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Planning Association
[ Article ]
Journal of Korea Planning Association - Vol. 49, No. 2, pp.5-21
ISSN: 1226-7147 (Print)
Final publication date 22 Mar 2014
Print publication date Apr 2014
Received 27 Jan 2014 Reviewed 18 Mar 2014 Revised 20 Mar 2014 Accepted 20 Mar 2014
DOI: https://doi.org/10.17208/jkpa.2014.04.49.2.5

‘Five Senses City’ and Walking as an Urban Research Methodology

KimMee-Young* ; JunSang-In**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박사수료
‘오감(五感) 도시’를 위한 연구방법론으로서 걷기

Correspondence to: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정교수 sangin@snu..ac.kr

The hierarchy of the senses has placed the visual sense at the top in modern history. Urban planning and urban studies also have a tendency to focus on what we can see with our eyes. However, city life is multisensual, inclusive not just of the visual dimension experience but also the other senses - touch, smell, taste, and hearing.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point out the privileged position of the visual sense and to advocate the value and importance of “Five Senses City”. In this context, this paper suggests that the walking can be one of urban research methods mobilizing all five senses. First, walking enable people to experience the hidden dimensions of city and to enrich their understanding of city. Second, walking tends to make people form an emotional bonding with the city and create a strong sense of place.

Keywords:

Walking, Visual sense, Five Senses, Urban Studies, Urban Planning, 걷기, 시각, 오감, 도시연구, 도시계획

Ⅰ. 서 론

도시는 인간이 만든 역사적 공간이다. 도시와 계획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근대 이후 도시계획은 인간의 오감(五感) 가운데 시각을 특권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원근법과 인쇄술, 그리고 통계방법은 주로 시각적 정보 및 지식에 관련된 것이다. 인류문명의 근대적 이행 이후 ‘눈에 보이는 것’의 지위와 권위는 상승한 반면,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나머지 감각은 상대적으로 무시되거나 간과되어 왔다.

본래 인간은 다섯 가지 감각을 함께 구비한 통각적(統覺的) 존재다. 인간은 눈으로 보는 것 이외에도, 귀로 듣고, 코로 맡고, 입으로 맛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세상을 인지하고 경험한다. 통각적 존재로서 인간은 따라서 도시에서 오감(五感)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도시계획과 도시연구에 있어서도 인간의 본성과 관련하여 오감의 균형을 시급히 회복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통각을 체험하고 확보할 수 있는 도시 연구방법론으로서 ‘걷기’의 의미와 가치를 제고한다. 걷기는 눈뿐만 아니라 몸 전체의 감각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걷기라는 행위는 결코 단순한 발의 근육만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걷기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도시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최상의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눈으로 경험하는 도시가 도시의 진면목은 아니다. 물론 눈은 도시의 시각적 구성과 특징을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도시에는 눈에 보이지 않거나 눈으로 읽을 수 없는 측면들이 대단히 많다. 귀로 듣는 도시, 코로 맡는 도시, 입으로 맛보는 도시, 피부로 느끼든 도시도 얼마든지 소중하다.

걷는 행위는 몸의 모든 감각을 열어둠으로써, 쉽게 드러나지 않거나 간과되어 온 도시의 전체를 지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걷는 과정은 도시에 대한 공간적 일체감과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곧, 신체를 통한 공간의 직접적 체험은 공간의 장소화를 촉진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도시연구 방법론으로서 걷기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걷기는 오감의 활용을 통해 도시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일 뿐 아니라 공간과 사람 사이의 정서적 관계를 형성시킨다는 점에서 도시연구 방법으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도시계획의 새로운 비전과도 연계되어야 한다. 도시 걷기에 있어 헛걸음은 없다.


Ⅱ. 도시와 시각

1. 시각중심의 근대

유럽의 근대는 인간의 감각 가운데 시각의 득세가 두드러진 시기이다. 유럽발(發) 근대는 ‘시각 중심주의’(ocularcentrism)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근대사회의 대표적 시대정신인 ‘계몽주의’(Enlightenment)는 말 자체가 ‘빛을 밝힌다’는 시각적 차원의 의미였다. 물론 시각적 패러다임의 뿌리는 고대 희랍 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찍이 헤라클레이토스는 “눈은 귀보다 정확한 목격자”라고 했고, 플라톤은 시각을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을 순수성의 측면에서 서열화였는데,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의 순서였다(김진성 역, 2007). 고대 희랍에서 조각 예술이나 연극이 발달하고, 기하학과 도형이 발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주은우, 2003:147; Jay, 1993:23-24).

물론 시각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귀중히 여긴 것은 근대 서양만이 아니었다. 동양에서도 눈을 가장 귀한 감각으로 여겼다. 한의학에서 ‘안십중구’(眼十中九) 곧, “몸이 열이면 눈은 아홉”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 그런 만큼 다른 감각에 대한 시각의 상대적 우위는 근대 유럽의 특유한 현상이라기보다 인류사적 보편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시각의 우위나 우세가 왜 하필 근대 유럽에서 더욱 더 확고해졌는가 하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

시각의 우세는 유럽의 근대적 이행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근대 철학의 대부 데카르트(R. Descartes)는 시각을 오감 중 ‘가장 포괄적이고 고귀한 감각’으로 간주하였는데, 이 때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신체의 두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었다(주은우, 2003:276). 기본적으로 신체의 감각을 신뢰하지 않았던 데카르트는 육체의 눈이 가진 한계를 보충할 수 있는 정밀한 도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추구한 ‘정신의 눈’은 관찰자와 세상 사이의 ‘차가운 거리’를 유지하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모델로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환영(幻影)을 배제하며 진실에 접근하는 ‘보는 주체’의 탄생이 이루어졌고, 이는 궁극적으로 이성을 지닌 ‘근대적 주체’ 혹은 ‘근대인’의 등장으로 귀결되었다(노명우, 2007:56; 이정희, 2009:310-311).

