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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 Planning Association - Vol. 50 , No. 1

[ Article ]
Journal of Korea Planning Association - Vol. 50, No. 1, pp. 5-19
Abbreviation: Journal of Korea Planning Association
ISSN: 1226-7147 (Print) 2383-9171 (Online)
Final publication date 08 Dec 2014
Print publication date Jan 2015
Received 11 Nov 2014 Reviewed 01 Dec 2014 Accepted 01 Dec 2014 Revised 08 Dec 2014
DOI: https://doi.org/10.17208/jkpa.2015.01.50.1.5

통일 한국의 수도(首都), 어디가 되어야 하나?
허재완*

Where should be the Capital of the Unified Korea ?
Hur, Jae-Wan*
*Chung-Ang University (hur5358@naver.com)

Abstract

The main purpose of the paper is to discuss the issue of the capital city of the Unified Korea. To address the question of where should be the capital of Korea after reunification, five criteria were suggested based on the experience of Germany as well as on the realistic definition of reunification. First, the new capital should minimize the potential conflicts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which can be raised during the process. Second, the new capital should contribute in vitalizing the regional development of North Korea to reduce the region inequality problems after reunification. Third, the new capital should succeed the historical legitimacy of Korea. Fourth, the new capital should show symbolically what will be the most important policy target in the Unified Korea. Finally, the new capital should locate in the middle of the Korean Peninsula. The paper strongly suggests the North Korean city, Gaesung, is the most suitable candidate which can satisfy the five criteria described above. The paper argued in detail why the city of Gaesung has historical, political and geographical justifications to be the unified capital city of Korean Peninsula. The paper finally concluded that to open the door of reunification, a mutual understanding and trust should be built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Keywords: Korea Reunification, The Unified Capital City, Gaesung, Regional Inequality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키워드: 남북통일, 통일수도, 개성, 남북 간 지역격차

Ⅰ. 서 론

통일은 한민족 최대의 여망이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오히려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초래하게 된다. 국토적 측면에서 는 더욱 그러하다. 준비된 통일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검토하고 준비하여야 할 일이 적지 않다. 통일 후 한반도의 수도를 어디로 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통일국토 논의에 대한 시대적 필요성에 비해 이 주제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자료접근성 등의 한계로 인해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기존 연구들의 대부분은 통일 후 북한 토지 처리문제, 통일한국의 SOC 구축문제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통일 후 수도결정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선행연구가 부재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한국의 수도문제와 관련된 소수의 선행연구들은 대부분 통일 독일의 수도이전 문제를 검토하고 그것이 주는 시사점을 논하는 수준이다.(송기수․송태수, 2004; 안영진․박영한, 2001).1)

본 연구는 통일수도문제에 대한 이러한 연구공백을 일부라도 메우기 위한 작은 시도이다. 객관적 자료에 기초하기보다는 문헌검토와 연구자의 주관적 판단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 접근법이라고 하기 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 주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장을 여는 시험적 연구로 시도되었다.

이를 위하여 이어지는 Ⅱ장에서는 통일의 개념에 대해 논의하고 이것이 통일수도 결정에 주는 시사점을 검토한다. Ⅲ장에서는 통일독일의 수도이전 과정을 검토하고 그것이 통일 한국의 수도문제에 주는 시사점을 찾아본다. Ⅳ장에서는 통일한국의 수도로서 개성을 제안하고 그 논거와 수반될 수 있는 과제들을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Ⅴ장에서 결론을 맺는다.


Ⅱ. 통일의 개념과 수도결정에의 시사점

우리 모두는 통일을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비록 ‘통일’이라는 동일한 단어를 쓰고 있지만 그 구체적 내용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통일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은가? 많은 경우 통일은 분단 이전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통일은 ‘재통일(reunification)’을 의미한다고 간주되고 있다. 실향민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들에게 통일이란 곧 고향에 돌아가서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상봉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분단기간이 길지 않은 상황이라면 통일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집합적 기억(collective memory)’을 회복하는 이른바 재통일이 의미를 강하게 갖는다.2)

그러나 분단 반세기가 지난 우리의 경우 통일이 단순히 재통일을 의미한다고 하기 에는 무리가 많다. 남과 북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통일의 궁극적 목표가 “민족구성원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3)이라고 한다면 통일을 분단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하기가 어려워진다. 오히려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현재의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여 다시 새로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과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이 경우 통일은 단순한 ‘재통일’이 아니라 ‘새로운 통일(new unification)’이 되어야 한다. 즉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역사의 창조 작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4)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통일을 “새로운 통일”의 관점에서 정의하기로 한다.

현실적으로 통일에는 세 종류의 통일이 있다. 일차적으로는 정치 및 제도의 통일이다. 즉 단일 권력체계 및 단일 정부를 세우고 남북한의 상이한 행정‧경제‧교육‧국토‧복지‧노동‧국방‧농업 등 제반 제도 등을 통합하는 작업이다. 헌법과 법률은 물론 정부의 각종 공문서 양식, 초등학교 교과서, 교통표지판 및 외래어 표기법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도와 규정을 통일시켜야 한다. 이 경우 북한제도를 남한 형태로 개편하는 작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남북 주민들 간의 합의를 끌어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 된다.5)

