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Planning Association
[ Article ]
Journal of Korea Planning Association - Vol. 54, No. 6, pp.43-55
ISSN: 1226-7147 (Print) 2383-9171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Nov 2019
Final publication date 22 Oct 2019
Received 09 Jul 2019 Reviewed 23 Sep 2019 Accepted 23 Sep 2019 Revised 22 Oct 2019
DOI: https://doi.org/10.17208/jkpa.2019.11.54.6.43

해방 이후 최초의 수원시 도시계획과 그 의미

김태오** ; 양세종***
A Study on Suwon City’s First Comprehensive Urban Plan after Korea’s Liberation
Kim, Tae Oh** ; Yang, Sejong***
**Associate Research Fellow, Suwon Research Institute stct3090@naver.com
***Researcher, Suwon Research Institute yyysssjj@daum.net

Correspondence to: **Associate Research Fellow, Suwon Research Institute (corresponding author: stct3090@naver.com)

Abstract

In 1967, Suwon City announced its first Comprehensive Urban Plan since Korea’s liberation in 1945. However, no records have remained except for the Ministry of Construction’s notification, and it is reported that the plan’s drawing was lost. This study aims to estimate and fill the void left by the 1967 Comprehensive Urban Plan by discovering new records and to shed light on its significance. There are three major findings. First, the plan included a development plan for Eastern Suwon through a three-stage ring road construction. Second, it is identified that the Eastern Suwon development plan was implemented in conjunction with the Gyeongsu (Seoul–Suwon) Industrial Road Construction Project and the land readjustment project in the 1970s and 1980s. It also served as an important factor for Suwon City, which was then financially strapped, to successfully build roads and develop its downtown, including Gwonseon District, at the same time. The land readjustment project additionally helped the city reduce costs by using che-bi-ji (substitute land) for roads. Third, the Satellite City Plan established by the Ministry of Construction in 1965 served as the background for developing Eastern Suwon into a rapidly growing industrial zone with large manufacturers such as Samsung Electronics. The study holds significance as it identifies that Eastern Suwon’s development originated from an urban plan developed by the public sector even before the opening of the Gyeongbu (Seoul-Busan) Expressway (1968) and the establishment of Samsung Electronics (1969).

Keywords:

Suwon City, Urban Planning History, Urban Planning in the 1960s, Urban Development in the 1980s, Land Readjustment Project

키워드:

수원시, 도시계획사, 1960년대 도시계획, 1980년대 도시개발, 토지구획정리사업

Ⅰ. 서 론

수원시는 도시기본계획 수립에 시민참여를 최초로 반영(수원시, 2014:6)하는 등 한국 도시계획을 선도하는 대표적 기초자치단체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오늘날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의미에서의 수원시 도시계획은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수원이 시로 승격1)되기 이전인 1944년 최초의 시가지 계획구역이 결정되었다는 사실과 해방 후인 1967년 우리 정부에 의한 첫 도시계획이 고시되었다는 사실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더욱이 두 도시계획의 고시도는 모두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도면을 통한 구체적 내용의 확인은 불가하다. 이와 관련해 수원시(2000:58, 64)는 1967년 7월 3일 우리 정부에 의한 첫 도시계획이 고시되기까지 1944년 일제가 수립·고시한 ‘수원 시가지계획’이 준용되었으나 그 도면만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고, 1967년 고시도도 소실되었다고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수원시(1997:324)는 1967년 고시된 도시계획을 다루며 ‘수원도시계획종합계획도’라 명명된 도면(<그림 1>)을 ‘수원도시계획결정도’로 소개하였고, 수원시(2004:111)는 이를 ‘67년 수원시 도시설계 종합 계획도’로 소개하였다. 이창수(2014:232-233)는 이를 ‘1967년 장기 발전 구상도(1967.7.3.)’라 소개하며 도시계획 고시일을 함께 기록해 사실상 이를 고시도로 본 듯하다. 1967년 고시도에 관한 주장이 어긋나고 있는 것이다.

Fig. 1.

The map known as comprehensive urban plan of 1967Source: Suwon City (1997:324; 2000:65; 2004:111), Lee (2014:233).

이처럼 1960년대 수원시 도시계획은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알려진 내용조차 불확실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 설정한 연구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67년 고시도에 담긴 내용의 추정이다. 이를 위해 1967년 고시도에 대한 상반된 기존 주장을 검증하고, 신규 발굴 자료를 토대로 고시도에 담겼을 내용을 추정·보완하고자 한다. 둘째, 추정·보완된 고시도 내용을 통한 1967년 도시계획의 의미 정립이다. 이를 위해 1967년 도시계획이 이후 수원시 도시계획 및 개발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고자 한다. 공간적 범위는 수원시를 기준으로 하나 수원시의 행정구역과 도시계획구역이 그간 많은 변화를 겪어 왔음을 고려해 수원시 인접 지역도 포함한다.2) 시간적 범위도 1960년대를 중심으로 하나, 계획 간 연관성과 도시개발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와 1970~80년대도 광의의 범위에 포함한다.

관련 선행연구는 극히 드물다.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자료의 발굴을 다룬 연구 자체가 드물 수밖에 없을뿐더러, 그 자료의 의의를 규명한 연구는 더욱 드물기 때문이다. 다만 관련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여 과거의 사건, 사업 또는 연구결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구까지 이에 포함할 경우, 1980년 강병기가 제안한 로사리오 계획(Rosario Plan)을 대중교통 중심 개발(Transit-Oriented Development, TOD)과 연계해 재해석한 연구(Sung and Choi, 2017), 1960~70년대 광주대단지 조성사업을 공업단지 조성과 연계해 분석한 연구(김태오·최막중, 2018) 등을 유사 연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최막중·최봄이(2017), 김태오·최막중(2017)의 연구도 이에 해당한다. 이들 선행연구는 통계 자료를 가공해 사용하는 등 일부 정량적 연구방법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문헌 조사를 기반으로 한 정성적 연구방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확보 가능한 자료의 한계와 일치하지 않는 통계 자료 간의 신뢰성 문제에 기인한다. 이에 본 연구의 연구방법도 기본적으로 문헌 조사이다. 관련 논문, 중앙정부와 수원시 정부 및 관련 기관의 간행물 및 내부문서, 언론 보도자료 등을 총망라한다. 1960년대의 도시계획이라는 연구대상의 특성상, 확보 가능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고, 미발굴 자료도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가능한 다양한 자료를 통해 연구 질문의 답을 찾고자 한다.

