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도시구조의 전환과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critical transformation of Seoul’s urban structure from the concentric model advanced in the “Greater Seoul Master Plan” (1950s–1970s) to a polycentric model emerging in the late 1970s. Central to this shift was the 1977 “Seoul Urban Structure Idea Competition,” organized by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and involving seven planning experts, followed by the 1978 “Master Plan of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Though often regarded as a transitional step towards the 1990 statutory plan, this initiative marked the first coordinated public inquiry into Seoul’s spatial structure and a decisive moment in its reorganization. The transformation represented a strategic response to the limitations of the concentric model and drew upon contemporary tricentric and multicentric theories. This study reconstructs the planning process as a discourse on the basic urban structure and analyzes the proposed model through three key physical components: central place hierarchy, arterial network, and land use pattern, each representing material expressions of broader urban planning thought. The 1978 plan introduced a comprehensive framework that organized Seoul as a “multi-nuclear, open-grid system.” It organized the city into eight urban cores, implemented a grid-based road network, and established a tiered neighbourhood unit structure, with the aim to redistribute spatial functions and ensure balanced accessibility across the metropolitan territory. This spatial vision significantly shaped subsequent master plans and redefined the strategic orientation of Seoul’s urban development. By situating the 1978 plan within the broader trajectory of Korean planning history, the study underscores its lasting relevance, showing how it shaped subsequent master plans and reoriented the strategic direction of Seoul’s urban development toward its present-day metropolitan structure.
Keywords:
Seoul Urban Structure, The Master Plan of the Greater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Concentric Structure, Polycentric Urban Structure, Grid-type Urban Structure키워드:
서울도시구조, 대서울 도시기본계획, 동심원구조, 다핵도시구조, 격자형 도시구조Ⅰ.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서울은 한강 이남으로 시역이 확장된 후 ‘대서울계획’이라고 불리는 서울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오늘날의 도시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1) 서울은 1950∼1970년대 대서울 마스터플랜에서 동심원구조로 구상되었지만, 1970년대에 들어 다핵도시구조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흐름이 나타났다.2) 그러나 오늘날 서울 도시구조의 전환 시기와 과정, 구체적 구상 및 그 계획적 함의는 아직까지 학술적으로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1977년 ‘서울도시기본구조 아이디어컴페티션’과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의 수립 과정에 주목하고자 한다(그림1, 2). 이 시기의 논의와 계획은 당시 1990년 법정계획 수립의 과도기적 단계로 간주되어 서울도시계획사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 도시계획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서울도시구조에 대한 최초의 공개적 논의이자 집단적 연구로서, 계획사적 측면에서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 특히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은 서울이 오랜 역사 동안 유지해온 단핵 중심 동심원구조에서 다핵구조로 계획적 전환을 공식화하며, 서울 도시구조 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선언하였다. 이는 현대 서울 도시구조의 기본 틀이 형성된 중대한 전환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도시구조가 전환된 이후로는 더 이상 도시구조를 결정하는 거대 담론이 등장하지 않았으며, 1978년 계획의 기조대로 지속·연장된다는 점에서 이 무렵 현대 서울 도시구조의 기본 틀이 결정되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복잡한 오늘날 서울의 도시구조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서울도시기본계획과 서울도시구조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의 수립 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 형성된 다핵도시구조 구상의 특성과 그 함의를 고찰함으로써 1978년 도시기본계획이 서울도시계획사에서 갖는 위상을 재정립하고, 현대 서울 도시구조 형성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Seminar on the Seoul Urban Structure (1977)Source: Maeil Business Newspaper, 1977, April 8. “Seoul Urban Structure Seminar with over 1,000 attendees”.
2. 선행연구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대한 기존 연구로는 최상철(1968, 1986, 2001, 2016), 이학동·김문연(1993), 김기호(2021), 김선웅(2021) 등이 있다. 이들 연구에서 1978년 계획은 서울도시기본계획과 그 역사적 변천 과정을 서술하는 중에 포함되어 있다. 서울 도시기본계획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자로는 최상철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서울도시기본계획이 수립된 시초인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계획수립에 참여한 인물로서,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대한 평가와 건의」 (1968)에서부터 「서울 20세기 공간변천사」 (2001), 「서울 2천년사」 (2016)와 같은 방대한 서울도시계획사에서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폭넓게 서술했다. 도시기본계획에 참여한 이로써 계획의 수립 배경과 과정에 관한 소상한 기록을 통해 폭넓고 생생한 이해를 제공하는 한편, 도시구조에 관해서는 도시기본계획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부차적으로 언급했다.
그 후대의 연구인 이학동·김문연(1993), 김기호(2021), 김선웅(2021) 역시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도시기본계획사의 연대기적 구조 속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 연구들은 도시기본계획 전반을 비교적 동일한 틀 속에서 검토하며,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을 전후 계획과의 비교를 통해 그 계획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학동·김문연(1993)의 연구는 서울 도시기본계획이 1990년 법정계획으로 확정됨에 따라 기존 도시기본계획을 재검토하고 추후 보완하려는 목적을 띤 연구로, 1977년 ‘서울도시기본구조 아이디어컴페티션’을 통해 성안된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이 법정계획의 원점임을 밝히며 시작하고 있다.3) 여기에서는 기존 연구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1977년 서울도시기본구조 연구에서 논의된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김기호(2021), 김선웅(2021)의 연구는 「서울도시계획사」 (2021)에서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을 그 이전과 이후의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분석하고 있다. 특히 김기호(2021)의 연구는 1970년대 도시기본계획이 지닌 시기별 계획 특성을 포착하고, 이를 도시구조 형성을 위한 논의와 구상으로서 해석하는 관점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최상철과 후대 연구자들의 성과는 서울도시기본계획 또는 그 역사적 변천에 국한된 것으로, 전적으로 도시구조에 관한 것은 아니다.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구상·개편된 서울도시구조를 분석한 연구로는 서여림·김기호(2016), 최병선(1981) 등이 있다. 서여림·김기호(2016)는 1960년대 이후부터 서울도시기본계획이 다핵도심 구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상이 오늘날 《서울도시기본계획》(2014)과 서울도시공간구조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했다. 이 연구는 서울도시구조가 서울도시기본계획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물리적 요소를 실증적으로 고찰했다는 점에서, 서울도시기본계획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나열한 다른 연구들과 차별성이 있다. 여기에서 제시된 도시구조는 주로 ‘중심지 체계’와 ‘교통체계’를 중심으로, 3핵 도심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3핵 도심에 대한 분석만으로는 도시구조 개편 구상 전반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최병선(1981)은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토대로 서울의 단핵구조적 특성을 밝히고 1970년대 후반 다핵도시구조 체계로 개편되어 불합리하게 공존하는 도시구조에 대한 대안을 모색했다. 그는 서울 도시구조가 형성된 과정을 일제강점기부터 연구 시점까지 서울도시(기본)계획에 근거하여 ‘토지이용계획’과 ‘가로망 체계’를 통해 일관성 있게 분석함으로써 도시구조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분석틀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연구에는 1970년대 서울 도시기본구조에 대한 논의와 《서울도시기본계획》(1978)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앞선 두 연구 모두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도시구조가 개편된 내용을 다루기는 하지만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의 도시구조 구상 전체를 중점적으로 고찰한 것이 아니며, 그 함의를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3. 연구의 방법
본 연구에서 말하는 ‘서울 도시구조의 전환’은 단핵 중심의 동심원구조에서 다핵 중심의 공간구조로 이행하는 계획적 전환을 의미한다. 이는 단기적 도시기능 분산이나 중심지 확대와 같은 국지적 변화가 아니라, 도시를 조직하는 질서 자체가 구조적으로 변화한 것을 뜻한다. 특히 1970년대 중후반 제기된 다핵도시론과 1977년 서울도시기본구조 연구 등의 흐름이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 수렴되며, 이 계획에서 기존과 구분되는 새로운 도시 구조가 명시화되었다. 이와 같은 도시구조 전환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의 방법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첫째, 도시구조의 전환 담론으로서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이 수립된 역사적 과정을 재구성하였다. 당시 심화되던 서울의 도시문제는 기존 도시기본계획에서 제시한 대안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도시구조적 문제로 인식되었으며, 이에 따라 1970년대 중반 삼핵(三核) 도시론이 등장하였다. 이 담론은 1977년 ‘서울 도시기본구조 아이디어컴페티션’ 개최로 이어졌고, 그 결과로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 본 연구는 이 일련의 과정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단계적으로 분석한다.