두 번째의 통일은 국토의 통일이다. 즉 분단으로 인해 그 동안 막혀있던 도로와 철로를 잇고 공항과 항만을 연결하며 통신과 산업단지를 연계해 주는 작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북주민 모두가 한반도 내의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왕래하고 거주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단일생활권(혹은 단일경제권)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통인프라, 생산인프라 및 생활 인프라의 연계에는 엄청난 규모의 재원과 긴 시간이 소요된다. 예를 들어 북한의 도로는 일부 군사용으로 신규 건설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수준이다. 따라서 북한의 도로를 남한 수준으로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거의 분단기간에 버금가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북한은 험한 산악지대가 많아 남한수준의 도로개설에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진정한 국토의 통일은 남북 간 인프라 격차가 상당 수준 완화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통일은 주민의식의 통일 즉 문화적 통일이다. 분단 전에는 남북이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언어, 같은 전통과 관습, 같은 정치․경제적 사고를 가지며 살아왔다. 즉 동질적 ‘문화공동체’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분단으로 인해 남북은 지난 60년간 매우 다른 가치관과 문화 그리고 교육을 받으면서 생활해왔다. 따라서 분단으로 인한 문화적 이질성을 극복․해소하고 동질화를 이루는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어쩌면 이러한 주민의식의 통일에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완전히 동일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세대들이 통일 한국의 주류로 성장할 때까지 통일한국은 의식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남북 간 갈등으로 여러 차례 사회적 몸살을 앓아야 할지도 모른다. 남북한 주민들이 사회․심리적으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민’이라고 느낄 때 진정한 통일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6)

통일을 이렇게 정의할 때 이것이 통일한국의 수도결정에 어떠한 시사점을 갖는가? 크게 2가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통일이 단순한 분단이전으로의 회귀 즉 ‘재통일’을 의미한다면 통일 한국의 수도결정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분단이전의 수도였던 서울로 되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앞서 논의한대로 남북한 통일이 단순한 통일이 아니라 ‘새로운 통일’이라면 통일 수도는 반드시 남북 간의 합의를 통해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통일 수도는 통일 한국이 이루어야 하는 3단계의 통일 즉 제도의 통일, 국토의 통일, 의식의 통일을 효과적으로 이루는데 기여할 수 있는 도시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통일 한국의 수도는 남북 간의 지역격차를 해소하는데 효과적이고 남북주민의 진정한 화합을 이끌어 내는 데 유리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 후 남북 간 지역격차 혹은 지역갈등 문제는 상당기간 심각한 국가적․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이는 남한지역의 수도권-비수도권 불균형 문제나 영-호남간의 지역갈등 문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강력한 폭발성을 갖고 있는 이슈로 점화될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통일 한국의 수도 결정시 이 문제를 가장 주요한 선정기준의 하나로 고려하여야 한다.


Ⅲ. 독일의 수도이전 결정과 시사점

동독이 서독에게 흡수되는 형태로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통일 수도를 어디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곧바로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논의는 삽시간에 국론을 분열시킬 정도로 격화되었다.7) 동독 측은 베를린을 통일 독일의 수도로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반면8) 서독의 여러 주들은 이에 결사반대 하면서 통일 수도는 본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심지어 본(Bonn)이 속한 주(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베를린을 통일 독일의 수도로 적시한 ‘통일조약’이 만들어 질 경우 서명을 거부하겠다고 공표하였다.9)

원래 서독 내부에서도 분단 직후에는, 미래에 통일이 이루어 질 경우 베를린이 통일수도가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10) 그러나 막상 통일이 되자 동베를린이 강압적인 사회주의 국가 동독의 수도였기 때문에, 베를린은 이제 통일 수도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그리고 전후 반세기 동안 본이 이룩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강조하면서 본이 통일수도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서독 내부에서도 수도입지를 둘러싼 베를린-본 지지파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11)

이에 따라 1991년 연방의회에서 통일 독일의 수도 입지결정을 위한 투표를 실시하였다. 의원들 간의 치열한 논쟁 끝에 최종적으로 338:320 이라는 근소한 표차로 베를린이 본을 물리치고 통일독일의 수도로 최종 확정되었다.12) 통일 당시 서독의 인구는 6,260만 명인데 비해 동독의 인구는 1,640만 명에 불과했다. 서독이 동독보다 3.8배나 많은 인구규모였기 때문에 당연히 의석 분포도 서독측이 압도적으로 많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서독 주민들이 선호했던 본 대신 동독이 요구했던 베를린이 국회를 통과하게 된 것일까?

베를린이 통일수도로 최종 결정된 배경에는 당시 독일 집권당이었던 기민당의 판단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3) 특히 기민당 원내총무 쇼블레이 박사는 통일독일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는 동독주민들의 마음을 껴안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서독이 일정 수준 양보하여야 한다고 믿었고 의원들을 그렇게 설득하였다.

한편 독일의회는 베를린을 통일수도로 결정하면서 이러한 결정이 가져올 지역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하여 몇 가지 주요한 결정을 추가하였다. 기존의 서독 수도였던 본을 ‘연방도시‘라는 특별지위를 부여하여 서독 주민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상당기간 연방정부가 특별재정지원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동시에 지역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본에 있던 연방행정기능의 일부를 그대로 유지하는 전략을 채택하였다. 그것은 본이 소규모 도시라 일시에 모든 행정기능을 이전할 경우 지역이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배려한 조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통일독일의 수도이전과정은 우리에게 주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통일수도를 결정하면서 가장 주요한 의사결정 기준으로 강자의 양보를 통한 국민화합이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당시 서독은 동독에 비해 면적은 3.3배 넓고, 인구는 3.8배나 많았으며 총GNP는 43배나 높았으며, 일인당 GNP도 2배 이상 많았다. 그러나 서독지도자들은 상대적 약자인 동독 주민들의 자존심을 살려줌으로서 국민화합을 이루기 위하여 과감히 동독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당시 기민당의 원내총무였던 쇼블레이 박사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우리에게도 깊은 시사점을 준다. “분단의 극복은 분배와 양보의 의사를 가질 때만 가능하다.”

