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Issue

Journal of Korea Planning Association - Vol. 59 , No. 1

[ Article ]
Journal of Korea Planning Association - Vol. 54, No. 2, pp. 46-53
Abbreviation: J. of Korea Plan. Assoc.
ISSN: 1226-7147 (Print) 2383-9171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Apr 2019
Final publication date 28 Mar 2019
Received 18 Feb 2019 Reviewed 12 Mar 2019 Accepted 12 Mar 2019 Revised 28 Mar 2019
DOI: https://doi.org/10.17208/jkpa.2019.04.54.2.46

계획 영역에 감정의 도입
박혜정*

Bringing Emotion to Planning Theory and Practice
Park, Hye-Jung*
*Visiting Professor, Ewha Womans University (hyejungpark@gmail.com)
Correspondence to : *Visiting Professor, Ewha Womans University (hyejungpark@gmail.com)


Abstract

In Enlightenment culture, social scientists had tended to consider emotion as the contradiction of reason, and thus had marginalized emotional experiences in human activities in academic circles. Along with the reflections on modernity and the New Social Movements, many researchers have given attention to the role of emotion in human activity. However, most planners still ignore emotion and insist to focus their way of planning on rationality based on the concept of homo economicus.

By introducing the emotional turn in social science and professions and contrasting planners’ resistant perspectives with it, this article aims to call attention to the idea that emotional experiences are central to human activity and planners should understand the nature of emotion to establish, promote, and evaluate planning. Because the conventional dichotomy of emotion and reason makes it difficult for planners to understand why emotion matters and the essence of planning depends on the rationality of humans, although there is still not much research on emotion in planning, some researchers have started to urge planners to recognize the role of emotion in planning. This article reviews this literature in detail and discusses the applicability of their ideas in South Korea.


Keywords: Planning Theory, Emotion, Rationality, Reason, Compassion
키워드: 계획이론, 감정, 합리성, 이성, 공감

Ⅰ.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20세기 후반에 사회과학에 등장한 다양한 경향 가운데 감정에 대한 재조명이 눈에 띈다. 계몽주의에 근거한 이성(합리성)에 대한 집중으로 인하여 감정은 학문에서는 통제되어야 할 변인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근대에 대한 성찰 및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 등 사회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비합리적’으로 간주되던 감정에 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계획이론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을 발견하기 다소 어려워 보인다. 그 이유는 합리적 종합적 계획의 전통 아래, ‘합리성’(rationality)을 근원으로 하는 계획이론 및 모델이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계획이론 역시 탈근대적 전환을 맞이하였으나, 결국 그 과정의 완성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에서 찾고 있다는 점을 통해 볼 때, 계획에서 합리성을 논외로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성(합리성)의 반대편에 위치한다고 간주해온 감정을 계획의 영역에서 고려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계획학자들은 계획의 합리성이라는 속성, 그리고 도구적 합리성에만 의존하는 계획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해왔다. 특히 최근 몇몇 학자들은 사회과학의 감정 연구의 흐름을 계획 영역에 반영하여, 감정과 계획의 연계에 대하여 논의하기 시작했다(Baum, H., 2011, 2015; Bush and Folger, 2005; Ferreira, 2013; Forester, 1999; Hoch, 1994, 2006; Lyles et al., 2017; Porter et al., 2012; Sandercock, 2003; Sturzaker and Lord, 2017 등). 이에 본 연구는 선행연구 고찰을 통하여 이러한 사회과학적 흐름 및 계획학적 연구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하여 국내 계획 영역에서도 ‘감정과 계획’이라는 키워드로 관련 연구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Ⅱ. 사회 이론의 감정적 전환
1. 전통적 시각: 감정과 이성의 대립