둘째,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이 수립되는 역사적 과정을 ‘도시기본구조’ 담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서울도시기본구조 아이디어컴페티션’(1977)과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도시구조’라는 용어보다 ‘도시기본구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도 서울 도시구조 구상을 ‘도시기본구조’의 개념으로 규정한다(서울특별시, 1978a: 14). 이 담론들은 서울 도시구조의 근간이자 기본 골격을 특정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이는 곧 ‘서울 전체 도시구조를 구성하는 기본 골격’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당시 제시된 다양한 도시기본구조 모형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들 대안이 지니는 도시구조적 의미를 해석하고,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통해 전환된 서울 도시구상의 도시계획적 함의를 종합적으로 고찰한다.
셋째, 서울 도시기본구조는 선행 연구인 서여림·김기호(2016), 최병선(1981)에서 나타나듯 ‘도시기능(중심지 체계)’, ‘가로망 패턴’, ‘토지이용 패턴’으로 구성된다. 당시 서울도시기본구조 논의에 참여했던 주원, 윤정섭, 강병기의 연구에 따르면 이 요소들이 도시구조를 형성하는 핵심적 구성 요소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주원(1966: 54-59)은 「도시형태와 한국도시정책」에서 도시형태가 “도시기능에 의해 결정”되며, “도시기능을 충족할 수 있는 자원적·물질적 존재”라고 설명했다. 윤정섭 외(1979:14-15)는 「한국 도시의 기능 형태 및 구조에 관한 연구」에서 도시구조 분석이 “기설 및 계획 가로망을 중심으로 한 접근방법”과 “교통수단 및 토지 이용에 의한 접근방법”으로 구분된다고 하였다. 강병기(1979: 2) 또한 「도시문제와 도시패턴에 관한 연구」에서 도시 구조적 형태는 “가로망 패턴과 토지이용 패턴이 겹쳐져 나타나며 대부분 이 둘의 조합과 변형으로 이루어진다”고 지적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1970년대 서울도시기본구조 담론에서 도시기능, 가로망 패턴, 토지이용 패턴이 어떻게 도시구조의 기본 골격으로 구성되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Ⅱ. 삼핵론과 도시구조 논의
1. 3핵의 삼각배치: 구조화 이전의 구상
서울은 1970년에 이미 인구 500만 명을 돌파하며 대도시로 성장했고,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한 인구 팽창을 경험하게 된다(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5: 1374-1382). 이러한 급속한 인구 증가는 주택 부족, 교통 혼잡 등 복합적인 도시 문제를 야기했으며, 과밀화된 기존 시가지의 분산 및 재구성을 필요로 하는 도전 과제를 안겨주었다. 이에 따라 당시 서울 도시계획의 방향성은 점차 분산을 지향하는 다핵도시로 옮겨갔으며, 이러한 인식은 이미 그 이전부터 일정 부분 공유되어 왔다. 다만, 어떤 구조로 다핵도시를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지속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대서울 마스터플랜’이라고도 불리는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 그리고 이를 토대로 조정된 1970년 《서울도시기본계획조정수립》에서 제시한 서울의 도시구조는 동심원 형태였다. 이 계획 안에서 서울은 수도권광역도시권에 포괄된 동심원구조로 구상되었고, 이는 영국의 《대런던계획》과 일본의 《수도권정비구상》을 참고한 것이었다.4) 도시기능은 1핵 다부도심체계, 가로망 체계는 방사순환형, 토지이용에 대해서는 동심원적 영역(지대)으로 된 구성이다(그림 3, 4). 이 동심원구조는 도심을 중심으로 외곽으로 갈수록 기능과 인구를 점진적으로 분산시키려는 구상이었다. 도심 기능 분산은 주로 부도심과 생활권 계획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부도심을 도심 기능 일부를 재배치하는 핵(core)군의 일종으로 간주하고, 주거지 내에는 위계적인 생활권 단위 및 중심지를 설정하여 도시를 조직하고자 했다.
Concentric structure of the Seoul Master Plan (1966)Source: SMG, 1966. Master Plan of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59, 175, 240-242; Korean Ministry of Construction, 1967, Urban Development, 4.
특히 1970년 《서울도시기본계획조정수립》에서는 1966년 계획을 기본 틀로 유지한 채 일부 조정이 이루어졌으며, 서울이 도시 팽창 과정에서 “단일 중심에서 벗어나 다핵적(multi-nuclei) 구조로 이행하”는 중임을 명시적으로 밝혔다(서울특별시, 1970: 145). 비록 ‘3핵’이라는 명칭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도심을 기준으로 영등포, 영동이 시각적인 삼각 구도로 배치되어 다핵화를 지향하는 공간구조로 해석될 수 있다(그림 4-a). 즉, 1966년과 1970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은 다핵도시를 명시적으로 표방한 것은 아니지만, 부도심 및 생활권 중심지 설정 등을 통해 다핵도시 구상의 단초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구상은 다핵도시의 핵심인 도심의 기능이 여러 개의 핵으로 형성되고, 도시 기능들이 독립적 자율성을 갖는 구조에 이르지 못했다. 도심에 대한 기능적 의존은 여전히 지속되었으며, 결과적으로는 동심원형 구조 내부에서 제한적인 기능 분산에 그쳤다.
Concentric stucture of the Seoul Master Plan (1970)Source: SMG, 1970, The Master Plan of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in 1991, 158, 154, 70-71, 180, 48, Adapted by author a) and b) include added highlights from the original data.
