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publication date Jan 2015
중국 선전 경제특구 성공에 있어 ‘연결도시’로서 홍콩의 역할 : 북한 경제특구 개발에의 함의를 중심으로
Abstract
Territorial spatial structure vision for the unified Korean peninsula was proposed but reunification may not be realized unless we actively prepare for the reunification. To make it happen, we need to help North reform, open-up and develop. From former socialist countries’ experiences, one of the effective measure is the special economic zone, which promotes economic development and introduces reform and open-up. In particular, this study investigated the success factor of Shenzhen special economic zone (SEZ) which was the first SEZ in China in 1979, focusing on the role of Hong Kong as a ‘link city.’ This research found that a ‘link city’ can help boost an SEZ. Hong Kong plays a role of facilitate the link between China and the outside world and transferred capital, technology, and export goods between China SEZ and outside of the world. Interestingly, these economic change had reinforced China’s reform and open-up. To promote North’s transition, we need to develop ‘link cities’ in South, especially Gyeonggi and Gangwon provinces, which can connect North SEZ with the world. From the Chinese experience, such incremental, but highly effective approach would make unification smoother and furthermore after-unification settlement easier in the reunified Korean Peninsula.
Keywords:
Link City, China, Special Economic Zone, Shenzhen, Hong Kong,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oreign Direct Investment (FDI), China Reform and Opening-up키워드:
연결도시, 중국, 경제특구, 선전, 홍콩, 북한, 중국 개혁·개방Ⅰ. 서 론
대한민국은 공식 통일방안으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순차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개혁 및 개방, 그리고 경제 성장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남북의 경제격차가 좁혀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 성장하던 북한의 경제는 그 이후 급속하게 추락하여 남북의 격차는 훨씬 더 커지게 되었다 (표 1 참조).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순차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경제발전 및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1980년대, 가시화되는 경제난을 돌파하기 위해 북한은 합영법1) 제정을 통해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방식의 외자 유치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또한 이 와중에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으로 심화되는 경제난과 식량난, 그리고 경제적 고립은 깊어갔다.
북한은 이러한 악조건을 벗어나기 위해 나진·선봉 일대에 경제특구를 지정하고 추진하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당시 북한의 최저임금 등 생산 요소 비용이 중국과 비교하여 경쟁력이 약하였고, 심화되는 외교적 고립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실패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제적 고립 여건 속에서 유일한 생존전략으로써 개혁 및 개방과 경제특구 정책에 대한 북한의 인식을 살펴보면, 앞으로도 당분간 경제특구 개발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세계 여러 나라의 경제특구 중에서도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 및 개방을 추진한 중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선행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경제특구 개발에 있어 중국의 경제특구 성공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경제 특구의 성공 요인으로는 낮은 생산비용 또는 외국인직접투자(FDI)에 대한 유인 정책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연구들 역시 대부분 그 성공요인을 주로 경제적 또는 정책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즉, 기존의 연구들은 선전 경제특구의 특성이나 중국 개혁ㆍ개방 정책에서 오는 저비용 또는 정책적 지원 등 특구 자체의 점적특성을 주요 성공요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특구 성공에는 위와 같은 점적 요인들뿐만 아니라 중국과 해외가 ‘연결’되는 것의 중요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중국의 경제특구 성공에서 닫혀있던 중국과 외부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가교로서 ‘연결도시’의 역할과 의미에 대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중국의 경제특구, 그중에서도 중국 개혁개방의 시발점이자, 탁월한 성공 사례로 꼽히는 선전 경제특구를 대상으로 사례 분석을 수행 하였다. 구체적으로 선전 경제특구의 성공에 있어 연접한 홍콩이 갖는 의미에 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중국 개혁ㆍ개방정책과 연계된 선진 경제특구의 성공을 분석한 기존의 문헌을 정리하고, 1979년부터 시작된 선전 경제특구의 발전과정에서 홍콩의 역할을 분석하였다.