독일의 통일수도 결정과정이 주는 두 번째 시사점은 통일수도 입지결정의 또 다른 기준으로 지역 간 균형개발을 중시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당시 수도이전 문제와 관련된 의회의 토론과정에서 주요하게 제시된 논거가 통일 후 동독의 재건을 위해서는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는 본 보다는 동독지역에 있는 베를린이 수도가 되는 것이 훨씬 신속하고 효과적인 균형발전정책의 추진이 가능하다는 것 이였다14)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통일수도 결정이 주는 시사점으로는 수도 이전 시 기존 수도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서독 국민들의 자존심도 어느 정도 회복시켜 주고 특히 기존 수도였던 본의 급격한 침체를 완화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Ⅳ. 통일한국의 수도
1. 통일수도 결정을 위한 기준

통일 한국의 수도를 결정함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판단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통일의 의미에 대한 검토와 독일 사례의 분석 등을 통해 볼 때 통일한국의 수도 결정시 고려해야 할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입지기준을 들 수 있다.15)

  • (ⅰ) 상대적 약자인 북한에 대한 양보와 배려를 통해 통일 수도의 결정에 따르는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도시.
  • (ⅱ) 효과적인 북한개발을 통한 남북 간 지역격차완화를 유도할 수 있는 도시.
  • (ⅲ) 통일 한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 할 수 있는 도시.
  • (ⅳ) 통일 한국의 새로운 국가정책 지향점을 대내외에 보여줄 수 있는 상징성을 가진 도시.
  • (ⅴ) 통일 한반도의 지리적 중심지에 위치한 도시.
2. 통일 한국의 수도, 개성

일국에서 수도가 갖는 상징성은 거의 절대적이다. 특히 신생국이나 통일국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통일 후 남북한 모두에게 거부감 없는 통일 수도를 결정할 수 있게 되면 이는 통일 완성의 7부 능선을 넘었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그만큼 통일 수도의 결정은 어렵고 또 중요하다. 앞에서 제시된 통일 수도의 기준을 감안할 때 어느 도시가 통일 한국의 수도로서 최적지 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서울, 평양, 서울-평양의 중간지역, 세종시 혹은 기타 지역 등. 아마도 남한 주민들은 대부분 서울을 선호하고16) 반대로 북한 주민들은 압도적으로 평양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통일한국의 새로운 수도는 개성이 될 수밖에 없다.17) 이하에서는 앞에서 제시한 통일 수도의 선정기준에 입각하여 왜 개성이 통일 한국의 수도로서 가장 바람직한 후보 도시인가를 집중적으로 검토해 보기로 한다.18)

1) 통일한국의 국민화합을 위한 최적지

개성은 통일수도 결정에 따른 남북 간 갈등을 최소화 하고 국민화합을 도모할 수 있다. 그것은 개성이 남북한 주민들의 거부감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통일 한국의 수도는 어느 한 쪽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지역을 선정할 수도 없고 또 선정해서도 안 된다. 이성적 측면에서 보면 통일 한국의 수도를 서울과 평양 중에서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 할 수 있다. 이 도시들은 역사성이나 인구규모 및 인프라 그리고 대외적 지명도 측면에서 일국의 수도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특히 서울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 서울은 미 제국주의의 심장부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부정적 이미지로 투영되어 있다. 평양 역시 남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독재와 침략의 본거지로서 공산주의의 상징과 같아 정서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들 도시 중 하나를 수도로 선택하고자 무리하게 시도한다면 이는 남북 주민들 간의 자존심 대결로 이어져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를 피하려면 결국 서울과 평양사이에 있는 제 3지역을 선정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북한 지역의 주요 도시이면서 동시에 서울에 가장 근접한 개성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전략이다.

통일이 될 경우 통일한국은 모든 면에서 인구가 많고 경제수준이 월등한 남한 주도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상대적 우월감을 갖고 있는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을 민주주의 이념으로 계몽하고,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어야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자신들의 역사와 정체성에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는 북한 사람들을 배려해 동등한 차원에서 그들을 대하고 있다는 강력한 상징체계가 필요하다. 즉 통일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채워줄 정치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경제, 행정, 교육 등 다른 모든 부분은 남한 식을 따르게 되더라도 적어도 ‘수도’ 만큼은 독일의 경우처럼 상대적 약자인 북한지역의 도시로 결정하는 것은 아주 강력한 통합정책이 될 수 있다. 통일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남한이 통일 수도를 북쪽지역에 양보한다면 민족 동질성 회복이나 국토균형 발전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Fig 1. 
Evaluation of integrate between east and west Germany: 2007

Source: Yang, M-S., Song, T-S., 2010. pp.16



한편 개성은 남북한의 갈등과 문화적 이질감을 융화시키는 통일 한국의 ‘Melting Pot’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이다. 남북한이 통일을 완성하는데 가장 어려운 과제는 아마도 국민의식의 통일 즉 문화적 통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원래 한민족은 오랫동안 동일문화권에서 생활해왔다. 그러나 70년의 분단을 거치면서 남북한 주민들, 특히 청소년들의 의식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의 청소년 들은 찢어진 지도자의 사진이 빗물에 젖어 길거리에 굴러다니면 진심으로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흘린다. 반면 남한의 청소년들은 그러한 일에 아무런 연민이 없으며 오히려 아이돌의 노래와 춤에 열광해서 운다. 어쩌면 남한의 청소년들은 북한보다는 일본의 또래들에게서 더 큰 문화적 동질성을 느낄지도 모른다. 언어와 외모는 유사하지만 남북한 청소년들의 의식과 가치관은 이처럼 같은 민족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이하다. 통일한국은 이 차이를 메워야 하는 엄청난 숙제를 안고 있다.