한편, 1960년대 중반 동심원구조로는 서울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건설부는 1967년 《수도권광역도시계획: 세부개발계획》에서 선형도시 구상을 검토했다. 이 구상은 도심-영등포-인천, 도심-영동-수원으로 이어지는 대상형(帶狀形) 시가지 발전축을 중심으로, 서울 도심에서부터 서울대도시권으로 확장되는 선형의 시가지 구조를 상정한 것이었다.5) 인천, 수원 등 서울과 비슷한 강도의 중심핵을 가질 수 있는 도시들을 육성하는 것과 동시에, 이들과 서울 간의 연결축을 대상형 도시구조로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서울로의 집중을 억제하고 중심 기능을 분산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선형도시의 다핵화 시도는 이전 동심원구조에 포함된 3핵의 삼각구도가 일정하게 연장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심과 부도심 간 즉, 도심-영등포, 도심-영동 간의 공간적 관계를 고려하여 삼핵 구도로 구조화되었다. 여기에서 나타난 삼핵 구도는,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 수립 당시 “남향한 삼두마차 계획” 혹은 “피라미드형의 제2서울”로 불리기도 했던 동심원 기반의 3핵 구도를 선형적 발전축 위에서 이행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손정목, 2003: 263-267).
이 선형도시 구상은 1970년대 초까지 논의되었으나 서울 단위 도시계획에서는 최종적으로 채택되지 못했다.6) 그 주요한 배경에는 영동 제2차 토지구획정리사업에 의한 강남 개발의 본격화된 것에 있다. 강남개발은 기존 동심원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그 내부 질서를 변형시키는 효과를 초래했고, 결과적으로 1966년, 1970년 도시기본계획에서 구상한 동심원적 공간 질서는 점차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1970년대 초, 날로 심화되는 서울의 인구 집중과 그에 따른 도시문제는 단순한 사회현상을 넘어, 도심 일지점에 인구와 도시기능이 집중된 도시구조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문제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3핵 도시구상이 다시금 제기되었다.
2. 단핵도시를 탈피하는 3핵 도시론
서울 도심이 지닌 일점 집중성은 여러 도시문제 중에서도 특히 심각한 교통문제를 야기했다. 도심이 서울 교통의 출발지이자 동시에 목적지로 기능함에 따라 발생하는 중심부의 교통 혼잡이 극에 달했고, 이에 대한 대응은 197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적 과제였다. 이러한 문제는 점차 단핵도시가 지닌 구조적 한계로 인식되었고, 도시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 소속으로 후일 홍익대학교 교수가 되는 김형만은 1970년 서울시 교통계획에 자문 역할을 하며 지하철 1호선 계획에 참여하면서, 도심으로 집중되는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으로 도시구조 개편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핵구조를 탈피하고 다핵도시 구조로 나아가는 방향이었다. 그는 다핵화의 핵심이 ‘핵의 수와 그에 따른 도시발전 형태’에 달려 있다고 보고, 핵의 개수에 따른 도시 구조 모형을 검토했다(그림 5). 그는 2핵 구조는 도심 분산 효과가 미미하고, 4핵 이상일 경우 분산 효과는 크지만, 핵 간 교통 흐름에서 교차점이 발생하여 교통의 복잡성이 가중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3핵 구조는 동선의 교차 없이 각 핵이 독립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으며, 도심 집중에 따른 과밀 문제를 해소하고 균형 잡힌 도시 성장을 유도하는 가장 바람직한 도시구조로 평가했다.
Kim Hyung-man‘s urban structure proposal: alternatives based on the number of coresSource: SMG, 1977. Study on the Urban Structure of Seoul, 59-64.
구자춘 시장이 서울시로 부임한 1974년, 김형만은 그와의 도시계획 관련 자문 및 논의에서 서울도시계획 체계의 미비함을 지적하며 이른바 3핵론을 제안했다(그림 6). 김형만의 3핵론은 영등포와 영동을 단순한 부도심이 아니라, 강북 도심의 기능을 분산·수용하는 도심핵으로 조성하는 것이었다. 강북핵은 국심으로서 중추적 중앙행정기능을 수행하는 도심, 영등포핵은 경인·경수 간 산업지대의 중심 기능을 담당하는 도심, 신개발지인 영동핵은 서울시청을 포함한 2차적 행정기능을 이전해 조성하는 도심으로 설정되었다. 이러한 구상은 1966년 및 1970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제시된 동심원구조 내부의 삼핵 삼각배치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동심원구조에서는 도심 외곽의 부차적 핵(부도심)에 국가 기능을 배분하고, 부도심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형성되는 부도심부 체계를 통해 인구와 기능 분산을 도모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도심들은 도심에 위성적으로 종속되어 도심에 대한 의존성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반면, 김형만의 3핵 구상에서는 각 핵이 독자적인 도심 기능을 수행하며, 하위에 부도심을 거느리는 삼각형의 균형 구조로 정립되었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어 온 강북 도심의 중심성을 해체하고, 도시구조를 재편하고자 한 구상이었다.
Three-core urban structure proposal by Kim HyungmanSource: SMG, 1977. Study on the Urban Structure of Seoul, 65-66.
구자춘 시장은 이러한 논의에 기초하여 1975년, 향후 서울도시기본계획의 방향을 도심, 영등포, 영동·잠실의 삼각 거점을 잇는 다핵도시구조로 설정할 것임을 발표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치로 교통체계의 정비가 추진되었으며, 특히 3핵 도심을 구현하기 위한 지하철 순환선 건설이 핵심사업으로 선도적으로 진행되었다(그림 7). 당초 일직선으로 계획된 지하철 2호선을 구도심영등포-영동을 연결하는 순환선으로 변경한 조치였다.7) 그러나 이러한 교통계획은 3핵 도심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마스터플랜 없이 선행된 현실적인 도시개발이었다. 서울시 내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모든 도시 세부계획의 기초가 될 종합적 마스터플랜 수립의 필요성을 점차 자각하게 되었다.
Concept for a polycentric urban structure and Seoul’s circular subway line (1975)Source: The Chosun ilbo, 1975, March 5, “Development of Two Sub-centers: Yeongdong and Yeongdeungpo”; SMG, 1975 November, Construction Plan for Seoul Subway Circular line, 34.
한편, 1976년 12월에 열린 ‘서울시 교통대책세미나’는 도시 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논의가 이루어지는 자리였으나, 그 과정에서 교통 부문뿐 아니라 토지이용 측면의 접근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었다(서울특별시, 1976: 35-90). 최상철은 교통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으로 삼핵 도심의 형성을 지지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토지이용계획이 필요함을 강조했다(그림 8). 그는 서울의 교통 대책이 토지이용계획과 분리되어 추진된 점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고 지적하면서, 이 두 계획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처럼 서울 도시계획에서 3핵 도심의 형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체화할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은 여전히 부재한 상태였다.