북한 경제특구의 성공은 통일의 초석이자 한반도 공생과 공영의 기초가 될 수 있는데, 본 연구의 결과는 이를 위하여 우리가 준비할 과제를 제시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Ⅱ. 이론적 고찰
1. 경제특구와 연결도시
일반적으로 경제 특구라 함은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그 전략적 의도에 따라 경제특구 외에도 자유무역지역, 수출자유지역 등 여러 가지 명칭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한 국가에서 그 국가의 경제 관련법이 적용되는 지역보다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가능한 지역으로 정의된다.(조영관, 2011) 자국의 경제 발전이나 경제 체제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예를 들어 관광이라든가 무역, 첨단산업 등 특정 산업의 육성을 그 설치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경제특구의 성패는 공간적 규모나 입주기업의 특성보다는 양질의 경영자원과 인프라에 의해 좌우된다.(박재룡 외 3인, 2002) 여기에서 경영자원은 경제특구의 설치 목적 상 통상적으로 국가 외부적 요인, 즉 해외로부터의 유입되는 외국인직접투자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인프라는 경제특구를 설치하는 국가의 내부적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 직접투자는 경제특구의 성패를 결정짓는 한 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이 외국인직접투자 유치를 결정짓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진다. 이 세 가지 범주는 정책 차원의 요인과 경제적 요인, 사업촉진환경 요인으로(김태은·구교준, 2007) 정택차원의 요인에는 정부규제나 정책결정에 따른 세제 혜택으로 관세와 법인세 등 혜택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경제적 요인에는 투자 대상국의 1인당 수입과 노동자의 숙련도, 사회기반시설 여건 등이 포함되며 사업촉진환경으로는 주거환경, 부패 및 행정적 효율성 등이 포함된다.
그간 해외에 대한 투자 결정 요인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주로 앞서 말한 경제적 요인과 정책적 요인에 초점을 두어 왔다. Dunning(1980)은 그의 절충이론에서 독점적 우위, 내부화 우위와 함께 입지적 우위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의 입지적 우위는 기업의 해외 투자를 결정하는 정치·경제적 요인의 차원에서 설명된다.
개발도상국의 경우에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이나 경제특구 개발에 있어 주로 관세나 법인세 특혜 등 정책요인과 노동 비용, 지대 등 경제적 요인 등을 해외 자본에 대한 투자 유인으로 제공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중국의 개혁ㆍ개방 초기단계에 있어 선전 경제특구의 비약적 성장을 설명하는 데에 부족한 점이 있다.
중국 경제특구의 성공을 분석하는 이상직·박기성(2005)등의 연구에서는 그 성공 요인을 개혁 세력의 집권과 개혁·개방 정책,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등 통시적 성격의 정책적 요인을 가장 우선적인 성공요인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과 거대한 내수시장 등 경제적 요인 및 적절한 입지선정 등을 중요한 요인으로 설명한다. 또한 이러한 성공요인의 선정은 선전 경제특구를 분석한 연구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선전 경제특구의 성공 요인으로 우(Wu, 1997)는 그 입지 특성을 강조하면서, 중국 최초 경제특구인 선전의 성장을 홍콩과의 근접성 및 상호보완성으로 설명했다. 근접성은 지리적인 동시에 문화적인 성격으로 홍콩과 선전의 지리적 연접, 홍콩의 인구의 대다수가 중국 본토 출신인 이유로 언어적ㆍ문화적 자본이나 기업이 진입하는데 이질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호보완성은 김진경(2005)의 연구에서도 유사하게 설명하는데, 이는 중국의 개혁ㆍ개방 이전부터 홍콩이 중국 대륙과 상수도와 생필품 자원 등 재화에 있어 상호 의존적이었다는 것과 개혁ㆍ개방 당시 홍콩의 산업구조 변화 필요성을 말한다.
종합해보면 경제특구 정책은 중국 경제체제의 개혁·개방에 앞서 실험적 성격으로 시행되었으며, 그 성공을 통해 개혁·개방 정책과 상호 보완의 과정 속에서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의 처음 단계로서, 선전 경제특구의 비약적인 성장 뒤에는 후원자이자 파트너로서 홍콩이 있었다. 홍콩은 선전 경제특구와의 근접성과 경제적 상호보완성을 기반으로 성장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하고 기업을 이전시켰다.
일반적으로 경제특구는 불특정 해외자본의 유입을 통해 성장하고 지역경제의 발전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단일 경제특구의 성장이 국가의 성장을 추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선전 경제특구는 중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했다. 물론 초기의 급진적 성장이 이후의 성장과 중국 전체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라는 예측은 존재하지만, 초기의 급진적 성장이 무엇 때문에 가능했는지는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경제특구의 투자 유인에 의한 해외자본의 유입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다. 홍콩은 선전 경제특구에 있어 경제특구의 초기 성장을 위한 자본과 기업을 연결하고, 이 연결의 역할을 선전에 안착시킨 연결도시였을 것이다.
