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l publication date 16 Mar 2020
근대역사경관의 보존과 집단기억 : 오타루시 산업유산경관을 사례로
Abstract
Analyzing the urban landscape from the perspective of collective memory is important for the preservation and utilization of a historical landscape. Several researchers have interpreted the preservation process of historic landscapes based on collective memory. This study attempts to explain the preservation process of urban landscapes in Otaru-City, where citizens and administrations collided with the theme of landfill and conservation of canals. This study specifically used three metaphors to analyze the urban landscapes in the collective memory study, explaining the characteristics of Otaru’s urban landscape preservation in every aspect of text, arena, and performance. The conclusion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Otaru’s urban landscape preservation is characteristic in that negative industrial heritage is monumentalized by the citizens’ conservation movement. Second, memories of the citizens’ conservation movement led to systems and administration that supported citizen participation, which led to voluntary citizen participation. Finally, in Otaru, the preserved landscape acts as a place for everyday life and as a stage for performance. This conclusion is significant as it outlines the importance of collective memory for the people who want to preserve the urban landscape.
Keywords:
Modern Historic Landscape, Collective Memory, Industrial Heritage, Memorial Landscape, Otaru-City키워드:
근대역사경관, 집단기억, 산업유산, 기념경관, 오타루시Ⅰ.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보존철학의 전개와 함께 유산(Heritage)에 대한 관념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기념비적인 것에 한정되었던 과거의 관점과는 달리, 현대의 유산 개념은 기념비적인 것을 넘어 현대에 와서 재해석된 새로운 가치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경관 연구에 있어서 이러한 관점은 더욱 진전되었다. 건축유산, 산업유산, 자연유산 등이 단독으로 혹은 중첩되어 형성되는 경관은 조성부터 기념비적으로 계획된 경관과 일상적 경관이었으나 후에 특정한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경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상적 경관이 특정한 가치를 획득하여 역사적 경관으로 변모하는 과정에는 다양한 층위의 의미구조가 얽혀 있다. 이러한 경관에는 대체로 집단기억 관점의 해석이 요구된다. 의도되지 않은 기념 경관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경관을 형성해 온 지역 시민과의 관계에 의해 가치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도시와 공간을 다루는 건축·도시 분야에서 기억담론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미 국외에서는 경관연구에 집단기억 관점에서의 해석이 다수 진행된 것과는 대비적이다.1) 본 연구의 목적은 근대역사경관의 보존과 산업유산의 기념화(memorialization) 과정을 집단기억 관점에서 규명하고, 대상지가 되는 오타루 도시경관 보존의 특징과 그 시사점을 도출하는 것이다.
2. 연구의 대상과 방법
연구의 대상은 근대역사경관의 재개발과 보존을 두고 민·관의 갈등이 격심했던 오타루의 도시공간으로 한다. 오타루의 사례는 매우 희소한 것으로 주목된다. 지방정부가 시민들에게 방치된 산업유산으로 인식되었던 운하의 매립 및 6차선 도로 건설을 검토하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반대하며 벌어진 이른바 운하 논쟁은 집단기억 연구자들이 설명하는 기억투쟁의 장(場)으로서의 정치공간적인 경합이었다(Meinig, 1979b; Craik, 1986; Kammen, 1991; Claval, 2007; Bluestone, 2011).2) 운하 논쟁의 결과, 운하의 전면매립과 재개발을 추진하고자 했던 원안은 수정되어 일부만을 매립하고 산책로를 조성하며 운하 주변의 역사적 경관을 보존한다는 절충안이 채택되었다. 또한 이렇게 보존된 운하는 현재에도 시민들의 일상의 풍경으로, 기억 재현과 다시 쓰기의 무대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지닌 오타루의 운하 및 그 주변의 근대역사경관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며, 근대 오타루 도시공간의 형성기인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연구의 방법은 기억이론에 대한 선행연구 검토를 통해 경관연구와 집단기억 이론에서의 메타포 관점을 분석의 틀로 설정하였다. Dwyer and Alderman(2008)은 기념적 경관에 담긴 기억의 작용 과정을 세 가지 메타포와 분석적 질문들을 제시함으로써 경관 연구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검토 자료는 오타루에 대한 국내 및 일본의 연구자료와 오타루시 생산자료, 지역신문 등의 문헌을 분석하였으며, 도시공간을 구성하는 역사적 건축물과 산업유산 등에 대한 건축적 분석, 그리고 대상지 관계 공무원 및 일반 시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보완하였다.3)
3. 선행연구 분석
도시경관을 집단기억-장소기억, 문화기억을 포함하여-관점에서 다룬 국내의 연구는 크게 지리학, 조경학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박은실(2007)은 용산의 도시화 과정을 기억요소의 표현 관점에서 분석하였으며, 권영재(2016)는 서울시 미래유산을 중심으로 장소기억기반 공간재생에 대해 다뤘다. 김지나 외(2017)는 기억이 단절된 구 철원 시가지의 장소기억을 현지인 인터뷰, 지방정부 생산 자료 등을 대상으로 검토하여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전종한(2009, 2013)은 장소기억을 키워드로 종로 피맛골과 충무로·명동 일대의 다층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국내의 연구자들 중 기억문화의 관점에서 도시공간을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자는 한지은(2008)으로, 상하이의 구 조계지역에서 식민지배라는 부정적 기억 유산들이 노스탤지어라는 긍정적 기억으로 변모하며 경제적 장소판매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오타루의 도시경관에 대해 다룬 국내 논문으로는 김영숙(2013)의 개관적 성격의 연구가 있었으며, 조아라(2007), 문휘운·박태원(2015)의 사례연구에서 오타루가 사례 중 일부로 포함된 바 있다. 일본 현지에서 오타루의 도시경관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오타루 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한 현지 연구자들의 이슈 소개 영역의 연구들을 비롯해 Komaki(Komaki, 1999, 2000, 2002, 2003, 2010)와 Komaki et al.(2015)의 오타루 건축유산에 대한 축적된 연구, Shiraki et al.(2004, 2007, 2008)의 운하 주변 건축유산의 전용에 대한 일련의 연구 등이 있다.
산업유산경관의 보존이라는 관점에서, 산업유산에 대한 인식 부족과 개발압력 등으로 인한 근대건축 유산의 멸실과 그 보존 방법에 대해 분석한 연구는 다수 진행되었다. 강동진·이순자(2008)는 1970년대 이후 급속히 사라진 근대역사문화환경에 대해 분석하며 그 활용방법에 대해 고찰하였고, 유형식·김도년(2010)은 철거형 재개발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근대건축을 활용한 도시설계수법을 제안하였다. 특히 산업유산에 대한 장소성 및 기억관점에서의 접근은 Mah(2012) 및 Edensor(2005)의 연구가 주요하다. Edensor(2005)는 쇠퇴한 산업도시의 경관은 가치가 없다는 상식에 반박하며, 기억경관(memoryscape)의 개념을 제시해 경관에 새겨진 역사적, 사회적, 물질적, 미적 가치를 환기하였다.