독일은 우리보다 분단의 시간이 매우 짧았고 전쟁도 없었으며 통일 후 벌써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동서독 국민들 간의 갈등 해소와 문화적 동질성 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기울였다. 그러나 여전히 동․서독 주민들 간의 마음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많은 동독주민들은 여전히 이렇게 부르짖고 있다. “통일된 지 20년이 지났다. 그러나 동․서독 주민 사이엔 무너진 ‘베를린장벽 대신 새로운 마음의 장벽(Mauer im Kopf)이 세워지고 있다.”19)

통계에 의하면 통일로 인해 동독지역의 경제여건은 매우 향상되었다. 동독지역 국내총생산(GDP)은 1991년 1,706억 유로에서 2008년 3,771억 유로로 17년 만에 2.2배로 늘었다. 동서독의 소득격차도 2.3배에서 1.4배로 줄었다. 그러나 동독 주민은 소득향상에도 불구하고 구동독에 강한 향수를 느끼고 있으며 서독이 자신들을 2등 국민 취급한다고 분개하고 있다.20) 동서독 사이에 서로를 멸시하거나 불신하는 경향이 강하며 그 갈등이 좀처럼 치유되지 않고 있다.

독일의 이러한 사례는 우리에게 남북 주민간의 잠재적 갈등은 결코 경제력 향상이나 지역격차 완화로만 해결되지 않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더욱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치유책이 필요하다. 남북 간의 문화적 통합을 위해서는 양 주민이 빈번한 접촉을 통해 상대방을 보다 잘 이해하는 학습과정이 필요하다.

개성은 그러한 역할에 가장 적합하다. 개성만이 남북주민들을 재교육시키고 양 주민들 간의 마음의 벽을 허물고 갈등을 녹이는 멜팅 폿(melting pot)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성공단을 통한 학습효과 때문이다.

개성공단에는 현재 약 5-6만 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근로자 1인당 부양가족을 4명으로 가정하면 적어도 20만 명 이상의 개성시민들이 개성공단과 연계되어 있다. 개성인구의 2/3에 육박하는 숫자다. 또 그동안 남한 측 회사직원들도 수천 명이 개성공단에서 근무한 경험을 갖고 있다.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들은 비록 제한적이지만 남한 측 회사직원들과 접촉하고 함께 일해 왔다. 북한 지역 어느 주민들보다도 남한에 대해 그리고 남한사람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편견을 적게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개성 사람들은 통일 후 남한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류경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21) 개성을 통해 남북한 주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공존의 방식과 노하우를 익히게 되면 남북한 모든 도시들이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다. 개성만이 남북한 주민들의 다양한 갈등을 용광로처럼 녹이는 멜팅폿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고 또 감당해야만 한다. ‘개성(開城)’이라는 단어는 성문을 연다는 의미이다. 개성이 통일 한국인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도시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2) 북한의 경제재건을 통한 균형발전 적지

통일 후 국민 특히 북한 주민들은 어떠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통일의 의미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게 될까? 통일이 자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주민들의 생활수준을 남한수준에 근접하게 끌어 올려야 한다. 즉 남북 간 불균형 특히 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지역의 조속한 경제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제한된 재원과 인프라 여건차이로 인해 북한의 모든 지역을 동시다발적으로 개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남한의 과거 경제성장 경험에 입각하여, 북한지역 중 성장잠재력이 높은 거점지역을 우선적으로 집중 개발하고 점차 타 지역으로 성장열매를 확산시키는 이른바 불균형을 통한 균형개발전략이 불가피하다.22)

그러면 북한경제의 고속성장을 견인할 통일 한국의 신 성장거점은 어느 지역이 되어야 할까? 개성은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지역이다. 북한도 경제성장을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개성을 포함한 다수의 경제특구가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인프라가 워낙 열악하고 정치적 리스크가 높아 제대로 효과를 나타내는 특구가 없다. 물론 남북통일이 되면 정치적 리스크는 상당부분 완화되겠지만 제대로 된 인프라를 갖추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남한의 인프라 특히 수도권의 잘 발달된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지역을 우선적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개성은 가장 적격이다. 지리적으로 개성은 서울 반경 50㎞권이므로 실질적인 수도권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어느 지역보다도 수도권지역의 잘 발달된 인프라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다. 남한에 가장 인접해 있다는 입지적 이점 외에도 개성은 북한 지역의 주요 도시 중에서는 평양권 다음으로 노동력이나 교통 등의 측면에서 가장 입지잠재력 뛰어난 지역이다.