이후 제Ⅱ장에서 1944년부터 1960년대까지의 수원시 도시계획을 고찰한 후, 제Ⅲ장에서는 1967년 고시도로 알려진 도면의 진위 검증을 통해 실제 고시도 내용을 추정·보완한다. 제Ⅳ장에서는 추정된 고시도를 기반으로, 우리 정부에 의한 첫 수원시 도시계획이 지니는 의미를 고찰하고, 마지막으로 제Ⅴ장에서 이를 종합하여 결론을 맺는다.


Ⅱ. 1960년대까지의 수원시 도시계획

1. 일제 강점기

수원 지역에 최초로 도시계획이 수립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이다.3) ‘수원 시가지계획’이란 이름으로 고시(총독부 고시 제1053호)되었는데, 경기도 수원군 수원읍 전부와 수원군 일왕면 일부를 포함한 총 29.39km2의 면적을 대상으로 수립되었다. 광로, 대로, 중로, 소로로 구분된 가로와 토지구획정리지구, 녹지지역,4) 풍치지구, 공원으로 구성되었고, 계획인구 9만 8,000명 수용을 목표로 하였다(수원시, 1965b:5-6, 33; 1997:297-303). 이는 30년간의 인구증가를 약 3.3배로 계획한 것인데, 태평양전쟁의 영향으로 공습과 화재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도시의 성장과 발전보다 관리와 통제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김재국, 2014:150). 본 계획은 1967년 우리 정부에 의한 첫 도시계획이 고시될 때까지 준용(수원시, 2000:58)되었지만, 고시도는 소실되고 말아 구체적 내용의 확인은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다른 문헌을 통한 구역의 확인만은 가능하다(수원시, 1965b:37; 1972:23).

2. 1960년대

우리나라의 1950년대는 전후복구와 주택 부족 문제 해소에 치중할 수밖에 없던 시기이다(임서환, 2002:28-29; 김태오·최막중, 2016). 도시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체계적 계획의 수립은 요원했고, 이를 위한 여력조차 없었다. 그러나 1962년 1월 20일 「도시계획법(법률 제983호)」 제정에 따라 도시계획 수립의 법적 기준이 마련되었고, 1965년에는 해외원조를 통해 건설부 내에 주택 및 도시계획 연구소(Housing, Urban and Regional Planning Institute)가 설립(Jung, 2014)되며 선진국의 계획 기법을 익힐 수 있게 되었다. 도시계획 수립을 위한 법적 요건과 역량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수원시도 1963년 화성군 안룡면 등 총 20개 리를 편입하며 행정구역을 23.35km2에서 83.67km2로 확장(법률 제1175호)함에 따라 도시계획 재정비 필요성이 대두되었다.5) 이에 수원시는 1964년 도시계획 재정비 목적의 기초조사를 실시해, 1965년 2월 ‘수원도시계획재정비기본자료조사서’를, 동년 12월에는 이를 토대로 ‘수원도시계획재정비보고서(계획구역, 용도지역, 가로, 공원)’(이하 1965년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와 같은 준비과정을 거쳐 1967년 7월 3일 마침내 우리 정부에 의한 첫 수원시 도시계획이 고시되었다(건설부 고시 제478호).

그러나 고시 직후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1968년 2월 착공되었고,6) 서울-신갈 구간은 동년 12월 개통되었다.7) 이듬해 1월에는 삼성전자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되어 동년 3월부터 공장건립용 부지를 매탄동 일대에서 매입하기 시작하였다(삼성전자주식회사, 1989:119).8) 더욱이 도시계획 고시 직전에 이루어진 연초제조창 수원 이전 결정(1967년 5월),9) 경기도청 이전(1967년 6월)10) 등은 1967년 도시계획 수립 시 고려되지 못했다. 이처럼 수원시를 둘러싼 여건이 크게 변화하자 도시계획 재정비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결국 1969년 6월 11일 용인군과 화성군 일대를 수원시 도시계획구역에 편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도시계획 변경(건설부 고시 제336호)이 고시되었다(<그림 2>).

Fig. 2.

Comprehensive urban plan of 1969Source: Suwon City (2000:64).


Ⅲ. 1967년 수원 도시계획 고시도 추정

1. 기존 1967년 고시도(<그림 1>)의 진위 검증

1967년 고시도의 내용을 추정·보완하기 위해서는 엇갈린 기존 주장에 대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본 절에서는 먼저 수원시의 행정구역 및 도시계획구역, 그리고 경부고속도로 건설과정을 고찰함으로써 지금까지 1967년 고시도로 알려진 도면의 진위를 검증하고, 이후 이 도면의 작성 목적을 확인하고자 한다.

1) 검증: 도시계획구역 및 시설 비교

1944년 ‘수원 시가지계획’의 계획구역은 수원 화성과 수원역 일대를 포함하는 영역(29.39km2)으로, 1949년 수원의 시 승격 시의 행정구역인 23.35km2(수원시, 1962:1)와 유사하다. 그러나 1963년 수원시 행정구역 확장(법률 제1175호)에 따라 행정구역과 도시계획구역이 크게 어긋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른 관리상의 어려움이 제기되었다. 1967년 도시계획 수립 배경에 두 구역의 불일치가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수원시(1965b:33-34)는 “도시계획구역은 단순한 일반행정의 구역인 시·읍 구역과는 기의의(其意義)를 달리하고 따라서 기구역과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일치하게 정하지 아니할 때에는 도시계획 행정관리상 또는 도시계획사업 실천상 번잡한 사무적 수단 등을 요하는 관계로 대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시역(市域)과 계획구역을 동일하게 정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고 수원시의 경우도 타시의 예에 준하는 것이 현책(賢策)으로 인정되어 현행계획구역 29,390,000m2를 현 시 행정구역과 동일하게 도시계획구역 83,667,000m2로 변경 결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1967년 변경 고시된 도시계획구역은 당시의 행정구역과 일치하도록 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림 1>의 도시계획구역은 1967년 수원시 행정구역을 넘어 현 용인지역까지 포함하고 있다. 1967년 도시계획 변경이 두 구역을 일치시키고자 추진되었음을 고려하면, <그림 1>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도면 표기 시설을 통해서도 <그림 1>이 1967년 고시도가 아님을 추정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주목한 시설은 경부고속도로로, <그림 1>이 1967년 혹은 그 이전에 작성된 도면이려면 도면에 표기된 경부고속도로의 노선확정이 최소한 그 이전에 이루어졌어야 한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1967년 11월 14일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 결정되었고, 이후 서울 한남대교에서 부산 동래구 구단동까지 총 428km의 노선이 확정되었다(손정목, 2005:209). 이 중 서울-수원 구간의 노선은 1967년 12월 6일 확정되어,11) 1968년 2월 1일 착공되었다.12) 따라서 수원시 도시계획이 고시된 1967년 7월 3일 이전에 경부고속도로의 정확한 위치와 노선이 표기된 도시계획도의 작성은 어려웠으리라 판단된다. 다만, 언론보도13)와 건설부 문헌14)은 국제부흥개발은행(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IBRD)이 이미 1966년경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건설을 제안했고, 이를 위해 건설부가 경제기획원에 차관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기록15)하고 있어, <그림 1>이 1967년 이전 작성되었으리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수원시와 같은 기초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미발표 도시계획시설을 먼저 고시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여전히 <그림 1>을 1967년 고시도로 보기는 어렵다.