Ⅱ. 기억담론과 도시경관
1. 집단기억과 공간
집단기억, 기억문화, 공간기억 등으로 불리는 역사에 대한 대안적 모색은 Maurice Halbwachs(1980)의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을 시작으로 Jan Assmann(1995), Pierre Nora(1989) 등으로 이어진다. Maurice Halbwachs(1980)는 개인적 기억과 집단적 기억을 구분하지만, 실제로 개인적 기억이란 가능하지 않으며, 인간은 기억의 사회적 구성틀을 통해 기억하므로 기억이란 집단적이라고 말한다. 필연적으로 타인의 시각을 통해 사건을 이해하고 장소를 바라보는 개인들은 해석의 관점을 타인에게서 빌려오므로 속해 있는 공동체를 통해 기억행위를 지속하며, 따라서 공동체에서 벗어난 개인에게 기억이란 가능하지 않다고 회의한다. 또한 그는 집단이 속해 있는 공간에 대해서도 주요하게 다뤘는데, 공간적 구성틀의 물리적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집단기억의 성격을 서술함으로써 차후 도시공간의 연구자들에게 해석의 장을 열어 주었다.
Maurice Halbwachs의 연구 이후 그의 집단기억 개념의 한계를 지적한 Jan Assmann(1995)은 문화적 관점에서 기억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집단기억이 세대를 넘어 계승될 수 있다고 하는 기억문화적 관점을 제시하였고, Pierre Nora(1989)는 Maurice Halbwachs의 공간적 구성틀을 넘어 기억의 터(Les lieux de mémoire)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기억문화의 이론적 틀로 역사와 도시를 사유하는 기념비적 연구를 남겼다. 이들의 연구를 이어받아 Jeffrey K. Olick(Olick et al., 1998; Olick, 1999)은 그간의 기억문화 연구를 종합하여 발전시켰다.
2. 도시경관과 집단기억 연구의 방법틀 설정
국외에서는 집단기억의 이론으로 도시공간을 분석하는 연구가 상당히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Stangl(2008)은 전후 베를린의 기억과 경관을 토속건축(vernacular)과 기념비(monumental)의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드러내었고, Mitchell(1998)은 1970년대 철거된 몰타(Malta) 도시 공동체에 대한 현지인들의 기억을 조사해 몰타 도시공간의 향수적 건축과 지역 정체성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Charman(2015)은 탈산업화된 도시 멜버른 교외의 기억 공간 프로젝트를 조사하여 집단기억이 반영된 기억 공간의 설정 문제를 다뤘으며, Milligan(2007)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노예 관련 건축들의 보존 논쟁을 통해 보존주의와 역사적 건축물 간의 관계에 대해 논했다.
특히 Dwyer and Alderman(2008)은 기념 경관(memorial landscape)을 분석하는 해석의 틀을 제시하였는데, 문헌검토를 통해 그간 연구자들이 도시공간을 집단기억의 관점에서 해석해온 메타포를 크게 ‘텍스트(text)’, ‘아레나(arena)’, ‘퍼포먼스(performance)’의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Figure 1> 참조). 텍스트는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서술하는 것으로 경관 그 자체를 의미하며, 아레나는 투쟁의 과정으로 그 경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은유한다. 퍼포먼스는 경관을 무대로 벌어지는 기념, 제의, 축제 등의 행사로 재현과 기념으로서의 기억행위를 나타낸다. Dwyer and Alderman(2008)은 이 관점에서 기념 경관을 해석하는 질문의 리스트를 나열하고, 이러한 분석을 통해 경관을 개방된 상징체계로 해석하는 관점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도시경관을 이해하려는 연구자들에게 큰 해석의 기틀을 놓았다고 평가된다.
본 연구에서는 오타루의 근대역사경관을 분석함에 있어 Dwyer and Alderman(2008)의 분석틀을 사용한다. 다음 장에서는 오타루의 근대역사경관 형성과 운하논쟁의 과정 및 결론을 분석하고, 4장에서는 Dwyer·Alderman의 메타포로 오타루 근대역사경관의 보존 체계를 해석한다. 이 과정을 통해 오타루 근대역사경관 보존의 특징을 규명하고 탈산업화 과정에서 그 가치를 상실해 가는 산업유산의 기념화 과정을 서술한다.
Ⅲ. 오타루의 근대역사경관
1. 근대역사경관의 형성
오타루시는 일본 홋카이도의 북서부에 위치한 인구 117,137명(2018년 8월 31일 기준)의 중도시로, 2017년도 관광입객수를 800만 명을 돌파하며 인구대비 관광객 수가 80배에 가까운 대표적인 일본의 관광도시로 알려졌다(Otaru, 2019). 오타루는 메이지 시대에 집단 이주가 행해진 도내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에도막부 말기부터 메이지에 걸쳐 각지로부터의 이주자가 이입되어 마을이 형성되었다. 북쪽으로 우리나라 동해를 면한 완만한 해안이 발달한 오타루는 자연스럽게 어업이 성행하게 되었고, 특히 청어의 대규모 도래지였던 오타루에는 대규모 어업 관련 건축 유산이 다수 건설되었다(<Figure 2> 참조).
홋카이도의 개척기에 최대의 산업은 어업이었다. 메이지 20년대(1887-1896)에는 청어잡이 어업인구가 전 도의 30%에 이르렀고, 수많은 어가 마을이 동해 연안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특히 청어잡이 우두머리들의 거처는 매우 크고 웅장한 건축으로 일본 내 어가주택 중에서도 주목되어 왔다(Komaki et al., 2015). Komaki et al.(2015)는 홋카이도 어가주택의 현황을 조사하고 지역마다의 특성을 분석하였는데, 그가 조사 대상으로 한 도내의 어가주택 285건 중 오타루 주변인 시리베시(後志)지역에 27건이 남아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현재 오타루의 시내에 남아있는 어가주택 중 오타루시지정역사적건조물 등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구 시라토리케번옥(旧白鳥家番屋, 1877, <Figure 3> 참조), 청어어장건축(にしん漁場建築, 1897), 구이노마타저택(旧猪俣邸, 1900, <Figure 3> 참조) 등이 있다. 저택으로 구분되었지만 어업으로 크게 번성했던 아오야마가의 옛 별장건축(旧青山家別邸, 국가등록유형문화재) 등 어업인의 주택건축과 풍어를 기원했던 신사인 스이텐구 본전 및 배전(水天宮本殿、拝殿, 1919, 최초의 본전은 1859에 창건, 제50호)까지 포함하면 어업 관련 건축은 그 수가 더욱 늘어난다. 이 청어어장 관련 건축은 오타루의 현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슈쿠쓰(祝津) 지역에 다수가 분포해 있는데, 이는 어장과 근거리에서 어업활동을 조망해야 하는 어가주택의 특징에 기인한다(Otaru, 2018).