그간 사회과학에서는 이성과 감정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왔고, 학문적 논의의 방향은 이성에 대한 탐구에만 제한됐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사회과학은 중세 이후 서구에 발생한 변화에 대한 계몽주의와 반(反)계몽주의의 대립 속에 출현했다(Shilling, 2009). 중세 시대의 특징은 격렬한 감정, 변덕, 예측 불가능성의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17세기 종교전쟁 이후 정신이 지닌 합리성에 근거한 ‘확실성에 대한 탐구(Quest for Certainty)’가 점차 대중화되었으며, 인간의 본질은 사고 능력 속에 존재하는 (좋은) 합리성으로, 감정은 육체로부터 오는 (나쁜) 감정 내지 충동으로 대비되었다(Toulmin, 1997). 이러한 이성/감정, 합리성/비합리성, 문화/자연, 몸/마음, 남성/여성의 이분법적 구분이 서구의 철학적 접근 방식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면서, 자연적, 생물학적인 영역인 감정은 근대과학에 있어서 억압하고 통제할 대상이 되었고 이론적 논의에서 제외되었다(박형신·정수남, 2009).

그러나 감정이 선험적으로 열등하며 이성에 의해 지도되어야 할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하여, 사회계약론자들의 ‘사회적 상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김홍중, 2013). 봉건제가 무너지고 근대 시민사회의 질서가 형성되던 시기에, 개인들은 사회 질서와 같은 ‘사회적인 것’의 정립을 ‘신적인 것’이 아닌 ‘사회계약’을 통해 찾게 된다. 이때 중세 암흑기로부터 해방된 개인들이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타자들과의 계약상황에 동참하게 되는 원인은, (이성이 아닌) 인간의 본원적 감정이었다. 예를 들어, 홉스는 인간이 품고 있는 공포(두려움)가 계약으로 이끈다고 보았으며, 루소는 동정심(연민)을 통해 사회 연대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들의 이러한 시각은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도덕감정론」을 거쳐, 콩트(Auguste Comte) 사회학의 「실증정치체계」로 이어진다. 결국 사회는 합리적 이해관계를 추구함으로써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수준에서 작용하는 정념들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고전 사회학자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 논의 속에 감정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합리성에 관련한 저명한 논의들(Max Weber, Karl Marx, Emile Durkheim 등)을 살펴보면 모더니티를 무관심, 불안, 경쟁심, 사랑, 죄의식 등과 같은 다양한 감정과 연계하여 설명하고 있다(Illouz, 2010). 예를 들어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대도시에서 발견되는 모더니티의 전형적 태도는 싫증(blasé: 서먹함, 냉정함, 무관심의 혼합)이며, 이는 언제든 증오로 바뀔 수 있다고 한다(Simmel, 2005).

근대의 특성을 집대성하여 이론화했다고 볼 수 있는 베버(Max Weber)의 연구에서조차, 합리성(이성)을 감정과 상반되는 대립 구도에 두기만은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베버는 감정은 인간사(人間事)에 무질서를 낳는 것으로, 합리성은 행동에 질서를 가져다주고 개인의 목적을 실현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Barbalet, 2007). 행위자로서의 개인은 심사숙고한 사고를 통하여 자신의 행위를 합리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러한 점에서 행위는 인간에게 의미를 지니며, 행위자의 감정은 (합리적 행위의 토대가 되는) 숙고를 해치는 속성을 지닌다(Weber, 1975). 그러나 정치, 과학, 퍼스낼리티에 대한 베버의 저술들을 살펴보면, 합리적 행위에 대한 ‘열정적 헌신 없이’ 의사결정을 하는 개인들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한다(Barbalet, 2000). 이는 감정을 행위를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는 바는 아니지만, 개인의 감정을 합리적 선택 행위와 “합체시킬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Shilling, 2009). 합리화된 체계에 대한 감정의 영향력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칼뱅주의 신도들에 대한 서술에서도 볼 수 있다. 세속적 금욕주의와 같은 자본주의는 신도들의 감정과 육체를 규율하는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칼뱅주의 신도들은 예정설의 교의로 인해 망연자실함과 유례없는 내면적 고독감을 경험하였고, 이 고독감은 신도들의 행위를 이끄는 고유한 윤리를 생성시킨 원동력으로 기능했다(Weber, 2014). 결국 여기서 감정은 인간의 수동적인 체험이 아니라 행위를 촉발하고 창조하는 역할을 하며, 사람들을 움직여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김홍중, 2013). 그러나 이와 같은 논의가 가려진 채 베버가 합리성의 옹호자로서만 부각된 이유는, 저서에 묘사하는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의 행위 패턴 중 (감정의 영향을 받는 서술 대신) 결과에 대한 설명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 사회학자들의 이론 속에서 감정의 역할이 무시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학에서 감정이 주변화되어온 이유는, 파슨스(Talcott Parsons)의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Barbalet, 2007; Shilling, 2009). 파슨스는 사회적 행위는 (열정적 감정이나 합리적 자기 이해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가치체계를 뒷받침하는 ‘규범’에 의해 추동된다고 본다(Parsons, 1949). 사회적 행위의 ‘인지적 요소’인 규범에 대한 강조는, 행위체계의 유형 변수의 하나인 ‘감정중립성(affective neutrality)’1)을 통해 잘 볼 수 있다. 그는 감정은 우정과 가족 관계의 영역에 포함되며, 감정의 공개적 표현은 사회적 긴장과 연결되어 사회과정 및 목표지향적 행위체계를 훼손한다고 본다. 결국 감정성(affectivity)과는 정반대의 극에 위치한 감정중립성이 근대사회 제도의 작동에 있어 중요하다는 논의를 통하여, 그는 “사회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감정이 갖는 중요성을 세련되게 무시하고 있다”(Barbalet, 2007).