2) <그림 1>의 작성 목적

전술한 검증을 통해 1967년 고시도로 알려진 <그림 1>이 그렇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이 도면이 언제, 어떤 목적으로 작성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본 연구에서 확인한 <그림 1>이 수록된 최초의 문헌은 1969년 5월 수원시가 발간한 ‘수원도시계획변경보고서: 신갈지구를 중심으로’(이하 1969년 보고서)이다. 이 문헌은 1967년 도시계획 고시 이후 수원시의 여건변화를 도시계획에 반영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도시계획구역을 경부고속도로 신갈 나들목 일대까지 확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보고서로, 발간 직후인 동년 6월 11일 도시계획 변경(<그림 2>)이 고시되었다. <그림 1>은 본문이 아닌 목차와 본문 사이에 삽도 형식으로 페이지 구분 없이 수록되어 있다.

1969년 보고서는 불과 2년 만에 도시계획을 변경하게 된 여섯 가지 이유16)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부고속도로 개통이었다. ‘수원 도시기본계획의 변경의 절대적인 요인은 고속도로의 건설로 말미암은 도시기능의 변화’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수원시. 1969:85-87). 다른 문헌에서도 “수원 도시의 기본계획은 1969년 6월 11일 건설부 고시 제336호로 경부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주변 지역 개발을 위하여 인터체인지가 입지한 신갈지구를 포함하여 재정비된 바 있다”라고 기록(수원시, 1972:5)하며, 도시계획 변경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경부고속도로 개통임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그림 1>은 경부고속도로가 표기되어 있다는 특징과 1969년 고시도 <그림 2>와의 유사성을 토대로, 1969년 도시계획 변경 과정에서 작성된 도면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비록 신갈지구를 수원시 도시계획구역에 포함시킨 최초의 도면이라는 의의는 있겠으나 1967년 고시도로 보기는 어렵다.

2. 수원시 첫 도시계획 고시도 내용 추정

1967년 고시도로 알려졌던 도면의 진위가 확인됨에 따라, 이의 원형 추정은 기존 자료의 재검토는 물론이고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의 발굴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 검토한 자료는 수원시가 1961년 작성한 ‘수원시도시계획재정비계획도’, 1965년 작성한 ‘수원도시계획용도지역지정계획도’, 1968년 작성한 ‘수원도시계획도’ 그리고 건설부가 1965년과 1967년 작성한 ‘위성도시계획도’이다. 이 중 수원시의 1965년과 1968년 계획도는 그간 보고된 바 없는 자료이다.

1) 1961년 수원시도시계획재정비계획도

‘수원시도시계획재정비계획도’라는 이름으로 작성된 도면(<그림 3>)은 1961년 8월 8일 수원시가 경기도지사의 승인을 받기 위해 제출했던 도면이다. 비록 이 도면은 다음 날인 8월 9일 도면작성에 기정계획과 변경계획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변경 사유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돼 법적 효력은 없었지만, 해방 이후 작성된 첫 수원시 도시계획도라는 사실(수원시, 2000:60-61), 그리고 1944년 고시도와 1967년 고시도를 연결해 주는 가교(假橋)로서 1967년 고시도 추정의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의의가 있다.

Fig. 3.

Proposed comprehensive urban plan of 1961Source: Suwon City (2000:61).

본 연구에서 주목한 1961년 계획도의 특징은 용도지역 지정과 도로망 계획이다. 먼저 용도지역과 관련하여 1961년 계획은 화성 내부를 혼합지역으로 지정하였다. 1962년(도시계획법 제정)까지 적용되던 「조선시가지계획령」 제19조의 2에 따르면, 혼합지역이란 조선 총독이 정하는 사항을 제외하고, 각종 건축물을 건축할 수 있는 지역을 의미하였다. 소규모 공장과 주택이 혼재된 지역을 혼합지역으로 본 것이다.17) 이에 전채은·최막중(2018)은 불허용도 열거방식(negative list)에 의한 용도혼합이 혼합지역의 주요 특징이라 설명한 바 있다.18) 따라서 혼합지역의 법적·시대적 특징을 고려했을 때, 수원 화성 내부가 혼합지역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은 다음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 수원시가 도시계획을 통한 일체의 건축행위에 대한 통제를 포기한 결과가 혼합지역 지정으로 나타났으리라는 추정이다. <그림 4>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미 수원 화성 내에 주택과 공장이 혼재되어 있어 계획을 통한 정비가 사실상 불가능하였고, 이에 수원시는 소규모 공장과 주택의 혼재를 법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혼합지역으로 수원 화성 내부의 용도를 지정했으리라는 추정이다. 둘째, 수원 화성이 지니는 역사·문화적 특성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도시계획을 통한 문화재 보호를 고려하지 못했고, 그 결과 혼합지역으로 지정했으리라는 추정이다. 이는 수원시(1965a)의 ‘수원도시계획재정비기본자료조사서’와 이 조사서를 토대로 작성된 수원시(1965b)의 ‘수원도시계획재정비보고서’에 역사·문화 관련 언급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Fig. 4.

Plants location in Suwon of 1964Source: Suwon City (1965a).

