해당된다. 또한 수백킬로미터 이상이 되거나 분포 영역이 방대한 산업유산(대운하, 리도운하, 킨다데이크 엘샤우트 풍차망 등)은 전체 공간이 등재되었는데 그 이유는 산업유산이 가져야 하는 공간과 경관 차원에서의 완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알불라 베르니나 지역의 래티셰 철도가 초국경유산(이탈리아와 스위스)으로 등재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세계유산으로서의 산업유산은 그 전체가 원형과 일치하면 할수록 산업기술과 공정 시스템을 포함하면 할수록 우수한 유산으로 평가된다. 스웨덴 제철사의 살아있는 물증으로 평가받는 엥겔스베리 제철소와 반 넬레 공장, 벨라의 제재·판지 공장, 푈클링겐 제철소 등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이러한 이유로 주제가 다르거나 단일공간으로 묶을 수 없는 분산된 산업유산들의 등재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31개소의 지구로 분리된 1,500km에 이르는 중국의 ‘대운하’와 군마현 일원에 산재하여 분포하는 양잠업 유산군 4개소를 하나로 묶은 일본의 ‘토미오카 제사장과 양잠업관련지역’이 2014년에 등재되면서 기존 개념에 대한 변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산업유산은 세계유산으로 인정할 수 있는 전체가 드러나야 하며, 해당 산업유산의 한 부분이나 요소만을 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것이다. 산업유산의 공정시스템과 작동원리를 설명할 수 없고, 요소 시설이나 장치물이 전체 산업유산으로 이해되는 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 등재된 두 사례들처럼 연속유산의 성격을 가질 경우, 등재는 가능하나 요소들의 집합이 전체 유산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파괴되거나 훼손된 일정의 면적을 가지는 산업유산 내에 전체를 대변할 수 없는 단위요소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형)문화재는 원 기능이 멈춘 상태에서 남겨진 물증을 말한다. 따라서 현재에도 원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문화재는 매우 특별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역사마을이나 등록문화재들이 그러한 경우다.
산업유산은 유형 문화재에 속하는 유산이나 산업기능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특히 그 산업기능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면 지속적으로 산업 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 바우하우스 창시자 발터 그루피우스가 설계하였고 현대산업과 산업디자인의 발전을 보여주는 복합공장단지(10동)인 알펠트의 파구스공장은 현재에도 제화를 생산하고 있다. 라 쇼드퐁・르 로클 시계 제조 계획도시나 빌렘스타트항과 칼스크로나항과 같은 항구, 운하, 철도와 일부 교량 등도 현재 사용 중인 유산들이다. 따라서 현재 산업활동이 지속되고 있는 산업유산일 지라도 그 산업사적 가치가 인정되고 원형이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다면 세계유산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작동중인 유산의 등재는 세계유산적 가치를 가진 산업시설들의 파괴와 훼손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기능 정지 후 방치하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훼손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등재 후 지속되는 작동으로 인한 파괴와 훼손 현상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과 사안 발생 시 취해야 할 위험유산 제도와 같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등재 신청서에 명기하도록 되어 있는 외적 요인(개발 압력, 환경적 압력, 지연 재해 및 재난, 관광산업의 압력)에 대한 대비책 뿐 아니라, 유산 자체의 파괴와 훼손의 원인을 제공하는 내적 요인에 대한 기준도 정립되어야 한다.
Ⅳ. 결론
20세기에 조성된 산업유산들과 현재에도 작동중인 산업시설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시대 경향을 고려해 볼 때, 세계유산으로서의 산업유산의 개체 수의 증가는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본 연구에서는 산업유산의 등재 기준에 대한 보다 명확한 정의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또한 일본이 2014년 1월 유네스코에 제출한 자국 산업유산(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 대한 신청 내용상에 나타난 논쟁거리들에 대한 논점 분석을 통해 세계유산으로서 산업유산이 가져야 할 조건들을 재정립하였다.
이러한 분석 결과에 근거하여, 세계유산 등재 운영지침(Operational Guidelines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World Heritage Convention) 상, 산업유산 관점에서의 보완 부분을 다음과 같이 도출하였다.
첫째, OUV에 내재된 ‘-’ 성격(전쟁, 노동착취, 환경오염 등)을 가진 산업유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유네스코에서 완전성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인 ‘개발 및/또는 방치에서 발생한 부정적 영향이 끼치고 있는 피해의 정도’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정의와 산업유산의 원형 인정의 범위가 정립되어야 한다.
셋째, 유산 자체의 형상이나 디자인, 재료와 속성 등과 관련된 진실과 신뢰로 규정되는 진정성과 관련된 이념적 원칙 외에, 유산의 내용 전반에 걸쳐 속이거나 감추는 것에 대한 양심적 진실에 대한 규정이 보완되어야 한다.
넷째, 산업유산의 평가에 있어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를 보다 구체적으로 강조하여야 하고, 특히 ‘산업기술’, ‘사람’, ‘기계설비’ 등이 평가 대상임을 명시화 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산업유산의 평가는 탄생에서 기능 중지(소멸) 시까지의 전체 공정이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단, 한정된 기간만을 평가대상으로 할 경우 반드시 해당 시기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
여섯 번째, 완충구역의 설정은 재료공급-이동/저장-생산-이동/분배-유통 등 전체 산업 공정과 산업화 과정을 지원했던 자본과 노동 체계의 영향권에 대한 종합 검토 후 최대한 넓게 또한 체계적으로(산업유산의 영향력을 보존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일곱 번째, 해당 산업유산을 설명하는 전체 부분이 세계유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단, 동일 주제를 가진 산업유산들이 분산되어 있는 경우 하나의 유산으로 통합하여 등재할 수 있으나, 공간적으로 한정된 단일공간 내 유산을 분리하여 여러 개로 등재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여덟째, 현재 작동 중인 산업시설일지라도 세계유산의 등재는 가능하다. 그러나 공간, 기능 차원에서 변화(신기술 도입, 확장 등)가 예상되는 부분에 대한 대비책 마련과 유산 등재 후 산업 활동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훼손, 파괴 등)에 대한 대응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산업유산 국제전문가들과의 여러 논의를 거친 결과가 아니며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59개소의 산업유산에 국한된 분석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최근 각종 관련국제회의에서 제기되고 있는 각종 논점들에 대한 전반을 다룬 결과이기에 어느 정도의 종합성과 합리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본 연구의 결과는 세계유산으로서의 산업유산 영역 확대와 논의 발전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산업유산들과 우리나라의 산업유산들에 대한 실증 연구들이 요청되며, 이는 추후 연구과제로 삼는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3년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된 것임(NRF-2013R1A1A2008182)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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