Table1. 
Exploitation potential of the major city of North Korea
Classify Labor R3) A4) L5) M6) Infra Total Score
Q1) Q2) T7) W8) E9)
PyungYangᆞᆞᆞ-NamPo 5 5 3 5 4 5 5 4 4 40
GaeSeong-HaeJu 4 3 2 3 4 5 5 4 5 35
SinUiJu 4 3 3 3 3 5 4 4 4 33
AnJu-SunCheon 3 3 4 3 4 4 3 4 3 31
HamHueng-WonSan 4 4 4 3 4 4 4 3 3 33
CheongJin-KimChaeck 4 3 5 3 3 4 3 4 3 32
NahJin-SeonBong 3 2 4 2 3 3 2 3 3 25
KangGye-ManPo 2 2 4 3 2 2 2 4 3 24
1) Q: Quality,
2) Q: Quantity,
3) R: Raw Material,
4) A: Agglomeration
5) L: Land,
6) M: Market,
7) T: Transit,
8) W: Water Supply,
9) E: Electricity

따라서 개성을 신 성장거점지역으로 지정하여 우선적으로 ‘스타급 도시‘로 개발한 다음, 이를 북한 지역에서 가장 입지여건이 좋은 평양-남포지역으로 확산시키고 이어서 신의주까지 확대함으로써 개성-평양-신의주로 이어지는 서해안 개발 축을 완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마치 남한이 경부 축을 우선 개발하여 경제성장을 이룬 전략과 유사하다.

다만 개성이 통일 한국의 신 성장거점지역으로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현재의 개성공단 수준으로는 한계가 있다. 현재의 개성공단은 100만평에 불과한 작은 규모의 산업단지이고 주로 남한의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집약적인 경공업구조로 되어있다. 개성이 통일 한국의 신 성장거점지역 으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감당하려면 현재의 개성공단을 대대적으로 확장하여 한국의 대기업을 비롯한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이 투자하는 이른바 ‘글로벌 경제특구’로 육성하여야 한다.

개성이 북한의 경제재건을 선도할 신 성장거점지역으로서 유리한 점은 또 있다. 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한 북한지역에 자본주의 방식을 도입한 산업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민들이 시장경제 및 친기업적 분위기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낮은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개성은 월등하다. 원래 상술에 능한 개성상인의 DNA를 물려받은 받았고23) 개성공단을 통해 비즈니스 마인드를 학습하였기 때문에 개성주민들은 북한 내 그 어떤 지역보다 시장경제원리에 익숙하다. 따라서 신성장거점내 산업현장을 통해 시장원리를 훈련 받은 개성주민들을 북한전역의 산업화를 주도할 산업역군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편 개성을 통일한국의 신 성장거점으로 육성할 경우 얻어지는 또 다른 이점으로는 북한인구의 급격한 남한이동을 제어하는 완충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북 간 경제력격차가 워낙 심한 만큼 통일 이후 많은 북한 인구가 남한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200-400만 명이 이동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70%이상이 서울․경기지역으로 몰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그대로 방치할 경우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통일한국 정부가 국민의 가장 기본권에 속하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까지 인구이동을 강압적으로 차단할 수는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북한지역 안에서 일자리 기회가 많고 편리한 생활 인프라를 충분히 갖춘 도시를 최대한 빨리 육성하여 남한으로의 이동 인구를 흡수하는 완충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남북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 개성만이 그러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개성공단을 기반으로 한 개성은 북한지역 내에서 이미 좋은 일자리가 있는 선망의 대상 지역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3) 역사적 정통성을 지닌 통일한국의 고도

개성이 통일 한국의 수도가 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로 개성이 갖는 역사적 정통성을 들 수 있다. 원래 개성지역은 고구려시대부터 바다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던 지방 세력인 호족의 본거지였으며, 그 중 왕 씨 일가는 그 대표적인 존재였다. 918년 왕건(王建)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창건하자 개성이 고려의 수도로 선정되면서(919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조선왕조가 들어서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489년간 개성은 고려와 조선 두 왕조의 도읍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개성은 서울, 평양과 더불어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나라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24)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다양한 문화를 융합하여 개방성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민족문화의 토대가 되었다. 경주를 축으로 한 신라의 삼국통일이 민족통일의 출발점이라면, 개성을 기반으로 한 고려의 후삼국 통일은 옛 삼국 출신의 다양한 세력과 발해인 까지 포용한 실질적인 민족통일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 한국이 단순한 한반도의 지리적 통일이 아니라 한반도를 기점으로 한 한민족의 통일이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개성은 통일 수도로서의 강력한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

개성은 또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도로서 한민족에게 높은 자부심을 안겨주는 도시이다. 고려왕조의 지배근거지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구성된 ‘개성역사유적지구’는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4년 등재된 ‘고구려고분군’에 이은 북한의 두 번째 세계유산으로, 세계유산위원회는 고려시대 이전 한반도에 존재했던 다양한 문화·정치적 가치들을 5세기 동안 이웃국가들과 교류하였고, 고려왕조의 특출한 문화적 전통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는 점을 들어 이곳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였다.25) 이처럼 개성은 경주 및 서울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전통성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고도이다.