어가주택은 지리상의 입지적 특징 외에도 입면과 의장, 거주형식 등에도 일련의 특징을 보인다. 먼저 입면상 안채 중앙에 망루를 두어 앞바다의 어업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눈에 띈다. 외관은 주로 목재 비늘판벽으로 하였지만 고급 주택의 경우에는 회칠로 마감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두머리와 일반 어부가 같은 건물 내에 기거하였지만 공간은 구분되었고, 안채에는 도코노마(床の間) 등이 마련된 와시츠(和室)가 있어 접객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어업 관련 건축은 청어어장의 사양과 함께 빠르게 감소하였으며, Komaki et al.(2015)의 연구에서도 대상으로 삼은 시리베시의 어가주택 27건 중 16건만이 현존하고 있다고 전한다.
홋카이도 개척사를 보면 1876년 오타루의 항만 건설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오타루의 구릉 기복이 심한 오타루의 특성상, 해안 부근에도 평지가 좁아 항만 시설을 세우기 위해서는 해안을 매립해 평지를 확보해야 했다. 이에 1876년 테미야 인근을 매립하여 부지를 확보하였고, 그 끝에 부두를 조성해 목제 부두 30칸, 창고 1동, 초소 1채를 건축하기로 계획하였다(Komaki, 1999).
메이지 정부는 오타루를 삿포로의 공급기지로 고려하여 항만 정비 및 철도부설 등의 계획에 착수하였다. 특히 1880년 소라치(空知) 지구에서 발견된 막대한 매장량의 석탄을 운송하기 위해 오타루의 테미야-삿포로 간 관영 호로나이(官営幌内) 철도를 부설하였는데, 이 석탄은 오타루로부터 배로 혼슈(本州)로 운송되어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항만의 본격적인 발전은 1908년 오타루 북방파제의 준공에 의하였으며, 이에 오타루는 해운과 어업의 융성이 최고조에 달했다(Otaru, 2019).
오타루의 철도 관련 역사경관으로는 구 테미야선(手宮線)과 구 테미야 철도시설(旧手宮鉄道施設, 국가지정중요문화재, <Figure 4> 참조) 등이 있다. 테미야선은 석탄산업의 사양화에 따라 1962년 여객영업이 폐지되었고, 1985년에 최종적으로 폐선되었다. 그러나 오타루시는 2001년과 2007년에 걸쳐 테미야선의 용지를 취득해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의 모색을 꾀하고 있다(Otaru, 2010, <Figure 4> 참조).
북방파제의 준공 이후 이어진 도시의 호황은 경제성장을 일으켜, 철도나 선박으로 운반되는 물자의 보관을 위해 항만 주변에 오타루 특유의 목골석조 창고들이 늘어서게 되었다(Otaru, 2019). 창고의 기능을 위해 내구성을 높이고 방화에 대비한 석조의 벽체와 가벼운 목골 지붕구조가 조화를 이룬 목골석조 창고군(群)은 지금도 오타루 내 문화유산 중 가장 다수를 차지해 오타루의 주요한 역사경관이 되고 있다.
점차 해양교역량이 증가하며 수많은 배가 오타루에 하역하게 되자, 시는 1914년 바지선의 하역작업 효율화를 위해 대규모 수로 공사를 시행하였다(Honda, 2014). 1923년 완공된 전체 길이 1.3km, 폭 40m 수로가 현재의 운하이며, 운하를 드나드는 수많은 선박과 늘어선 창고군의 풍경은 항만도시로서의 오타루 역사경관을 대표하는 주요 유산이라 할 수 있다(<Figure 5> 참조).
오타루 운하는 러일전쟁 이후 사할린과의 교역거점이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오타루 상업활동의 근간이 되었다(Honda, 2014). 상업도시로 번성했던 오타루에는 다쓰노 긴고(辰野金吾)가 설계한 일본은행 구 오타루지점(日本銀行旧小樽支店, 1912) 등 많은 은행 건축들이 지어졌다. 특히 일본은행, 미츠이은행(旧三井銀行小樽支店, 1927), 홋카이도은행(旧北海道銀行本店, 1912), 미쓰비시은행(旧三菱銀行小樽支店, 1922), 야스다은행(旧安田銀行小樽支店, 1930) 등이 늘어섰던 이로나이(色內) 지구는 ‘북의 월가’라고 불릴 정도로 금융 관련 건축으로 번성하였다(<Figure 6> 참조).
오타루의 호황은 다이쇼 시대(1912-1926)를 거쳐 쇼와 시대(1926-1945)까지 이어졌는데, 당시 오타루는 북일본 제일의 경제도시로 불릴 정도가 되었다. 오타루시의 자료에 의하면, 1923년 오타루 시내에 출점한 은행의 수는 25개소에 이르렀다고 한다(Otaru, 2019). 운하 인근 시가지에 밀집한 은행 건축들은 현재에도 문화재로 지정된 12건이 남아있으며, 오타루의 근대역사경관을 형성하는 주요 문화유산이다.
2. 운하논쟁과 민관의 대립
운하 완공 12년 후인 1935년, 매립된 해안선 인근에 부두공사가 시작되었다. 부두가 완성된 1940년부터 대형 선박은 부두에 직접 계류하여 하역작업을 진행하게 되며, 운하의 역할은 서서히 저하되기 시작했다(Muraue, 2018). 1940년 완공된 제1호 부두에 이어 잇달아 부두가 정비되면서 바지선의 수도 감소하였다. 부두 완성에 따라 바지선으로부터의 하역 노동을 담당한 인부들의 수도 급격히 줄었는데, 1937년 2,421명이었던 인부의 수는 1957년 1,846명으로 감소하였다(Shimura, 2014).