Ⅲ. 서울도시기본구조연구 아이디어컴페티션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서울의 인구는 기존 도시기본계획에서 설정한 장기 목표에 거의 도달하였다.8) 이에 따라 서울시는 계획의 수정을 검토하게 되었고, 수도권 인구 분산 및 신행정수도 건설 등 국정 과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서울도시기본계획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1977년 4월, 도시계획 전문가 7인에게 의뢰하여 공개 세미나를 통해 서울의 이상적인 도시 구조 구상을 발표하게 하였다. 이른바 ‘서울도시기본구조연구 아이디어컴페티션’(또는 서울도시기본구조연구)이다(그림 1). 참여한 7인은 김형만(홍익대 교수)을 비롯해 강병기(한양대 교수), 박병주(홍익대 교수), 안원태(한국산업개발연구소 상무), 윤정섭(서울대 교수), 한정섭(단국대 교수), 최상철(서울대 교수)이며, 이들에 의해 서울 도시구조의 다핵화를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은 이후 「서울연구의 현재와 미래: 발표논문집」 (1994)에서 이 연구를 두고 “7인의 계획가가 서울도시계획에 관한 물리적 골격을 동시에, 한정된 시간 안에서 그간 축적된 자료와 경험, 지혜를 짜 모아 연구한 유일무이한 성과”라고 평가하였다(서울시정개발연구원, 1993: 147). 따라서 서울도시기본구조연구에서 이때 제안된 구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당시 서울은 1960년대 대서울계획의 구상대로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구조로 확장될 것인지, 혹은 도심-용산-영등포로 이어지는 대상형 시가지의 발전 추세를 따라 선형도시로 개편될 것인지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한강 이남의 영동, 잠실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단핵 동심원구조로 귀결되는 듯했지만, 이 지역들이 제3의 도심 후보지로 부상함에 따라 서울의 도시구조를 3핵 혹은 다핵으로 전환하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7인의 계획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동심원구조나 선형도시구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거나, 제3의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다핵도시구조로의 개편을 전제로, 서울의 도시구조를 몇 개의 핵으로 구성할지를 중심으로 단핵, 2핵, 3핵, 그리고 삼핵 이상의 구상을 제안하였다. 도시역사학자 손정목은 이들의 계획안에 대해 “약간씩 표현만 달랐을 뿐, 모두가 다핵도시구상이었다”고 평가하였다(손정목, 2003: 270-271). 계획가들 스스로도 “각 대안은 단핵, 2핵, 3핵 또는 그 이상의 다핵 또는 군핵다부도심구조로 대별될 수 있지만, 다핵도시구조 주요 개념에 있어서 내용상의 차이는 아닌 것”이라고 설명하였다(서울특별시, 1978b: 54-56). 그러나 이들 계획안은 개념적으로 유사해 보일지라도, 제안된 물리적 도시구조에서는 차이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다핵도시는 개념적인 도시구조로서 특정한 도시 형태를 반드시 수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한 구상은 서울의 다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공간구조를 내포하고 있었고, 각 대안은 상이한 물리적 형태로 구성되었다. 앞서 김형만이 서울의 도시기능을 ‘핵의 수와 그에 따른 도시발전 형태’로 분석한 방식에 착안하여, 7인의 계획안을 이러한 기준에 따라 1핵, 3핵, 그리고 제3의 다핵구조로 유형화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1. 1핵-다부도심체계의 다핵도시구상
첫 번째는 1핵과 다수의 부도심으로 구성된 구상안이다. 기존 도심을 1핵 체계로 유지하되, 복수의 부도심을 체계적으로 조성함으로써 다핵도시구조로 전환하려는 계획안으로 한정섭과 박병주에 의해 제안되었다(표 1). 한정섭은 서울에 새로운 도심을 조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하고, 기존 도시구조를 유지한 채 현 도심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비할 것을 제안했다. 기존에 설정된 부도심들을 도심의 과중한 부담을 덜기 위한 ‘지역중심’으로 육성하고자 하였으며, 방사순환형 가로망 또한 기본 틀을 유지하되 중복되거나 불합리하게 겹쳐지는 구간을 조정하고, 특히 외곽 간 이동 시 도심을 통과하지 않도록 일부 노선을 재편했다. 그는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 참여하여 14개 방사선과 4개 순환선으로 구성된 도로망의 골격을 마련한 바 있으며, 이번 구상은 그 구조를 기반으로 한 보완·정비였다.
박병주는 하나의 도심을 유지한다는 기본 입장은 같았지만, 다수의 부도심이 군집을 이루는 '1핵-다핵부도심체계'를 제안했다. 그는 부도심 계획을 체계적으로 접근하여 영등포·여의도, 영동, 잠실을 도심의 국가권력 및 주요 기능을 분산시키는 핵심 부도심으로 설정하고, 이외에도 5개 부도심을 '주변 지구중심'으로 구분하여 다핵구조의 위계를 정교하게 설정했다. 특히 박병주는 《여의도종합개발계획》(1971), 《잠실지구종합개발기본계획》(1974)을 수립한 경험이 있으며, 이 지역들을 자신의 계획안에서 부도심으로 포함시켰다. 이 무렵부터 잠실은 영동과 더불어 도심 핵으로서의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가로망 계획에 있어서도 그는 기존 방사순환형 패턴을 유지하면서 그 내부를 격자 형태로 조직하고자 했다. 박병주는 여의도 및 잠실지구 계획에 적용한 슈퍼블록 단위의 근린주구를 서울 전역으로 확장하여 근린주구 단위의 생활권으로 재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잠실지구의 근린주구계획은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소생활권 정비 모델로 제시되었다.9) 교통계획에서 박병주 구상안의 또 다른 특이점은 서울시가 추진 중이던 지하철 2호선의 순환선 전환을 자신의 도시구조 구상에 적극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두 계획안은 다핵화를 표방하면서도 물리적 도시 형태에 있어서는 기존 서울도시기본계획의 동심원구조를 기본 골격으로 삼아 이를 보완·정비하려는 구상이었다.
2. 3핵을 기반으로 한 다핵도시구상
두 번째는 도심의 C.B.D. 기능을 도심, 영등포, 영동의 3핵에 분산 배치하고, 이들 핵을 삼각형 구도로 정립한 다핵도시구상이다. 이러한 도시구조는 김형만, 윤정섭이 계획안에서 명시적으로 제안했으며, 최상철도 대체로 유사한 구조를 전제로 계획했다(표 1). 김형만의 구상은 도심핵, 영등포핵, 영동핵이 개별적으로 자족 기능을 갖고 삼각 구도를 이루며 독립적으로 정립되는 구조이다. 부도심은 기존 계획대로 유지하되, 세 핵 간의 연결 및 내부 교통은 전철, 지하철 등 대량고속교통수단을 통해 구성하고, 이를 수도권 광역교통체계와 연계했다. 가로망 계획은 기존의 방사순환형 패턴을 유지하되, 영등포와 영동을 직접 연결하는 도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일부 보완했다.
윤정섭의 계획안 또한 3핵을 ‘각기 삼각형의 정점’에 위치시키되, 김형만과는 달리 삼각구도 중심에 위치한 용산에 업무지구를 배치하고, 부도심은 삼각구도에 포괄되면서 이를 둘러싸는 형태로 배치했다. 가로망 계획은 방사순환형을 유지하되, 3핵 간의 도로를 삼각 구도로 연결하고 각 핵의 국지적 구성은 격자형으로 조직했다. 또한 향후 다핵화를 추진하면서 개발제한구역의 제한 내에서 “개방체계”를 갖는 다각구로 전환하려는 계획 방향도 제시했다. 광역적인 측면에서는 서울-인천, 서울-수원, 서울-성남을 잇는 “3개의 행랑식” 도시개발 축을 고려하여 서울의 내부 3핵과 수도권 방사선 도로를 연계하는 선형도시구조를 지향했다(서울특별시, 1977: 32,38,44). 이 구상은 윤정섭이 참여했던 1967년 《수도권광역도시계획》의 서울대도시권 모형과 일치하며, 기존의 동심원구조에 선형개발(Finger Type)과 다핵구조(Multi Nuclear Type)를 절충한 형태였다.