개성은 왕건이 신라 왕조를 멸하고 고려 왕조를 건립한 때로부터 500년간 봉건국가의 수도로서 또 그 후 이조 500년간 주요 상업도시로 발전한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이다. 경주나 서울 못지않게 수많은 전설과 유물, 유적이 남아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개성은 또한 한국을 “Korea”라는 용어로 세계에 알린 국제화된 도시였다. 당시 개성 인근에 있는 벽란도는 중국 상인, 서구상인, 아라비아 상인들이 활발히 무역거래를 하던 국제무역의 중심지였다.26) 고려 이전에는 중국을 통해 우리의 문물이 서양으로 간접 전파된 반면 고려시대에는 국제도시였던 개성(즉 벽란도)을 통해 우리의 문물이 서양으로 직접 전파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 동쪽의 한반도에 소재한 한국이 국제적으로 인식되었다. 그 당시 서구인들에게 한국은 ‘고려(Korea)’ 이었고 동시에 개성은 고려를 대표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Korea는 ‘South Korea’ 와 ‘North Korea’로 양분되었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면 ‘South Korea’ 와 ‘North Korea’라는 용어는 사라지게 되고 통일 한국은 다시 ‘Korea’라는 용어로 단일화 될 것이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서 세계 속의 한국 ‘Korea’가 탄생했다면, 통일 한국의 수도인 개성은 분열되었던 ‘Korea’ 를 재탄생시키는 역사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개성의 역사적 정통성은 단순히 개성이 과거 한반도의 도읍지였다는 사실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개성은 한반도의 영화뿐 만 아니라 고통을 온몸으로 부딪혀온 도시이기도 하다. 고려시대 이후 한반도의 중심에 있던 개성은 8·15 해방과 더불어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3·8선이 그어지고 남한 쪽에 속하게 되어 최북단 접경도시로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발발로 개성은 열강의 이데올로기 대결과 힘의 각축장으로 추락되었고 전쟁 중 남과 북을 오가는 시련을 겪었다. 그 결과로 고려시대 수도였던 개성은 그 흔적조차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전쟁의 참화를 입은 폐허도시가 되었다.

전쟁의 초기에는 개성이 전선에 위치해 있었던 까닭에 미군의 폭격으로 모든 건물이 사라지는 참혹한 일을 당하였고, 전쟁의 막바지에는 정전협상이 진행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정전협정의 결과로 비무장지역이 설정되고 이에 따라 개성은 북한지역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이산가족이 제일 많은 아픔의 도시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교류협력의 하나로 개성공단 조성이 결정되면서 개성은 국내외적으로 남북화합의 단초를 여는 역사적 장소로 재부상 되었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인력이 결합하여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남북교류협력의 새로운 장을 마련하는 역사적인 소명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개성은 드라마틱한 역사의 부침을 겪으면서 국토 상에서 주요한 기능들을 수행해 왔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수도 및 국제교역 중심지로서, 조선시대에는 상업중심지로서, 해방 이후에는 전쟁과 휴전을 겪은 접경지역으로서 그리고 최근에는 남북화해를 위한 교류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통일 수도로서 개성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4) 통일한국의 이념을 상징할 정치적 중심지

통일한국은 동북아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중심적인 국가가 되어야 한다. 통일독일이 EU통합의 중심국가 역할을 했듯이 통일한국은 동북아공동체의 탄생을 촉진하는 중심국가 역할을 해야 한다. 개성은 통일한국의 진취성을 상징하는 강력한 랜드 마크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개성이 수도가 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또한 개성은 예성강을 통해 멀지 않은 서해 바다로 쉽게 진출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개성의 뛰어난 수운접근성은 해상세력 출신인 왕건이 보다 개방적인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꿈을 뒷받침 해 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개성은 진취적인 고려인을 상징한다. 고려인들은 개방적 성의식과 혼인 풍습을 가졌고 신분 차별도 조선에 비해 덜했다. 고려는 근대 이전 우리 역사에서 가장 다양한 나라와 대외관계를 유지한 나라다. ‘코리아’라는 표기가 ‘고려’에서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은 대양 진출을 국가정책에서 제거함으로써 결국 서구와의 근대화 경쟁에서 뒤졌다.

뿐만 아니라 개성은 태조 왕건이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북진정책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경학적 이점을 갖고 있었다.27) 남북통일이 되면 우리의 대외정책에 큰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대미 외교 및 대일 외교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반면 우리와 직접 국경을 맞대야 하는 대 중국 및 대 러시아 외교의 비중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경제교류 측면에 있어서도 일본 및 미국을 중심으로 한 태평양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드는 반면 중국, 러시아, 몽골 등 대륙 국가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통일 한국은 이전보다 훨씬 강화된 북방 지향적 정책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다. 통일 수도로 개성이 결정될 경우 이는 통일 한국정부가 ‘신 북방정책’을 개진하겠다는 강력한 정치적 시그널이 된다.

5) 통일 한반도의 지리적 중심지

지리적으로 개성 시는 한반도의 중부 서해안에 있는 도시이다. 서울과 평양의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에서는 불과 50km지점에 위치해 있다. 북위 38˚선 바로 아래에 위치하여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남한에 속했던 지역이다. 동쪽은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경기도 연천군·파주시, 서쪽은 황해남도 배천군, 남쪽은 한강을 경계로 경기도 김포시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북쪽은 황해북도 토산군·금천군, 강원도(북한) 철원군과 접하고 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개성을 도읍지로 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성의 지경학적 입지여건 때문이었다. 우선 개성은 그 당시 육상교통의 중심지였다.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전국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있어서 사통팔달의 교통중심지였다. 개성은 둘레 23㎞의 성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모두 25개의 성문이 있어 전국으로 도로가 연결되었다. 이는 한양성의 성문이 8개밖에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개성의 육상교통이 얼마나 발달하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도 개성은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가는 국도의 북한 내 출발점이다. 개성~신의주 간 거리는 400㎞로 서울~부산과 거의 같고, 4차로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개성~평양 간 거리(170㎞)는 서울~대전과 비슷하다. 78㎞ 떨어진 서울과 개성을 한 묶음으로 생각하면 바로 한반도의 한 가운데가 되는 셈이다. 이는 통일 한반도에서 개성이 통일한반도의 지리적 중심지임을 의미한다.