2. 근대에 대한 성찰: 감정의 새로운 부상

최근 들어 감정과 이성의, 전통적인 이분법적 구분을 재고하는 시각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사회학뿐만 아니라, 철학, 정치학, 인류학, 심리학, 경제학 등에서도 감정이 주요 관심 대상으로 부상한다(Barbalet, 2007). 예를 들어 사회학 영역만 보더라도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중반까지 감정을 다룬 서적과 논문들이 급증했으며, 미국·영국·호주에서 학회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2) 이와 같은 (사회학의) ‘감정적 전환(emotional turn)’은, 근대성의 기반이 되는 ‘이성’ 중심의 사회과학적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 1970년대 이후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을 통한 정체성의 정치(politics of identity)에 대한 논의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Barbalet, 2007).

사회학적 시각에서 감정에 대해 논의한 초기 연구들(예를 들면 Kemper(1978))을 보면, 감정을 사회학 영역에 복원하는데는 기여하지만, 감정은 합리적 개인에 의한 감정적 반응과 감정관리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박형신·정수남, 2009). 이후 감정사회학자들은 감정이 사회적 원인일 수 있다는 거시적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감정이 사회 속에서 발현되는 방식에 주목한다. Barbalet(2009)은 감정적 관여 없이는 인간의 행위는 물론 이성도 촉진될 수 없다고 본다. 감정은 상황을 즉시 평가하는 것은 물론, 그 상황에 반응하는 성향에 영향을 미치므로 “감정은 구조와 행위를 연계시킨다.”는 것이다(Barbalet, 2009).

이렇게 인간의 감정을 개인적인 것이 아닌 사회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김홍중(2013)의 이론화 작업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감정사회학의 폭발적 등장을 ‘합정성(合情性)의 재발견’이라고 지적하며, 합정성을 ‘특정 행위, 상호작용, 규칙/규범, 사회 시스템이, 개인이나 다수 행위자의 내적 감정, 혹은 객관적으로 생산, 소통, 표현되는 감정적 리얼리티에 발생적으로 연관되거나, 기능적으로 조응하거나, 구조적으로 연동되는 성향, 양태,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4개로 구분하여 유형화하였다.

감정의 영향력에 대한 연구 중 에바 일루즈(Illouz, 2010)의 저서는 감정을 자본주의의 추동력으로 본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일루즈는 직장 내 인성검사, 갈등 해결을 위한 상담 등 기업 프로그램, 인터넷 매칭 서비스 등 조직/산업/노동 사회학 관련 다양한 사례들을 근거로 하여, 감정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문화의 형성과정과 20세기 자본주의를 연결하여 설명하고 이를 ‘감정 자본주의(emotional capitalism)’로 명명한다.