최상철은 ‘3핵’이라는 용어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김형만, 윤정섭과 마찬가지로 기존 도심과 영등포, 영동이 “동일한 역학관계”로 “삼각정립”하는 개념을 도입했다(서울특별시, 1977: 25). 그는 기존 도심은 현재 수준 이상의 새로운 개발은 지양하고, 영등포와 영동을 중심으로 도시 기능을 분산시키는 구조를 구상했다. 특히 서울대도시권의 동남축, 남북축으로 사슬처럼 연결되는 선형적 코리더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주변 위성도시와의 접속체계를 재편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윤정섭, 최상철의 계획안은 기존 동심원구조를 약화시키고, 3핵 도시구조를 토대로 서울대도시권으로 이어지는 선형도시적 발전을 지향하는 다핵도시구조라 볼 수 있다. 이처럼 김형만, 윤정섭, 최상철이 제시한 3핵 구상의 의미는 도심으로의 일지점 집중 문제와 서울 시가지의 연담화 현상을 탈피하려는 시도로, 한강 이남의 영등포와 영동을 기존 도심과 동등한 역학관계에 위치시키는 도시구조 개편 전략이었다.
3. 제3의 다핵도시구상
강병기와 안원태는 독창적인 다핵도시구조를 제안했다(표 1). 강병기는 도심에서 영등포로 이어지는 대상형 시가지 발전에 주목하였고, 인구 1,000만을 바라보는 서울이 대도시권으로 확장되는 방식으로 선형도시구조가 적합하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서울에 제안한 도시구조는 단순한 선형이 아니라 환상(環狀) 형태의 복합도시구조였다. 당시 서울에는 상업 및 업무 중심지인 도심과 제조업 중심지인 영등포, 두 개의 핵이 부각되고 있었고, 강병기는 서울의 활동축(action corridor)이 이 두 핵을 연결하는 선상에 형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간선도로체계는 도심을 초점으로 한 단일 방사형 구조로 조성되어 있어 교통집중을 유발한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활동축을 환상형으로 휘게 하여 ‘쌍가락지 형태의 활동환(action ring)’을 형성하고, 그 거점으로 도심, 영등포 외에도 여의도, 영동, 장안평을 추가했다. 교통체계는 지하철을 주축으로, 버스를 보조 수단으로 운용하고, 간선도로는 방사순환형과 격자형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개편했다. 요컨대, 환상 다초점의 다핵도시구조였다.
안원태의 계획안은 한강을 중심으로 ‘2중심 4부도심’ 체계를 갖춘 다핵도시구조를 제안했다. 그는 무질서한 도시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한강과 녹지축을 연계한 ‘환경벨트’ 개념을 도입해 계획의 범위를 설정했으며, 한강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이 균형을 이루는 도시공간을 구성했다. 도심의 기능은 6개로 분산 재배치하였고, 이를 국제·국가 중심지(N-CBD), 수도 관리 중심지(M-CBD), 부도심 업무지구(R-CBD)로 구분하였다. 한강 양안을 중심으로 1개의 중심과 2개의 부도심이 정확히 대칭되도록 배치함으로써 균형잡힌 다핵구조를 구현했다. 가로망 계획에서는 이러한 6개 CBD를 연결하기 위해 방사순환형 도로망을 확장·보완하여 복잡한 나선형 순환도로 체계를 구성하였다. 특히 외곽순환선은 ‘제3순환선’으로 명명되었으며, 이는 서울을 넘어 수도권 전체를 연결하는 간선도로망으로 계획되었다. 해당 순환선은 수도권에 걸쳐서 순환하며 수도권 주요 도시들이 접속해야 한다는 기준 아래 설정되었으며, 단순한 원형이 아닌 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구성되었다. 전국 격자형 고속도로 체계 및 수도권 도로망과의 정합성을 고려한 것이었다.
이처럼 7인의 계획가들은 당시 서울의 기형성된 도시구조, 진행 중인 도시개발 양상, 장래 도시 성장 추세 등을 반영하여 각기 다른 관점에서 다핵화에 부합하는 물리적 도시구조를 제안하였다. 그 구상은 동심원형, 선형, 격자형 또는 복합형 구조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는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새로운 다핵구조를 공식화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도시구조의 개념, 구성 요소, 계획 원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Ⅳ.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
1970년대 후반, 서울시는 ‘2000년대를 향한 서울도시기본계획’의 수립을 준비했다. 이는 20세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세기의 도래를 앞두고 있다는 상징성과 더불어, 장기적·종합적인 도시계획을 통해 수도권 인구 분산, 신행정수도 건설 등 국가적 정책 의지를 반영하고, 서울 도시구조의 미래상을 제시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구자춘 시장 시정기(1974.9.∼1978.12.)에 서울시는 이러한 취지에 따라 서울 전역을 대상으로 한 정밀한 현황 조사를 최초로 시행했으며, 정부 차원의 수도권 인구 정책과 연계하여 서울로의 인구 집중을 완화하는 한편, 도시 내부적으로도 일극 집중을 해소하려는 도시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이상적인 도시기본구조 구상 논의를 본격화하게 되었다.
서울시는 도시기본구조연구에 참여했던 7인의 계획가들에게 의뢰하여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게 했다. 이들은 단순 자문을 넘어 부문별 계획을 직접 담당하며, 공동으로 수립하였다(그림 9). 최상철은 전반적인 계획의 분석·검토와 함께 공원·녹지·위락·자연환경 계획을, 안원태는 경제계량, 법제도를 담당했다. 한정섭은 교통계획을, 윤정섭은 토지이용계획을 맡았으며, 강병기는 주택·공급처리·생활환경 계획을, 박병주는 도시정비계획을 담당했다. 이들에 의해 총 34차례에 걸친 긴밀한 논의를 거쳐, 민간 용역기관인 대지종합기술공사의 실무작업을 통해 최종적으로 1978년 《(2000년대를 향한) 서울도시기본계획》이 성안되었다.11)
Planning team and institutional framework of the 1978 Seoul Master PlanSource: SMG, 1978b, Master Plan of Seoul for 2000 Years: Main Report, 0-6.