물론 선전 경제특구의 성공에는 경제적, 정책적 요인의 도움도 작용했다. 그러나 그 정책의 발의 단계에서부터 중국 당국은 홍콩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리고 홍콩의 선제적 역할이 있었기에 정책적 지원도 보다 확대되고 발전했다. 홍콩은 산업, 물류, 금융 등 복합적인 측면에서 선전을 외부 세계와 연결시키는 관문과 허브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본 논문에서는 연결도시로서 홍콩의 역할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떠했는지 등을 실증적 사례분석을 통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중국 개혁·개방과 경제특구
선전 경제특구를 살펴보기에 앞서 중국의 경제특구 정책의 배경과 그 개발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특구 정책은 어디까지나 개혁·개방 정책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근본적인 목표는 외국의 자본과 기술도입을 통한 국가 성장 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경제특구는 개혁·개방 초기 단계에서부터 선진 기술과 지식, 국제 교류와 협력의 창구 등으로서 그 목표 달성의 가능성을 가시화고 뒷받침했다. 이들 도시의 성장 초기 단계에서는 개혁·개방 정책의 지원을 받았으나, 일정 정도의 성장 이후에는 그 성장을 바탕으로 중국의 개혁·개방 추진에 촉매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경제특구 도시와 개방구들은 개혁·개방 정책의 확대 및 강화에 따라 현재 중국의 성장거점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즉, 경제특구는 개혁·개방 정책에 있어 성공을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지속적인 정책 진행의 근거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수립 직후 사회경제정책에 선도했던 농업분야에서 소작인에 대한 토지 배분과 지주(地主)토지의 몰수 등을 통해 사회주의 경제체계로 개조되면서 빠른 속도로 봉건적 경제제도가 붕괴되었고 이러한 경제적 사회주의화는 농업분야보다 상공업분야에서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서보근, 2011)
동시에 정책적으로 소련형 계획경제제도를 모방하면서 중공업, 교통인프라의 국유화·・국영화, 농업의 집단화, 중앙정부와 관계부처에 의한 장단기 경제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했다. 그리고 이후 미국의 경제 분야 추격을 목표로 대약진(大躍進)운동2)을 통한 공업 분야 발전을 도모하였다. 그리고 정부 당국은 이 과정에서 중공업 이외의 분야, 특히 농업·경공업을 지방 정부에 위임하고 막대한 공업 노동력을 차출했다.
이는 산업구조의 기형화를 초래했으며, 농업 종사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도시 인구의 급증 현상을 야기했다. 이는 다시 도시인구 부양을 위한 각종 생필품 품귀 현상과 농업 생산력의 저하로 이어지면서 농업경제의 파탄을 가져왔다. 대약진 운동의 여파는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으며 이는 등소평 집권 이후 개혁·개방 정책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1978년 제11기 3종전회에서 등소평이 외국 기술 및 자본의 도입가능성에 대해 시사점을 던진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은 중국 당국의 개혁과 개방에 관한 정책이 상호 보완되면서 진행되었는데 그 중 경제 특구와 관련된 경제특구의 개발과정을 살펴보면 크게 다음과 같이 크게 4단계로 구분된다.
첫 번째 단계는 실험 단계로서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고려함과 동시에 도시의 입지특성과 정책의 실패를 고려하여 1978년부터 2년간에 걸쳐 4개의 황해 연안의 도시를 지정하고 개방하였다. 이는 점 개방단계로서 값싼 노동력과 지대 등 경제적 생산요소의 비교우위를 강점으로 외국자본의 도입을 유도하는, 선정된 개방도시 자체를 성장시키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이때 선정된 4개 도시는 선전, 주해, 산두, 샤먼으로 광동성과 복건성 두 지방 정부의 특수 정책 및 각종 활성화 조치를 우선 마련 후 개방을 진행하였다. 통상 이 첫 번째 단계의 개방 도시를 경제특구라 하며, 이들 도시는 중국의 개혁ㆍ개방과 경제 성장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됐다.