V. 맺는 말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소설 삼국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天下大勢, 分久必合........”. 환언하면, 나누어짐이 오래가면 반드시 합쳐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의미이다. 남북통일은 시기와 방법의 문제일 뿐이라고 우리가 믿고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 통일은 ‘열리기’도 쉽지 않지만 ‘완성’되기는 더더욱 어렵다.

통일한국을 완성하여 한민족의 위대한 잠재력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서는 남북의 인내와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진정한 남북통일의 완성은 (ⅰ) 남북한 주민들이 진정으로 상대에 대해 마음을 열어 이해의 폭을 넓히고, (ⅱ) 특히 상대적 약자인 북한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양보하여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ⅲ) 남북의 통합된 노력으로 통일한국이 동북아의 중심지로 거듭날 때 에만 가능해진다.

한반도의 중심에 입지한 개성은 시대가 요구하는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만한 저력과 여건을 갖춘 통일한국의 강력한 수도 후보지이다. 개성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북한의 유일한 지역이며 남북화해의 바로미터로서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이다. 남한의 입장에서는 가장 가까운 북한 땅이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가장 멀리 떨어진 접경지역이다. 개성은 그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남북교류의 핵심거점 및 통일로 가는 주요 길목이 될 수밖에 없다.

개성은 과거에도 우리 국토에서 주요한 기능을 수행해왔고, 현 북한체제 하에서도 군사적․경제적․역사적․문화적 측면에서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다가오는 통일시대에는 통일 한국의 수도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왜 개성이 통일한국의 수도가 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개성을 통일 한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하고자 할 때에 몇 가지 새로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기존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는 평양과 서울 그리고 세종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 인가 하는 문제가 주요한 이슈가 된다.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우리는 독일의 사례와 고려의 3경 제도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독일은 베를린을 통일 수도로 결정하면서 이러한 결정이 가져올 지역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하여 기존의 서독 수도였던 본에 행정기능의 일부를 유지하는 전략을 채택하였다.28) 그것은 본이 소규모 도시라 일시에 모든 행정기능을 이전할 경우 지역이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다르게 해석하면 만약 본이 대도시였다면 모든 행정기능을 베를린으로 이전하였을 것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통일 후 서울에 굳이 수도 기능의 일부를 남겨 놓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서울은 정치․행정 수도로서의 기능은 제거하고 세계적인 경제중심지 즉 ‘월드시티‘로 도약할 수 있도록 뉴욕처럼 경제수도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종시의 건설로 이미 행정기능의 70%는 이전되고 정치적 기능만 남아있는 형태라 개성으로의 이전이 서울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다음 고려가 개성(개경)을 중심으로 평양(서경)과 경주(동경)를 3경(三京)으로 지정하여 수도 기능을 분담하였던 것처럼29), 통일 한국도 개성을 수도로 하여 입법 및 사법기능은 모두 개성에 두되 행정기능은 북한의 평양시와 남한의 세종시에 분산하여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른바 통일 한국의 ‘신 3경’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세종시의 경우 행정 도시로 탄생하였기 때문에 행정기능을 모두 이전할 경우 본처럼 도시자체의 존립이 보장되지 않는다. 독일의 경우처럼 충청권을 비롯한 기존 비수도권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지역갈등 완화차원에서 일정 수준의 중앙행정기능 유지는 불가피하다. 한편 평양은 철저한 계획도시이기 때문에 도시구도가 잘 잡혀 있고 특히 정부기능이 비대한 공산주의 국가의 수도였기 때문에 행정, 정치적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평양이 북한사람들에게 갖는 상징적 의미가 워낙 크기 때문에30) 통일로 인해 평양이 하루아침에 지방 도시로 전락해 버릴 경우 그 심리적 공동감이 매우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통일 후 평양에 중앙행정 기능의 일부를 할애해 주고 새로운 역할기능을 부여함으로써 평양을 활성화 해주는 것이 균형개발 및 인구이동의 안정화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앙행정 기능 중 육상물류, 자원개발, 국방 및 건설 관련 행정기능은 평양에 문화․교육 및 복지 관련 기능 및 대전에 입지한 중앙정부의 “청”은 세종시에 분산배치 하는 형태이다.

물론 이러한 행정기능의 분산에 따른 비효율이 생각보다 높을 수 있다. 특히 통일초기의 남북의 통합과 강력한 국정의 운영을 위해서는 행정의 분산은 오히려 혼란과 집중력을 떨어뜨려 통일의 의미를 약화시킨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효율성의 일부 포기로 남북 간 갈등 완화를 통한 국민화합이 가능해 진다면 우리는 주저 없이 그 길을 가야만 한다.31) 통일 한국은 어느 한쪽이 주도하여 빨리 가려 하지 말고 느리지만 남북이 다 같이 갈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완성될 수 있다.