근대 초입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perspective)이 부활하였다. 이제 빛은 중세를 지배하던 초월적인 ‘신의 빛’(lux)아니라, ‘지각되는 빛’(lumen)이 되었다(최연희 역, 2004:27). 원근법은 하나의 점을 중심으로 캔버스 위에 이미지들을 배치함으로써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표면 위에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이때 원근법의 중심점은 화가의 눈이나 감상하는 사람의 눈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곧, ‘일별’(一瞥, glance)이 아닌 ‘응시’(gaze)하는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Bryson, 1983:94; 최연희 역, 2004:29에서 재인용). 결국, 시각예술에서의 원근법과 철학에서의 데카르트 사상은 시각을 위주로 하는 근대적 감각체제의 핵심적 토대가 되었다(최연희 역, 2004:24).

시각이 우위를 점하게 되는 보다 결정적인 계기는 인쇄술의 등장이다. 이전의 필기문화가 손으로 쓴다는 점에서 촉각적이고 입으로 불러준다는 의미에서 청각적이라면, 인쇄문화는 오직 시각적 과정만을 요구한다. 인쇄술의 발명으로 인해 문서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으며, 그 결과 정보나 지식, 기술이 말이나 몸이 아닌 문자나 삽화 등을 통해 기록되고 전파되는 시대로 옮아갔다. 요컨대 인쇄술의 탄생은 ‘원시적 청각구화(聽覺口話) 사회’와 ‘시각적 문자사회’를 구분하는 거대한 분기점이 되었다(임상원 역, 2001; 김상훈 역, 2010:24-26; 최연희 역, 2004:21; 김병화 역, 2005:284-285).

원근법과 인쇄술의 발달에 따라 실재(實在)하는 세상을 보고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자연과 우주를 시각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는 한층 더 강화되었다. 무게, 크기, 시간, 온도 등을 표준화된 단위로 파악하는 ‘수량화(quantification) 혁명’은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는 대상으로 양화(量化)시켰다(김병화 역, 2005:26-28). 이와 같은 수량화 혁명은 18세기 이후 근대국가의 성립과정에서 나타난 통계운동(statistics movement)에 의해 더욱 더 증폭되었다(최정운, 1992 볼 것).

2. 도시계획과 시각

전통적 공간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몸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경향이 있었다. 고대의 토착 건축(vernacular architecture)은 점토나 진흙 등을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눈보다는 근육이나 피부 접촉과 관련된 감각을 더욱 중시하였을 뿐 아니라 대부분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을 건축 척도로 사용하였다(김훈 역, 2012:41). 또한 건축물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경향도 많았다. 고대 희랍에서 신전의 기둥은 여인의 전신을 형태화하였고 계단이나 문, 지붕 등의 건축 요소도 인체를 참고하거나 비유하는 경우가 많았다(정인하 역, 2000:69-72).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알베르티(Leon Barttista Alberti)가 원근법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면서 서양 건축은 ‘시각적 지각, 조화 및 비례’의 문제들을 중시하기 시작했다(김훈 역, 2012:41). 실제로 알베르티는 두 눈과 바라보는 대상 사이에 격자 틀을 설치하여 사물을 정확한 축척(縮尺)으로 그리는 훈련을 거쳤다고 한다. 그리하여 응시자는 세상의 소리, 냄새, 질감, 맛 등과는 단절한 채, 오직 차갑고 객관적인 눈의 힘만을 키워간다(김상훈 역, 2010:51-52).

시각에 대한 신봉은 근대 모더니즘 건축가들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다.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광학(光學)에서 도출된 이론적 기초와 지식을 건축에 적용하였고,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는 건축의 일소점 투시도에 의한 지각을 강조하였다(김훈 역, 2012:44-45). 특히 19세기 중반 이후 이른바 ‘고도 근대주의’ 혹은 ‘하이 모더니즘’(High Modernism)은 이성과 논리에 의한 공간의 단순화, 추상화 및 전형화를 통하여 구축되는 가시적 질서를 극도로 중시하였다(전상인 역, 2010:145-146). 하이모더니즘 건축의 선봉자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건축은 조형적”이며,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눈에 보이고 측정되는 것”에 있다고 주장하였다(Le Corbusier, 1959:191).

건축과 직결된 근대적 도시계획 역시 시각적 패러다임에 기초하였다. 데카르트는 정비되지 않은 길은 이성으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의 결과’라고 치부하였다(전상인 역, 2010:98). 무릇 길이란 곧게 뻗어 직각으로 교차되어야 하고, 건물은 동일한 기능과 크기로 건축되어야 하며, 결과적으로 도시는 공간적 명료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 또한 단순하고 반복적인 직선을 통해 도시에 질서를 부여함과 동시에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그에게 “이성은 부러지지 않는 직선”(Le Corbusier, 1967:82)을 뜻했고, “직선을 긋는 인간은 자기를 되찾은 것, 혹은 질서가 잡혔다는 것”(산업도서출판공사 역, 1977:45)을 의미하였다.

20세기 미국의 도시계획도 예외는 아니다. 번햄(D. Burnham)은 미국 도시계획의 효시라 볼 수 있는 ‘도시미화운동’(city beautiful movement)을 주도하면서 경관축, 대칭성, 정형성 등을 강조하였다. “우리의 이상은 질서이고, 우리의 등불은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Moore, 1921; 임창호 ․ 안건혁 역, 2005:241에서 재인용). 조닝(zoning)제도는 토지를 동일한 용도끼리 구획하여 건물의 밀도, 높이 등을 규제하는 미국식 토지계획 수단인데, 이것 역시 위로부터의 조감(鳥瞰) 방식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시각 주도 도시계획의 일환이었다.

문제는 시각적 패러다임의 득세와 우위가 단순한 감각상의 서열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사회적 의미이다. 무엇보다 근대 이후 건축과 도시계획은 ‘시각-지식-권력’의 삼위일체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시각 중심적 사회에서는 시각을 통한 지식과 정보가 가장 정확하고 올바른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어서 ‘본다는 것(seeing)’이 곧 ‘안다는 것(knowing)’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Jenks, 1995:1). 일찍이 ‘아는 것이 힘’이라 했듯, 근대 이후에는 ‘보는 것이 힘’이 되었다.

근대사회의 시각 중심주의는 시선의 비대칭성에 의한 권력관계를 정교화하는데 기여했다. 대표적인 보기가 벤담(J. Bentham)의 원형감옥, 곧 판옵티콘(Panopticon)인데, 이는 시선을 확보한 자가 권력자가 된다는 사실을 공간적으로 웅변한다. 중앙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눈은 권력이 되고, 바라보이는 나머지는 예속의 대상이 되는 공간구조인 것이다.