다음으로 도로망 계획을 보면, 1961년 계획은 수원천 양측에 15m 이상의 중로(제2종)를 계획하였다. 당시 수원의 중심가로는 장안문에서 팔달문(현 정조로)을 거쳐 수원역에 이르는 구간(현 매산로)으로 이미 미군정 시기(1945~1948) 직선화와 포장공사가 완료되어 차량 통행이 가능한 수준이었다(수원박물관, 2010:60). 그럼에도 1961년 계획은 수원천 양변에 도로 신설을 계획했는데, 이는 1982년 개통된 경수산업도로와 동일한 목적, 즉 통과교통의 우회를 도모한 계획으로 볼 수 있다(수원박물관, 2010:63-65). 이와 관련한 사항은 제Ⅳ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2) 1965년 수원도시계획용도지역지정계획도(안)

‘수원도시계획용도지정계획도(안)’라 명명된 도면 <그림 5>는 수원시가 동화기술단에 의뢰하여 1965년 12월 발간한 ‘수원도시계획재정비보고서(계획구역, 용도지역, 가로, 공원)’에 수록된 도면으로, 지금까지 보고된 바 없는 도면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 도면을 1961년 계획의 연장선상에 있는 도면으로 판단하였는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Fig. 5.

Proposed comprehensive urban plan of 1965Source: Suwon City (1965b:65).

첫째, 혼합지역이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으로 구분·변경되었다는 사실이다. 1965년 기준 「건축법(법률 제1356호)」 제32조 6항에 따르면, 혼합지역에 건축할 수 없는 건축물이란 ‘상업지역에 건축할 수 없는 건축물’과 ‘화장장’ 및 ‘도살장’이라 규정하였다. 화장장과 도살장이 일반적 용도의 건축물이 아님을 고려하면, 사실상 혼합지역과 상업지역의 구분이 무의미했던 것이다. 또한 <그림 4>의 공장 위치와 <그림 5>의 상업지역, <그림 4>의 공장이 없는 위치와 <그림 5>의 주거지역이 일치함에 주목하면, 1965년 계획은 1961년 계획을 기반으로 더욱 면밀하게 용도지역을 지정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둘째, 1961년 계획에 처음 등장했던 우회도로 계획이 1965년 계획에서는 3단계에 걸친 순환도로 조성19)으로 더욱 발전되었다는 사실이다. 1961년 계획은 장안문-팔달문 구간의 간선도로를 수원천 변으로 변경하는 계획으로 성 내부에서의 도로 이설(移設)에 불과했다. 반면 1965년 계획은 한 개의 내부 순환도로와 두 개의 외부 순환도로를 계획함으로써 통과교통 우회라는 원칙에 더욱 충실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1961년 계획에 반영되었던 개념을 보완·발전시킨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제2, 제3 순환도로의 건설과 신시가지(동수원) 개발을 동시에 계획했다는 사실, 그리고 기존 도심과 신시가지의 연계 혹은 기존 도심의 신시가지로의 확장을 고려해 수려선(水驪線, 수원-여수) 철도의 이설을 계획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한 사실은 제Ⅳ장에서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한편, 1965년 계획은 1967년 도시계획 고시와도 연관성이 있다. 1965년 계획의 계획구역이 당시 수원시 행정구역과 동일하게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1967년 도시계획 변경의 배경에는 행정구역과 도시계획구역의 불일치가 있었고, 이에 두 구역을 일치시키고자 도시계획 변경이 추진되었음을 확인했는데, 이러한 목적으로 작성된 계획 중 공식적으로 확인된 최초의 계획이 바로 1965년 계획인 것이다. 또한, 용도지정에 있어서도 1965년 계획은 1967년 도시계획 고시와 매우 유사하다. <표 1>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상업지역과 공업지역의 면적은 두 계획이 동일하고, 주거지역과 녹지지역도 근소한 차이는 있으나 비슷한 면적으로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Land use plan of 1965, 1967, 1968, and 1969

3) 1968년 수원도시계획도(용도지역, 가로, 공원)

수원시가 1968년 발간한 ‘도시종합계획(1969~1978)’(이하 1968년 보고서)에 수록된 ‘수원도시계획도(용도지역, 가로, 공원)’ (<그림 6>)는 앞에서 언급한 1965년 계획도와 함께 1967년 고시도의 내용을 추정함에 있어 중요한 문헌 중 하나이다. 이는 본 도면이 수원시 도시계획 변경 고시가 이루어진 1967년과 1969년 사이에 작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1965년 보고서에 처음 등장한 세 개의 순환도로망 체계를 더욱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8년 보고서는 ‘방사선과 방사선을 상호 연결하는 순환선’의 부재가 수원시 도로망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 지적하며 이의 해소를 위해 도심부의 제1 순환도로, 중심부의 제2 순환도로, 주변부의 제3 순환도로로 구성된 순환형 도로망 구축을 제시하였다(수원시, 1968:114-117). 또한 수려선 철도 이설도 그대로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은 1965년 계획과 1968년 계획이 상호 연관돼 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1968년 계획도를 있는 그대로 1967년 고시도로 볼 수는 없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기인한다.

Fig. 6.

Proposed comprehensive urban plan of 1968Source: Suwon City (1968:13).

첫째, 1965년 계획도와의 차이이다. 두 도면은 매우 유사하나 동수원 지역의 용도지정에는 차이가 있다. 1965년 계획은 일부 상업지역과 녹지지역을 제외한 동수원 전역을 주거지역으로 계획하였으나, 1968년 계획은 상당 면적을 공업지역에 할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1968년 보고서는 평동, 서둔동 일대(1,220,000m2)와 정자동, 파장동, 천천동, 이목동 일대(1,930,000m2)에 지정된 공업지역을 언급하며 예비지로 ‘고속도로 접속도로 주변으로 교통이 편리’한 동수원(원천동, 매탄동, 권선동)과 ‘평탄하고 지하수 개발이 용이’한 서수원(고색동, 탑동)을 제안하고 있다. 따라서 1968년 보고서는 예비지로 제안한 지역을 계획도에 기존 공업지역과 구분 없이 표기하였고, 이에 따라 1965년 계획도와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예비지를 제외한 두 지역 면적의 합(3,150,000m2)으로, 이 면적은 1967년 고시된 공업지역 면적과 같다(수원시, 1968:106; 1997:304). 이를 통해 1967년 도시계획 변경 고시에 동수원 지역 공업지역 지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둘째, 1967년 고시된 용도지역별 면적과 1968년 보고서상의 면적 그리고 1969년 도시계획 변경 시 지정된 용도지역별 면적이 모두 다르다. <표 1>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1968년 계획은 1967년 고시된 도시계획과 비교했을 때 총 도시계획구역 면적은 동일하나 주거지역과 녹지지역에서 면적의 증감(1,112,000m2)이 있다. 1969년 도시계획 변경 고시와 비교해도 총면적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수원시, 1968:104-108; 1997:304). 이에 1968년 보고서가 발간될 때까지만 해도 수원시는 여건변화에 대응한 도시계획 변경을 추진했지만, 도시계획구역 변경만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20) 한편 1968년 계획의 용도지역별 면적이 1965년 계획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통해 1965년 이후 수원시의 도시계획 수립 과정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고찰한 바를 근거로, 1968년 작성된 ‘수원도시계획도(용도지역, 가로, 공원)’는 1967년 도시계획 고시 이후,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의 여건변화를 반영하여 작성한 변경 계획(안)으로 판단된다. 기정과 변경이 구분되어 있지 않아 구분이 쉽지 않지만, 최소한 1965년 계획도와 동일한 부분만은 1967년 고시도에 포함된 내용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판단된다.