바지선이 사라진 운하에는 수질 오염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오타루시 중남부에 하수도가 정비되는 1984년 이전까지 오물 및 생활 배수가 흘러들던 운하는 물이 정체되자 오니(汚泥)가 급격히 쌓이기 시작했다(<Figure 7> 참조). 사람들에게 운하는 점차 더럽고 쓸모없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처치 곤란의 짐짝이 되어버린 운하는 1966년, 국도 5호의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이를 매립하고 그 위에 왕복 6차선 도로를 건설하겠다는 도시계획의 무대가 된다(Shimura, 2014).
운하 매립안은 폭 약 40m, 길이 약 1,140m의 운하를 전면 매립하고 기존의 도로와 통합해 6차선 도로를 건설하며 상업·관광시설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1973년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小樽運河を守る会)’을 결성하여 대응했지만, 1976년 도시계획으로 운하 매립의 구체적인 안이 결정되었고, 1981년 오타루시의회에서 운하 매립 및 도도(道道) 임항선 건설 계획이 가결되었다(Muraue, 2018).
운하의 매립안에 반대한 운하보존운동은 공사 과정에서 1971-1973년간 아리호로쵸(有幌町)의 석조창고군이 해체되는 것을 시민들이 목격한 것에 의해 본격적으로 촉발되었다. 행정측은 사양화된 산업을 과감히 해체하고 운하를 매립해 도로정체 문제를 해소하고 상업시설과 관광시설을 짓는다는 구상을 추진하였지만, 시민 측은 그들의 일상 공간이었던 운하의 경관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1973년 결성된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은 약 10년에 걸쳐 운하 논쟁을 이끌어 간 중심이 되었다(Otaru, 2019).
운하 보존파의 움직임으로 시는 1979년 6월 운하의 전면매립을 주장했던 당초의 계획안을 수정해, 남쪽 운하의 매립 폭을 현행 40m의 절반인 20m로 조정하고 절반을 보존하는 절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 등 운하 보존파는 이 제안을 극렬히 거부하며 운동을 지속해 나갔다(Shimura, 2014).
최초 24인으로 구성된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은 지속적으로 운하의 보존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각종 전단지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방식으로 시민 각층에 의견을 전달했다. 1983년 배포된 전단지에 의하면, 운하 보존파는 운하의 반절을 매립해 6차선의 도로를 조성하겠다는 매립파의 의견을 반박하며 현존하는 운하와 운하변을 달리는 2차선의 도로를 유지하고, 석조창고 뒤편의 해안 측으로 4차선의 도로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운하를 보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Figure 8> 참조). 운하 주변의 도로정체 문제로 6차선의 도로가 필요하다면 나머지 4차선의 도로를 해안 측으로 우회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운하 보존파는 1983년 7월 자체적으로 실시한 교통량 조사를 통해 운하 주변의 교통량은 4차선 도로로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은 운하 보존 10만 서명운동을 펼쳤으며, 같은 해 10월 12일 10만 명의 서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오타루시는 자체 공보물을 제작해 보존파의 우회도로안을 반박하였고, 오타루 운하에는 6차선의 도로가 필요하며 보존파의 4차선 우회도로 건설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Figure 9> 참조). 보존파와 매립파의 갈등은 계속해서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특히 이 갈등의 과정에서 오타루의 보존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개되었다. 전국적인 운하논쟁의 확산에는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의 2대 회장인 ‘미네야마 후미(峯山冨美)’ 여사의 호소가 크게 기여했다. 1978년 모임의 회장에 취임한 미네야마 여사는 당시 60세의 고령이었으며, 오타루시립 키타테미야 소학교(小樽市立北手宮小学校)의 교원이었다. 그는 오타루의 경관에 대한 강한 긍정을 바탕으로 지역성과 경관의 활용에 집중하여 대중에게 강력히 호소했다(Mineyama, 2008).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의 지도부였던 오가와라 타다시(小河原格) 씨는 인터뷰에서 미네야마 여사를 회고하며 “전국 거리 세미나”를 통해 대중에게 감동을 일으켜 전국 각지에 운하논쟁을 불러일으킨 리더였다고 묘사하였다. 그는 미네야마 여사를 ‘지방의 시대’라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고 운하 보존운동을 지방 도시의 시민운동인 동시에 전국성과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한 인사였다고 기억했다. 이와 같은 지역민 중심의 시민운동은 오타루 운하보존운동의 전국적인 확산과 시민의 결집을 유도하는 데에 기여했다. Ando(2014)가 지적한 바와 같이, 운하보존운동의 고조를 만들고 보존운동의 전환점을 만든 것은 미네야마 여사를 비롯한 청년들의 도시경관에 대한 강한 긍정과 애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운하의 반절을 매립한다고 하는 1979년의 절충안에도 불구하고, 운하 매립파는 1981년 세이부 유통 그룹을 사업 주체로 하여 운하 주변의 창고를 2, 3동만 남기고 모두 철거한 뒤 그곳에 상점가와 식당, 고층 호텔과 스포츠 시설 등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안은 보존파의 세이부 그룹에 대한 꾸준한 설득을 통해 무산되었다. 1982년, 세이부 유통 그룹의 대표는 기자 회견을 통해 운하의 보존이 없다면 세이부는 협력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자 회견에도 불구하고, 시는 1983년 11월 12일 운하에서 매립을 위한 공사에 착수하였다(Shimura, 2014).
운하 논쟁을 마무리지은 것은 당시 홋카이도 도지사였던 요코미치 타카히로(横路孝弘) 지사였다. 지사는 매립파와 반대파를 중개하며 운하 매립은 방침대로 속행하고, 반절 남겨지는 운하지구와 항만을 포함해 석조창고군 등의 역사적 건축물의 보존을 검토한다는 절충안을 선언하였다.
운하 폭의 반절을 매립하고, 기타 석조창고군 등 역사유산을 보존한다는 절충안은 매립한 일부를 산책로로 정비하고 가스등 조명을 설치하는 등의 구체적 정비안으로 이어졌다. 시의 시목(市木)인 자작나무를 표상한 청동 담장과 가스등, 박석 포장된 운하변의 산책로 등은 현재 오타루 경관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1986년 5월 완공되어 시민들의 일상 풍경으로 기능하였다. 운하와 석조창고군이 어우러진 운하의 풍경(<Figure 10> 참조)은 운하 논쟁으로 얻은 전국적인 인지도와 함께 오타루의 관광객 수를 가파르게 증가시켰다. 전국적인 물류 거점으로서의 항만도시는 산업의 사양화를 거쳐 산업유산을 간직한 관광 도시의 상징으로 전환되었다(Shimura, 2014).