두 번째 단계는 14개 항만도시에 대한 개방단계다. 중국은 이 단계에 들어, 1단계 개방도시들의 주력 산업이었던 노동 집약형 산업에서 기술 집약형 제조업으로의 발전을 모색했다. 이 단계에 이르기 까지 중국은 개혁부문에 있어 외국자본 도입을 위한 각종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었고, 1984년에 이르러서는 국유기업개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도시산업부문에 대한 개혁 역시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래, 14개 항만 도시의 선적 개방을 시작하는 1982년까지 중국의 명목 국내 총생산은 140% 가까이 증가하며 이후 단계를 위한 재정적 능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표 2 참조).
세 번째 단계는 개방을 면적 단계로 그간 진행했던 점적·선적 개방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면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대대적으로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진행했다. 내륙 주요도시와 개방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기존 개방도시의 항만, 공항 등 대대적 건설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이는 중국 국가 성장 거점의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다음 개방 단계의 목표 달성을 위한 사전 작업 성격을 띤다. 또한 이시기에 들어 중국 정부는 향후 생산요소의 비교우위를 넘어 선진국과의 경쟁을 위한 상업·무역·금융 중심지 육성을 목표로 하였다.(이교덕 외 8인, 2005)
마지막 단계는 지역의 균형발전을 고려하여 개방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를 내륙 깊숙이 침투시키기 위한 연해, 연강, 연변, 연로의 4연 개방 단계(이용희, 2013)이다. 이 단계에 들어 기존의 선적 개발을 강화함과 동시에 1990년 본격적으로 진행된 4연의 개방은 장강에 연접한 상하이와 푸동 등 전통적 중심지를 개방하고 강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진행 되었으며 내부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안착을 목표로 지속적 개혁을 동반하였다. 따라서 이 단계의 개발은 중국의 계획경제를 해체하는 동시에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되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2000년대 중국의 국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개혁·개방 정책을 완성시키는 사실상의 마지막 과정이다 (Wang and Kang, 2014). (그림 1 참조) 북한은 중국의 경제특구 경험을 토대로 자신들의 경제특구 개발을 추구하고 있다.
Ⅲ. 선전 경제특구 성공에서 홍콩의 역할
선전 경제특구 성공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제시되고 있으나 정리하여 보면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선전의 풍부하고 값싼 잉여 노동력이다. 1982년 선전의 평균 임금은 연접해 있는 홍콩 평균 임금의 7% 수준이었고, 농촌지역에서 인민공사의 해체 및 농가생산청부제도의 시행 등으로 인력이 도시로 이동하였다. 둘째, 세제 혜택 및 임대료 혜택을 제공하는 등 생산비용이 절감될 수 있게 해주었다. 셋째로, 행정적 편의, 금융 및 외환 제도의 편리성 등을 제공하였다. 이 밖에도, 정부의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외국의 신뢰를 확보한다든지, 경제특구에 자국기업의 입지를 허용함으로써 선진 기술과 경영을 습득하고, 외국기업과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를 쉽게 맺을 수 있게 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외자의 출자 제한에 대한 제도적 지원에서 성공요인을 찾을 수 있다. 선전 경제특구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특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1980년대 즈음의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은 합영법을 통해 외자의 출자 제한에 있어 50%가량의 출자 상한선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외자의 출자 상한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25%의 하한선을 정해 해외 자본을 보다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했다(유석춘·이승건, 1997).
하지만, 위의 일련의 설명으로 선전 경제특구 성공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던 동남아시아의 화교자본조차 선전 경제특구 개방 직후에는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며 투자를 꺼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 직후 선전 경제특구의 GDP 성장률은 137%에 달하는데, 이는 광저우나 조칭 GDP 성장률의 10배에 가까운 수치다. 위에서 제시된 중국 경제특구의 장점과 특징은 중국의 모든 경제특구가 유사하게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전 경제특구가 다른 특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성공을 거두는 데는 다른 설명이 필요하게 된다.
선전 경제특구의 이러한 탁월한 성공에는 연접한 도시인 홍콩의 역할이 매우 컸다. 특히 개방 초기에 다른 나라의 화교자본들과 홍콩의 대규모 자본역시 선전 경제특구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상황에서 제조업 중심의 홍콩 중소 자본들은 활로를 찾아 선전 경제특구에 가장 먼저 투자를 시작했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선전과 홍콩이 연결되어 상호보완적 도시연합체를 형성하면서 시너지를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근이 가능하고 노동력의 이동이 수월한 홍콩과 선전 간 지리적 연접은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작용했다.