4) 1965년, 1967년 위성도시계획도: 수원

지금까지 살펴본 1961년 ‘수원시도시계획재정비계획도’와 1965년 ‘수원시용도계획지정계획도’ 그리고 1968년 ‘수원도시계획도(용도지역, 가로, 공원)’는 모두 수원시가 작성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별도로 건설부도 수원시 도시계획을 수립한 바 있는데, ‘서울-인천특정지역건설종합계획’21)의 일환으로 수립한 ‘위성도시계획’이 그것이다(<그림 7>). 이와 관련하여 본 연구에서 검토한 자료는 1965년 건설부가 작성한 ‘서울-인천특정지역건설종합계획 제4차조사보고서(운하, 항만 및 위성도시계획)’(이하 제4차 보고서)와 1967년 작성한 ‘서울-인천특정지역건설계획조사보고서(제6차): 한강다목적댐 능곡도시계획’(이하 제6차 보고서)이다.

Fig. 7.

Satelite city plan of Suwon in 1965 (left) and 1967 (right)Source: Ministry of Construction (1965:95; 1967:81).

먼저, 제4차 보고서에 수록된 수원을 대상으로 한 위성도시계획도(<그림 7>)를 보면, 총 172.71km2에 30만 명의 계획인구를 수용하고자 하였다. 기존의 수원시 행정구역이나 도시계획구역과 무관하게 계획구역이 설정되었고, 용도지역도 지형적 요인의 고려 없이 지정(건설부, 1965:93, 95, 99)되어 있기에 현황조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작성한 구상도(構想圖) 정도로 판단된다. 반면 제6차 보고서상의 계획도는 계획구역을 당시 수원시 행정구역 및 도시계획구역과 일치시켰고, 용도지역도 현황을 반영해 수정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건설부, 1967:81).

건설부 계획에서 본 연구가 주목한 부분은 동수원의 용도지역 지정이다. 수원시의 1965년 계획에서 동수원은 일부 상업 및 녹지지역을 제외하면 모든 지역이 주거지역으로 지정되었고, 공업지역 지정은 전혀 없었다(<그림 5>). 그러나 1965년 및 1967년 수립된 건설부 계획은 동수원에 상당한 면적의 공업지역을 지정하고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그림 7>). 수원시 문헌 중 동수원에 공업지역을 지정하고자 한 최초의 문헌이 1968년 보고서임을 감안하면, 건설부는 이보다 먼저 동수원을 공업지역으로 개발하고자 한 것이다. 비록 1967년 도시계획 변경 고시에는 동수원 공업지역이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1969년 도시계획 변경에는 반영되어 매탄동 일대가 공업지역으로 지정되었다(<그림 2>).

5) 1967년 고시도 내용 추정·보완

지금까지 고찰한 바를 토대로, 1967년 고시도에 포함되었을 내용을 추정·보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의 수원시 행정구역과 동일하게 도시계획구역이 지정되었다. 둘째, 수원 화성 내외부에 세 개의 순환도로를 계획하였다. 셋째, 외부 순환도로를 중심으로 한 동수원 개발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넷째, 수려선 철도를 이설해 기존 도심과 신시가지(동수원)를 연계시키고자 하였다. 다섯째, 동수원 지역을 현재와 같은 공업지역이 아닌 주거지역으로 계획하였다. 여섯째, 도로망을 비롯한 기본적 도시 형태는 1965년 및 1968년 보고서의 계획도와 유사했으리라 판단된다.


Ⅳ. 1967년 수원시 도시계획의 의미

제Ⅳ장에서는 추정된 1967년도 고시내용의 분석을 통해 이 계획이 지니는 의미를 규명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주목한 1967년 도시계획의 특징은 순환도로망 체계 도입과 이를 통한 시가지 확장이다. 수려선으로 인해 도심과 단절돼 있던 동수원은 1967년 도시계획을 통해 처음으로 도시계획구역에 포함되었는데, 이를 가능케 한 핵심적 계획 기제가 순환도로 건설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제Ⅳ장에서는 순환도로 건설 계획과 연관된 경수산업도로 건설과정과 이와 병행 추진된 동수원의 권선지구 개발과정을 고찰하여 순환도로망 구축이 수원 도시 공간 구조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자 한다.

1. 순환도로 건설: 경수산업도로 건설사업

1965년 보고서에서 제안되어 1967년 도시계획에 반영되었으리라 추정되는 3단계의 순환도로 건설계획은 기존 도로망을 활용한 도심부의 제1 순환도로, 수원성 외곽에 조성하여 도심 통과교통 억제를 도모한 제2 순환도로, 마지막으로 주변부에 계획한 제3 순환도로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1967년 도시계획 고시 시점에는 수원 도심과 수원 남동부를 가로지르는 수려선 철도로 인해 이의 실질적 추진은 어려웠다. 결국, 수원시가 현실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방안은 세 개의 순환도로 중 기존 도로의 정비를 통해 제1 순환도로를 조성하는 방안뿐이었다. 이에 수원시는 도시계획 고시가 이루어지기도 전인 1967년 3월 수원시청(현 수원시 가족여성회관)에서 수원역 구간의 도로 확장공사에 착수(수원시사편찬위원회, 2014:221)하였고, 뒤이어 1972년 고화 토지구획정리사업(1968~1972)을 통해 장안문과 수원역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유신로(현 팔달로)22)를 개통23)하였는데, 이로써 제1 순환도로가 완성되었다.24)