경제학계 역시 감정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케인즈(John M. Keynes)는 인간의 합리적 의사결정은 단기적 이해관계가 아닌 장기 기대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며 이렇게 미래를 예측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행위에는 감정이 작동한다고 본다. 그는 “(미래에 대한 결정이 모두 비합리적인 심리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미래를 좌우하는 인간의 결의(決意)는 … (그와 같은 계산을 할 기초가 없기 때문에) 엄밀한 수학적 기대치에 의존할 수 없”으며, “우리의 합리적인 자아는 가능한 경우에는 계산을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의 동기를 기분이나 감정 또는 요행에 맡기면서 여러 가지 선택의 대상으로부터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본다(Keynes, 2007).

또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의 인지구조는 효율적으로 경제적인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본다(Kahneman, 2012). 그리고 많은 행동경제학자들이 그의 시각에 동의하면서 실제로 경제적 결정을 내릴 때는 감정적 사고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Akerlof and Shiller, 2009; Ariely, 2008).

이렇듯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감정에 주목하는 가운데, 사회과학으로서 계획의 영역에서는 그간 왜 감정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왔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다음 절에서는 계획의 합리성 및 그에 관련한 쟁점들을 살펴보고, 계획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방식으로 감정과 합리성의 균형을 맞추어 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찰한 국외 선행연구들을 검토하며, 국내 계획에의 시사점을 논의하겠다.


Ⅲ. 계획과 감정
1. 계획의 합리성 강조: 감정에 대한 이해 결여

앞서 본 바와 같이 최근 학계 전반적으로 감정의 영향력을 재조명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계획의 영역에서 감정의 중요성을 고려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계획의 근원적 특성을 ‘합리성(rationality)’으로 상정하는 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따라 감정을 위시한 비합리적 특성은 계획에서 배제할 대상이 되어온 것이다.