“시선은 권력이다”라는 관점에서 근대사회의 특징을 읽어낸 미셸 푸코(M. Foucault)는 이와 같은 시선의 권력이 비단 형벌 체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극소수가, 혹은 단 한 사람이 대다수 집단의 모습을 순식간에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학교, 병원, 공장, 군대 등 모든 근대적 제도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라는 것이다. 이 때 도시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푸코는 근대 도시계획을 “감옥체계로 된 도시의 모형”으로 이해하고자 했다(오생근 역, 1994:317). 도시계획이란 도시공간의 통제와 관리를 통해 근대국가와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개조하는, 이른바 ‘인간축적’ (accumulation of men)의 과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전근대국가와 구별되는 근대국가의 핵심적 강점 가운데 하나는 ‘시각적’ 능력이다. 근대국가는 도량형의 통일, 소유권의 제도화, 성씨의 창제, 표준어 제정, 교통망 및 통신시설의 정비와 확충 등을 통해 자연과 사회, 그리고 인구에 대한 가독성(legibility)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복합하고 난해한 현실을 단순화된 근사치를 통해 보고 읽는다는 의미에서 스콧은 이를 “국가처럼 보기”(seeing like a state)라 요약했다(전상인 역, 2010). 제2제정 치하 파리재건은 이와 같은 “국가처럼 보기”가 도시계획에 반영된 전형적인 경우다. 파리의 시각적 정비와 기하학적 재구성은 자본축적의 효율성 증대와 노동자혁명의 예방을 위한 지배 권력의 통치력 배양과 직결되었다(구동회 ․ 박영민 역, 1994:278-281; 이재원 역, 2004:68, 76).

근대 이후 시각의 전성시대는 경관 혹은 스펙터클의 탄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기호들(signs)와 표현물(representations)들은 그 자체가 일종의 ‘텍스트’(text)로서 성격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의 의미는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권력자들이 거대한 건축물이나 광대한 거리 혹은 광장 등을 건설하여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특히 19세기 근대국가 건설의 대미(大尾)를 장식했던 각국의 수도계획(capital city planning)은 ‘권력의 적나라한 상징’(Sonne, 2003:29)이었다.

경관이나 스펙터클은 통치와 권력의 차원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근대 이후 시장과 자본의 논리 역시 도시의 시각적이고도 과시적인 측면을 크게 부각시켰다. 이는 산업사회의 소비주의 문화가 도시를 거대한 소비와 여가의 공간으로 특화시켰기 때문이다(조형준 역, 2005). 그 과정에서 근대인들은 시각적 자극에 몰입하는 ‘구경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예컨대 파리 도심재개발 이후 대로 주변의 백화점이나 공연장, 광고물 등은 거대한 ‘파사주’가 되어 시민들의 눈길을 모았다(노명우 역, 2006).

여기에 가세한 것이 19세기 이후의 급속한 ‘문화 팽창’이다. 1880년은 유럽에서 문화 산업이 산업화 이전 단계에서 벗어나는 해였고, 그 결과 인쇄, 출판, 공연, 언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볼거리’ 문화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오숙은 외 역, 2012:29). 특히 기 드보르는 문화의 산업화에 따른 이른바 ‘스펙터클 사회’의 출현에 주목하였다. 신문,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 등 다양한 방식의 현실 재현 기술은 도시를 ‘스펙터클의 거대한 축적물’로 변모시켰으며, 이와 같은 ‘스펙터클의 풍요’ 속에서 사람들의 삶은 실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표상으로 물러난다”고 비판되기도 했다(이경숙 역, 1996:10, 45).


Ⅲ. 시각 우위 도시계획 비판

시각 우위 현상에 대한 비판은 그 자체로서도 역사가 매우 깊다. 단적으로 성경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가르쳤다. 근대 이후 시각 중심 패러다임에 대한 반대는 이런 점에서 충분히 예견된 반응이었다. 가령 눈의 특권을 부정한 니체는 많은 철학자들이 눈을 제외한 감각들에 대해 맹목적인 적대감을 보이는 것을 비판하였다(강수남 역, 1988). 사르트르(Sartre) 또한 강렬한 ‘망막 증오증’을 드러냈다. 그에게 있어서 ‘눈앞에 있음’은 실존하지 않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정성철 ․ 백문임 역, 2004a:251, 258). 왜냐하면 “타자를 객관화시키는 방식의 바라보기”는 마주치는 모든 것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말하자면 “메두사식의 일별(Medusa glance)”에 불과한 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Kearney, 1995:63).

시각 중심주의는 시각과 비시각의 구분과 자아와 세계의 분리를 의미한다. 이 때 자아는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을 철저하게 무시한다는 점에서 “몸이 없는 관찰자”(bodiless observer)일 뿐이다(최연희 역, 2004; 김훈 역, 2012:42). 그리고 이는 근대적 공간관에 그대로 적용된다. 공간을 점하는 주체는 공간과 어떠한 정서적 관계도 맺지 않으며, 그 결과 양자 사이에는 ‘분리와 거리’만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관찰의 대상은 ‘비어있고 균등한’ 공간, 곧 ‘기하학화’(geometricalized)된 공간이다.

물론 시각중심의 근대적 도시계획이 갖고 있는 가치를 전적으로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합리성, 효율성, 그리고 심미성의 측면에서 나름대로 진보적인 측면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균질성과 객관성을 지닌 ‘공간’(space)이 아니라 정서적 관계로서의 ‘장소’(place)다(구동회 ․ 심승희 역, 1995:7, 19-20, 29). 장소란 내부로 체험하는 공간으로서, 개인이 주체적 자아가 되고 세상의 중심이 되는 계기가 된다(김광현 역, 1985). 주택을 ‘주거용 기계’라고 말한 르 코르뷔지에를 비판하면서 바슐라르가 아파트로 가득한 “파리에는 집이 없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곽광수 역, 2003:107).