Ⅳ. 오타루의 근대역사경관 보존
1. 역사적 건축물
Azaryahu and Foote(2008)는 역사적 공간이 서술매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다른 매체들과는 달리 서술 방식이 공간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서술이 연장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지만, 기본적으로 역사적 공간 혹은 경관이 집단기억의 서술 기능을 수행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Dwyer and Alderman(2008)의 역사경관을 해석하는 기억의 메타포 중 텍스트로서의 메타포는 일반적으로 경관을 구성하는 유산들에 대한 진술로 표현된다. 대표적인 것이 역사적 건축물들에 놓인 안내판이나 리플릿에서 설명하는 정보들이다. Lowenthal(1979)은 ‘서술이 없다면 대부분의 방문객은 그것이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명칭, 사진, 기념품, 안내 책자 등의 서술을 통해서만 부각될 수 있다’고 하였다.
보존된 건물이나 풍경들은 사실 그들 자신의 역사를 서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들은 어떤 형태의 역사적 해석에 의존한다(Bluestone, 2011). 서술은 역사적 경관 보존의 핵심이며 역사적 장소와 관련된 서술은 그것들을 보존할 가치가 있게 만든다(Bluestone, 2011).
오타루의 역사적 건축물은 크게 국가지정유형문화재(2건), 홋카이도지정유형문화재(1건), 오타루시지정유형문화재(2건), 국가등록유형문화재(2건), 일본유산(6건), 그리고 오타루시지정역사적건축물(79건)로 구분된다.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오타루시지정역사적건축물로, 지정 해제된 건축물을 제외하고 총 79건이 지정되어 있다(Otaru, 2019). 이 중 중복된 것을 제하고 단일 지정되었으나 여러 건축이 함께 지정된 것을 세분한 총 90건의 건축 유산을 대상으로 기존 건축 용도와 현재 건축 용도를 현지조사 및 인터뷰 등을 통해 추적 조사한 결과는 <Table 1>과 같다.
총 90건의 건축유산의 기존 용도를 보면, 창고건축이 전체의 21.1%에 달하는 19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상점건축 15건, 은행 건축 12건 순이었다. 과거 상업도시로 번성했던 오타루의 일면이 건축의 용도에서도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현재의 건축 용도를 살펴본 결과, 건축 용도 변경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것은 은행 건축으로 전체 12건 중 12건 모두가 은행에서 다른 용도로 전환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양식 권위건축 양식으로 건설된 은행 건축들은 현재 박물관, 음식점, 카페, 상점, 버스 터미널 등으로 다양하게 재이용되고 있었는데, 대부분 관광산업과 관련된 도시의 랜드마크로 활용되고 있었다. 창고건축 역시 전체 19건 중 13건이 창고에서 다른 용도로 전환되었는데, 운하 연안에 늘어선 창고건축 또한 음식점, 상점, 카페 등으로 재이용되어 산업도시에서 관광도시로 전환된 오타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본래 상점가로 사용되었던 건물들은 다수(7건, 60%)가 용도를 변경하지 않고 기존의 상점 영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종교건축은 단 한 건도 용도변경 되지 않고 계속해서 종교시설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시청사, 역사, 행정구역의 청사 등 역시 기존의 용도를 그대로 이어오고 있었다. 이를 종합하면, 과거 상업도시에서의 역할을 수행했던 창고, 은행 등의 건축은 대부분 용도가 변경되었지만, 현재에도 활용 가능한 상점 건축 또는 도시의 성격과는 별개로 유지되어야 하는 관공서, 종교시설 등은 대체로 기존의 용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축유산의 현재 활용 현황과 개방성을 살펴보기 위해 현재 용도를 관광 가능한 상업 시설(카페, 상점, 호텔, 식당 등)과 공공시설(시청사, 역사, 터미널 등), 박물관/미술관, 종교시설, 개방형 문화재 등과 개별 관광이 불가능한 창고, 업무 시설(사무실, 공장, 병원 등), 사적 시설(살림집 등), 폐쇄형 문화재 등으로 구분하면 <Table 2>와 같다.
현재 역사적 건축물 90건 중 대다수인 69건(76.7%)은 관광객의 접근과 출입이 가능한 용도로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그중 35건의 건물이 카페, 음식점, 호텔 등의 상업시설로 활용되고 있어 가장 다수를 차지했다. 관광객의 접근성이 낮은 나머지 21건의 건축들도 단순 문화재로 지정된 뒤 방치된 것이 아니라, 창고, 사무실, 공장, 저택 등으로 활용되고 있어 전체적으로 건축 유산의 활용도가 매우 높은 것이 오타루 건축 문화재 관리상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각각의 문화재 지정 건축물에는 모두 일본어, 영어, 한국어 등 5개 언어로 작성된 문화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등(<Figure 11> 참조), 텍스트의 메타포 관점에서 보자면 서술과 개방 양측면에서 매우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2. 경관지구와 규제
Stangl(2008)은 현대의 집단기억 관점의 도시연구가 기념비적인 것에 치우쳐져 있다고 주장하며, 토착적인 것(vernacular)과 기념비적인 것(monument) 사이에는 집단기억을 매개로 한 유동적인 관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즉, 어떤 토착적인 것은 기념비화 되고 어떤 기념비적인 장소들은 토착화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집단기억의 투영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Dwyer and Alderman(2008)은 이를 ‘아레나(arena)’의 은유로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레나의 은유를 활용해 경관에서 일어난 과거를 대변하는 정치적 투쟁과 논쟁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다. Bluestone(2011)은 도시 역사에서 보존을 두고 일어난 대립구도를 분석하는 것은 건축과 도시주의와 역사적 보존의 역학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킨다고 보았다. Kammen(1991)은 기억 경관에 대한 서술에서, 기억 경관은 정치경합적인 장소라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전통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3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타루의 경관 보존은 기억 투쟁의 과정이었다. 쇠퇴한 산업유산에 대한 재개발을 둘러싼 운하보존 운동이 촉발된 것은 그것들이 위대한 기념비여서가 아니었다. 그것들이 시민들의 일상의 기억과 연관된 경관이기에, 그것들을 보존하는 것에 행정부나 학자가 아닌 시민이 참여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 오타루의 경관 보존에는 행정부의 규제 장치뿐만 아니라 시민들과의 소통 창구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지역 주도의 경관보존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보존주의자들은 역사적 장소 주변에 지어진 새로운 건물들과 경관의 형태와 성격을 규제하려고 시도한다(Bluestone, 2011). 장소에 대한 기억은 외부에서 보이는 지역의 경관 특성에 어느 정도 의존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관적 특성을 규제하는 것은 기억을 보존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Meinig, 1979a).