한편 제1 순환도로가 완성될 무렵, 수원시 순환도로망 구축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수려선 폐선과 경수산업도로 건설이 그것이다. 먼저 수려선은 경동 철도 주식회사가 건립해 1931년 12월 운행을 개시한 철도로, 경기도 내륙 곡창지대의 곡물과 여객의 운송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자동차 교통에 운송시장을 빼앗겨 적자 폭이 심화되자,25) 결국 1972년 3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운행을 중단하게 되었다(김백영, 2014:145-146; 황민혜·신예경, 2018). 폐선 이전까지 수려선 철도는 수원시의 시가지 확장을 가로막는 동남쪽 경계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러나 철도 폐선으로 경계가 사라지자, 수원 구도심은 동수원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되었고 제2, 제3 순환도로의 건설은 보다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수려선 폐선이 순환도로 건설의 간접적 계기였다면, 경수산업도로 건설은 순환도로 건설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당시 중앙정부는 이미 준공되어 있던 서울-안양 구간을 현 수원종합운동장(현 경수대로 북부 구간)까지 연장함으로써 국도 1호선을 고속화도로로 정비하고자 하였는데, 1973년 착공하여 1976년 개통하였다(수원박물관, 2010:61).26) 그런데 이 구간은 1967년 도시계획상 제2 순환도로의 일부였기에, 잔여 구간(수원종합운동장-세류동, 현 경수대로 남부 구간)만 개통하면 순환도로를 완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잔여 구간의 착공은 예산부족27)을 이유로 1970년대 내내 추진되지 못하다가 1979년 6월에 이르러서야 제1 공구(수원종합운동장-창룡문)의 착공이 이루어졌고(수원시사편찬위원회, 2014: 219), 1980년 11월에 이르러 제2 공구(창룡문-인계동)까지 개통될 수 있었다(수원박물관, 2014: 34-35). 제3 공구(인계동-권선동)는 예산부족으로 추진이 어렵게 되자, 수원시 채무부담 조건으로 1981년에야 겨우 착공되었고, 연장 3,400m, 폭 35~50m의 도로28)가 최종적으로 개통된 것은 1982년 6월이었다(내무부, 1980; 경기도청). 1967년 도시계획 고시부터 도심 통과교통을 우회시키고자 추진된 제2 순환도로가 무려 15년 만에 개통되어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표 2>).29)

Gyeongsu Industrial Road (GIR) Construction Project and Land Readjustment Projects (LRP) adjacent to GIR

그러나 1967년 계획과 달리, 제3 순환도로는 건립되지 않았다. 1965년 및 1968년 보고서에 따르면, 제2 순환도로는 수원역 방향으로 연결되었고, 제3 순환도로는 세류동에서 현 경기대로와 연결되도록 계획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2 순환도로가 경기대로와 연결되었고, 제3 순환도로는 건설되지 않았는데, 이는 1967년 계획에는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고려가 없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계획 고시 이후인 1968년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 구간 개통으로 서울과 수원을 연결하는 또 다른 도로가 마련되었고, 이에 따라 제3 순환도로를 건립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이는 1969년 도시계획 변경 시 반영되어 기존의 제3 순환도로의 노선은 북수원에서 신갈 방향으로 노선이 조정되었고, 이에 순환도로로서의 성격을 상실하였다.

2. 동수원 개발: 권선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

예산부족으로 경수산업도로는 착공에서 개통까지 무려 9년(1973~1982년)이나 소요되었다. 따라서 도로개통에도 불구하고 예산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데, 그 해답은 토지구획정리사업에서 찾을 수 있다. 건설자금 확보를 위해 도로 주변 지역에 대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병행 추진한 것이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은 이미 일제 강점기부터 시가지 정비의 일반적 수법으로 적용(김주야·石田潤一郞, 2009)되어 왔는데, 공공의 비용부담 없이 사업추진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사업 특성상 공공이 부담해야 할 사업비용 및 공공용지 등을 모두 토지소유자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감보로 인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토지소유자들은 사업 이후의 지가상승을 기대할 수 있었기에 자발적으로 사업에 참여했고, 공공은 비용부담 없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국토개발연구원, 1996:693-697). 바로 이와 같은 토지구획정리사업의 특성에 주목한 수원시는 이를 통해 경수산업도로 건설 자금의 상당 부분을 조달할 수 있었는데, 흥미로운 부분은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조달한 금액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증액되었다는 사실이다. 내무부(1980) 자료에 따르면, 제1 공구의 총사업비 25억 7,400만 원 중 구획정리사업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8억 원(31.7%)에 불과했으나, 제2 공구에서는 46억 7,300만 원(84.7%), 제3 공구에서는 55억 6,500만 원(72.2%)까지 증액된 것이다(<표 2>). 이는 당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한 시 정부의 수익이 막대하였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없었다면 대규모의 기반시설 확충은 불가능했음을 뜻한다.

이에 <그림 8>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경수산업도로 건설과 권선지구 개발이 동시에 추진되며 수원 시가지의 동진(東進)이 시작되었다. 이후 권선 1, 2, 3지구, 매탄 1, 2, 4지구 등이 택지개발사업을 통해 개발되었고, 마침내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현 삼성전자 수원영업소가 위치한 매탄동 일대까지 시가지가 확장되었다(수원시, 2000:52-53). 1967년 도시계획을 통해 최초로 시가화 예정지로 지정되었던 동수원이 30여 년의 긴 시간 끝에 개발된 것이다.

Fig. 8.

Aerial images of Dong-Suwon (Eastern Suwon) in 1981 (left) and 1987 (right)Source: Suwon City, “Aerial images” accessed June 27, 2019.