근대적 도시계획의 폐해를 가장 신랄하게 고발한 인물은 미국의 도시운동가 제이콥스(J. Jacobs)였다. 그녀는 하워드(E.Howard)의 전원도시론, 르 코르뷔지에의 수직도시론, 번햄(D. Burnham)의 도시미화론 등 시각적 질서를 강조하는 일련의 유토피아 도시계획 이론들에 정면으로 맞섰다. 도시의 진정한 가치는 다양성에 있으며, 그러한 다양성은 계획에 의해 견고하게 짜인 인위적인 가식이 아니라 인간적 감성 충족이 선행될 때 유지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제이콥스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도시의 구조보다 경험적으로 누적된 사회적 질서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에 보다 많은 가치를 두었다(유강은 역, 2010:491-496).

드 세르토(M. de Certeau) 역시 눈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신체적 공간실천이 불가능해진 근대도시를 반대한다. 그는 고층 옥상과 같이 높은 곳에서 “시점(viewpoint)이 되려는 욕망”은 저 아래 “극도로 산란한 인간 텍스트들을 전체화(totalizing)” 하는 지배자나 계획가의 ‘개념도시’(concept de ville)로 귀결될 뿐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시각적 개념도시는 공간의 모든 데이터를 수평적으로 평준화하여 도시 내의 많은 실제 주체들을 무력화할 뿐이라고 생각했다(Certeau, 1988:91-103).

세넷(R. Sennett) 또한 제이콥스나 드 세르토와 계보를 공유한다. 그는 근대 이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나 사람과 공간 사이의 소외감이 증대함에 따라 이른바 ‘무감성 도시’(neutral city)가 보편화되었음을 지적한다(Sennett, 1992:41-68). 이는 전근대적 도시공간이 ‘사회적 실천’(social practice)이 가득 찬 곳으로서 ‘눈의 양심’(the conscience of eye)이 살아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근대 도시에서 ‘눈의 양심’과 ‘사회적 실천’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시각 위주 도시 계획과 도시 설계가 인간의 육체와 공간을 분리할 뿐 아니라 사람들 간의 접촉과 교류를 최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닛에 의하면 길거리, 카페, 백화점, 버스, 지하철 등 근대적 공간은 ‘대화의 무대’가 아니라 ‘시선의 장소’일 뿐이다(임동근 외 역, 1999:13-17, 376).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도시를 기하학적 공간이 아닌 통각적 장소로서 경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Ⅳ. 잃어버린, 혹은 사라진 걷기

서구의 고대 및 중세도시들은 기본적으로 ‘보행도시’(walking city)로서 걷기를 전제로 계획되고 설계되었다. 인간의 근육이 움직이는 속도와 그것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 걸으면서 만나는 시선, 몸이 움직이는 속도와 리듬 등이 도시 공간을 구상하는 기준과 원칙이었던 것이다(송도영, 2010:5; Soderstrom, 2008:206). 그 결과, 도시의 규모는 ‘한 사람이 하루 동안 걸어서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거리’ 정도가 자연스러웠다. 걷기는 일반 사람들이 장소를 이동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고, 걷지 않는다는 것은 높은 지위나 특권의 소유를 의미했다(정수복, 2009:63).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궤도마차, 전차(電車), 자동차 등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도시는 육체가 아닌 동력수단을 통해 이동하는 “기계이동 도시”(mechanized city)로 변모하게 되었다(Toynbee, 1970:173). 이로써 도시의 공간적 범위는 인간의 근육이나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다. 전차의 정해진 노선을 따라 별모양의 도시가 형성되었고, 전차 역 부근에 새로운 정착지가 조성되면서 도시는 크게 확장되기 시작하였다(허우긍, 2006:93). 전차에 비해 자동차는 도시의 면적을 넓히는데 있어서 훨씬 더 능동적이었다. 도로망이 확산되면서 자동차를 통한 이동에는 제약이 거의 사라져 어디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도시의 형상은 전차 시대의 별모양에서 과거보다 거대해진 원형으로 되돌아왔다.

물론 근대 이전의 도시가 위생이나 안전의 측면에서 보행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보도, 가로등, 가로 명, 교통법규, 교통신호 등 도시 환경을 정비하는 설비와 장치 및 기호들이 등장하기까지, 도시의 거리는 하수와 오물로 가득했을 뿐 아니라 마차, 거지, 호객꾼 등 무질서나 불안 혹은 공포 요인이 상존하는 장소였다. 당시 도시의 보행은 흙탕물의 튀김이나 부랑자들의 습격 내지 모욕, 노점상들의 호객 행위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나름의 ‘기술’이 필요한 행위였다(김정아 역, 2003:278, 28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거리는 ‘위험하지 않은 무질서’ 상태를 유지했다. 왜냐하면 이동속도가 느린 보행자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Schönhammer, 1995:82; 김태희 ․ 추금환 역, 2007:98에서 재인용).

그러나 엔진이 달린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우선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후진이나 우회가 아닌 전진이었다. 곧, ‘이동과 속도’라는 목적을 위해 자신들의 이동 경로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모두 제거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김태희 ․ 추금환 역, 2007:98; 이기숙 역, 2011:135-141). 기본적으로 바퀴는 “고르고 평평한 길, 고무를 입힌 듯 착착 달라붙는 길”을 선호하였고, 특히 속도성이 보장되는 자동차의 타이어는 “길에서 마주치는 무엇이나 다 납작하게 깔아 뭉개버리는 공격성”을 지녔기 때문이다(김화영 역, 2002:119-120).

자동차 교통은 점차 다른 교통수단을 억압하고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력화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대부분의 길은 ‘도로’가 되었고, 사람들은 걷기를 통해 수동적으로 자연을 향유하는 대신, 전방을 향한 능동적인 자연 정복을 ‘드라이브’ 혹은 ‘자동차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즐기기 시작하였다.(김태희 ․ 추금환 역, 2007:111).