운하보존운동은 1983년 홋카이도 최초의 경관조례인 ‘오타루시역사적건축물 및 경관지구 보전조례’의 제정을 이끌어 냈다. 운하보존운동이 전개되기 이전 이미 운하 인근의 창고 일부가 철거되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경관보전조례는 전적으로 시민에 의한 기억투쟁의 결과로 제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경관보전조례 이후 1992년 ‘오타루의 역사와 자연을 살리는 마을만들기 경관 조례’가 제정되었고, 1996년에는 ‘오타루시 경관 디자인 매뉴얼’을 책정하였다. 이 디자인 매뉴얼의 책정 과정 역시 경관심의회 의결뿐만 아니라 시민 설문조사 등을 수렴하는 등,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정책이었다(Otaru, 2019). 이후 2008년 ‘오타루시 경관계획’을 책정하고 ‘오타루시 옥외광고물 조례’를 제정하여 구체적인 경관정책을 수립하였다(Otaru, 2009).
현재 오타루의 역사경관구역은 항만 인근 시가지를 중심으로 15개 구역으로 세분되어 있다(<Figure 12> 참조). 주요 지구로는 테미야선 철도를 중심으로 산업 경관이 펼쳐진 ‘테미야 철도시설 지구’, 오타루 운하를 중심으로 한 수변 경관으로 구성된 ‘오타루 운하 북쪽 지구’ 및 ‘오타루 운하 남쪽 지구’, 오타루의 금융관련 시설들이 집중되었던 ‘일본은행지구’ 등이 있다(Otaru, 2009).
오타루 역사경관구역은 높이, 형태 및 의장, 소재, 색채, 기타 옥외 설치물 등에 대한 구체적인 행위제한 기준이 제정되어 있다. 세부 기준은 15개 구역의 경관 특성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었으며, 대표적으로 오타루 운하 남쪽 지구의 행위제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타루 운하 남쪽 지구는 오타루를 대표하는 운하와 석조창고군의 경관을 보전하는데 힘쓰며 이들을 배려하는 거리 수준의 향상에 노력한다는 목적을 갖는다. 구역 내 건축물의 높이는 17m 이하로 제한하며, 지붕 끝단의 높이는 5m로 한다. 높이뿐만 아니라 거리 경관의 연속성을 고려해야 하며, 주차장 등의 시설을 설치하는 경우에는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식재를 통해 그 연속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 또한 지붕 구배, 외벽의 형태, 개구부, 지붕과 외벽 등의 재료와 색채(<Figure 13> 참조)까지 한정하는 등, 매우 구체적인 행위제한을 두고 있어 운하 지구의 경관 보존에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규제는 시민주도의 운하보존운동 과정에서의 강력한 경관 보존의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운하보존운동이 오타루 경관 행정에 미친 영향은 강력한 규제뿐만 아니라 시민 의견의 소통 창구를 열어두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도시계획제안제도는 그 대표적인 행정제도로, 주민 주도의 마을만들기에 대한 적극적인 행정부의 지원 제도라 할 수 있다.
도시계획제안제도에 따르면, 토지의 소유자나 마을만들기 NPO 법인 등 일정한 요건을 채우는 주체는 오타루시에 도시계획에 대한 제안을 할 수 있다. 시는 접수된 제안을 검토해 도시계획에 대한 법령의 기준, 마을만들기의 방침, 토지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도시계획을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제안 가능한 영역은 시에 결정권한이 있는 도시계획 전반으로, 시가화 구역 및 시가화 조정구역의 구분, 용도지역 등 토지이용 전반, 도로, 공원 등의 도시시설 검토 등이 있다.
3. 축제와 마을만들기
Dwyer and Alderman(2008)에 의하면, 일부 집단기억 연구자들은 집단기억과 도시공간에 대한 ‘퍼포먼스’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퍼포먼스의 은유는 의식, 제례, 축제, 대회 등 기념 경관이 무대역할을 하는 방식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또한 그들은 유산 관광(heritage tourism)에 있어 퍼포먼스가 특히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Nas(1998)는 도시의 의식은 시간을 압축하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표시하며, 주체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퍼포먼스는 도시 정체성을 형성하며 도시 마케팅과 강하게 연결된다.
Edensor(2005)는 도시가 사람들이 공간에서 공연하는 장소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도시 공간의 형태를 무대로 간주하면서, 무대의 본성은 특정한 종류의 공연들을 장려하고 그 무대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Winter(2007)는 특히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새해 축제를 통해 관광객과 시민들이 교류하고 기억으로 매개되어 유산이 살아 있는 기억의 역사적 장소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축제와 같은 퍼포먼스는 과거의 ‘죽은’ 경관을 ‘살아있는’ 유산으로 거듭나게 한다.
오타루의 제례는 메이지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의 제례는 청어 어업 관계자나 오타루를 기항지로 하는 선주들의 풍요와 안전을 위한 것들이 많았다. 오타루의 제례가 여름에 많은 것은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오타루의 스이텐구(水天宮)나 이나호(稲穂) 지구에 있는 류우구신사(龍宮神社) 등은 이러한 어업 관련 제례와 관련된 종교시설로 현재까지 남아 있다(Otaru, 2019).
전통적인 제례뿐만 아니라, 오타루의 산업유산을 배경으로 하는 다양한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그중 일부는 명백히 오타루의 역사적 경관을 지키기 위한 행위로 시작되었는데, 1978년 7월 지역민들 주도로 시작된 ‘포트 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포트 페스티벌은 항만 건설로 더 이상 쓸모없게 된 바지선을 활용해 바지선 위에서 콘서트와 바자회 등을 개최하고 비어홀을 개설하는 등 다양한 행사를 주최했다(<Figure 14> 참조). 방치되어 오염된 운하 위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이 페스티벌은 17년간 지속되었다(Shimura, 2014).
운하와 그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시작된 포트 페스티벌은 운하를 배경으로 한 두 축제로 이어졌다. 여름의 ‘오타루 우시오마츠리(おたる潮まつり)’와 겨울의 ‘오타루눈빛거리축제(小樽雪あかりの路)’다(<Figure 15> 참조). 이 두 축제는 모두 기업과 학교, 마을 모임 등 시민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시 행정부와 시의회 등이 제도적·행정적 지원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눈빛거리축제에는 민간 교류의 일환으로 일본 전국 각지의 도시에서 모인 청년들을 비롯, 중국과 한국의 자원활동 단체도 매해 참가해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Yoda, 2017). 두 축제는 운하보존운동을 재현하지는 않지만, 오타루의 역사적 경관을 무대로 시민들의 일상의 기억이 반복해서 재현된다는 점에서 운하 경관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이처럼 연례적으로 개최되는 축제 외에도, 운하 및 그 주변 지역에서는 일상에서의 기억참여 행위가 지속된다. 시에서 고용한 오타루 시티투어를 겸하는 인력거꾼은 오타루 역사경관지구 주변을 운행하며 관광객들에게 오타루의 역사유산들에 대한 설명과 그에 얽힌 일화를 설명한다. 보존된 운하를 배경으로 운행하는 오타루 크루즈는 관광객들에게 운하보존운동의 과정과 그로 인해 남겨진 운하 주변 석조창고군에 대해 자세히 안내한다(김영숙, 2013; <Figure 16> 참조).