계획의 영역에서 감정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이유에 대해 Baum(2015)은, 그간 계획가들이 계획이론 및 실천에 있어서 세 가지 잘못된 가정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첫째, 계획은 “합리적으로 생각하기(thinking rationally)”라는 가정, 둘째, 인간을 합리적, 경제적 행위를 하는 주체로 정의하는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 가정, 그리고 셋째, 직업으로서의 계획가의 자질에 대한 가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계획가들은 수집한 정보를 어떠한 이해관계나 편견 없이 합리적(논리적,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계획의 대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여기서 계획의 합리성이란, 계획목표가 주어진 가용자원과 생산기술에 비추어 달성 가능한지 고려하는 타당성, 부문과 부문/지역과 지역/시간과 시간 사이의 경제활동의 균형을 의미하는 일관성, 그리고 주어진 자원과 경제적 구조 아래 목적함수를 가장 크게 만족시키는 최적성 등을 고려하는 것이다(정환용, 2009). 계획에서 합리성을 갖춘 현상은 인과적 관계를 보이는 경우가 많고, 의사결정자가 제시한 준거에 의해 선택이 이루어지는 한 계획은 합리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합리성의 가정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인간은 재정적 자원이나 시간, 인지 능력, 목표를 예측하는 능력 등에 있어서 한계가 있으며, 사회와 정치체계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늘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집단의 이해관계는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중립적 분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Banfield, 1961; Lindblom, 1959; Meyerson and Banfield: 1955). 계획문제는 정의 및 해결방법에 있어서 근원적으로 합리적일 수 없다는 지적은 Rittel and Webber(1973)의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자연과학의 대상이 되는 문제는 쉽게 정의할 수 있고 다른 문제나 환경으로부터 분리가 용이하기 때문에 유순(tame)하고 천진한 반면, 계획의 대상이 되는 문제는 사회문제라는 측면에서 쉽게 문제를 정의하고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s)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인간은 선천적으로 ‘합리적으로’ 사고하도록 동기화되어 있으며, 물질적 목표(material ends)를 달성하기 위하여 전략적, 효율적으로 움직인다고 가정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감정적으로 사고하거나 행동할 수 없고, 유사한 조건에서는 언제나 모호함 없이 분명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인간 행위는 예측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감정적이거나 비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간혹 생길지라도, 자신의 상황을 현실적, 체계적, 전략적으로 이해하고 개선해나가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감정적인 사고 및 이에 따른 행동은 계획에 대한 선호나 의사결정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왜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임길진(1995)은 다음과 같이 논의한다. 인간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움직일 수도 있고,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움직임의 근거를 흔히 당근(carrot)과 채찍(stick)으로 부를 수 있으며, 이 두 기제 외에 주목할 또 다른 근거가 윤리적 가치(moral values)이다. 물질적 동기(material incentives)라고 볼 수 있는 당근과, 규칙과 규제(rules and regulations)로 볼 수 있는 채찍은, 일반적으로 계획(그리고 공공정책, 회사 운영 등)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렇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단지 당근과 채찍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해방된 인간은 윤리적 가치에 그 움직임을 기초한다. 이것은 비록 완벽하지는 못하나 서양의 비판이론에서 비판적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서도 지적되었다.” “계획가, 공공정책 입안가, 시민 등 누구든지 당근이나 채찍 때문에 행동한다면 사회는 전체적이고 장기적인 발전을 할 수 없으며”(임길진, 1995), 결국 계획에서는 (계산 결과에 따른 이유가 아닌) 윤리적 가치에 따른 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감정과 윤리적 판단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의 주장과도 연결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통상 감정은 우리의 판단(분별, judgment) 바깥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감정을 세심하게 고려하는 경험이 우리의 도덕적 판단력의 질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논의(Nussbaum, 2003)는, 계획 행위에서 감정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의 의사결정 행위와 감정의 상호작용에 관련하여, 다마지오(Antonio Damasio)의 연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Hoch, 2006). 신경생리학 연구 결과, 코 뒤쪽의 복내측 전전두 피질이 파손된 사람들은 정신적 활동 관련 능력에 있어서는 전혀 문제를 보이지 않으나, 유독 의사결정 및 판단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계산능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오직 감정을 느끼는 능력만이 감퇴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에 대한 다마지오의 연구 결과는, (공감 능력의 상실과 같은) 무감정(disaffection) 상태는 다시 의사결정 및 판단력의 상실로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알고 있으나 느끼지는 못하는 상태에 빠진 이들은, 시간 및 자아를 관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결국 이는 ‘미래에 대해 예상하고, 목적을 이행하기 위해 계획하는 능력의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Damasio, 2007, 2017). 그의 연구는 계획 행위에 대한 감정의 영향력을 보다 직접적으로 증명해준다고 할 수 있다.

전술한 두 가정의 내용에 연결하여 세 번째 가정은, 전문가로서 계획가는 정보를 논리적,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갖추었으며, 그 과정에 자신의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가의 모습은, 앞서 두 번째 가정에서 서술한 경제적 인간의 “강한 버전(strong version)”(Baum, 2015)이라고 할 수 있다. 계획에 있어서 중립성, 확실성 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지라도, 계획가는 자기 훈련(self discipline)을 통하여 상황을 명확하게 분석하고 합리적인 충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계획가는 ‘개인적으로 좀 더 합리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 자인가?’에 관련하여, 계획가의 전문가적 자질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 도시개혁운동(urban reform movement) 시기에 도시계획에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위해 많은 전문가들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이전까지 물리적 환경 디자인 영역에 제한되어 있던 계획가들을 (과학적으로 도시를 운영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도에 의해) ‘합리적’ 분석 및 제안을 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 자리매김하도록 독려했다고 한다(Scott, 1971; Wiebe, 1967). 이후 계획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합리성에 두고 있으며, 따라서 계획 추진에 있어서 이들은 합리적 모델(rational model)을 제외한 다른 어떠한 선택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Dalton, 1986). 또한 Baum(1997)의 연구에 따르면, 계획가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의 능력이나 자질을 고려하기 보다는, 개인의 성격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획가를 대상으로 직업을 택한 이유를 조사한 결과, 전문가적 기술, 사회에 대한 관심 및 이해력 등에 따라 계획가가 된 경우보다, 도시를 대상으로 사회과학자처럼 분석하고 외과 의사처럼 개입하고 싶은 기대 때문에 계획가가 되었다는 응답이 유의미하게 많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협의의 개념으로 정의한 합리성을 통하여 계획 행위를 서술하기보다는 감정을 비롯한 다양한 영향력에 대하여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 사회과학의 전환과 유사한 맥락의, ‘계획과 감정’의 이해관계에 대한 시각은 사실상 부재하다”(Baum, 2015). 다만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나 칼 만하임(Karl Mannheim)의 비합리(irrational)적인 것에 대한 논의에서 계획-감정 연계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멈포드는 이상주의자와 무정부주의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비합리성’을 매우 고무적이고 건설적인 힘이라고 보았다(Friedmann, 1997). 합리성으로는 근본적인 모순점을 보지 못하며, 실질적인 위험은 합리성을 비합리적인 근원으로부터 절단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그는 가치관여적이고 비판적인 학문을 높이 평가하면서, 만약 유토피아적 사고가 객관성이라는 명목으로 중심적(합리적) 입장과 동일시될 경우, 그것은 더 이상 유토피아적일 수 없다고 역설하였다.