자동차 교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하여 도시는 대대적으로 변모하였다. 차량과 보행자를 격리하기 위하여 자동차 도로와 보도는 분리되었고, 전통적인 격자도로에는 순차적인 위계가 부여되었다. 이처럼 도로가 정비되고 질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도로변의 건물은 불가피하게 철거되었고 여러 개의 전통적인 블록들은 하나의 슈퍼블록 단위로 묶이게 되었다(강홍빈 외 역, 2009:139-141). 오늘날 고속도로, 주차장, 대형 블록 등은 보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운전을 위한 하부구조’일 뿐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주도하에 창설된 CIAM(The International Congress of Modern Architecture)의 도시설계 강령, 곧 아테네 헌장(The Charter of Athens)에서도 매끈하고 단단한 도로 위주의 도시설계가 강조되었다. 기존의 도시는 자동차 등 기계화된 교통수단을 수용하기에 취약하다고 평가되어, 건축과 도시계획은 기계교통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고 그것의 편의에 부응해야 한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게다가 그 무렵만 해도 도시계획과 도시이론은 사람들이 걷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경향이 많았다. 하워드(E. Howard)의 전원도시는 반경 1,000m의 소규모 도시였으며, 페리(C. Perry)의 근린 주구단위도 반경 400m의 도보 통학을 전제로 한 단위 주거구역이다. 뉴어바니즘(New Urbanism) 역시 400-600m정도를 보행의 한계로 설정하는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개발 모델이다. 말하자면 ‘보행거리’(walking distance)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보행 기피를 기정사실화해 왔던 측면이 있다(김광중, 2010:34).

19세기 후반 이후 자동차 교통은 더욱 대중화되었고 여기에 항공기에 의한 하늘 길까지 열렸다. 이로써 현대인에게는 ‘신속한 이동’, ‘원거리 이동’, 그리고 ‘빈번한 이동’이 미덕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의 생활은 계속 증가하는 속도 속에 존재하고 가능하게 되었다. 역사 혹은 일상의 무한대 가속화를 의미하는 비릴리오의 ‘질주정(疾走政, dromologie)’개념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이재원 역, 2004). 이와 같은 속도 사회에서 인간의 몸은 ‘움직이지 않는 앉은뱅이’로 전락해버렸다(김화영 역, 2002:12). 이제 육체는 남아도는 군더더기로서, 원래 육체가 해오던 일들은 자동차와 같은 ‘인공 보철기구’가 대신한다. 육체는 ‘이동하는’ 주체가 아니라 ‘이동되는’ 객체로 된 것이다(김정아 역, 2003:48).

이제 육체는 아주 작은 힘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한 손동작과 단순한 발의 움직임만으로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자동차 속에서 인간은 시각 이외에 어떠한 감각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매끄러운 도로포장, 부드러운 파워 핸들, 안정적인 타이어의 회전은 감각 자체가 몸으로부터 박탈된 느낌까지 경험하게 한다(최효선 역, 2013:254).

이처럼 몸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그것을 수단으로 하는 걷기의 위상도 덩달아 크게 위축되었다. 걷기란 공간보다는 ‘시간 속’에 거처를 정하면서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장악하는 행위’이다. 걷기는 시간을 주체적으로 소비하고 자유롭게 즐기는 활동인 것이다(김화영 역, 2002:33). 따라서 걷기는 속도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와 부합하기 어렵다. 현대인에게 보도는 ‘지체 없이 거쳐 가야 할 직선’에 불과하다. 보도에서 ‘표준적 걸음걸이’, 곧 표준 속도를 예상하고 기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이가 많은 노인이나 장애인, 우물쭈물 길을 찾는 사람, 절망적일 정도로 걸음이 느린 사람들”은 따라서 ‘전진의 방해물’로 인식된다(김화영 역, 2002:206-207). 만약 현대적 주체의 전형을 ‘열차 여행자, 자동차 운전자, 비행기 여행자’에서 찾는다면(Urry, 1995:141), 보행은 “현대성으로부터의 도피요, 비웃음”일 뿐이다(김화영 역, 2002:15).

이상적인 미래 도시모델로 회자되는 유비쿼터스 도시(U-City) 혹은 스마트 도시(Smart-City)에서 걷기는 더욱 설 자리가 없다. 사람들은 이제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과 IT 인프라를 이용하여 제자리에서 모든 일을 해결한다.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를 활용한 스마트 워크(smart work) 및 스마트 쇼핑(smart shopping) 등은 최소한의 이동을 요구할 뿐이다. 걷기가 필요한 근거리 이동에서도 사람들은 더 이상 이리저리 배회할 필요가 없다. 각종 스마트 기기들은 목적지에 이르는 가장 쉽고 빠른 거리를 알려주면서, ‘스마트 워크’(smart walk)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결국 걷기는 일상생활에서 그 중요성이 점차 약화되었다. 최근 걷기의 가치가 재발견된 것은 일상이 아니라 비일상 혹은 탈일상 영역에서였다. 여가나 관광의 영역에서 걷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는 1960-70년대부터 트레일, 자연보도, 랑도네 등 걷기 탐방로를 조성하여 여행으로서 걷기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올레길이 상징하는 것처럼 걷기열풍이 불고 있다(김성진, 2010:15).

이때 걷기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그 무엇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속도와 소외로부터 탈출하여 ‘걷는 공간’과 ‘걷는 시간’을 일부러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걷고자 하는 용의’를 갖고 있음을 반증할 뿐 아니라, 걷기가 전통적인 의미, 곧 단순한 ‘통행수단’이나 ‘보행활동’ 이상으로 보다 다층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김광중, 2010:34). 걷기는 단순한 신체적 동작이나 이동 그 이상으로 의미가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Ⅴ. 오감(五感) 행위로서의 걷기

1. 걷기와 오감

걷기는 일차적으로 두 발이 바닥과 접촉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는 걸을 때 두 발만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걷는 행위 자체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시각이나 청각, 후각, 촉각 등 다른 감각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를 위해 걷는 동안 뇌는 끊임없이 활성화된다. 걸음걸이는 심장 박동을 증가시키고 뇌의 산소 공급을 늘이는 일이기도 하다. 걷기를 시작한 지 10-15분이 지나면 뇌 속의 혈액순환은 50퍼센트나 증가한다고 한다. 이는 걷기가 육체적 운동만이 아니라 정신적 내지 이성적 활동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걷기는 감성적 차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걷는 도중에 우리는 두 손으로 젖은 땅을 만져보기도 하고 나무가 발산하는 미묘한 냄새를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새들이 지저귀고 마을의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결국 자신만의 리듬과 템포를 생산하는 걷기는 도시를 자기 나름대로 길들이는 기회이다(김화영 역, 2002:187). 결국 걷기는 보행자 스스로 만들어 가는 ‘심리적 혹은 정서적 지리학’이라고 볼 수 있다(김화영 역, 2002:193).