또한 2006년 5월 설립된 ‘오타루 안내인’ 제도는 오타루상공회의소, 오타루 관광협회, 오타루시 등 산학관(産學官)이 실시하는 일종의 자격 검정 제도로, 일반 시민의 기억참여 행위를 고취시키기 위해 마련되었다. 오타루 안내인 검정시험은 2007년 처음 시작되었으며, 1급, 2급, 마이스터 검정까지 총 세 단계로 구분되어 있다. 주최 측이 밝히는 이 검정시험의 목표는 ‘오타루의 관광산업을 지탱하는 인재의 양성 및 시민 차원에서의 대접하는 마음의 고취’라고 밝히고 있는 만큼, 오타루 시민 차원에서의 도시 경관 기억 참여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우시오마츠리와 눈빛거리축제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관광객을 안내하고, 산학관이 주최하는 다른 행사들에서 가이드 역할을 수행한다(Konno, 2009).
Ⅴ. 오타루 근대역사경관 보존의 특징
1. 쇠퇴한 산업유산의 기념화
Milligan(2007)은 역사적 보존이 본질적으로 집단적 기억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그는 다양한 단체들이 집단의 과거와 연계된 것으로 여겨지는 역사적 건조 환경에 대한 인식을 추구함으로써 역사적 보존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다룬 뉴올리언스의 노예 숙소 등은 부정적 유산이었지만, 그 역시 집단기억과 관련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보존의 대상으로 검토할 수 있다(Milligan, 2007). 한지은(2011) 역시 식민지배의 부정적 기억을 담은 상하이의 역사경관이 자본의 힘과 문화적 상징성의 변화에 의해 장소판매의 적극적인 무대로 변모하는 과정을 서술하였다. Mah(2012)는 탈산업화 과정에서 산업도시의 폐허화 과정에는 공동체, 집단기억, 주민들의 이야기가 관련되어 있다고 정리하며 사례연구를 통해 이를 추적하였다. 그는 산업 폐허는 단순히 물리적인 층위가 아니라 창조와 파괴의 과정에 내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파괴의 과정에는 새로운 창조의 행위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산업 파괴의 과정은 주민들에 의해 경험되며, 그 폐허화의 장소를 자신의 거주지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장소 애착을 매개로 이를 부정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산업 도시의 폐허화 과정은 본질적으로 개인을 배제하며 그 배제된 집단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이다(Mah, 2012).
오타루의 운하경관 역시 원래부터 기념적인 위상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운하가 완공되었을 당시 오타루 신문은 ‘도랑과 혼동하기 쉬운 운하로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며 조소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지금의 서정적인 풍경과는 다르게, 과거 산업도시 오타루에서의 운하는 정서와는 거리가 먼, 시민에게 있어서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였다. 오타루 출신의 문학가 코바야시 타키지(小林多喜二, 1903-1933)는 오타루의 거리 중 운하나 창고가 있는 해변을 가장 하층의 장소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에게 오타루 운하 주변은 노동자들이 북적이는 거리로 일상과는 격리된 산업의 현장으로 인식되었다(Shimura, 2014). 항만의 건설로 운하가 방치된 이후 오염이 심각해지자 버려진 산업 경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더욱 심화되었다.4)
그러나 Milligan(2007)과 Mah(2012) 등이 지적한 바와 같이,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던 경관은 기념화될 수 있다. 특히 Mah(2012)가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산업 경관이 폐허화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는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내재되었던 장소 애착을 매개로 산업 유산의 폐허화에 저항할 수 있다. 오타루의 경우 이러한 저항이 시민운동으로 발전한 것이 70년대의 운하보존운동인 것이다. 운하보존운동의 시발점이 1971-1973년 사이에 벌어진 아리호로 창고군(有幌倉庫群)의 해체를 지켜본 시민들의 반발로부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운하 경관의 기념화 과정에 일단의 파괴와 저항의 경험이 주요하게 작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보존운동의 기억과 시민참여
보존운동의 여파로 오타루의 도시경관 보존에는 시민참여의 기조가 유지되었다. 4장에서 살펴본 도시계획제안제도뿐만 아니라, ‘오타루의 역사와 자연을 살리는 마을만들기 경관 조례’에서도 ‘시민참여의 경관 형성’ 조항을 두어 시민 주도의 ‘경관 마을만들기 협의회’를 인가하고 지원하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Otaru, 2012). 지역 주도의 보존운동에 의한 기억이 오타루 경관보존의 주요한 특징인 시민참여적 행정을 견인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개인 및 지역사회가 특정 역사를 부각시키기 위해 민간과 공권력을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은 역사적 보존과 공적 역사의 중요한 차원이 된다(Bluestone, 2011).
또한 일상에서의 기억참여 역시 주요한 특징이다. 운하 보존운동의 기억은 오타루의 시민들에게 기억참여의 동기를 부여했다. Bluestone(2011)이 말한 바와 같이, 보존운동을 한 사람들은 문명의 진보에 한 걸음 전진하는 데 있어 선봉을 차지했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제자리에 보존된 역사는 종종 더 폭넓은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 낸다. 오타루는 지역 상공회의소와 행정기관, 지역대학 등이 연계한 시민 도시 전문가 육성 제도를 추진하고 있고, 지역 주도의 다양한 축제 역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진행된다. 운하나 역사경관과 관련된 시티투어 프로그램에서는 시와 사업체 모두 역사경관에 대한 배경과 보존과정을 설명하는 가이드를 포함하고 있다. 역사경관을 배경으로 한 시민참여는 그 보존된 경관을 통해 과거를 환기시킨다. 이러한 과거의 호출은 변화에 저항하거나 혁신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생할 수 있으며, 전통을 강하게 지향하는 개인이나 소그룹은 집단을 향해 과거의 공통된 감각을 자극하고 참여를 촉구할 수 있다(Kammen, 1991).