홍콩에 연접한 선전의 입지적 특징은 외국 자본의 투자 위험을 줄여 주었기에 외국자본은 홍콩을 거쳐 선전으로 들어갔고, 선전 경제특구에서 생산된 재화는 홍콩으로 1차적으로 수출된 뒤 외부세계로 수출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선전 경제특구 스스로 외국기업과 자본에게 있어 중국 시장을 향한 교두보 기능을 하고 있지만, 선전특구 개발 초기에는 연접한 홍콩이 연결도시로서 이러한 역할을 했다.
물리적 혹은 경제적 거리가 경우에 따라 외국자본의 투자 결정요인으로 작용함은 익히 밝혀진 사실이다. 하지만 지리적 거리라는 요인 외에 홍콩과 선전 경제특구는 무엇보다 같은 언어와 인종구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근접성을 갖는다. 선전과 홍콩은 같은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고용비용 이외에 노동자의 숙련도 향상을 위한 교육비용 차원 등에서 선전의 경제특구는 홍콩의 기업들에게 더 큰 경제적 유인을 제공했다.3)
이러한 지리적 문화적 근접성은 오랜 기간 중국과 홍콩이 협력을 통해 쌓은 신뢰 속에서 더 큰 효과를 얻었다. 홍콩은 19세기 아편전쟁과 난징조약으로 영국에게 할양될 때부터 중국과 서방 세계를 잇는 무역항으로써 중국과 경제 협력을 지속해 왔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는 1949년에 잠시 중단되었다가,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 속에서 홍콩이 겪은 용수와 식료품 등의 공급 문제를 중국 측이 지원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다시 지속되었다. 홍콩은 필요한 재화를 얻었고 중국 당국은 비록 인도적 지원이었지만 이를 통해 수입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오랜 기간의 전략적 협력은 선전 경제특구 개발 초기에 홍콩과 중국 당국 간 상호 역할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진경, 2005).
1. 홍콩과 선전의 상호보완적 경제연합체의 형성과 양측 산업구조의 변화
홍콩은 1950년대 영국의 자유무역항 기능과 국공내전을 피해 내륙으로부터 유입된 막대한 자본을 통해 수출주도형 산업구조를 모색하였고 그 결과, 1970년대 연 10%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는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다.(박병관, 2002) 하지만 이러한 고도의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임금 상승과 높은 임대료, 노동력 부족 등의 현상을 야기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더불어 홍콩의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홍콩은 새로운 산업구조로의 변혁을 계획하고 있었고 기존의 제조업은 생산비용 절감을 위한 외국으로의 이전이 필요했다.(김진경, 2005) 이 와중에 중국은 그간 추진한 경제정책의 실패로 외부의 자본과 기술의 도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와의 외교적 단절로 인해, 외화 획득을 목적으로 생산품을 수출하더라도 이를 위한 창구 혹은 소비시장이 필요했다. 연접한 홍콩과 선전은 이러한 서로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상호 발전하였다.
그리고 홍콩은 상호보완적 경제의 장점을 활용하여, 선전으로의 제조업 이전과 이 제조업을 지원하는 금융서비스 산업 및 자체적인 관광산업의 육성을 통해 다시 한 번 산업구조의 변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선전 역시 홍콩의 산업구조 변화과정에서 외부로 이전되는 제조업을 유치하여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마련하고 경제성장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는 홍콩과 선전의 GDP에서 산업별 비중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림 3 참조). 1980년 홍콩의 GDP에 있어 제조업 비중은 24%였으나 1990년 들어 18%로 감소했고 서비스 산업은 67%에서 74%로 증가했으며, 같은 시기동안 선전의 제조업 비중은 26%에서 45%로 증가했다. 비록 선전의 경우에도 서비스업 비중이 상승하지만 이는 세부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제조업을 지원하는 성격의 서비스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2. 외국인직접투자 및 수출에 있어 홍콩의 역할
선전 경제특구가 타 경제특구에 비해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에는 특구 초기에 홍콩을 통해 선전으로 들어오는 외국인직접투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홍콩과 마카오로부터의 직접투자는 1986년부터 2012년의 기간 동안 전체에서 75%의 비율을 차지한다. 자료 확인이 가능한 이 기간 중 선전 경제특구 개발에 있어 대한 홍콩과 마카오의 투자 비중은, 아시아 외환위기 이전까지 1987년을 제외하고는 80%이하로 저하된 적이 없다 (그림 4 참조).