또한 ‘땅 위의 시선’으로 자기가 걸어 나가는 장소에 대하여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일련의 조사들을 지속한다는 점에서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기도 하다(김화영 역, 2002:91). 이리 저리 향하는 보행자의 걸음걸이는 장소를 직물처럼 엮고 짜내어, 공간을 재구성하고,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범상한 장소들을 재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에서다(Certeau, 1988:97).

요컨대 걷기는 어떠한 기계동력이나 정보매체를 통하지 않은 가운데 “내 몸이 먼저 도시와 만나는 경험”이다(송도영, 2010:1). 몸이 세계와 만난다는 것은 전신(全身)을 척도로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며, 시각을 비롯하여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모든 감각들이 끊임없이 작동하면서 몸 전체의 반응을 촉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차나 자동차가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을 가르쳐주었다면,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행위다(김화영 역, 2002:9, 21). 걷기는 그동안 배제되어 왔던 감각들을 각성시키고, 분리되었던 감각들을 통합하여, 도시의 ‘숨겨진 지형’(hidden geography)들을 직접 경험하고 동시에 새롭게 구축하는 ‘열린 과정’이다. 이로써 도시는 ‘몸 밖’이 아니라 ‘몸 안’에 존재하게 된다.

2. 오감을 통한 도시경험의 확대

기본적으로 걷기는 오감을 동반한다. 걷기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행위와 분리될 수 없는 동작이다. 걷기가 도시에 대한 정보와 지식 수집을 양적으로 크게 확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오감을 총동원하는 걷기를 통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도시는 개별 감각에 의한 것에 비해 월등히 많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각이 다른 감각들보다 공간에 대한 정보량을 보다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입수하는 것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눈에는 약 80만개의 시신경이 있으며, 귓속 달팽이관보다 18배나 많은 뉴런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각각 1억 2천개의 간상체가 있는 양 쪽 눈은 500단계의 명암을 구분해낼 수 있고, 700만개가 넘는 추상체를 통해 백만 가지 이상의 색상 조합을 구분할 수 있다. 실제로 맨 귀로 들을 수 있는 거리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육안으로 담을 수 있는 정보의 반경은 대단히 넓다. 게다가 눈으로 포착한 건물이나 풍경을 인지하는 뇌 부위는 별로도 존재한다고 한다. 그만큼 시각의 공간 인식 능력은 탁월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서영조 역, 2013:71; 최효선 역, 2013:6; Jay, 1993:6).

그런데 우리는 시각과 다른 감각 기관과 협력할 때 보다 명확하게 공간을 이해하고 보다 온전하게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베이컨의 지적대로 “계속 바뀌는 시각적 영상은 감각 체험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명암의 차이, 한랭(寒冷)의 변화, 소음의 강약, 공기 속 냄새의 흐름,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촉감 등 모든 감각이 집적될 때 도시 공간을 효율적으로 지각”할 수 있다(Bacon, 1974:20).

촉각은 시각과 가장 대립되는 감각이지만 공간 지각에 있어 그 중요성이 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시각이 ‘거리두기’ 감각이라면 촉각은 ‘거리소멸’의 감각으로서, 어떤 의미에서 가장 ‘개인적인’ 감각이다. 따라서 시각이 드러난 정보를 인식한다면, 촉각은 공간의 숨은 정보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촉각은 마찰력을 통해 세상과 직접적으로 교류함으로써, 단지 ‘바라보기’에서는 불가능한 공간의 질감, 무게, 밀도, 온도 등을 세밀히 읽어낼 수 있다(김훈 역, 2012:84; Rodaway, 1994:44). 게다가 촉각은 ‘공간적 깊이’를 감지할 수 있는 유일한 감각으로, 공간의 ‘부피(solidity), 저항력(resistance), 융기(protrusion)’의 파악을 통해 심도 있는 공간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정성철 ․ 백문임 역, 2004b;169, 172).

시각과 청각의 협조도 공간 경험을 확장하는데 필수적이다. 귀는 눈과 마찬가지로 떨어져 있는 물체 혹은 자극을 파악하고 반응하는 원격 수용체이지만, ‘수용적’ 감각기관이라는 점에서 눈과 매우 다르다.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는 닫을 수 없기에 주변의 소리를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것이다(이옥진 역, 2011:28). 눈은 시선의 전달을 통하여 객체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지만, 귀는 어떤 것도 주지 않고 근접한 자극을 받기만 하는 ‘이기적’인 기관이라는 주장도 같은 의미이다(김덕영 ․ 윤미애 역, 2006:166).

우리는 열려있는 귀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반향음을 통해 공간을 가늠하고 공간의 스케일을 파악할 수 있다(김훈 역, 2012:71-75). 빛을 수반한 상태에서 정면에 놓인 공간의 표면을 읽어내는 눈과 달리, 귀는 움직임과 활동이 만들어내는 공간 속 모든 방향으로부터의 소리를 포착한다. 따라서 도시의 형태, 규모, 밀도, 건축양식이나 재료,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활동들은 분명 고유하고 독자적인 울림을 창출하며, 이는 치밀하고 입체적인 도시 이해를 돕는다.

어떤 이는 모든 도시들에서 고유의 특별한 바탕음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뉴욕에는 떠들썩한 뉴요커들의 소리 사이로 내림 가음과 내림 나음 사이의 낮은 베이스음이 존재하며, 시카고에는 댐퍼 역할을 하는 거대한 호수 덕에 요란한 사람들의 소리와 시끄러운 전차소리가 경감되어 ‘내림 마’음이, 런던에는 낮은 건물과 다습한 대기, 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로 인해 가장 ‘낮은 도’의 바탕음이 깔려있다는 것이다(안기순 역, 2011:125-127).

한편, 후각은 공기 중에 떠도는 도시 정보를 포착해내는 화학적 감각이다. 인간은 불과 0.2초 만에 대기 중의 분자들을 통하여 냄새 정보들을 감지해 낸다고 한다. 우리는 기체 자극물의 농도와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속도를 통하여 순식간에 ‘공간의 냄새 지도’를 그려낼 수 있다. 꽃 냄새, 흙 냄새, 바다 냄새 등 공간의 냄새 정보들은 자신의 공간적 위치를 일깨워주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후각을 통해 우리는 환경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해 낼 수 있다. 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예민하여, 아주 적은 양의 자극에도 민첩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그만큼 쉽게 지쳐 순식간에 마비된다. 따라서 후각은 상황의 순간적 변화를 인지하는데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코를 통해 입수되는 화학 물질은 도시의 물리적인 풍경 뿐 아니라 ‘사회적’ 풍경까지도 읽을 수 있는 공간 정보원(情報源)이다. 우리는 눈과 귀를 막은 채, 코만으로도 어떠한 공간의 위생이나 안전 상태를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그곳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다(서영조 역, 2013:128, 133-134).