1. 다핵론과 도시핵의 구성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은 도시기본구조에 대한 접근법으로 단핵론, 삼핵론, 다핵론을 비교 검토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김형만이 핵의 개수에 따라 도시구조를 비교·검토한 논리와 유사한 구도를 공유한 것이다. 1978년 계획은 세 가지 대안을 검토하여 각 구조의 도시문제 대응력과 한계를 검토한 뒤 최종 대안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계획가들은 기존 도심 외에 영등포와 영동신시가지의 핵화 가능성이 부각됨에 따라, 3핵 도시구조가 서울의 도시 특성에 가장 적합한 대안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8개의 도시핵을 설정한 다핵도시구조가 채택되었다. 서울은 “인구 800만 명을 포함하고 있는 대도시로서 시역 전체를 하나의 단일 생활권으로 보기 어려”웠고, “장래 도시의 확장과 균형발전을 고려할 때, 수도권 대도시로 성장하는 서울”의 도시기능을 분산시킬 다핵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서울특별시, 1978b: 59-60). 삼핵구조가 당시 서울의 공간구조 및 개발 여건을 반영한 단기적, 현실적 대응이었다면, 다핵구조는 서울의 미래 성장과 균형발전을 고려한 장기적, 이상적 비전을 반영한 선택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을 예상 인구 규모에 근거해 “인구 100만을 전제”로 한 8개 도시들이 결합된 연합도시로 상정하고, 강북과 강남에 각각 4개의 도시핵이 한강을 중심으로 균형이루는 구조를 설정했다(서울특별시, 1978b: 59-60). 이러한 종합적 논의를 바탕으로,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은 8개 도시핵을 중심으로 한 다핵구조를 채택했다(그림 10).
The 1978 Seoul Urban Master Plan's eight urban cores: 1-national core and 7-regional centersSource: SMG, 1978b. Master Plan of Seoul for 2000 Years: Main Report, 59, 63.
그리고 이 다핵구조의 구성을 위해 세 가지 공간구조 원칙을 설정했다. 첫째, 한강 중심의 균형공간화, 둘째, 도시 외곽에 환경벨트의 설치, 셋째, 대생활권 단위의 도시구조 분화이다. 강북 위주의 기존 개발 양상을 넘어 강남 개발의 추세를 가속화하여 서울 전역에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성장 규모에 맞는 대생활권 구성을 지향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설정된 8개 도시핵은 1개의 국심(도심)과 7개의 지역중심으로 구성되었다(그림 11). 이는 기존 동심원구조의 1도심-다부도심 체계와는 구조적으로 구별된다. 기존 동심원구조는 부도심이 도심에 종속된 구조인 반면, 1978년 계획은 국심과 지역중심이 기능적으로 보다 독립적이고, 공간적으로 분산 배치되었다. 이때 ‘지역중심’은 도심의 하위 체계인 부도심을 포함하면서도 생활권 중심지로서 기능과 범위가 확장된 개념으로 재정의되었다. 이 다핵구조는 생활권의 구성을 강조한 것으로, 서울 전역을 8개 도시핵에 의한 대생활권으로 구분하였고, 각 도시핵은 1국심과 7지역중심의 구성 아래, 27개의 지구중심과 157개의 근린중심이 계층적으로 배치되어, 중심지 체계는 ‘1국심-7지역중심-27지구중심-157근린중심’의 4단계의 구조로 정리된다. 이와 같은 계층적 구조는 이후 서울도시기본계획의 기본 골격으로 지속적으로 계승·발전된다.
2. 격자형 도시구조
기존 방사순환형 가로망은 도심의 일지점 집중 현상을 고착화하고 서울의 급격한 도시팽창을 구조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한계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에 따라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은 도시 전체를 포괄하고 기능성을 분산시킬 수 있는 구조로 재편될 필요성을 제기했다.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은 “일점집중형인 기존 가로망을 다핵도시구조에 알맞고 나아가 다핵도시구조를 유도할 수 있는 다심적(多心的) 격자형 가로망”으로 개편했다(서울특별시, 1978a: 14). 이는 서울이 오랜 역사 동안 유지해 온 동심원구조에서 격자형 도시구조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었다(그림 12).
Restructuring of the urban structure from a mono-centric radial-circular to a multi-core grid-based networkSource: SMG, 1978b. Master Plan of Seoul for 2000 Years: Main Report, 178. Adapted by author.
이 계획에서 ‘다핵’이라는 표현보다 ‘다심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앞서 고찰한 중심지 체계와 연관되어 있다. 중심지 체계 중 지역중심을 비교적 동등한 위계의 도시핵으로 간주하고 이를 ‘다수의 중심지’로 설정함으로써 서울의 도시구조가 특정 지점에 치우치지 않고 균등하게 분산되도록 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이러한 구상에 부합하는 가로망 체계로 채택된 것이 바로 격자형 가로망이다. 이 격자형 가로망은 단지 교통체계로서만이 아니라 도시구조를 결정하고 도시 성장을 유도하는 핵심 기제로 설정되었다. 특히 기존 방사순환형 도로체계에서 발생하는 도심 일지점 현상을 해소하고, 각 지역에서의 균등한 접근성을 확보함으로써 다핵도시구조 실현의 물리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유리한 형태로 간주되었다.
이 격자형 가로망은 도시기본구조연구에 참여한 계획가들의 대안에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윤정섭은 방사순환형 가로망을 유지하면서 다핵 중심의 ‘다각구 열린 격자형’으로 전환하는 점진적 개편안을 제안했고, 박병주와 강병기는 서울 전 시역을 포괄하는 격자형 간선가로망으로 구성했다.12) 박병주는 기존 방사선 도로를 중심으로 격자 형태로 개편하고자 했고, 강병기는 도심과 영등포를 연결하는 활동축을 환상형으로 설정하고 그 내부를 변화 격자형으로 구성했다. 이들의 도시구조 구상은 형태나 적용 범위에서 차이를 보였으나, 그 공통된 기반에는 도심 내 순환선 내부의 격자형 가로망 구조와, 동심원구조에 격자형 도시구조가 결합되어 도시 외곽으로 확장되어 온 기존 도시구조의 맥락이 자리하고 있었다(김혜영, 2024: 108-112). 이러한 역사적 기반 위에 세 계획가는 도시의 확장을 위한 구조로서, 나아가 다핵도시구조 구현의 필수 기반으로서 격자형 가로망의 중요성을 공유했다. 이들 구상은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다각구’, ‘전 시역의 포괄’, ‘열린 구조’라는 개념의 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에서 제시된 격자형 가로망은 이전에 어떤 계획에서도 제안된 적 없는 새로운 다각구(多角構) 형태였다(그림 13, 14). 기존 방사순환형 동심원구조와도 다르고, 도시기본구조연구에서 일부 계획가들이 제안한 구상과도 구체적으로 일치하지 않았다. 이 격자형 가로망은 서울 전 시역을 포괄하면서, 수도광역권과 연결되는 개방적 구조를 갖는 것이 특징이었다. 도시 기능적으로는 ‘다심적(多心的)’, 형태적으로는 ‘다각구(多角構)’의 특성을 지닌 열린 격자형 도시구조라 할 수 있다.
Basic concept of urban structure defining the principal axesof the grid-based urban frameworkSource: SMG, 1978a. Master Plan of Seoul for 2000 Years, 15.
Concentric stucture of the Seoul Master Plan (1970)Source: SMG, 1970, The Master Plan of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in 1991, 158, 154, 70-71, 180, 48, Adapted by author a) and b) include added highlights from the original data.