개방이 시작되는 1980년부터의 자료는 확인할 수 없지만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중국에 투자되는 외국자본 중 선전 경제특구에 투자된 홍콩·마카오 자본은 26% (1985), 16% (1986), 25% (1987)에 달할 정도였다. 중국의 개혁개방 및 경제성장의 성공은 홍콩·마카오로부터 선전으로 유입된 투자자본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중국의 외국인 투자에서 홍콩·마카오의 투자 자본이 전반적으로 큰 역할을 하였지만, 홍콩·마카오 자본이 중국의 다른 경제특구에 투자한 금액과 선전 투자액을 비교해 봤을 때 홍콩과 선전의 강력한 연관 관계를 볼 수 있다.(표 4 참조) 1986년 선전에 투자된 홍콩과 마카오 자본은 샤먼의 7배에 달하며 산두의 20배에 달한다.
그리고 외국인직접투자는 통상 경제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므로, 개방 직후 외자 도입에 있어 외국인 직접투자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개발과정 초기에 수출을 주로 하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표 5 참조). 또한 실제로 선전 경제특구의 사회간접자본은 중국 정부가 적극 지원하여 기업을 위주로 하는 외국인직접투자 유치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홍콩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선전 경제특구 성장의 지원자 역할을 했다. 이는 선전에서의 총 수출입에서 홍콩이 차지하는 비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선전의 총 수출에 있어 홍콩을 대상으로 하거나 홍콩을 경유하는 수출의 비중은 1995년 전체의 25%에서 2000년 들어 33%, 그리고 2005년에는 44%까지 증가한다. (표 6 참조) 선전에서 홍콩에 대한 수출 비중이 높게 유지되고 있음은 홍콩이 그 수출품에 대한 소비시장 역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선전의 수출 관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Ⅳ. 결론
1. 요약 및 제언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선전 경제특구를 개발하는 시기에는 현재와 같은 성공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국가는 물론이고 화교자본조차 투자를 기피했다.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국은 외부 세계와의 교류 경험이 부족했고, 사회주의 경제, 정치 체제에서 비롯되는 외부의 불신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경제특구 정책의 성공은 요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홍콩이 먼저 작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홍콩 내에서도 중소 제조업 중심의 소규모 자본이었지만, 중국 당국이 마련해 놓은 사회간접자본과 제도적 기반은 이들을 성공적으로 육성시켰고 이는 이후의 성장을 점화시켰다. 곧이어 홍콩과 마카오의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면서 비약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추가적인 성장을 위해 중국은 홍콩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중국은 홍콩을 통해 시장경제 체제를 학습하고 부족한 외부와의 교류 경험을 간접적으로 쌓아 나갔다.
홍콩은 선전 경제특구의 성장에 필요한 기술 이전과 자본의 투자에 직접적인 주체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선전 경제특구를 통해 홍콩 자체적으로 산업구조를 변화시킴은 물론 선전 경제특구에게 있어 제조업 기반의 산업구조를 구축하고, 다시 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해외 자본과 기술의 유입에 일조함으로써 공영해왔다. 즉, 이 과정에 있어 홍콩은 ‘연결도시’로서 외국 자본과 기술이 선전으로 들어가는, 그리고 선전에서 생산된 재화의 해외 진출에 있어 관문의 기능을 했다. 이러한 역할의 배경에는 선전과의 상호 보완적 경제의 여건, 그리고 여기에서의 상호 요구 조건에 따른 협력을 가능하게 한 근접성이 존재했다.
우리나라가 표방하고 있는 ‘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에 따른 평화통일을 위해서, 그리고 이러한 통일을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 북한은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급변 혹은 흡수 통일에 의한 막대한 국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북한의 개발과 발전을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의 북한의 특구개발 정책들은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책의 의도에서부터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북한의 특구개발이 현재의 수준에서 머물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보여준 경제 특구와 개발구에 대한 계획의 표면적 내용을 살펴볼 때, 중국의 개혁ㆍ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경제특구 개발의 과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북한은 경제특구 개발을 통해 경제 성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북한의 이러한 성장은 우리가 의도하는 통일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중국의 경제특구, 특히 선전 경제특구 개발과 성장에 있어 홍콩의 지대한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홍콩은 지리적 근접성뿐만 아니라 문화적 언어적 근접성을 갖춤으로써, 연접한 선전이 성공적으로 외부세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홍콩이 선전의 관문 역할을 하였듯이, 우리나라는 경제 수준과 국제적 네트워크 역량을 이용하여 북한을 외부세계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북한 경제특구 성공을 위한 과제
북한은 기존에 존재한 사회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독립적인 산업 기반을 갖춘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특히 중공업 일부 분야에서는 같은 시기 중국과 대등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1980년대까지 북한이 이루었던 경제 성장을 통해서 중공업 육성에 주력한 결과였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대두된 북한경제의 악순환은 경제난을 야기했다. 그리고 1990년대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 전환과 북한의 핵개발은 국제적 고립은 경제난을 더욱 심화시켰다.