만하임은, 베버가 중시한 현재의 합리화된 질서보다는, 유토피아적이고 현실 초월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Mannheim, 1940; Friedmann, 1997). 나치즘으로부터 망명한 유대인으로서, 그는 당시 전쟁의 잔혹행위의 기저에 있는 사고가 얼마나 감정적이고 무의식적인가에 대해 지적하고, 자유를 위한 계획(planning for freedom)은 인간애(humanity)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와 사회학적 해석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2. 계획의 새로운 시도: 감정과 계획에 대한 논의들

계획 영역에서 감정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다고 본 최근의 선행연구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계획 추진 과정에서 감정이 행위자 간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서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계획을 민주주의적 담론으로 이해하는, 계획이론의 의사소통적 전환을 들 수 있다(Healey, 1992). 이들은 인간의 상호작용을 단순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하고 골치 아픈(messy) 것이라고 보면서, 필연적으로 계획의 각 과정에 감정의 영향력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Forester, 1999).

다문화 도시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면 상호 간에 발생할 수 있는 고통(suffering)을 줄이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연구한 Sandercock(2003)도, 결국 계획이 권력, 차이(difference), 사회정의의 문제에 어떻게 개입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이 때 도시 구성원들의 감정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둘째, 계획가가 계획과정에 갖게 되는 감정의 영향력에 주목한 연구들은, 감정은 계획에 고려할 부차적 요인이라기보다는 독립변인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계획가의 합리성에 해당하는 ‘인지(cognition)’와 그의 감정이 상호작용하여 계획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Hoch(1994, 2006)는, 계획가의 감정은 타인의 감정적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하며, 계획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돕는다고 보았다. 또한 Fried(1963)의 연구는 계획과정에서 쫓겨난 원주민들과의 감정적인 교류에 실패하고 그들의 감정(적 경험)을 인식하지 못한 계획가들이 결국 이로 인해 계획의 결과를 좋지 못한 방향으로 이끈 문제를 보여준다. Sturzaker and Lord(2017)는 계획가가 갖는 공포와 두려움이 계획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Ferreira(2013)는 계획가의 계획 실천 과정에 생기는 감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심리학적 이론과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한다.

셋째, 계획에서 중요하게 볼 수 있는 특정 감정에 대한 연구들도 눈에 띈다. Bush and Folger(2005)는 조정(mediation), 협상(negotiation), 유도(facilitation) 등과 같은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의 과정에서 감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 연구는 갈등 조정에 대한 4개의 전형(만족/사회정의/억압/전환적 스토리)을 소개하고, 그중 전환적 스토리에 주목한다. 참여자들은 전환적 스토리의 조정 과정을 통해 문제에 대한 성찰과 노력을 지속하며, 이 과정에서 ‘공감(compassion)’의 발현을 경험하게 된다. 타인(반대 집단)에 대한 보살핌(배려, care)과 자신(의 집단)에 대한 존중이 결합되는 갈등 조정 과정은, 결국 두 집단 모두 강화하는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