격자형 도시구조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설정된 것은 한강축과 산지축이다(그림 13). 이는 도시구조의 기본 패턴으로 설정된 ‘한강 중심의 균형공간화’와 ‘환경벨트의 설치’ 원칙에 따른 것이다. 한강이 도시구조의 중심에 위치하며, 동서 방향으로는 한강 수경축이, 남북 방향으로는 북한산-종묘-남산-국립묘지-관악을 잇는 산지축이 설정되어 그린벨트와 연결된다. 한강을 서울을 양분하는 중심축으로 설정한 것은 단순한 지형적 고려를 넘어, 장래에 “인구 분포와 도시 기능을 양분하는 구조적 기준”으로 기능하게 하려는 의도였으며, 이러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 “서울 도시구조가 안정”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서울특별시, 1978b: 54-63). 1950년대 대서울계획에서 구상된 ‘한강이 중심이 되는 도시구조’는 이러한 방향성을 토대로 1978년 계획에서 실질적인 물리적 도시구조로 구체화되었다.
격자형 도시구조는 한강축과 산지축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으로 방향별 대간선도로망을 설정하여 그 골격을 형성하였다(그림 15). 한강 양편의 강변도로를 중심으로 동서를 관통하고, 산지축 양편의 간선도로를 통해 남북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이들 도로는 한강축과 산지축을 기준으로 방향별로 명명되고 번호가 부여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되며 시가지 전반의 재정비를 가능하게 했다(서울특별시, 1978a: 27). 도시 내부에서는 도심으로 집중되는 교통을 분산시키기 위해 한강 이북에만 내부 순환선을 배치하고, 이남에는 순환선을 생략함으로써 격자형 가로망구축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격자형 가로망은 도심 순환선 내부에 형성된 구조로,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에 비교적 균등하게 배치된 도시핵들을 에워싸면서 비교적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었다. 즉, 이 격자형 가로망은 서울 전 시역을 포괄한다. 아울러, 격자형 가로망은 사방으로 뻗어나가 도시계획구역 한계선 내외로 순환하는 대순환선에 의해 마무리된다. 대순환선을 통해 서울 내부의 격자형 가로망은 수도권의 도시간선도로망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우회적으로 연계된다. 결과적으로, 이 격자형 가로망은 서울 전역을 아우르며 외부로 향해 열린 도시구조를 형성하였다.
격자형 가로망이 “동서남북으로 교차함으로써 구획된 단위세포”는 생활권 단위로 구성되었다(서울특별시, 1978b: 178). 근린주구 개념을 도입하여 가로세로 1km로 설정된 슈퍼블록을 도시 정부의 기본 단위인 소생활권으로 삼고, 이를 기반으로 중생활권과 대생활권을 계층화하여 서울 전역을 8개의 대생활권으로 구성했다(그림 16). 이러한 방식으로 생활권은 8개의 대생활권, 28개 중생활권, 157개 소생활권으로 조직된 계층적 구조로 구체화되었다(서울특별시, 1978b: 100-106). 격자형 가로망이 도시구조의 골격이라면, 생활권계획은 그 위에 살을 붙이는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다핵도시구조를 가로망과는 다른 측면에서 보완하는 보조적 구상인 것이다. 근린주구 단위에는 자족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각 권역의 규모와 특성에 맞춰 도시시설을 배치했다. 그러나 도시가 생활권 개념에 따라 계층적으로 분화·구성되더라도, 권역 내부에 적절한 도로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도시시설이 특정 지역에 편중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격자형 가로망 내부의 가로 배열 역시 생활권 개념에 부합하도록 구성되었다.
Neighborhood Unit PlanSource: SMG, 1978a. Master Plan of Seoul for 2000 Years, 21, Adapted by author.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이 수립되던 시기,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서울시의 별도 요청에 따라 「수도권 장기 종합교통계획수립」을 작성했다. 여기에서 서울시 가로망 체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으로 현실 여건을 반영하여 격자형 가로망으로 전환을 제시했다(서울특별시, 1978c: 161,165). 이 격자형 가로망에는 보조 가로가 추가 삽입되어 ‘교통단위지구 traffic island’가 구획되도록 검토되었다(그림 17-b). 이는 토지이용계획에 따라 도로로 둘러싸인 일정 단위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가로망을 형성하는 방식이었다. 이 단위는 근린주구 단위와 일치하며, 결과적으로 교통단위지구이자, 근린주구 단위로서 하나의 동질적인 교통 공간을 형성하도록 계획되었다. 주구 내 연결은 보행 및 접근도로를 통해 이루어지며, 주구 간 연결은 근린주구를 위요하는 가로망을 통해 구축되었다. 1978년 계획은 이 연결 체계를 기능별로 구분하여 주요 간선도로-보조간선도로-지구도로-구획도로 체계를 설정했다(그림 17-a). 대생활권은 간선도로로, 중생활권은 보조간선도로로, 소생활권은 지구도로로 연결되는 것이다. 말단 도로인 구획도로는 소생활권 내에서 보행자 및 개인 교통수단만을 허용하여, 근린주구 단위의 동질적인 교통공간 형성을 유도했다. 이와 같은 도로체계는 도시시설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각 시설에 대한 균등한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기반으로 작용했으며,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각급의 생활권이 구체적으로 구성된다.
Neighborhood unit plan complementing the gridbased urban structureSource: SMG, 1978a. Master Plan of Seoul for 2000 Years, 23, 26. (data a,c); SMG, 1978c, Long-Term Comprehensive Transportation Planning for the Greater Seoul Metropolitan Area, 165. (data b).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의 생활권계획은 이전 계획과 달리, 실제 지역을 대상으로 한 물리적 계획으로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13) 이전까지 생활권계획은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도시기능, 가로망, 생활권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한 채 개별적으로 존재했다. 반면, 1978년 계획에서는 생활권계획이 물성을 갖추면서 격자형 가로망계획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었고, 커뮤니티 단위에서부터 도시 전체 골격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통합적 도시구조 체계로 편입되었다.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에서 도시전철(지하철) 순환선 구상이 최초로 포함되며, 이는 이후 격자형 도시기본구조를 작동 가능하게 하는 핵심 교통인프라로 발전하게 된다(그림 18, 19). 이 구상은 앞서 제시된 3핵도시론 논의와 연계되어 검토되었던 순환선 지하철 건설을 현실적 도시개발로서 서울도시기본계획이 이를 추인하여 반영한 것이다.
Construction plan of 2nd line subwaySource: SMG, 1978a, Master Plan of Seoul for 2000 Years, 29, 30.
당시 계획에서는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지하철 2호선을 서울 전 시가지를 포괄하는 순환선으로 설정하고, 지역 중심 및 주요 시설을 우선적으로 연결하는 대중교통 기반으로 간략히 제시하였다. 다만, 이 구상은 본격적인 도시구조 개편의 전략으로까지는 구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해당 순환선 구상은 1980년 및 1984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도시기본구조와 통합된 핵심 전략으로 재정립되며, 이후 다핵도시구조의 물리적 실현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 계기 중 하나로 평가된다(서울특별시, 1980:486-494; 서울특별시, 1984: 303-308).