미각은 후각과 마찬가지로 화학적 자극에 대한 감각으로, 우리는 침에 녹은 화학물질이 혀에 위치한 미뢰(味蕾)의 미세포를 자극함으로써 맛을 느낀다. 미각은 생존과 직결되는 감각이지만 혀에 닿는 찰나에 느껴지는 것으로 그 지속성이 매우 짧은 편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농사를 짓고 재배하고 요리된 결과물을 먹는다는 점에서, 미각은 단순히 본능에 충실한 탐닉의 감각 이상이다. 음식은 단순히 영양적 측면을 넘어서 “암묵적, 명시적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 문화적 객체”이다(윤태경 역, 2013:6). “당신이 먹는 것을 나에게 이야기해 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말해 주리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음식이 개인의 사회적 지위는 물론, 그를 둘러싼 문명과 문화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는 뜻이다(주경철 역, 1995:135-136).

따라서 미각의 경험은 도시의 수준과 특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예컨대 기름지고 향신료 향이 가득한 음식을 먹어야 후진국의 후미진 골목을 다녀온 셈이 되고, 토스카나 요리를 맛보아야 중부 이탈리아를, 적포도주를 마셔야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을, 미트 퐁듀를 먹어야 스위스 산악지방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곧, 미각각적 경험과 공간적 체험이 결코 둘이 아니다.

3. 오감을 통한 도시장소성의 형성

걷기는 공간의 양적 경험 확장만 아니라 질적 장소화에도 기여한다. 어떠한 감각도 소홀히 하지 않는 걷기는 우리를 감정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장소성 형성은 개별 감각 단독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걷기가 동반하는 오감의 협력을 통해 만나는 도시의 경관과 소리, 냄새, 맛과 향기, 느낌 등은 뇌의 감정 지각 능력을 작동시켜 우리가 장소를 기억하고 장소와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감각은 판단을 위한 정보의 수용체일 뿐 아니라,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각은 이성의 감각으로 장소적 감수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눈은 “조사하고 제어하고 수사”하는 기관으로, 다른 어떤 감각보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김훈 역, 2012:67-68). 시각은 대상을 단지 ‘감지’하고 ‘대상화’할 뿐이다. 이에 비해 촉각은 직접 접근하고 어루만지는 ‘애정’의 감각으로서(김훈 역, 2012:85), 공간과의 연대감을 형성해나간다.

세상과 직접 만나기 때문에 촉각은 공간과 정직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특히 발이나 둔부는 손에 비하여 도시의 질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부위이다(Porteous, 1996:36). 걷기의 주된 도구인 발은 모든 신경이 집결되는 곳으로 다른 어떤 부위보다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측면이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고 규칙적으로 땅을 울리는 발소리는 인간에게 정서적 편안함을 주며, 대지를 직접 밟는 행위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확인시켜 준다(임석재, 2012:87).

걸으면서 만나는 도시의 소리도 우리의 감성을 일깨운다. 청각은 시각보다 정보를 수용하고 전달하는 힘은 크지 않지만, 감성적인 측면은 훨씬 강력하다(이옥진 역, 2011:28). 또한 귀에 전달되는 정보는 비록 순간적이고 일시적이지만 눈으로 본 고정된 객체에 대한 기억보다 훨씬 오래간다(김덕영 ․ 윤미애 역, 2006:163). 때문에 우리는 단지 눈으로 대상을 대할 때 보다 눈과 귀가 협업하여 공감각으로 대상을 느낄 때 깊은 감동을 받는다. 훌륭한 사운드 트랙이 입혀진 영화가 등장인물의 과도한 움직임만 있는 무성영화보다 강한 생명력과 깊은 감동이 있듯이, 종소리나 오르간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성당은 단지 어두컴컴한 암흑의 공간에 불과할 때가 많다.

청각과 감성과의 연관성은 싫어하는 소리를 접할 때 인간이 보이는 반응에서 더 잘 나타난다. 도시의 차량 소음, 대형 건물의 에어컨 소리, 건설 현장의 요란한 쇳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두통, 피로, 짜증 같은 증상을 보인다. 게다가 청각은 감각적응(sensory adaptation)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인간은 소음과 쉽게 동화될 수 없다. 층간소음 문제가 그 대표적 예이다. 따라서 불쾌한 소리를 차단하는 것은 인간이 공간과 안정적인 정서적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접하는 도시의 소리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완벽한 음향 설비를 갖춘 콘서트홀에서 들을 수 있는 정제된 소리가 아니라 도시의 생동감과 역동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살아있는 소리이다. 게다가 우리는 단지 다가오는 소리를 듣기만 하는 수동적 태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도시의 소리를 직접 만들어내는 생산자이기도 하다. 결국 청각은 타자에 의한 소리 뿐 아니라 스스로가 생산하는 소리까지도 받아들임으로써, 객관적 공간을 실존적이고 구체적인 장소로 전환하는데 기여한다(Rodaway, 1994:96).

사람의 감정과 가장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는 감각은 후각이라는 주장도 있다. 후각은 호흡이라는 과정을 통해 객체가 주는 인상을 우리 안으로 내밀하고 깊숙이 끌어들이고 그것과 매우 밀접하게 동화시킨다. 후각을 잃으면 우울증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김덕영 ․ 윤미애 역, 2006:173; 김진옥 역, 2002:11; 장호연 역, 2013:79).

사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가 소비하거나 섭취하는 것의 냄새를 엄마의 양수를 통해 학습하기 시작하고,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젓 냄새와 맛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후 끊임없는 냄새의 ‘경험’은 그 냄새에 대한 감정을 만들어간다. 한 가지 냄새와 한 가지 기분이 반복해서 연관을 갖게 되면, 그 냄새와 기분은 확고하게 연결된다. 곧, 냄새 선호는 ‘학습’의 결과인 것이다(장호연 역, 2013:51, 145-146).