다만 1967년 계획과 현실 간의 차이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변화된 여건에 기인한다. 1967년 계획은 수려선 철도 이설로부터 시작하였다. 철도 이설을 통해 기존 시가지의 확장(팔달문 주변 상권의 동수원으로의 확장)과 도심과 분리된 신시가지의 개발(이설된 수려선 철도변 상권 신설)을 동시에 모색했기 때문이다(<그림 5>). 그러나 1972년 수려선이 완전히 폐선됨에 따라 현실은 계획과 다르게 전개되었다. 이설 철도 주변에 조성하고자 한 신시가지 개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 것이다. 결국, 기존 시가지의 확장을 통한 동수원 개발만이 가능한 방법으로 남게 되었고, 이에 수원시 도시계획은 팔달문 주변의 기존 상업지역을 현 지동사거리 주변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1972년 8월 11일, 건설부 고시 제339호). 1967년 도시계획과 현실 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Ⅴ. 결 론

본 연구는 1967년 우리 정부에 의해 고시된 수원시 최초의 도시계획에 대한 기존의 상반된 기록을 검증하여 오류를 바로잡고, 첫 고시도의 내용을 추정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를 통해 수원시의 첫 도시계획이 지니는 의미를 정립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지금까지 보고된 바 없는 사료의 발굴을 통해 1967년 고시도에 담긴 내용을 추정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1960년대 수원시의 도시계획사를 일정 부분 복원할 수 있었다. 또한 추정·보완된 내용을 통해 1960년대의 도시계획이 향후 수원시 도시개발에 미친 영향을 고찰할 수 있었다. 주요 연구결과 및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 자료의 재검토와 신규 자료의 발굴을 통해 그간 1967년 고시도로 알려진 도면이 1967년이 아닌 1969년 도시계획 변경 과정에서 작성된 도면임을 확인하였다. 또한 1967년 고시도 원본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1965년 작성된 ‘수원도시계획용도지역지정계획도(안)’, 1968년 작성된 ‘수원도시계획도’ 그리고 건설부가 수립한 수원시 위성도시계획도의 비교 분석을 통해 1967년 고시도에 담긴 내용을 추정하였다. 지금까지 1960년대 수원 도시계획과 관련된 선행연구는 고시내용 이상의 분석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단순 지식전달에 그쳐 왔으나, 본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료가 발굴되었고, 이를 통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수원시의 1960년대 도시계획이 일정 부분 복원될 수 있었다. 향후 후속연구를 위한 기반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둘째, 동수원 개발의 연원이 1967년까지, 보고서 간행을 기준으로 하면 1965년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확인하였다. 지금까지 권선·매탄지구로 대표되는 동수원 개발은 경부고속도로의 서울-수원 구간 개통(1968년)과 삼성전자 설립(1969년)으로부터 기인했다는 것이 일반적 통념이었다. 양훈도(2016:497-498)는 1970년대 수원의 산업구조 변화를 언급하며 그 기점을 1970년 삼성전자 매탄 공장 완공이라 주장하며 이를 대변했고, 김보현(2014:312)도 수원 경제의 고용, 소득, 도시화는 삼성전자에 의해 촉진되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본 연구를 통해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삼성전자 설립에 앞서 동수원을 개발하고자 한 공공의 계획이 1965년경부터 수립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다만, 수원시는 공업지역이 배제된 주거 및 상업지역으로 동수원을 계획하여 1967년 도시계획 고시에 반영했지만, 건설부는 1965년부터 동수원을 공업지역으로 계획하고 있었고, 결국 1969년 도시계획 변경 시 건설부 의견이 반영되었다. 이는 삼성전자가 매탄동에 자리를 잡게 된 연원이 1965년 수립된 건설부 계획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삼성전자를 기반으로 한 동수원 성장 배경에 1960년대 수립된 공공의 도시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셋째, 1967년 도시계획에서 처음으로 구체화된 외곽 순환도로 건설계획의 가치를 재조명하였다. 기존 계획과 비교해 1967년 도시계획이 지니는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외곽 순환도로 체계의 구체적 제시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약 반 세기가 흐른 현시점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는 방안이었다. 가장 최근에 수립된 ‘2030 수원 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수원시 도로체계의 문제점으로 ‘순환도로 및 우회도로 미비로 지역 간 연계성이 미흡’함을 지적하며 ‘방사순환형 가로망체계 구축을 통한 순환기능 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수원시, 2014:168, 180). 1967년 계획의 외곽 순환도로 건설과 동일한 해법인 것이다. 비록 외곽 순환도로의 위치는 시가지 확장에 따라 변경되었지만, 그 개념만큼은 꾸준히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이었고, 그 의미를 재조명했음에 본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본 연구의 한계는 무엇보다 자료 확보 한계에서 기인한다. 1967년 도시계획 고시 원도를 확인하지 못해 연구의 상당 부분을 추정에 기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65년 보고서와 1967년 도시계획 고시 간의 차이, 1968년 보고서와 1969년 고시 간의 차이 등을 자료 부족으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도 본 연구에서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향후 사료발굴을 통한 후속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수원시정연구원에서 수행한 연구과제 ‘70년 수원 도시공간의 역사편찬 학술연구’의 일부를 발췌, 수정·보완한 것임.