이 지하철 순환선 계획의 도시구조적 의의는 격자형 도시구조의 한계를 보완하는 데 있다. 격자구조는 도시 전체의 접근성을 높이고 도시 편익시설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데 유리하나, 도시기능의 위계적 배분과 중심지 간 연결성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생활권계획만으로는 다핵구조의 효과적인 실현에 한계가 있다. 이에 지하철계획은 격자형 도시구조에 전철망을 중심으로 교통골격을 보완하고, 이를 통해 도시기능의 위계화 및 복합적 토지이용이 가능해졌다. 기존의 간선도로체계가 계층적 구조라면, 지하철계획은 중심지를 직접 연결하면서 동시에 다방향적 분산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즉, 격자형 도시구조 내에서도 도시핵의 분산화가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특히 지하철 2호선은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유일한 순환 교통망이자 동시에 도심-영등포-영동의 3핵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구조로 계획되어, 격자형 도시구조 내에서 약화된 순환선 기능을 실질적으로 보완하게 된다. 따라서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의 지하철 구상은 당시 도시구조 개편 구상의 일환이자, 이후 다핵도시구조의 실질적 공간구조 전환을 가능하게 한 전초적 계기로 기여한 바가 크다.
Ⅴ. 결 론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은 비현실적인 목표 인구를 설정한 계획적 한계와, 상위계획인 건설부의 《수도권 재배치계획》이 《수도권정비기본계획》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공표되지 못했다.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은 ‘법정계획인 1990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의 모체’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에 해당한다. 이후 1980년대의 도시기본계획은 이를 토대로 발전되었고, 1990년 법정계획은 물론 1997년, 2006년의 서울 도시기본계획까지도 이 계획을 기정계획의 출발점으로 상정했다. 이는 이후의 도시기본계획이 물리적 계획뿐 아니라 도시 기능과 정책 요소들을 보완하며 확장되어 온 것은 사실이나, 도시 공간의 물리적 구조 측면에서는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이 제시한 구상이 중요한 연속성을 가지며 계승·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이 법정계획의 원안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한강 이남을 포함한 오늘날 서울 전역을 대상으로 거대도시 구조 전환을 위한 최초의 종합적 물리적 계획의 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1966년, 1970년의 계획 역시 한강 이남을 포함하였으나, 목표 계획인구 500만 명을 이미 초과한 상황에서 도시 구조의 중심축은 여전히 강북 도심에 편중되어 있었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영동지구를 중심으로 한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기존의 동심원형 도시구조는 사실상 무력화되어 결과적으로 이를 재편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78년 계획은 기존의 단핵 동심원구조를 탈피하고, 다핵도시구조에 부합하는 새로운 도시구조 모형으로서 격자형 도시구조를 제안한 것이다.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이 제시한 ‘다심적, 다각구의 열린 체계를 갖춘 격자형 도시구조’는, 이전의 ‘서울도시기본구조연구’(1977)에서 영향을 받았으나, 당시 서울의 도시 여건을 반영해 재구성된 새로운 도시구조 전략이었다. 1970년대 중반 인구 700만 명을 넘어 1,000만 명을 향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거대도시 서울의 규모와 특성에 부합하는 구조로서, 서울 전역을 인구 100만 단위의 8개 도시핵으로 나누고, 격자형 질서 위에 균형 있게 배치함으로써, 기존 단일 도심에 의존하던 공간 질서를 해체하고자 했다.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이 균형을 도모하고, 한강 축과 산지축을 기반으로 서울 전역에 걸쳐 근린 단위까지 격자형 도시골격을 형성함으로써, 수도권 전체에 열려있는 도시체계를 구상했다. 이는 서울 전 지역을 포괄하는 중심지체계, 가로망계획, 생활권계획이 각각 독립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계된 종합적 물리계획으로 설계되었다.
이 격자형 도시구조는 기존의 도로 직선화 원칙보다 훨씬 과감하고 직관적인 형태로, 도시 다이어그램을 실제 공간에 투영하듯 계획되었다. 기존 도로망과 예정된 계획선 중 일부를 선택적으로 편집함으로써 격자형 구조를 강조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상은 단순한 시각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교통 분석과 가로망 체계 문제에 대한 진단에 근거한 실천 전략으로 당시 무질서하게 이루어지던 도시개발을 정비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이미 부분적으로 진행되던 시가지 격자화를 도시기본계획 차원에서 추인하고 전체 도시구조에 통합하는 틀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통한 서울의 다핵구조 전환은 도시구조의 수동적 진화가 아니라 ‘능동적 조직’에 의한 계획적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이전부터 축적된 다핵 담론과 파편화된 개발 방식 등 현실을 단순히 추종한 것이 아니라 서울의 공간적 과제를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과감하고 창의적인 도시구조를 새롭게 재구성한 시도였다. 이는 단핵 중심의 도시기능집중으로 인해 누적된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함과 동시에 서울대도시권과 더불어 비대해지던 서울을 ‘대서울’로 재구성하려는 장기적 전략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환은 내포적 성장에 머물러 있던 서울의 도시구조를 외연적 확장과 기능적 분산을 포괄하는 새로운 질서로 이행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1978년 이후 서울 도시구조의 형성은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에서 제안된 다핵 격자형 도시구조가 점진적으로 구현되어 온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로망 체계는 1990년대 이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서울대도시권으로 연계되는 “격자·순환형” 구조가 계획 원칙으로 공식화되었으며, 이후 격자형 도시골격이 실질적으로 형성되고 있다.15) 중심지 체계는 2014년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 2030서울플랜》에서는 서울이 기능적으로 3핵의 도시구조이며, 3도심-7광역중심-12지역중심의 구성을 공식화함으로써 1970년대 중반부터 논의된 다핵 도시구조 구상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서울특별시, 2014: 142-150). 또한 생활권 계획은 이후 도시기본계획이 여러 차례 재정비되는 과정에서 시대적 요구와 도시여건 변화에 따라 생활권의 공간 범위, 계획 내용 및 역할이 변화해 왔지만, 1978년 계획처럼 서울 전역을 대·중·소 3단계로 생활권을 구분하여 지속적으로 운영해 왔다. 이 생활권계획은 중심지 체계 및 토지이용계획에 대한 기본방향을 제시하여 서울 전역을 대상으로 공간과 기능이 자족가능한 생활권 단위의 도시구조로 구체화되고 종합화되고 있다(서울특별시, 2014: 172; 양재섭·김인희, 2012: 16-23).
다만, 현재 서울 도시구조는 1978년 계획만으로 설명되기는 어렵다. 당시 이미 구축되어 관성적으로 작동하던 동심원구조와 기존 도시계획,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선형도시 담론 또한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재 서울은 동심원구조와 격자형 구조가 혼재되고, 선형축 발전 구상이 가미된 복합적, 다층적인 도시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은 서울 도시구조를 단일한 형태로 완결했다기보다는, 다핵 도시구조 전환의 결정적 전환점이자 이후 도시공간 구성의 물리적 기반을 제공한 계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1978년 계획수립 무렵까지 서울도시기본계획은 ‘Master Plan’으로 지칭되었으나, 이후 계획들은 ‘Comprehensive Plan’으로 명칭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1978년 계획은 도시기본계획의 물리적 계획 측면에서 최종적 정점이자, 현대 서울 도시구조 형성을 위한 구조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 「1960년대 후반 이후 서울도시구조 형성에 대한 연구」(2024)를 수정·보완하여 작성하였음.
본 논문은 고(故) 최상철 교수님의 생전 인터뷰와 고(故) 강병기 교수님 연구실의 자료 제공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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