계획에서 공감을 이론화한 시도로는 Lyles et al.(2017)의 공감적 계획(compassionate planning)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감정과 사고를 아우르는 윤리적 지향(orientation)으로서 공감은, 단순히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계획과정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하여 기를 수 있는 감정이자 능력이라고 보며, 특히 이는 배우자/부모자식 간 사랑이나 동정(연민)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입장을 바꾸어 간접 경험을 하는 데서 나오는 감정에 가깝다고 한다. 이들은 공감을 계획과정에 적극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면 다소 다루기 힘들어 보이는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기존의 공감 계발 프로그램(예를 들어 스토리텔링을 통한 공감의 강화와 권능화(Forester, 1999))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프로그램 창안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공감과 같은 맥락에서 사랑(love)에 주목한 계획학적 시각도 있다. Karen Umemoto는 애착(loving attachment)을 실제(혹은 상징적) 장소와 그곳에 함께 거주한 사람들(과의 시간)에 대한 감정적 연결이라고 서술하며, 캘리포니아의 일본인 커뮤니티에 직접 거주하면서 겪은 재개발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계획학자로서의 통찰을 통해 볼 때, 지역에 대한 애착은 계획과정 및 연구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Porter et al., 2012). 감정으로 인한 편견이 개입되어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계획학자는 장소와 주민에 대한 애착을 통해 독특한 통찰력을 갖게 되기 때문에 계획에 대한 이해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Michelle Kondo는 벨 훅스(bell hooks)의 ‘사랑은 명사가 아닌 동사’라는 정의를 인용하여 계획에서의 사랑의 윤리를 강조한다(Porter et al., 2012). 훅스는, 많은 사람들이 깊고 뜨거운 애정에 기초한 낭만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정의하면 이는 상대에 대한 인정, 보살핌, 책임, 존경, 신뢰, 헌신 등의 행동이라고 지적했다(hooks, 2004).3) 이처럼 사랑을 느낌이 아닌 행동으로 보게 되면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러한 개선(refinement)의 과정은 지속적인 반영을 동반하는 윤리적 지향으로서의 공감(Lyles et al., 2017)과도 맞닿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국내 계획학계의 경우, 아직 계획과 감정의 연계에 대하여 크게 주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일부 계획학자들은 합리성의 지나친 강조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우려하면서 인간 감정의 중요성까지 그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 임길진(1995)은 미래는 낙관의 대상도 비관의 대상도 아닌, 우리가 선도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보면서, 기술중심주의, 자아의 상실, 윤리의 퇴조 등 현대인의 몰가치적 상황을 비판하고, 결국 가치지향적일 수밖에 없는 ‘미래발명적 계획(future-inventive planning)’을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계획가와 정책입안가들은 인간주의, 자체주의, 자연주의를 기본가치로 추구할 것을 주장하면서, 이 가치에 기반한 계획이론을 정립하려면 지금까지 주로 사용해온 과학적 방법과 기술주의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본다. 따라서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계획이론을 수립하기 위해서, 계획가들에 대하여 인간사에 대한 꾸준한 현상학적 성찰, 비판적 담론, 그리고 동양철학적 초월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초이성적’ 특성을 보이는 동양철학(예를 들어 불교 철학의 열반)은 논리적 과정이나 명백한 사회성을 지니지 않으나, 모든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순수한 목표만을 지닌다는 점에서 서구 비판이론이 (해방을 논리적 담론의 과정이라고 설명하는데서) 보이는 한계마저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해방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전상인(2014)은 주거공간, 도시공간, 이동공간을 살펴보면서, 공리주의적 이론에 기반한 근대적 공간 담론 및 정책이 실제 인간의 행복을 늘리는데 실패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한국의 공간계획에 대하여, 더 이상 성과지향적인 “시각 중심”의 물리적 계획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간”에 대한 가치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전상인, 2016). 이를 위해, 이탈로 칼비노, 오르한 파묵, 시오노 나나미와 같은 작가의 시각을 인용하면서, 오늘날 공간계획가들에게 특히 인문학적 상상력이 요구된다고 한다. 인문학에 기반한 계획을 권하는 그의 지적은, 인간 군상에 대한 탐구로서의 문학과, 공정한 판단을 이끌어내는 힘으로서 작동하는 감정 사이의 상관관계를 강조한 Nussbaum(2013)의 시각과도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Ⅳ. 맺음말