Notes
주1. 1949년 8월 14일 시행된 대통령령 제161호 「부의 설치 및 군의 명칭·관할구역 변경의 건」에 따라, 수원읍, 여수읍, 순천읍, 포항읍, 금천읍의 일부 지역이 부로 승격하였고, 동년 8월 15일 시행된 법률 제32호 「지방자치법」에 따라 종전의 부를 시로 개칭하게 되었음(수원시사편찬위원회, 1986:559).
주2. 행정구역 면적은 1949년 23.35km2였으나 1963년 83.67km2(법률 제1175호), 1983년 96.67km2(대통령령 제11027호)로 변경되었고, 2018년 12월 현재는 121.05km2임(수원시, 2018:88). 도시계획구역은 1944년 29.39km2(총독부 고시 제1053호)로 지정된 후, 1967년 83.67km2(건설부 고시 제478호), 1969년 121.66km2(건설부 고시 제336호), 1972년 202.85km2(건설부 고시 제339호), 1975년 120.39km2(건설부 고시 제2호)로 변경되었고, 현재는 121.14km2임(수원시 공고 제2014-227호).
주3. 일제 강점기 시가지계획은 1944년까지 전국 43개 도시를 대상으로 수립되었는데, 수원은 삼천포와 더불어 마지막으로 수립되었음(수원시, 1997:297).
주4. 녹지지역은 1941년 이후, 보산, 인천, 부산, 평양, 성진, 수원, 삼천포의 총 7개 도시에 지정되었음(전채은·최막중, 2018).
주5. 수원시는 도시계획법 제정에 앞서 1961년 자체적으로 도시계획(그림 3)을 수립한 바 있으나, 경기도지사의 승인을 얻지 못해 법적 효력은 없었음(수원시, 2000:60-61).
주6. 동아일보, 1968.2.1., ‘경부고속도로 오늘 기공’.
주7. 매일경제, 1968.12.21., ‘1일 생활권에의 첫 관문, 경인·경수고속도로 개통’.
주8. 삼성전자는 1969년 3월부터 동년 10월까지 경기도 수원 일대의 토지 45만 평을 매입하였음(삼성전자주식회사, 1989:119).
주9. 매일경제, 1967.5.26., ‘신축지로 수원결정 의주로 연초제조창’.
주10. 매일경제, 1967.6.22., ‘23일 수원에 이전 경기도청’.
주11. 매일경제, 1967.12.7., ‘서울-수원 간 노선확정’.
주12. 동아일보, 1968.2.1., ‘경부고속도로 오늘 기공’.
주13. 경향신문, 1966.11.10., ‘고속도로차관 추진 경인·경수간’.
주14. 해당 문헌은 건설부 도시 및 지역계획 연구실에서 작성한 ‘수원시도시계획재정비안’으로 문헌에 출판연도가 기재되어 있지 않음. 다만 1964년 말 기준 통계 자료를 사용하였고, 1967년 이후의 계획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는 이를 1966년 출판으로 추정하였음.
주15. 손정목(2005:205-208)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박정희의 단독구상으로 제안되어 1967년 5월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최초 등장했다고 기록했으나, 건설부(1966:2, 110)는 IBRD가 ‘제2차 5개년 계획 동안에 수원 서울 간의 신설 고속도로를 제안하고, 1972년 이후 계속해서 신설 고속도로를 남쪽으로 연장 건설하여 부산까지 이르도록 제안’했음을 기록했기에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최초 제안은 1966년 전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됨.
주16. 1969년 보고서상의 도시계획 변경 이유는 첫째, 수원의 위치적 중요성(수도권 남측 관문), 둘째, 경부고속도로 건설, 셋째, 서울대학교 수원 이전 추진 및 교육·문화 도시로서의 육성, 넷째, 경기도청 및 농촌진흥청 등 관리기능 집중에 따른 수원시 위상 변화, 다섯째, 경기 남부의 경공업 진흥도시로의 개발 촉진, 여섯째, 관광 수원의 이미지 조성임(수원시, 1969:85-87).
주17. 대법원, 1970년 7월 24일 선고 70다980 판결.
주18. 불허용도 열거방식은 「조선시가지계획령」에 의한 모든 용도지역에 적용되었음(서울특별시, 2017:291).
주19. 수원시(1965b:65)는 장안문-팔달문-수원역 구간의 기존 도로정비와 유신로(수원역-장안문 직선 연결 도로, 현 팔달로) 신설을 통해 제1 순환도로를 구축하고, 이어서 여기산에서 수원역 세류동까지 연결되는 제2 순환도로, 공군 비행장에서 현 성균관대역까지 서수원 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한 후, 정자동, 우만동, 권선동을 경유하는 제3 순환도로를 계획하였음.
주20. 이후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계획구역변경이 결정되어 1968년 보고서 발간 5개월 후인 1969년 5월, 신갈지구의 도시계획구역 편입을 골자로 한 계획(수원시, 1969)이 수립되었고, 동년 6월 11일 도시계획 변경이 고시되었음(건설부 고시 제336호).
주21. 특정지역이란 1963년 제정된 「국토건설종합계획법」에 의해 지정된 지역으로, ‘자원의 이용이나 개발이 충분히 되어 있지 아니한 지역, 산업의 조성이나 재해의 방재를 특히 필요로 하는 지역, 기타 국가의 특별한 경제적·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역’을 뜻함(국토개발연구원, 1996:95, 100).
주22. 유신로는 이후 화서문길로 명칭이 변경된 후, 현재는 팔달로로 개칭되었음(수원일보 2008.7.7., ‘화서문길 주거환경개선 눈앞, 신 주거단지 제2 도약’; 수원박물관, 2012:203).
주23. 동아일보, 1977.3.16., ‘신흥주택지구로 개발된 서수원’.
주24. 유신로(현 팔달로)는 이미 1920년대 이전에 형성되었으나, 보조간선도로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임(수원박물관, 2012:33-34).
주25. 수려선 철도는 1971년 기준, 승객 12만 8,407명과 화물 8만 7,674톤을 운송해 3,641만 4,000원의 수입을 보였으나 총유지원가가 2억 1,600만 원에 달해 1억 7,958만 6,000원의 적자를 기록했음(경향신문, 1972.3.31., ‘아듀 수려선 칙칙폭폭 목멘 고별운행’).
주26. 경향신문, 1973.8.25., ‘근대화에 밀리는 수원의 명소 한 많은 지지대 고개’.
주27. 용지매입비 11억 9,000만 원, 철거 보상금 6,300만 원 등 총 18억 6,000만 원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사업이 지연되었음(동아일보, 1976.12.27., ‘바닥난 지방재정 해 넘기는 숙원사업’).
주28. 매일경제 1981.1.6., ‘경수산업도로연장 15억 투입 10월 준공’.
주29. 경수산업도로 개통 후, 수원화성 내부를 관통하던 국도 1호선은 경수산업도로 노선으로 변경되었음(수원박물관, 2010:6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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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

Fig. 1.
The map known as comprehensive urban plan of 1967Source: Suwon City (1997:324; 2000:65; 2004:111), Lee (2014:233).

Fig. 2.

Fig. 2.
Comprehensive urban plan of 1969Source: Suwon City (2000:64).

Fig. 3.

Fig. 3.
Proposed comprehensive urban plan of 1961Source: Suwon City (2000:61).

Fig. 4.

Fig. 4.
Plants location in Suwon of 1964Source: Suwon City (1965a).

Fig. 5.

Fig. 5.
Proposed comprehensive urban plan of 1965Source: Suwon City (1965b:65).

Fig. 6.

Fig. 6.
Proposed comprehensive urban plan of 1968Source: Suwon City (1968:13).

Fig. 7.

Fig. 7.
Satelite city plan of Suwon in 1965 (left) and 1967 (right)Source: Ministry of Construction (1965:95; 1967:81).

Fig. 8.

Fig. 8.
Aerial images of Dong-Suwon (Eastern Suwon) in 1981 (left) and 1987 (right)Source: Suwon City, “Aerial images” accessed June 27, 2019.

Table 1.

Land use plan of 1965, 1967, 1968, and 1969

Table 2.

Gyeongsu Industrial Road (GIR) Construction Project and Land Readjustment Projects (LRP) adjacent to GIR