결과 북한은 경제 재건을 위한 여력을 상실했고 이러한 여건 속에서 북한은 중국의 대외개방정책에 자극받아 대외개방 없는 외자와 기술유치를 위해 합영법을 제정했다. 이는 당시 자립적 민족경제 구축에 대한 확신과 외국의 경제지배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합영법 제정 이후에도 기업에 대한 경영자주권은 국가에서 관리했고, 이는 합영법 실패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어서 이러한 합영법의 실패는 북한으로 하여금 경제특구 방식의 대외 개방책을 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최초로 시도한 나진·선봉의 경제특구는 지리적 이점 외에 내부적으로 외부의 투자를 유인할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의 일인당 GDP는 중국보다 높았으므로 대외적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노동 임금과 비교해볼 때 북한은 비교우위에 있지 못했으므로 외국 기업의 투자 유인이 되지 못했다. 또한 제반 인프라도 노후화되어 있었고 그마저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시도한 황금평·신의주 경제특구는 부동산 임대료 및 낮은 임금 등에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특구의 성장을 지원하는 배후지역 대부분이 빈곤한 농촌지역인 탓에 사회기반시설이 지독히 낙후되어 있었다. 결국 황금평·신의주 특구 개발은 지체 일로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엔 성공적이지 못했다.(이용희, 2013)
그러나 이러한 지속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중국이 경제특구를 확대했던 것과 같이, 추가경제특구의 지정은 물론 13개의 경제 개발구를 추진 중에 있다.4) 하지만 이에 대한 외국의 투자는 여전히 미미한 실정이다. 게다가 북한은 경제특구 성장으로 인한 효과를 내부화시키기보다 그 부정적 파급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특구를 고립화시키고 있다.5) 따라서 북한은 이와 같은 자세를 고수하는 한, 중국과 같이 장기적 성장 동력으로서 경제특구를 성공시키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상 간략하게 살펴본 북한의 경제특구 정책 배경과 추진과정에서 볼 때, 북한 경제특구 개발의 성공을 위한 북한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 성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현재 시행하는 경제특구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특구정책은 개혁·개방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으며 장기적 관점의 성장을 견지하고 있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과제는 북한 경제특구에 초기 관문역할을 해줄 연결도시를 남쪽에 조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개성 경제특구와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혹은 금강산 경제특구 일대와 강원 북부를 중심으로 연결형 경제특구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림 6 참조). 비록 선전과 홍콩과 같이 연접하는 여건은 아니지만, 향후 진행될 여지가 있는 한반도종단철도의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근접성의 조건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최근 중국 등지에 진출한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높아진 생산비용으로 인해 입지 이동을 고려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여건이 마련된다면 북한에 대한 투자를 진행할 의사가 충분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면에 비추어 볼 때 북한 경제특구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 경제특구 초기 투자자본이 주로 홍콩과 마카오 자본이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북한에의 초기 투자는 한국기업이 끌어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 정부는 기업과 더불어 새로운 경제구조를 모색하고 있어야 한다. 홍콩과 선전의 사례에서와 같이, 북한의 경제특구 개발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의 발전 가능성도 존재하므로 상호보완적 경제 여건 마련 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 수준에서 그쳐서 가능한 것은 아니며 보다 깊은 상호 신뢰와 협력 속에서 가능한 일이다.
나아가, 북한이 우리뿐 아니라 여타 외국 자본의 유치가 가능하도록 제반 인프라 건설에 대한 지원 역시 필요하다. 중국의 개혁ㆍ개방에서 추진한 바와 같이, 경제특구 및 지역의 성장효과가 북한 내륙으로 파급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기반시설의 건설과 추가적인 기술 및 교육 인프라에 대한 지원을 지금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2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208302023).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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