본 연구는 계몽주의에 근거한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적 전통에 의해 학문의 영역에서 등한시되어 온 감정이 20세기 후반 이래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재조명받고 있다는 배경 아래, 학문의 핵심적 아이디어를 합리성에 두고 있는 계획의 영역에서도 이와 같은 ‘감정적 전환’이 일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하였다. 선행연구들을 통해 볼 때, 계획과 감정이라는 키워드가 결합된 계획이론 연구들이 이제 시작되고 있으며, 계획실천의 영역에서도 구체적인 프로그램과의 연계 등을 통하여 감정의 영향력에 대해 고려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따라서 계획의 핵심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합리성’을 경제적 계산에만 의존하여 제한적으로 정의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영향력을 인정하려는 노력은 자칫 합리성을 부정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는 없다. 이러한 이유로 제도권 내 많은 계획가들이 감정의 영향력을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것도 사실이다(Baum, 2015). 그러나 계획학자들의 감정에 대한 연구를, 계획의 합리성을 부정함으로써 결국 계획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학계의 변화를 반영하고 보다 다양한 시각들을 수용, 연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계획이론의 발전을 모색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보아야 할 것이다.

감정과 이성 간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Nussbaum(2003)의 시각을 계획의 영역에 반영해보면, 우리는 합리적인 측면과 감정적인 측면의 균형을 찾기 위해 기존에 갖고 있던 계획에 대한 개념들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물론 오랜 시간 지속한 사고방식과 가시적인 대상을 연구해 온 학문적 전통을 쉽게 허물기는 어려울 것이며, 참고할 관련 사례 연구 및 이론화 작업 역시 아직은 미흡한 상태이나(Baum, 2015; Osborne and Grant-Smith, 2015; Sturzaker and Lord, 2017), 감정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연구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은 계획이론 및 실천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더구나 몇몇 학자가 한국 계획에 대하여, 이성을 초월한 영역으로부터 계획의 종합을 시도할 것을 권하고, 사회적 감정을 계발할 수 있는 인문학과 계획의 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점은, 국내 계획 영역의 감정적 전환의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겠다.

본 연구는 비합리적인 영역으로 간주하여 무시해온 감정을 계획의 영역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진행했으나, 사회과학계의 동향과 계획이론의 일부 선행연구들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의미 있는 연구들을 모두 언급하지 못한 책임도 전적으로 연구자에게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 소개한 시각들을 통해, 향후 관련 연구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 점에서 학문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Ferreira(2013)가 연구 도입부에 인용한 어구를, 여기 소개하는 것으로 본 연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계획가들은 ‘외부의(보이는, external)’ 도시 시스템을 연구하는 모델을 정교하게 발전시키는데 매달려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전반적인 지식이 부족한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향후 과제는 계획가의 의지와 능력을 ‘내부에 대한(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inward)’ 연구로도 전환하는(turn) 용기를 내는 것이다(Baum, 2011).”


Notes
주1. 이분법으로 구성된 감정성/감정중립성 변수는, 주어진 상호작용의 상황에서 적절한 감정 혹은 정서의 양과 관계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표출되는 감정의 양이 많은 경우는 감정성으로, 적은 경우는 감정중립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Turner, 2001).
주2. 대표적 저서들로는 Collins(1975)의 「갈등사회학」, Kemper(1978)의 「감정의 사회적 상호작용이론」, Hochschild(1983)의 「관리되는 마음」 등이 있다. 학회활동으로는 미국사회학회의 1986년 감정사회학분과 설치, 영국사회학회의 1989년 감정사회학 연구모임 결성을 들 수 있으며, 호주사회학회 연례학술대회는 1992년 이래 감정사회학 패널을 두고 있다(Shilling, 2009).
주3. bell hooks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Gloria Jean Watkins의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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