Notes
주1.예외로 서울시정연구원(1995)김안제(2004)의 연구가 있다. 그러나 전자는 통일수도로 서울이 결정 될 경우 혹은 다른 곳으로 결정될 경우, 그 결정이 서울시정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 연구로서 통일한국의 수도후보지 자체를 검토한 연구는 아니다. 또한 후자도 세종시의 신행정수도로서의 적격성에 대한 논쟁이 진행될 때 세종시가 지리적 측면에서 국토의 중심부이기 때문에 통일 후 수도로서도 적절하다는 것을 주장한 내용으로서 통일수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라고 하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주2.호광석 (2005), p. 329
주3.호광석 (2005), p.330
주5.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동.서독간 음주 관습의 차이로 음주운전의 단속기준을 정하는데도 상당한 애로를 겪었다.
주6.호광석 (2005), p.331
주8.동독은 서독과의 통일협상을 진행하면서 양측의 합의사항을 담은 ‘통일조약’에 베를린을 통일 수도로 적시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였다.
주9.호광석 (2005), p.338
주10.호광석 (2005), p.339
주11.호광석 (2005), p.340
주13.호광석(2005), p.341
주15.엄밀히 말하면 통일방식에 따라 통일한국의 수도는 달라질 수도 있다. 즉 흡수통일이냐, 무력통일이냐 혹은 합의통일이냐에 따라 수도의 위상과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질지는 그 누구도 단정할 수 없지만 본고에서는 묵시적으로 남북 간 합의를 통한 평화적 방식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전제한다(이는 한국정부의 공식입장이기도 하다).
주16.지난 2003년 2월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겨레신문에서 통일 후 수도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 조사에서는 ‘서울’이 46.2%로 압도적이었고, ‘입법·사법·행정부의 남북한 분산배치’가 23.4%로 2위 그리고 ‘경기북부나 황해도’가 14.2%로 3위로 나타났었다.
주17.서울대 최창조 교수는 지리학회 발표에서 풍수지리 상 개성이 통일 후 수도 1순위라고 주장하였다(한겨레, 1989.6.19.).
주18. 사실 보다 바람직하기로는 귀납적 접근법에 의거하여 그동안 통일수도 후보지로 거론된 지역들(서울, 평양, 개성, 세종, 철원, 파주 등)에 대한 정성적 혹은 정량적 비교분석을 통해 개성의 적합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론된 도시들의 특성상 자료의 일관성을 확신하기가 어렵고(특히 북한 도시), 또한 세종시나 철원, 파주 등은 모두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전제이기 때문에 기존 도시와 직접 비교하기도 어려워 연역적 접근법을 시도하였다.
주19.‘통독 20년에 배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갈등’(동아일보, 2010. 9.24)
주20.서독 주민은 동독인을 ‘게으르고 불평만 늘어놓는 동독 놈’이라는 뜻으로 ‘오시(Ossi)’라고 부르고, 동독인은 서독 주민을 ‘거드름이나 피우며 잘난체하는 서독 놈’이란 뜻으로 ‘베시(Wessi)’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독 여성은 ‘돈 없는’ 동독 남성과 결혼하는 걸 기피한다. 동독 남성은 서독 여성보다 폴W란드, 체코, 헝가리 등 외국인과 결혼하는 비율이 더 높다.
주21.독일의 경우 베를린이 이러한 경험을 갖고 있는 유일한 도시였고 그것이 통일 수도로 결정되는데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주22.독일도 유사한 전략을 추진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즉 통일 후 상대적으로 입지여건이 우수한 동독지역의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시를 성장거점지역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개발함으로써 동독지역의 산업화를 선도하는 전략을 취했다.
주23.개성상인들은 이재와 상술에 능한데다가 창의성이 강해 일찍부터 개성 특유의 복식부기와 어음 같은 상거래를 방식을 활용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개성은 한국적 자본주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다.
주24.개성과 서울은 각각 고려(조선 초기까지) 500년, 조선 500년+남한의 수도로 기능을 해온 도시이며 평양 역시 오랫동안 고조선, 한사군, 고구려+북한 등의 수도를 담당했던 역사도시이다. 따라서 이 세 도시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통일한국 혹은 통일조선을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는 도시들이라 할 수 있다.
주25.이를 보여주듯 북한에는 개성을 소개한 다양한 책자들이 발간되어 있는 데, 「개성의 옛 자취를 더듬어」, 「천년고도 개성」, 「개성향토사」. 「개성의 역사와 문화」 등이 대표적이다.
주26.벽란도는 고려의 수도인 개경과 가까우며, 수심이 깊어 배가 지나다니기 쉽고, 뱃길이 빨라 무역항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무역을 하러 고려에 왔고, 벽란도는 당시 국제무역 항구로서 크게 번성하였다. 고려는 벽란도로 들어오는 새로운 문물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고 더욱 발전시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루었으며, 이러한 교류로 고려는 더욱 개방적인 사회모습을 만들었다.
주27.평양 역시 북진정책을 위해서는 좋은 입지이지만 국경과 너무 가까워 외부침략에 취약하다고 판단하여 개성을 적지로 선택하였다.
주28.16개 연방부처 중 7개 부처는 본에 잔류하고, 나머지 9개 부처는 베를린으로 이전하되 제2의 청사는 본에 두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력의 이전 및 재배치에 있어서도 가능하면 베를린으로 이전 하는 인력의 수를 최소화 한다는 원칙을 정하는 한편 연방수도의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 본에 대해서는 ‘연방도시'라는 독특한 지위를 부여하여 베를린과 함께 독일의 정치․행정의 중심적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울러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통해 과학․학문의 도시, 국제협력의 도시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수립, 추진함으로써 분열된 국론을 치유하면서 균형적 발전도 함께 도모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주29.고려가 초기에는 개경, 서경(평양), 동경(경주)으로 3경을 구성하였지만 나중에는 경주 대신 서울(한양)을 남경으로 지정하여 대체하였다.
주30.평양은 북한 주민들에게 대도시나 수도의 의미를 뛰어 넘어 일종의 종교적 성지로까지 인식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일가에 대한 외경심을 고려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주31.독일이 통일 후 행정기능이 베를린-본으로 분산되었다. 그로 인한 행정의 비효율성이 높다는 지적은 있지만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약화되었다거나 혼란을 야기하였다는 주장은 없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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