후각은 미각으로 전이되고 미각적 경험을 강화한다. 실제로 미각과 후각을 관장하는 일차감각 피질 부위는 해마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감정기억(emotional memory)의 형성을 촉진한다(윤태경 역, 2013:166-167). 특정한 냄새는 입 안의 느낌들을 일깨우고, 이것이 우리의 감성을 움직이는 것이다.

후각과 미각 그리고 감성의 고리는 상황적 맥락에서 형성되고, 결국 장소에 대한 기억을 이끌어낸다. 냄새는 “기억을 이끌어내는 최고의 자극”(장호연 역, 2013:79)이다. 음식과 관련된 냄새는 더욱 그러하다. 결국 음식의 맛과 향, 식감은 음식을 먹은 사실 뿐 아니라 장소와 환경, 그리고 그 때의 기분, 감정, 심리 상태와 몸 상태까지 기억나게 하는 것이다(윤태경 역, 2013:159). 어릴 적 뛰어놀던 골목에서 매일 빵 굽는 냄새를 맡았던 사람은 버터 향을 접할 때마다 그 시절의 추억과 기억, 그리고 골목길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소울 푸드’(soul food)가 되는 것이다. 결국, 후각과 미각은 청각이나 촉각과 더불어 우리들의 눈이 잊고 있었던 공간을 기억하도록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그 공간을 장소로 재구성하게 돕는다.


Ⅵ. 결론

도시연구에 있어서 걷기는 ‘아주 오래된’ 방법이자 ‘아주 새로운’ 방법이다(송도영, 2010:6). 걷기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이다. 너무도 기초적이고 일상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쉽게 망각해 왔고 그것의 가치 또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걷기는 도시 연구의 방법론으로서 재발견 · 재인식되어야 한다.

우리가 걷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인간의 오감을 활용함으로써, 망각된 감각을 일깨우고 감각의 불균형을 회복한다는 점이다. 근대 이후 도시계획은 일차원적으로 눈에 보이는 정보나 손에 잡히는 지식에 근거하였다. 방법론으로서 걷기는 이러한 시각 위주의 도시계획에 대한 소중한 성찰의 기회가 될 것이며, 등한시 했던 신체의 감각들이 동원되는 생생한 도시연구 기술이 될 것이다.

첫째, 실천적 차원에서 걷기는 보는 것 이상의 공간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눈을 통해 도시의 보이는 정보들을 읽어내는 행위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걷기는 공간의 정보들을 오감으로 인지하고 습득하는 체험의 지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걷기를 통하여 도시를 보다 정확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간적 깊이나 스케일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을 물론이고 공간의 상태를 판단하거나 예측함으로써 도시에 대한 지식을 확장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도시의 전부가 아니다. 도시는 삶의 다양한 기억과 체험, 일상의 숨결과 체취, 시간의 두께와 토착적 지혜, 장소의 혼(genius loci) 등 쉽게 드러나지 않는 무수한 것들의 집합체이다(전상인, 2012). “도시는 기억, 욕망, 기호 등 수많은 것의 총체이다. 도시는 경제학 서적에서 설명하듯 교환의 장소이다. 하지만 이때 교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언어, 욕망, 추억들도 교환될 수 있다”(이현경 역, 2007:211). 오감을 자극하는 걷기야말로 ‘보이지 않는 도시’를 이해하는 최적의 방법이 될 것이다.

둘째, 실존적 차원에서 걷기는 도시의 진정한 내면과 특성을 발견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인간이 도시와 더욱 내밀하고 심도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간과 ‘관계 맺기’(place marking)는 단지 눈을 통해 공간을 가늠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몸 전체를 도구로 세계와 만날 때, 그곳에 존재하는 두꺼운 의미들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간을 진정으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공간의 구축이란 경험의 구축이자 삶의 구축”이어야하기 때문이다(김종진, 2011:338).

걷기는 눈 뿐 아니라 손이나 발, 귀, 코, 입 등을 활성화하며 이들은 공간에 상존하는 다양한 자극들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인다. 게다가 우리는 걸으면서 감각 자극을 수용할 뿐 아니라 동시에 자극원을 생산하기도 한다. 곧 걷기는 인간과 도시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공간을 만들어가는 행위이다. 이는 근대 이후 시각중심의 도시계획 과정에서 많은 도시들이 상실해온 도시의 고유성과 개성을 일깨우면서, 장소로서 도시공간을 복원하고 창조하는 데 적잖이 일조하게 될 것이다.

결국, 걷기는 연구자가 스스로 연구주체이자 연구수단이 되어 현장 관찰 및 참여를 수행하는 질적 연구 방법론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서베이 연구나 통계적 분석 등 양적방법론이 현대 도시연구의 주류를 형성하는 가운데 연구 방법론으로서 걷기의 위상과 입지는 여전히 미약한 상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논문은 도시연구 방법론으로서 걷기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고 걷기를 통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예비적 내지 시론적 고찰이다. 걷기가 대안적 혹은 보완적 도시연구 방법론으로서 제도권 학계에서 확실히 자리 잡기 위해서는 도시연구 방법론에 관련된 보다 적극적인 문제 제기와 후속 토론이 절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Notes

주1. 최근 들어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다른 감각들도 시각만큼이나 근대성을 강화하거나 정교하게 만드는데 나름 역할을 하였다는 연구가 문화인류학이나 역사학 분야에서 등장하고 있다(김상훈 역, 2010; Classen, 1993; Corbin, 1995; Howes, 2003). 예를 들어 인쇄술과 관련된 독서도 결국 ‘늘 뭔가를 만지는 행위’이며, 20세기 초에 등장한 음반은 ‘소리의 영구적 보존’이라는 점에서 인쇄술에 버금가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시각 중심의 근대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감각의 서열 자체를 역전하기보다 오감의 총체성을 강조하려는 게 주된 목적이다(김상훈 역, 2010:40-41, 248).

주2.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전, 의사당, 광장, 극장 등에서 언제든지 신과 철학자, 그리고 이웃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과 타인의 자연스러운 교류와 통합은 시민으로서의 의무나 도리를 성실히 수행하도록 이끌었다. 물론 이것의 배후에 거대한 노예제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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