지역 주도의 운하보존운동은 이처럼 민·관이 협의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고, 오타루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경관보존으로 이어졌다. 특히 운하의 일부 매립으로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이 ‘오타루 재생 포럼(小樽再生フォーラム)’으로 전환되며 운하를 중심으로 한 보존 논의가 점차 운하를 비롯한 오타루의 경관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논의로 옮겨갔음은 중요한 지점이다. 오타루 재생 포럼은 운하의 일부 매립에 좌절하지 않고 도시경관을 보존하는 관과의 협력, 세미나 및 연수 개최 등의 운동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특히 이후 오타루의 도심에 고층 주거공간 조성에 대한 논란에서, 오타루 재생 포럼은 고도제한 등의 성과를 얻어냈다.
모든 성숙한 집단은 상징적 풍경을 갖고 있다. 이는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사상과 기억과 감정의 공유 집합의 일부가 된다(Meinig, 1979c). 오타루에 있어 운하를 비롯한 근대의 산업경관은 이러한 집단의 상징적 풍경이다. 주민들의 강력한 집단 참여는 상징적 경관의 의미를 획득하는 방법이 된다. 주민들은 집단적 참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추구할 수 있으며, 그 도시에 사는 ‘자부심’을 느끼거나 고양감을 느낄 수 있다(Boussaa, 2018). 보존활동 등의 집단기억은 주민들에게 자신의 도시에 대한 집단적 자기반성(collective self-reflection)과 장소애착 등 암묵적인 긍정 효과를 불러들일 수 있다(Borer, 2010). 이러한 보존운동의 기억이 매개된 시민참여적 경관보존 행정과 행위는 오타루 역사경관 보존의 주요한 특징이다.
3. 반복되는 기억의 재현과 다시 쓰기
오타루 도시경관보존의 또 하나의 특징은 퍼포먼스를 통해 재현되는 집단의 기억과 다시 쓰기다. 보존된 도시경관은 일상의 장소로, 퍼포먼스의 무대로 기능하며 집단기억의 기념적 경관이 된다. 가장 확실한 보존은 개인, 지역사회 또는 기관이 자신의 문화 안에서, 역사와 기억, 지속적인 사용을 위해 장소를 적극적으로 배양하는 것이다(Bluestone, 2011). 보존과 매립의 대립과정에서 일부 매립과 산책로 조성이라는 절충안이 채택되어 조성된 현재의 운하는,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장소로서, 축제의 무대로서, 관광객의 방문이 이루어지는 장소판매의 장으로서 기능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은 축제 과정에서,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상업 행위의 연장선상에서 과거의 기억을 호출하고 새롭게 환기한다. 시민들은 그들의 집단이 제안한 대로 고정된 지역에서 과거를 재현하고 반복한다. 이는 집단의 힘을 강화하며,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발생되는 기억에 대한 특정 주장을 계속해서 확인시켜 준다(McDowell, 2016).
Assmann(1995)은 Halbwachs의 집단기억이 기억행위를 통해 세대를 거쳐 계승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른바 문화적 기억이다. 집단기억은 그 기억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세대뿐만 아니라 이후의 세대에게도 다양한 문화적 행위를 통해 전승된다. 오타루 도시경관 보존 역시 기억 문화의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다시 쓰여진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Muraue(2018)는 오타루의 도시경관보존에서 반절이 매립되었다는 한계 속에 한 번의 파괴가 벌어졌다고 정확히 지적하고 있으나, 이 과정을 평가하며 ‘어설픈 보존’이며 이미 기존의 거리풍경은 사라지고 없다는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Dwyer and Alderman(2008)의 메타포 관점에서 보자면, 한 번의 파괴 후에 새롭게 창조된 오타루 도시경관의 풍경은 어설픈 보존이 아니라 폐허화된 산업유산에서 ‘다시 쓰여진’ 일상의 풍경으로 환원된 기념화(memorialization) 혹은 기억화의 산물이다. 기념화와 지속적인 참여는 Naidu(2012)가 말한 바와 같이 ‘어떻게 하면 기념되는 행사를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그들의 의의를 통합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기념은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생활과정이다. Naidu(2012)의 개념에 따른 기념화는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를 이전의 세대와 연결하고 계속해서 참여하게 한다. 오타루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퍼포먼스와 기억참여는 기념화된 경관을 통해 지속된다.
Ⅵ.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집단기억 이론의 관점에서 기념적 경관의 세 가지 메타포를 통해 오타루 근대역사경관의 보존과 활용을 해석하였다. 본 연구는 근대역사경관의 보존과 산업유산의 기념화 과정을 설명하고, 오타루 도시경관 보존의 특징을 규명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결론적으로, 오타루의 도시경관은 쇠퇴한 산업유산이 시민들의 기억투쟁 과정을 거쳐 보존되었고, 이는 일상의 풍경으로 사람들에게 기념화되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미 파괴된 경관을 통해 발단된 지역 주도의 보존운동은 폐허화된 산업유산을 기념화하여 보존하는 데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경관 행정과 제도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오타루 도시경관 보존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아레나의 메타포에서 보면 쇠퇴한 산업유산의 기념화 과정을 통해 경관 보존을 이끌어 냈으며,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다른 도시와는 차이를 보인다. 또한 이 보존운동의 기억이 매개되어 지속적인 시민참여로 이어졌고 이것이 제도화되어 시 행정의 일부로 정착되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특징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보존된 경관은 퍼포먼스의 무대로 기능하며 일상적인 기억의 장소로, 또 반복되는 기억 행위의 장소로 자리매김하였다.
집단기억의 관점에서 도시경관의 보존과정을 분석하는 연구는 국외에서 활발히 진행 중인 것에 반해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경관 행정을 책임지는 중앙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에게 있어 집단기억 관점에서의 경관보존은 크게 유용할 수 있다. 집단기억을 매개로 한 경관보존은 시민참여를 크게 이끌어 낼 수 있고 지속적인 축제와 제례 등 퍼포먼스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특히 탈산업화 과정에서 기능을 잃은 산업유산들에 대한 보존과 재활용을 도모하려는 주체에게 있어 집단기억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한 이유다.
본 연구는 사례를 오타루라는 일본의 중도시에 한정하였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오타루라는 사례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이 사례를 통해 얻어진 결론이 다른 산업도시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본 연구는 경관연구에 대한 집단기억 관점의 해석을 위한 특정 분석 틀과 관점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본 연구는 집단기억의 관점에서 도시경관의 보존 과정을 분석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텍스트, 아레나, 퍼포먼스의 메타포 관점이 다층적인 경관 보존의 과정을 해석하는 유의미한 분석 틀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산업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에서 기존의 경관이 파괴될 위험에 놓인 역사적 도시들에 있어 집단기억의 관점에서 그 경관을 보존하고 재이용하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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